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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 - 깨지고 까여도 출사는 계속된다, 박찬원의 열혈 사진 공부 이야기
박찬원 지음 / 고려원북스 / 2016년 1월
평점 :
작가는 평생 기업의 마케팅 전문가였다. 마케팅 전문가이니만큼 기업에서 활약한 스펙이나 이력도 화려하다. 마케팅 전문가였기에 사진의 역할은 마케팅을 하기 위한 사진이었을 테다. 그런 사진의 목적은 분명하다. 사진의 본령에 눈 뜨기 전의 사진이란 대부분 상업적인 목적에 의한 사진이었지 사진이 본래 추구하는 고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에, 작가는 어떤 사진 행사에서 우연하게도 사진을 찍고 행사에 어드바이스 하는 전문 작가로부터 최우수상을 거머쥐게 되고, 작가의 칭찬이 사진에 본격 빠지게 했던 경우였다. 그래서 사진을 배우는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되고 본격 사진 인생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작가가 사진 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 사진과 사투를 벌이며 공부하는 분투기이자 사진의 전투 격전장에서 겪는 일기처럼 나열되었다. 이른바, 사진 대학원 좌충우돌 체험 수기 격이라고 나 해야 할까 싶었다.
일반적으로 대학원이라는 곳은 학문의 기초를 배우고 익히는 곳은 아니다. 대학이라고 하면 학부를 지칭하는데 학부 과정은 학문 분야의 개론에서부터 출발해서 학문의 심화과정으로 나아가는 전 단계까지를 배운다. 물론, 고등학교까지는 대학에서 기초를 다지는 밑바탕을 토대와 같은 것이고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대학 학부에서 개론의 사진 과정 없이 바로 대학원으로 훌쩍 건너뛰어 사진에 입문하였던 것이다. 사진의 심화과정의 전 단계, 그러니까 사진의 기초적인 소양을 건너뛴 셈이고 이 기초적 소양에서부터 이어지는 좌충우돌하는 현상을 대학원에서 겪게 되었다.(보통 대학원은 대학 전공과 관련 없이 일정 학점이 되면 입학 절차에 의해 선발되는 게 일반적이다. 일반 학부과정에서 어떤 학문의 기본이라든가 개론은 다 학점이수로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입문 전의 사진이라고 해봐야 찍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케팅 차원에서 철저히 돈벌이에 론칭하기 위한 사진이 어디 사진의 본령과는 거리가 먼, 그러니까 상업성이라는 분명한 목적에 충실한 사진이고 사진에서 예술론을 접목시킨 건더기도 없었을 테니, 대학원에서 예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경우이다. 사진도 10년 이상 찍어봐야 겨우 입문 수준에서 벗어나고 이제 입문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어떤 예술에서 속성반이 어디 있다고 대학원에서부터 바로 들어가 워밍업도 없이 달려 나갈 정도로 사진을 아주 가볍게 봤다는 의미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노는 물이 달랐다고 작가는 충격적으로 다가왔음을 가감 없이 고백한다. 평생 돈벌이에만 매달리다가 사진 예술이 돈벌이와 전혀 먼 동네의 이야기가 낯설고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 수련기였던 것이다.
책의 제목부터가 상당히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다. 사진 태도, 즉 사진을 하는 자세, 사진을 만드는 기초적인 토대가 틀려먹었다는 말이고 다시 말하자면 기본이 안되었다는 말이다. 사진의 태도라는 이 사진의 기본은 무엇이라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사진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기초를 다지지 않고 심화과정에서 겪어야 할 기초의 부제로 야기된 사진의 혼란한 심기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대학원 교수님들이 얼마나 답답해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예술적인 마인드도 기초적 소양도 부재한 상태에서 이런 기초를 쌓으며 나아가 논문 주제를 정하고 심화시켜 나갈 것인지, 자기 주체적 사진 학문의 결과로 나온다는 게 참으로 깝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동원된 방법은 일정 수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한 질타와 비판으로 날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고충도 나오기 마련이다.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기만 한다고 사진으로 봐줄 수는 없는 것에 대해서 사진을 예술론적 반열에 올려놓기까지의 고민이야 책에서조차 다 서술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어떤 예술이든지 간에 예술적인 기본적 소양이야 연마하고 노력하고 공부로 쌓으면 된다지만 천부적인 재능은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이다. 이것을 가지고 태어나서 본능적으로 타고 나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머리로 하는 것보다는 몸이 저절로 체화되는 재능을 믿는 사람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로 이미지 테크닉이나 사진의 감성 또한 나는 약간이라도 타고 나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정 부분은 이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 재능이 아주 어릴 때부터 발굴되고 이를 토대로 익히며 고도화되어 갈수록 예술의 감성적 감도는 어느 일정 수준을 뛰어넘어 초월하게 되며 장차 위대함을 나타내는 경우는 여러 천재적 예술가에서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다. 도저히 연습으로 되지 않고 타고나야만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는 열심히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는데도 수준을 올리는 데는 미미한데, 또 다른 누구는 그저 설렁설렁 별 노력도 없는 듯한데도 불구하고 가히 세계적인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면 모차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르의 열등감이 그래서 나올 수밖에 없던 까닭이기도 하다. 나는 사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건 연습하고 단련시켜서 나오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찍고 보니 확연한 사진은 어떻게 설명하기도 어렵다. 이 게 타고난 재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을 소위 말하는 "끼"라고 한다. 이런 타고나는 끼는 어떤 게 연습이나 훈련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유전자가 물려준 고유한 능력은 인력으로 어떻게 조율할 수가 없는 천부성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흔히 예술을 예능화되면 기계적일 수밖에 없다. 예능적인 기술은 예술에서 없어서 안되는 것이겠지만 예술은 예능을 포괄한다. 따라서 나는 사진 분야에서도 소위 사진의 "끼"에 대해 한동안 우울했던 적이 많았다. 없는 끼가 고민하여 갈구한다고 생길 리도 없을뿐더러 훈련한다고 만들어지지도 않는다면 내려놔야 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하는 열등감의 고통은 인생 전반을 망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차라리 버리고 순수하게 사진으로 내 삶의 즐김과 누림을 위해 찍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학교를 가볼까 생각도 있었다. 사진 학문을 본격적으로 하기에는 부단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었다. 달리 말하면 돈이 무척 많이 든다. 사진 한다고 해서 부자 될 것도 없는데 어렵게 번 돈을 써가며 공부를 해야할 만큼 성취해서 이루어야 할 과업이 무엇인가를 따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진과는 일반 학과에 비교해서 실습비가 정규 비용보다 더들 수도 있는 한계는 또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더 난감한 부분이기도 했다. 차라리 책이라도 많이 읽어두는 편이 효용성에는 나은 방법일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하고 책이라도 더 읽고 공부를 하는 편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스펙에 학교의 사진 전공 스펙이 하나 더 늘어난다 해서 내 사진의 즐김과 누림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사회적으로나 사진의 명성을 쌓아나가는 것에는 전공이라는 이름값이 소용없는 게 아닐지라도 사진으로 명성을 쌓아야 할 만큼의 명분도 찾기 어려웠다. 배움이란 학교에서 과정으로가 끝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자신의 분야에 지속적인 마중물처럼 채워 넣어야 할 과정이라는 점은 사진도 마찬가지가 아니었겠는가 말이다. 당연하겠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게 여러모로 나은 일임은 분명하다 하나, 불손한 목적으로는 학교에 들어가서 비벼 대면 딱 표가 날 것이다, 개 허접이라고.
그러나 작가는 사진을 위해 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려는 목적은 그야말로 순수했을 것이다. 왜냐면 사진이 아닌, 마케팅 전문가로서 기업의 최고의 자리에서 쌓은 이력은 사진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던 사람이 무슨 사진에 욕심을 낼 것인가라는 것에서는 정말 사진을 좋아하는구나,라는 그 순수한 매력의 끌림을 사진에서 만났다는 점이다. 오죽 좋아했으면 책까지 집필하고 출간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에서 역시 사람은 고역의 고민을 가진 즐김은 예술이 아니고서는 다른 걸로는 충족이 되지 않는구나 싶었다.
특히, 사진에 있어서는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급격하게 이전되고, 게다가 카메라 장비의 가격도 한층 낮아지는 등의 이유로 사진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IT 기술과 네트워크의 접목으로 오늘날의 사진은 가히 폭발적인 확산을 불러왔다. 소수의 예술의 집약이 한층 더 확대된 대중으로 사진이 파고든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음악이 아무리 좋아한다 한들, 어느 악기 하나 익히는 게 간단하지가 않고 더더구나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연마하는 데는 무척 긴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고, 그림이 좋다 한들 그림의 스케치부터 익혀 나가는 손재주는 상당한 연습만으로는 부족할 텐데, 사진은 도구의 발전이 이런 기존의 소수의 전유물을 단숨에 극복해 버리게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카메라는 이제 핸드폰과 함께 탑재됨에 따라 사진은 일상의 흔한 활동으로까지 전락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진 과잉은 수잔 손택의 지적처럼 새로운 결핍과 가치적 부재를 낳게 되었고 이미지의 공해를 유발하였다. 무의미하고 흔해 빠진 무수한 이미지들 속에서 사진은 점점 더 찾아내는 것이 희박해져 가는 것을 느끼는 시점에 다다랐다. 무차별적으로 남발되는 이미지는 과연 사진다움이라는 가치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예술적인 기발함은 퇴색되어 가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게 더 악화되어 간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작가의 책은 사진의 학습과정이 어떠하다는 개인적인 경험이 사진 찍는 모든 사람이 전부 그럴 수는 없을지라도,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작가란 모름지기 어떻게 고민을 하고 사진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작가의 사진 고민<하춘근 작가, 리즈앤북,2015>"이라는 책에서 보면 작가의 사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노트가 어떻게 기록 되어 있는지도 나온다. 하나의 사진 프로젝트를 위해 기획하고 계획서를 만들고 스토리를 엮어 나가면서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 설계도를 만들어 사진을 시공한다. 그래서 그 사진에 대한 결과를 리포트하고 사진의 목적을 반향함으로써 작가의 예술적인 철학을 구현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만날 수 있다. 그러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저 속성으로 셔터질로 순간을 잡기까지 그 사진여행의 계획은 치밀해야 했으며 고도화 시켜내는 생각을 끝없이 머리를 싸매고 고뇌했던 예술을 표현한다는 것. 이게 어떻게 남발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글이 좀 길었다. 결론이다. 사진 좋아한다면, 부디 책 좀 읽으시라. 소설도 좋고 시집도 좋고 무슨 책이라도 좋다. 특히 사진 책은 사진 찍는 사람의 필수 학점이요 의무다. 허약한 사유로 내면적 심성이 다져질리도 없거니와 그렇게 허약체에서 나오는 사진은 누구 하나 감동은 고사하고 공감 부재만 난무할 뿐이다. 적어도, 최소한, 누가 자신의 사진에 강력한 질문 몇 개로 넉따운되어 버리는 녹초는 되지 말아야 자존심 이 다치지 않는다. 정곡 한 마디에 한 마디 대답조차 못하는 벙어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