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_다시 가족으로’ 라는 귀한 사진집을 받았다.
일반 시중에서 발매된 책이 아니기도 하였기에 받아든 마음이 묵직하기만 했다. 이 책은 개인사적인 가족의 영면으로 그 과정 하나 하나를 디테일하게 사진으로 담았고 죽음으로 인한 가족사의 슬픔과 치유와 일상으로의 복귀를 표현한 책이었다. 그러나 죽음이 비단 가족사에서만 유효한 소재는 결코 아니라, 생 그 이면의 죽음이 차지하는 거대 담론의 연장선이었다. 따라서 사진이라는 담론의 개인적인 가족사에서 죽음의 의미와 죽음으로 만나야 할 우리들의 삶을 되새김질하는 반추의 역할이었다는 것도 직감한다.
나는 처음 책을 받아들고 첫 사진을 보는 순간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어느 죽음이든 슬픔이 없는 죽음이 없겠지만, 특히나 사진의 시각적인 슬픔은 은유적이 아니라 사진의 직관적이라서 더 와 닿았기 때문이고, 사람이 태어나고 죽어 가는 과정에서 생애주기는 누구라도 예외 없는 철칙과도 같아서, 사진을 보는 내내 가슴은 뜨거웠으며 머리는 무거웠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이웃 간에, 혹은 가족 간에 탄생이라는 소식보다 부고장을 받아드는 횟수가 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동안 가족의 죽음과 직장 동료의 죽음과 친구의 죽음까지 나도 죽음은 예외 없이, 그리고 터무니없는 낯선 소식을 마주하며 아연 실색한 죽음들이었다. 현재 개인적으로도 모친의 마지막이 멀지 않아서 이내 곧 언제 닥칠지 모를 만큼 노사초심 하고 있는 형편이었고 (이미 병원에서는 몸만 살아 있는 경우다. 의식은 벌써 멀리 떠나보낸 거나 다름없다.) 또한 직장에서의 죽음도 두 번이나 겪었다. 아무런 낌새도 알아 차리지도 못하고서 아침에 출근해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의례적인 인사와 '밤새 안녕 하였는가'라는 투의 담소를 나누었는데 점심 후 불현듯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살이란 비보가 들려 올 때는 실감할 수 없는, 아니 전혀 믿기지 않는 소식에 말문을 닫게 만들기도 했다. 동료의 자살 소식에 안타까움이 심했다. 왜 미리 조금만 더 신경 써주지 못했던가 라는 막심한 후회를 남기고 장례식장에서 회한을 나누기도 했다. 게다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위집 아랫집으로 사이 하면서 알게 된 동생 같은 친구가 간암으로 급히 훌쩍 떠났을 때, 그 아픔으로 차라리 빨리 끝나기를 빌었던 기억도 난다.
이처럼 인간은 죽음이 늘 그림자와 같다. 어느 시인은 삶이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으로 가는 짧은 여행이며 생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라고 표현했다. 사람이 살면서 두 번 죽지 않고 단 한 번의 마침 점을 찍고 레테의 강을 건너는 과정이 우린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단순히 생물학적, 신체적 반응과 에너지의 끊김, 그리고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수면으로 의식조차 더 이상 호흡이 멈추고 사라져가야 하는 절차가 죽음이다.
귀천이라 함은 다시 말하면 우리가 왔던 곳으로 되 돌아간다는 의미였고, 즉 있던 곳이 하늘로 되 돌아감에 따라 원래 자리로 복귀함을 의미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왔던 곳인 것처럼 인간이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이야기는 여러 신화에서도 이미 많은 사례들이 있다. 경천애인의 고사성어에서도 경천 하늘을 우르르며 라는 대목은 결국 내려온 인간의 천부성과도 관련 맺는 인식에서부터 죽음이다.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영혼은 승천하며 혼령으로써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영혼의 부활이라는 의식적인 하늘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해석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일상의 낯설은 최초의 경험이자, 마지막 경험으로 한번만이라는 유한성의 극단적인 현상이다. 산 자는 죽은 자의 애도와 이별을 목도해야만 한다. 죽음은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객관이며 타자이고, 나의 죽음은 내가 관조 할 수 없는 철저한 주관적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죽음의 과정을 사진이라는 기법으로써 가족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상실과 부재의 시작을 알리는 슬픔, 그리고 사라짐으로 인한 해체와 다시 가족의 테두리를 재구성하는 양식으로 서술하듯이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장례의 절차와 그 과정을 놓치지 않고 디테일하게 표정을 담아 나감으로써 가족의 일원의 각 개개인들의 이별에 대한 받아들이는 방식을 사진은 이야기하고 사진을 보는 내내 그 사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하였다.
공자는 제자가 죽음에 대해 물었을 때, “어찌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알겟냐‘라고 죽음을 회피해 버렸으나 정작 제자가 죽었을 때는 공자 자신도 깊은 탄식과 슬픔이 심했다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삶은 죽음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 방식도 있다. 죽음을 기억하고 마지막은 염두에 철저하다 보면 삶이 어떻게 일회성의 과정으로 다잡아야 하는지 죽음을 통해서 사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음은 삶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진솔하게 살도록 각성시키는 각성제와도 같다. 영원히 살 수 없음에 대한 각인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항상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을 망각한 듯 사는 것아니 다름없다라는 서양철학의 근간에 대해 다시한번 곱씹게 된다. 종교에서도 인류가 만들어 낸 이유는 죽음으로서 유한성을 진즉에 받아 들였기에 가능한 발명품이다. 그 유한성의 한계를 종교를 통해서 극복하고자 부활을 만들었고 때로는 의미적 부활까지 이입시켜 가면서 유한한 시간을 정신적으로 연장하려고 했던 것이다. 모두 죽어야 한다는 명제에 반기를 들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식의 모색은 육체를 떠난 의식과 영혼에서 찾으려 했던 까닭이었으리라. 이런 점에서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장례의 절차와 방법은 인류가 처한 각각의 환경에 순치 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져 가야할 관습과 풍습의 양태로 나타난다.
전통이라는 고유한 방식의 장례 절차를 만들고 예법을 만들고 그렇게 이어져 온 떠나 보내야 하는 것에서, 우리도 이런 죽음의 고유한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유교에서 나온 성리학적인 절차와 방법은 사자와의 이별을 절차로 떠나 보내는 관습이 그리 낯설지가 않다. 이번에 발간한 책에서도 이런 가족의 죽음을 통하여 그런 절차와 슬픔이 결합되어 가족 구성원의 상실을 극복하고 다시 새롭게 가족을 재편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만날 수 있었다. 새로 태어나고 먼저 태어난 가족이 구성되고 또 죽어가는 일련의 생애 라이프 주기와 맞물려 인간은 가족사를 만들고 그렇게 이어져 왔다. 한 집안에서 살았다 죽어간 기록이 족보에 남겨지고 누가 살았고 누구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고 그렇게 또 사라지는 연결의 사슬에서 탄생과 죽음은 단 몇 줄로 써져 있지만 그 과정의 역사는 삶의 마지막 기록으로 축약되고 압축된 서술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발간한 사진은 족보보다 구체적인 이미지로의 기록에서 그 실체를 맞닥뜨리게 된다.
시대는 바뀌고 기술은 발전함으로, 선친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후대가 만날 수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떻게 마지막의 모습을 하고 떠났는지 사진은 선연하게 기록하였다. 이런 슬픔의 기록이 역사를 인간이 존재하는 한 계속 이어질 것이고 앞으로도 우리가 살면서 만나고 숙명처럼 길들여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죽음을 마주 하면서 죽음의 선언적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살았을 적의 고인의 사랑과 인생 그리고 떠난 후의 고인의 추모. 우리는 산다는 것은 결국 거부하지 못할 죽음이라면 제대로 죽어야 한다는 선언적인 의미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고 여긴다. 사람의 평가는 살았을 적의 핑계로 에둘러 갈 수 있지만 죽고 난 이후의 평가는 냉혹하게도 객관적이다. 나의 평가는 내가 만날 수 없는 평가이며 그러나 살았을 적의 평가로 인하여 그 평가는 그래서 교조적인 선언이다. 잘 살아야 잘 죽어 갈 수 있다. 미련없이 후회없이 가야할 길이라면 가족의 상실은 어쩌면 앞으로 그리움이라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남아야 한다. 그래서 선언적일 수밖에 없다.
한 권의 사진집에서 사진가의 그리움을 만났다. 추모라는 것이 그런 그리움이라는 평가의 가치를 담고 있기 이유이다. 그나마 다행이지 않을까. 상실감을 사진으로 대체하고 상실을 사진에서 그리움의 추상 연결 되는, 선연한 이미지로 남기는 자세야 말로 다른 사람이 사진을 보고 사진에서 울리는 그 매세지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가 김상환님은 오래전부터 블로그 상으로 사진으로 만났던 적이 많았다. 그의 사진은 깊은 사유의 관조라는 뉘앙스를 익히 알고 있었던 바, 사진에서 개인 가족사를 기록하면서 사진을 대하는 자세를 유추하게 된다. 장례식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일일히 추적해 나가는 일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슬픔을 담담히 사진에 담으면서 슬픔이 다시 극복과 치유되는 과정은 가족이 재구성되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우린 가족에서 부터 가족으로 이어지고 삶을 유지해 나간다.
이번 사진 작품집에서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들어내지 않고 싶었을 텐데 기꺼이 사진 책으로 발간하고 독자의 요구에 직접 보여 주신 은혜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치밀하고 내밀한 사진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을 부풀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결론을 가지게 한다.
-------------
Ps : 저자 김상환 교수는 경상대학교 역사학을 연구하며 강의 중이십니다. 물론 사진도 대단한 작가입니다.
이 책은 일반에 발매되지 않는 한정판 사진집입니다. 물론 알라딘에 등록이 안되어서 리뷰로는 작성할 수 없어
페이퍼로 글 올립니다. 혹시 통영 가실 일 계시거든, 구 거제대교 오른편에 몽돌하우스라고 있어요.
여기가서 유레카 이름 팔아도 반갑게 맞아 주실 겁니다.
공감 주시거나 댓글 주시는 분에게 추첨으로 한분에게 이 사진집 보내드리겠습니다.
저는 작가에게서 한부 받았고, 출판사에 어렵게 부탁해서 구입했으므로 두 권가지고 있거든요.
1부는 알라딘 이웃분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