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은 일전에 인텨뷰에서 칼의 노래라는 작품을 쓸 때,
단어 하나 가지고 밤을 새웠다고 했다. 그만큼 치열하게 글 쓰시는 분이다.
그런 작가가 이번에 '라면을 끓이며'라는 생경스러운 제목의 책을 냈다.
물론 나도 예약할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블로그 이웃이자, 알라디너 이웃인 연꽃플라리스님에게 미리 기프티북을 받았다.
(책 좋아하는 거 너무 꿰뚫어 줌 ^^)
우하하.... 책 좋아하는 분이라서 책을 하늘로 날리듯 책 선물로 날려 주었다.
게다가 알라딘 굿즈 사은품이 양은 냄비와 라면???
라면 끓여 먹으면서 책을 읽어도 좋다는 뜻이다.
이 책의 PR 문장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悲哀]”
이 문장 하나가 아주 후벼 판다.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이라니.
이 안쪽은 내면을 말하는 것일 테고
내면을 들여다보니 비애라는 문구.
먹고살기 퍽퍽하다는 의미가
이 문장 하나로 삶의 이야기 쌓는 탑의 기단석이 된다.
먹고사는 일.
어떻게 가면 갈수록 더더욱 퍽퍽해지고 살벌해졌을까?
조선시대의 1인당 GNP는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지금보다는 몇 십 배나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미래의 먹거리 불안, 취업, 결혼, 육아 등등이 그때보다야 풍요롭지만
풍요 속에서 곤궁함은 각종 통계의 수치와 사회적 피부 상태로 나타나고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
짐작건대 작가는 여기에서 라면이라는 가장 단순한 인스턴트 음식으로
우리의 삶이 피폐화되어 가는 모종의 상념을 글로 풀어 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기와 눈물 떨군 라면 먹어 보기는
삶이 고단한 현실에서 터져 나오는 잠시간의 허기를 면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안쪽의 비애와 바깥쪽의 무덤덤한 표정 없는 모습에서
심각한 괴리를 안고 골방에서 머리를 싸매야 하는 일탈을 꿈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 먹고사는 일이 여의치도 않으니 급기야 자살과 범죄와 정신병과
현대의 암울한 현실이 버겁게 다가오는 작태를 우린 늘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어떤 추측을 도모하게 하는 책 제목.
'라면을 끓이며'는 결국 가슴에 맺힌 마음을 끓이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보게 된다.
책이 기다려지고 책을 선물해주신 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