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이가 들어 갈수록 지나간 시간의 회한의 점도가 비례해서 더 끈적하다.
한 두 해를 보낸 가을과 수십 년을 매년 지나온 삶의 부스러기가 가득 뭍은 가을이랑 어떻게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살아 갈수록, 살아 내질수록, 모든 것들에게서 지나버린 것의 울음보가 터지게 하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가을 빛의 짙은 세기만큼 강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니 늙어간다는 것은 지나버린 시간에 늙음이 어찌할 도리가 없이
속수무책이라서 더더욱 손쓸 방도는 찾기 어려운 절대값이었나 보다.
추억은 머릿속에서 남아 있는 기억의 짜투리들.
작은 머리로 무중력 공간을 유영하는 것처럼 늦게 떨어지는 늙은 가을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게 하는 시간의 가속도를 붙이고야 만다.
그래서 더욱 늙어가는 모든 것들에게 더 안쓰러운 가슴 앓이와 씀씀이를 엿보게 되는 원인이었겠다.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은 젊은이는 앞을 보고
앞으로 살 날이 다 닯은 늙은이는 지나온 뒤의 흔적이란 추억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살았던 날의 길이와 살아갈 날의 길이 차이는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하다.
각론은 다를지라도 총론이야 비슷한 인생사에서
깊은 한숨 같은 체념이 고개를 뻔뻔스럽게 치켜들고만 있다.
2. 시내 교보문고 갔다가 익숙한 낯선 공간의 언밸런스 같은 느낌이 서점에 꼿혀 있는 책의 인상이었다.
그런데 한국문학 에세이 코너였더라. 아 이건 좀 아닌데....
내심은 문학 에세이 카테고리가 아니라 사진 쪽 카테고리에 있길 바랐는데 포토에세이라는 타이틀이 에세이 쪽으로 분류해 넣었나 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쟁쟁한 문학가들 틈에서 책이 같이 꼽혀 있다는 게 기분은 영 뻣뻣해지는 사지 경직같은 느낌이 난다.
이렇게 뻔뻔해도 되나? 아 쪽팔림이야! 그런데 이 쪽팔림을 무릅 쓴 죄가 실로 크다.
내킨 김에 으레 들렸던 사진 코너에도 역시 들렀다.
이왕 온 거, 빈손으로 가기 섭섭할 것 같아 캘리그라피용 붓펜 몇 자루와 사진 책 한 권 또 골랐다.
3. 도서출판 "스냅사진"의 정명섭 대표의 스냅이라는 분야의 사진에 대한 글을 책으로 엮었다.
(이 책도 1쇄 제고가 얼마 없다는 작가의 말씀이 있었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요즘은 스냅사진이 스마트폰과 맞물려 많이 차지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사진 교양 참고서 같은 책이라고 봐도 된다.
벌써부터 어떤 책인지 내용이 궁금해져 온다.
요즘 사진은 안찍고 사진 책을 열심히 구독 중이다.
하기야 책에서 길이 전부 다 보인다고 손 목아지를 걸듯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참작이 되고도 남는 횃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가을에 한숨의 농도를 책으로 묽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 놈의 결핍이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