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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고양이
한해숙 지음 / 혜지원 / 2016년 1월
평점 :
작가는 2011년도부터 아이의 그림에서 단초를 받아 고양이 그림을 항상 머리 한귀퉁이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고양이의 모습을 의인화시키는 과정을 날마다 하며 살았던 것이다.
어떤 주제가 주어지고 나면 항상 그 주제가 머리에 맴돌고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사진을 찍어 오면서 알고 있다.
밥 먹다가도, 울다가도, 웃다가도, 일하다가도 불쑥 불쑥 치밀어 오르는 이 작업의 과정은 일상에서 느끼는 하나의 모티브이자 삶의 원동력이었다.
마찬가지로 작가의 고양이도 이와 비슷한 동질성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늘 나의 동반자나 반려자였던 셈이다.
이와 같이 심리적인 경험은 무슨분야일지라도 공통된 현상이었으리라.
작가도 마찬가지로 고양이의 그림을 염두에 두고 이를 통해서 "우리들의 고독과 단절의 고립감을 떨쳐 내려는 관계의 소통에 손을 내미는 탐닉"이 아니었겠나 싶었다.
이런 예술적인 심성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의 모습을 하며 나타나지만 그 속성의 본질은 늘 일맥 상통하는 것이었다.
즉, 마음의 닿음에서 닿음의 부비 거림으로 일어나는 뜨뜻한 가슴의 미열을 고양이 그림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했던 마음이 그래서 달갑게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한 장 한 장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해 나간 고양이의 의인화된 단상은 결국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로 나타내고 의미로 전달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까지 긴 시간 동안 쌓아간 노정임을 직감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이 그림도 짧은 시간이 아니었을 테다.
그림이 어디 하루하루 성실함으로 색을 칠해나가야 하는 과정은 그만큼 작가 자신의 주제에 힘을 가슴에 오래오래 삭혀 왔고 발효시켰을 것이며 근사한 풍미의 그림으로 산고를 거쳤다는 것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
고양이는 왜 인간의 곁에서 반려하려 했을까?라는 원초적 질문도 곁들이면서 작가는 이 고양이를 자신의 이야기로 끌여 들었으며, 결국 고양이는 인간의 곁에서 머무르면서 전해주는 이야기는 또 다른 인간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투영한다고 보았다.
"함께",또는 " 따로", 그"사이"에서 "책을 읽는 고양이"가 찾고 싶어 했던 붉은 책.
"짧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도 그들처럼" 삶의 단상을 모으며 엮고 낸 것이 결국 우리들의 일상에서 던져 내는 조곤조곤한 상념을 서술하며 고양이 그림에서 단상을 가미시켜서 자신의 삶에 찬찬한 격정을 토로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대부분 섬세한 감각을 지녔다.
따라서 풍부한 감수성이 밑바탕이 되었으며 그 바탕에서 하나하나 쌓아나간 아포리즘의 글들.
그것에 자신의 고양이가 쌍쌍으로 책에서 살고 있다.
이것이 "단상의 고양이"였다고 정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