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대학 2학년 2학기 즈음, 서서히 장래의 진로를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공시 준비할까 싶다는 선언을 했다. 이른바 문송. 당초 가고 싶어 했던 영문학으로 진학을 못했던 미련이 2년 내내 전공에 대한 회의만 쌓다가, 결국 선배들의 진로에서 공시 합격 소식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 들었던 심리적인 분석을 스스로 내놓았던 결과였다. 뭐 나에겐 큰 조카도 인천에서 고용노동청 공무원이고 하니 집안에 공직에 나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해서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고 지난 해 연말쯤 시골 와가 집인 외할아버지 주소로 주민등록까지 옮겼으니 지방직 행정 직렬로 뜻은 세웠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딸아이는 나와는 성격이 정반대이다. 생김새는 아빠를 무척 닮았는데 성격은 엄마를 더 닮았다. 뭔가 고정적이고 시키는 것에는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 제 엄마랑 비슷하다. 난 불규칙적인 걸 좋아하는 것도 나와 다르다. 그러니 공직 스타일이라는 게 딴 생각 없이 매뉴얼적인 방식을 딸아이는 더 선호하는 편이라는 거에 비추어 보면 제가 할 결정을 스스로가 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쩌면 장차 직업을 가질려는 계획도 그런 성격의 영향도 많이 받나 보다.

 

최근 들어 경기가 하락하기도 하고 해서 전부터 대기업의 구조조정 일 순위가 40대, 50대의 명퇴 소식이 더 많이 들린다. 나야 중소기업이다 보니 취업규칙이 별도로 없으니 정년이란 개념이 없지만 눈치를 보자니 55세 넘기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를 감지된다. 그간 업무에서도 잔잔한 기억력 감퇴나 기민한 업무 대처 능력이 저조하고 소소한 업무 차질은 엄청 스트레스였다. 아 이래서 50을 넘기면 실무에서 손을 떼야 하는구나를 스스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말은 직접 하지 않아도 소소한 업무의 차질에서 벌어지는 오너의 노발대발은 말할 것도 없고 옆 직원들에게까지 민폐로 작용하는 경우가 생기면 진짜 나도 늙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지경이다. 그래 나이 들어감으로써 30대의 반짝이던 총기는 사라진다. 그간의 경험으로 맥락은 짚어도 디테일한 업무의 방법은 많이 변했다. 이렇기에 경험은 전수하면서 빨리 습득하는 후배들에게 업무의 줄기를 짚도록 넘겨야 하는 과제가 남은 셈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상황으로 감안해서 딸아이에게 졸업 때까지만 유지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했으나 공시 준비로 2년은 더 연장해야 할 의무가 생긴 셈이다. 음... 어떻게 버텨야 하지?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당연히 본인 스스로도 압박감은 클 것이다. 시험이란 합격과 불합격이란 결과로 모든 과정을 대신해버린다. 시험은 항상 높은 경쟁률을 보이지만 결국은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 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커트라인 안에 드는가 마는가 이 차이이다. 비교론의 시험이란 이렇게 피를 말리는 것처럼 버겁다. 물론 신춘문예보다는 훨씬 쉽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시험 준비 전에 미리 공부에 대한 자신의 맨탈을 다지라는 의미로 이 책을 사줬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공부를 포기하라고 하는 책의 제목이 꽤 동기를 유발했으면 하는 바람도 섞여 있었다. 이왕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코피 터지도록 그 시간에 자신의 지능과 한판의 대결을 펼쳐 보는 자기 조절력에 제어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염원이 이 책을 선택하고 읽도록 권했다. "역시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몇몇 일부 천재적 암기력을 보유한 사람들보다 "공부가 제일 어렵다"라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일반적 평가이다. 어차피 공무원 시험은 암기력 시험이다. 두꺼운 수험서의 지식을 머릿속에 문신처럼 새겨서 시험 문제의 정답과 오답을 걸러 내서 정답을 많이 적는 사람의 승부이기 때문이다. 즉 암기력이란 암기라는 지능의 문제이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논리적 이해력과는 다른 시험이다. 얼마나 암기를 폭넓고 깊게 그리고 많이 외우느냐 이것의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이다. 이해력이 좋은데 암기가 안된다면 공무원 시험은 안 보는 게 맞다. 철저히 외워서 시험문제에 외워진 지식으로 정답을 맞히는 시험이라는 거다. ​암기력은 결국 반복적 효과이다. 외워질 때까지. 그리고 외워진 것이라는 입력이 지워지지 않도록 각인시키는 시간이 필요한 시험공부이다. 일단 암기가 안되면 시험공부는 무의미하다. 외운 것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반복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해도 회상이 안돼도 시험에 통과가 어렵다. 반복은 계속 입력의 되새김 작용이란 긴 시간이 필요하므로 공부의 기간을 결정한다. 누구는 6개월 공부하고 합격을 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몇 번에 걸쳐 해도 떨어지는 경우만 봐도 그 개개인의 암기 능력은 천차만별이다.

 

얼핏 이 책을 전체적 맥락을 훌터본 바, 거의가 시험 공부의 방법론이다. 처음 공부가 아닐 것이다. 고등학교의 입시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에서 학기 중 시험 등 살면서 많은 시험을 본다. 시험을 보면서 항상 공부가 없는 시험이 없듯이 자신만의 공부가 필요하다. 그럴 때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책이 아닐까 한다. 살면서 어떤 동기에 의해서 무수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나 또한 50대에 들어 인생 후반을 위해 자격증 공부까지 할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말이다. 살면서 미리 따 놓은 자격증으로 써먹을 수 있을지 앞날의 인생은 알 수 없고 또 어떤 공부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공부를 위한 방법론에 있어서 만큼은 모르는 것보다는 알고 맨탈을 다지는 것이 앞으로 어떤 시험이 생길지도 모르는 인생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인지 담보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듯하다. 공부는 노력만 가지고는 안된다. 요즘처럼 가성비를 따지는 시대가 대세인 것처럼 효율적인 공부로 단시간에 합격이라는 소기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최선이다.

 

시간은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고무줄이 아니다. 시험 공부는 공부에 걸맞은 나이가 있다. 장기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할 공부가 있다면 단기간에 승부를 봐야 하는 공부도 있는 법이다.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단기간의 시험공부는 그만큼 시간을 아끼고 비용을 줄인다. 딸아이에게 딱 두 번의 기회를 말했다. 공부는 무한정으로 합격할 때까지 도전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두 번 정도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다른 길을 찾는 편이 인생 전체의 길이에서 나은 방법이다. 3번 4번 해도 가능한 물질적 뒷받침도 어렵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면 처음 시작부터 독한 마음으로 면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이왕이면 첫 번의 도전에 성공하면 좋겠으나 자칫 실수나 노력 부족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떨어질 수 있다면 그다음은 처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재도전까지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다. 두 번 이상 안된다면 그건 자신의 길이 아닐 수 있다. 그것만이 절대적이거나 필수도 아니다. 인생은 많은 가능성의 복합체이다. 시간은 단선적이지만 가능성은 항상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론으로 공부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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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2-27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20대가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것은 아무래도 일반 기업시험보다는 공정하기 때문이지요.하지만 아버지 세대와 달리 9급 공무원시험도 몇년을 준비해야 할 정도로 경쟁률이 심해 9급 학격만해도 학과에서 플랫카드를 붙이는 것이 이제는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ㅡ.ㅡ
그나저나 유레카님도 버티실수 있으면 끝까지 버티셔야 됩니다.아는 분이 50대 중반으로 일본계 기업에 있다 나왔는데 나름 전문지식이 있어 재취업을 자신했지만 결국 원하는 자리를 얻지못해 건물 관리인(명칭은 총무부장)으로 가셨는데 년봉이 기존의 1/3에도 못 된다고 한타하시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yureka01 2020-02-28 09:02   좋아요 0 | URL
청년들이 어느 대기업을 보는 관점이 공무원이나 공사로 턴하게 만들죠...일반 사기업은 안믿는다..이거니까요..

저도 이제 한계가 서서히 온거 같습니다..ㅎㅎㅎ 눈치 없단 소리는 안듣고 살았거든요...분위기 감지 안테나에서 경고음 발동중이라서요..
한 20년 넘게 버텼으니 지칠때도 된거고 한계가 온거죠..

2020-02-27 2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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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0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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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20-02-28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남의 일이 아니네요.
자식 가진 사람들 다 걱정입니다. 애들 앞날 때문에-
정규직 취업이 하늘에 별 따기니 공무원이 더 안전해보이는 거죠.
제 조카도 부산에서 경찰행정직 2년째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중퇴
전공이 적성에 안 맞기도 하고 졸업 후 비전도 없고.....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헤져나갈지 자식 세대들 앞날이 염려스럽네요 ㅠ.ㅠ

yureka01 2020-02-28 12:56   좋아요 0 | URL
문과라서 공공직 아니면 인력 채용도 하지 않는 추세라고 하더군요..
이과 계열은 그나마 갈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문과는 취업문이 너무 좁고
좁다 보니 과도한 스펙을 쌓아야하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합니다.
그럴 바에는 아예 처음부터 공직 시험으로 공정한 경쟁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더군요..
이제 직장도 얼마 있지도 못하고 계속 케어도 못해줄텐데...
이왕 시골로 갈려고 맘먹었는데 면사무소에 서기보라도 했음 합니다.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0-02-29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카들 중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5년만에 합격한 경우가 있고
사오 년을 매진해도 불합격이어서 진로를 바꾼 경우가 있어요.
곁에서 지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더군요.
이 시대에 제가 취준생이 아님이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로 참 어려운 현실입니다.

yureka01 2020-03-01 11:18   좋아요 1 | URL
몇년하고 합격하는 분도 있고..한해 바짝해서 하는 사람도 있고..
경우가 모두 다르더군요..
하여간 시험공부는 쉬울리가 없으니까요..경쟁자가 있으니 말입니다.

2020-02-29 1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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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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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9 2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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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1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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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1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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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1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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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6 16: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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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6 16: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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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6 16: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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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6 16: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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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3-01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한 밤 되세요.

yureka01 2020-03-01 22:10   좋아요 1 | URL
주말 휴일에 사진찍으로도 안나갔습니다.ㄷㄷㄷㄷ
자발적 자가격리였거든요...
감사합니다!~~

유리빛나 2020-03-09 0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애정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yureka01 2020-03-09 08:50   좋아요 0 | URL
일종의 의무감이라고나 할까요..
이 거친 세상 나오게 한 책임..분명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댓글저장
 

음악 플레이 버튼 누르시고

기분도 꾸리꾸리한데

사진이나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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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4 2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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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4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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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2-24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두 순간의 포착인데 심한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정말 좋은 사진 잘 보았습니다. ^^

yureka01 2020-02-24 23:01   좋아요 0 | URL
흐름이죠...
물결의 흐름...
시간의 흐름...그 흐르는 순간 순간들..

감사합니다.~

2020-02-25 1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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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1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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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1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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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1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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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1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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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1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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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2-25 14: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보는 사진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기다렸슴다.
근데 다음부턴 작품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보시죠. 그럼 더 근사할 것 같은데.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떤 사진이 좋다고 말씀드리기에도 편하고 의미있고 그럴 것 같습니다.
쑥스러우시려나...?ㅎ
전 분명 수묵화 같은 사진 봤는데 몇번째 사진이라고 앞에서 세려니좀 그랬습니다.^^;;

yureka01 2020-02-25 14:39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말씀하신거처럼 사진 블로그엔 사진 제목과 글 내용이 다 있긴한데
그런거 까지 다 포스팅할 수도 없고 해서..그냥 사진만 한정했습니다.

그런데 알라딘에는 책관심이라서 사진이 그닥이니까 뭐 사진만 봐도 되려니 합니다.
좋은 지적 주셨네요..


2020-02-25 2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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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08: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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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2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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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0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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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20-02-28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결 무늬 사진이 신비로워서 저도 따라해봤지요
집 앞 저수지 한 바퀴 돌면서 수면을 유심히 관찰
망원렌즈로 당겼더니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무늬도 보이던걸요.
수십장 찍었는데 두세장 겨우 건졌어요 ㅎㅎ
힌참 딜다봤더니 물결이 일렁거려 멀미가..... ㅎ

yureka01 2020-02-28 12:58   좋아요 0 | URL
와이프가 그러더군요.
계속 보고 있으니 빨려드는 기분이라고..하더군요..
울렁울렁!~~~
댓글저장
 
바람의 무늬 북즐 시선 3
강미옥 지음 / 투데이북스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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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   보이지 않는 것들도 흔적을 남긴다. 흔적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다시 흔적을 통해서 감성으로 덧쒸운다. 물리적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들, 정서적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들, 혹은 심리적으로 절대 볼 수 없는 것을 마치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공감각적이라고도 한다. 감각이 복합적이라면 감각의 입체화가 가능하다. 감각의 90%가 시각에서 온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닐 것이고 정보의 입력도 보는 것에서 이루는 게 아주 많다. 그래서 사진은 보는 것으로 대표되는 시각적 예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시각이 감성과 정보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 나머지는 텍스트가 담당한다. 시는 압축적 언어의 전달 체계에서 함의와 합축을 동시에 가지는 특징을 사진이 다시 수식함으로써 그 의미의 교감을 돕는다. 이렇게 사진에 시가 들어가는 형식은 그림에 시를 넣는 전통적 방식을 취하고 오늘날 새로운 사진적 형태인 디지털 카메라와의 결합으로 발전한다. 시가 고도화될수록 언어의 정점을 찍는 표현이다. 그러나 고도화는 자칫 난해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이 난해의 함정을 비켜가게 하는 돌파구가 사진으로 보여줌으로써, 난해를 이해로 바꿈으로 해결하는 미학을 사진과 결합된 시에서 만날 수 있다.

 

이제 여기 [바람의 무늬]라는 사진 시집을 통해서 작가의 사진과 시의 콜라보가 어떤 예리한 시선과 시심을 발현시켰는지 느낄 수 있다. 오랫동안 전문적 사진가의 작업과 시인의 역량 있는 모습에서 결합된 작품 하나하나는 일상에서 스쳐 지나버린 감성과 심성을 어떻게 관조해야 할지를 보여준다. 시가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보게 되고,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를 통해 읽게 되는 책이라 정의 내리고 싶었다. 시의 농축미와 사진의 날카로운 시선의 영상 미학이 작가의 활동력이 강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진과 시의 조합은 음악으로 은유하면 합창이다. 홀로 부르는 독창도 훌륭한 표현이지만 이것과 저것의 만남으로 다층적인 하모니의 효과는 합창이란 광범위한 울림이다. 물론 사진은 사진만으로 만들어 내는 자기만이 가진 표현방식의 독보성이 있고 시는 시만으로 뭉쳐진 예술성이 있다. 그러나 따로가 아니라 이 둘의 조합으로 하모니를 이루어 내는 것, 사진과 시를 감상하는 묘미일 것이다. 사진의 예술적 표현으로 뭉친 융합과 시어의 분자구조의 결합으로 또다시 사진과 시가 가진 고유한 경계를 넘는다. 디지털 시대에 사진은 시와 화음의 결합이 새로움의 분야로 사진 시집으로 탄생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예술적인 창작력이 유달리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실 사진이나 시, 이거 하나만으로도 지난한 창작의 어려움에 봉착하는 경우가 허다한 작가의 고민일 것이며 창작의 고역일 텐데 저자는 이 둘을 어떻게 조합하고 결합시켜 또 새로운 의미의 관조적 미학의 완성체로 나가게 하는 그 역량을 사진 시집 책으로 만날 수 있다. 이번이 그 두 번째의 책이었으니 그의 멈추지 않는 힘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고 무엇으로 만들어 내는 것인지 감성이 놀란다.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온도를 가지고 있을까. 어느 곳에서 혹은 무엇엔가 가졌던 열정이나 냉정이 온도를 결정한다. 한 평생 생존에 급급한 온도는 사물과 자본에 탐닉의 열정을 치열하게 높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구는 세상을 버리는 듯한 관조의 냉정을 가지며 저점의 온도를 유지하려 애쓴다. 이렇게 욕망의 높낮이는 온도화되어 때론 화가 미쳐 화병을 만들거나 정신병도 생기게 한다. 그래 우리 인생의 자기 온도는 몇도 일지. 내가 좋아하는 온도는 요즘의 소주 도수와 같은 17.9도쯤은 되지 않을까. 이 온도의 차이가 삶의 방향성을 불러일으키고 시간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바람은 곧 온도의 그 차이에서 비롯되는 물리적인 현상이겠지만 이 역시 마음의 심리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애정으로 대하는 그 열정의 온도가 곧 사진의 감수성으로 표현되어 삶의 방향성으로 일련의 흐름이 생기는 원리를 사진과 시에서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자, 그럼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그 흔적을 따라가 보자.

 

1. 잉태

 

겨울, 눈 내린 설경에서 예리하게 포착한 장면. 흡사 임산부가 출산 직전의 만삭임을 직감할 수 있다. 포착은 사진가의 시선에서 1차적인 직관이다. 그리고 눈이 쌓인 풍경에서 담은 단편을 자르고 담아 2차적은 단어를 발견한다. 이는 시차를 두기도 하지만 동시적이기도 하다. 눈의 잉태에서 눈의 순결한 탄생까지. 부드럽게 그려진 곡선의 눈 풍경에서 추출하는 작가의 진액을 만나는듯하다. 사진은 발견의 미학이며 이 미학에서 단계를 높여 창조의 잉태를 꿈꾼다.

 

2. 욕망의 높이

 

근경의 바다를 장노출로 잡고 원경의 주거형 아파트를 야경을 잡았다. 부산의 광안리 해변가로 늘어선 고층 아파트. 화려한 불빛은 흡사 나비가 꿀을 쫓아 날아들듯이 욕망의 유혹처럼 찬란하다. 우리 시대는 이 찬란과 화려의 욕망을 무엇으로 투영시키고자 하는가. 얼마나 높이 오르고 싶을까라는 마지막의 질문은 결국 얼마나 자본을 높이 쌓고 싶은 욕망의 표현의 다른 방식이다. 작가는 저 야경을 보고 욕망을 보았던 시선에서 그 가치관을 들어내고 있는 것일테다. 작가가 추구하는 삶이 저 욕망의 바벨탑에서 허기지고 갈증에 목이 마름이 결코 아니란 것을 유추하게 한다. 그러니 시를 밥 짓듯이 지어 내서 허기진 마음의 양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3. 회상 1

 

사진을 유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머물게 했던 것은 사진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할머니였다. 특히 할머니가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고 먼 산을 바라 보듯이 아니 지난 시절의 기억을 바라보는 것처럼 시선이 허공을 응시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린 가끔 지난 시절의 기억을 들출 때 시선을 멀리 두는 버릇이 있지 않는가 말이다. 바로 작가의 이 포인트가 사진 속의 배경이 되는 낡은 집과 허름한 옛집의 떨어진 문살 아궁이의 그을림과 매치되어 있다. 주 피사체와 배경의 조합이 어울릴 때 보통은 시가 자동적으로 추출되는 경험. 사진에 글을 붙혀 본 사람이라면 자연 스러운 경험일 것이다. 사진에서 뚝뚝 덜어지는 상념이 택스트로 풀어 길게 쓰면 에세이가 될 것이고 짧게 압축하면 그게 시가 되는 원리이다.

 

4. 천년 농다리

 

상여꾼이 만장을 앞세우고 농다리를 건너는 사진에서 농다리가 천년을 버텼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저 다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건넜을까. 또 다리는 시간의 강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바닥을 기억할 것만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건너오는 시간의 강. 우리 다시 마지막의 레터의 강을 건너는 것처럼 농다리를 건너 저승의 길로 접어 든다. 처음 건너는 시간의 강과 마지막으로 건너는 강에서 만나는 다리는 이곳과 저곳의 이음이자 시간의 통로처럼 보였다. 작가는 멀리서 상여가 강을 건너가는 풍경을 담고 다리라는 주제로 시가 나올 수 밖에 없었으리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결 : 이상과 같이 몇편을 리뷰로 표시하였던 것처럼 이 사진시집의 사진과 시의 콜라보이다. 상념을 불러 일으키는 모닥불처럼, 활활 불이 붙은 것처럼, 사진에서 시가 타오르는 것처럼, 피어 오른다는 점이다. 이 책을 받아 사진과 시 한 편 한 편씩 감상하면서 떠오르게 된 간단한 포인트를 포스트잇에 메모까지 하며 감상하게 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사진은 시를 도출하는 역할이 강력하고, 시를 읽음으로 또 사진을 곁눈질하는 상태가 된다. 사진 이거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나올듯한데 이걸 압축해서 시로 낙인을 찍는 작가의 시선과 관념이 예술이란 창작으로 승화되는 압력을 느낄 수 있는 사진 시집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전작의 사진 시집인 [기억의 그늘]이라는 사진 시집에 이어 그의 작품 활동이 더욱 열정과 농후로 만들어 냈다는 것에 박수 길게 쳐 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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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4 1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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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4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4 17: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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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4 1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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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4 1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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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4 2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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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진의 쓸모 -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
정기훈 지음 / 북콤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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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고 다 시인이 아니듯이, 나도 사진을 찍어도 사진가는 아니다. 그런데, 누가 정립하고 할 것도 없이 굳이 지칭하자면 사진 찍기를 애호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 내리고 싶다. 내가 찍는 대부분의 사진에서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사람이 들어간 사진을 제대로 찍기가 무척 난감하고 어려워서이기도 하다. 의도적으로 피하고 애써 프레임 속에 사람을 넣기를 주저한다. 사람이 들어간 사진은 사람이 없는 사진보다 꽤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들어간 사진은 사람의 직간접적인 스토리가 들어갈 수밖에 없기도 하고, 또 사람의 관계와 일과 존재와 그 삶의 방식과 태도 등 여러 가지 스토리가 사진의 파사드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걸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두려움에 대한 회피일까. 그래서 시처럼 차라리 사람을 뺀 사물의 은유를 통해서 사람이 없어도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씬 다가서기가 수월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직접 부딪혀서 도출할 이야기에는 사람의 살고 죽는 무수한 문제가 사진에 들어가는데 전면적인 대면이 두렵기도 하다. 문제를 회피하고 그 문제에 답을 정확히 낼 자신도 없다.

 

이 책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그 많은 사람들의 주제가 이른바 노동문제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사진을 찍은 작가가 노동 신문사의 기자 출신이었으니 어쩌면 직업적 일환이기도 하고 직업으로써 카메라를 들고 취재라는 과정 속에서 녹아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직업가이자 사진가로서의 그의 사진은 어쩌면 아주 열심히 일한 표정을 사진에서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진작가는 노동문제에 대해 해결하겠다는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먹고사는 문제의 난제를 부각을 시키는 일이 작가가 할 일이다. 보도를 통해서 사진을 담는 목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는 문제의 답을 도출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문제에 대하여 공감대를 얻고, 문제의 본질을 확산시키고 개인의 문제가 결코 개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성원들 간에 먹고사는 문제이자 각자가 근로를 하든 노동을 하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무엇엔가 자신의 정서를 팔든 몸을 팔든 시간을 팔아서 급부로 받은 자본을 통해서 사는 방식에서 얼마나 공정함과 사회적인 부조화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동에 대하여 각자의 이해를 넓히고 이에 따라 선거에서 법적이며 제도적인 접근의 답을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대부분의 난제가 각자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이해가 상충될 때이다. 그래, 이해의 충돌. 공통의 협의는 보편성을 띠지만 개별적이고 파편적 이해의 관계는 상당히 충돌하는 문제들이다. 건물주가 있으면 임차인이 있고 집주인이 있으면 임차인이 있고 기업의 오너가 있으면 종업원이 있고 판매자가 있으면 소비자가 있듯이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에 따라 이해의 폭은 늘 갈리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기업주와 노동자의 관계를 사진은 통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해의 반목된 현장의 사진이라는 점이다. 흔히 사진가의 시선은 공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결코 공정하지는 않다. 삶과 업의 주관의 가치가 프레임에 담기기 마련이다. 다분히 사진은 소속과 관계와 위치와 현상에 대한 작용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사진가 중에서 기업가의 입장에서 취재하고 사진을 담은 작가는 거의 없다. 어쩌면 대기업에 하청 납품하는 사장님도 기업가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진은? 글쎄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아니면 대기업가의 사장님의 사진도 만나기 아주~ 어렵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노동자의 파업은 많아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도 기업가의 목소리는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도 없다.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이 책 제목이 소심한 사진의 쓸모라고 했는데, 하지만 여기의 사진들은 결코 소심하지도 않고, 특히 사진의 쓸모에 대해서는 여기 사진은 어디 신문에 기고된 사진이기에 그 목적에 걸맞는 쓸모가 다 있다. 신문에 사진이 빠지면 안 되듯이 말이다. 현장에 직접 나간 갈등의 순간, 눈물과 불공정함과 부조리한 삶의 아픔에 대해 취재라는 형식으로 침투된 작가는 결코 소심하지 않다. 앞서 서두에서 밝혔듯이 나 정도는 돼야 소심하다 할 수 있고 내가 찍는 사진의 쓸모는 대체 이해조차 할 수없는 난해한 추상화처럼 일그러져 있는 현상을 찍고 있으니 더더욱 쓸모는 없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진과 직업을 철저히 분리하며 사진을 찍었다.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나도 현장에 나가서 카메라 들고 현장을 누비며 회사의 현장 사진을 사진 작품처럼 얼마든지 담을 수 있다. 그러나 난 현장에 나가서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 회사 내 건설현장의 스토리야 찾으면 얼마든지 발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이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이나 현장의 관계자 전부 다 업무적으로 안다 해서 난 그들에게 카메라로 사진을 잡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른바 다큐멘터리 사진은 자신의 업과 직접 관계한 곳에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접근이 허락되어 있거나 가까이 접근이 용이하다마는 나는 현장에 나갈 때는 카메라를 의도적으로 가지고 가지 않는다. 자신의 업을 이용해서 자신의 사진 작업을 취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려면 한도 끝도 없는 사진들일 것이 뻔하기도 하고 카메라를 의도적으로 너무 가까이 들이대는 것도 어쩌면 일종이 간섭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사진 기자도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기야 작업 현장에는 관계자가 아니면 아무나 출입도 할 수 없으니까 얼마나 신분상 쉽게 업무차라는 핑계를 대기에도 적절하다. 그러나 나는 카메라 들고 설치는 것은 작업자들에게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 깊숙히 개입된 사진을 나는 담을 수가 없다. 소심과 쓸모에 대한 사진은 나에겐 참 어려운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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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2-17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사진에 담을 땐 양해를 구해야 돼서... 초상침해 운운할까 봐요... 저는 일부러 사람 없이 풍경만 찍게 되더라고요.
사람을 넣을 땐 주로 뒷모습을 넣죠. 이 정도는 소심한 저도 허용할 것 같아서죠. 그런데 사람의 뒷모습이라도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더라고요. 풍경만 있는 게 좋은 경우도 있지만 사람의 뒷모습이 풍경을 살려 주는 효과를 내는 경우도 경험했어요.
(제가 공자 앞에서 문자 썼네요. ㅋ)

유레카 님 정도는 사진가입니다. 사과가 안 팔린다고 해도 사과를 팔고 있으면 사과 장수인 것처럼요. ㅋ

yureka01 2020-02-17 15:22   좋아요 0 | URL
네 초상권에 예외가 있는데
확실하게..공익적 목적이나 공공의 다수를 위한 사진이라면
초상권은 제외 됩니다.
대표적인게 방송의 영상과 신문등 언론의 사진입니다.
즉 기자가 촬영하는 사진과 영상에는 초상권이 적용되지 않는게 일반적인 법률이거든요..
공익적 목적을 위한 사진은 초상권 동의도 구할 필요도 없죠..
여기 사진은 이책의 저자가 기자였으니 가능했지요..

물론공익적 목적으로 찍은 사진도 개인적으로 활용할려면 피 찰영자의 동의도 구해야 하는건 별개문제죠..

개인적인 작품활동..등을 위한 예술적 활동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하죠..

그러니 예전엔 초상권이 없던 시절엔 마구 찍어도 가능했던 게 이젠 불가능으로 바뀌게 되었지요..

함부로 사진 찍으면 멱살 드잡 당하는 ~~~무서워요 ㅎㅎㅎㅎ

stella.K 2020-02-17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말씀하신 그 책인가요...?ㅋ

yureka01 2020-02-17 15:36   좋아요 0 | URL
아..다른 책이랍니다.^^..

stella.K 2020-02-17 18:10   좋아요 1 | URL
큭, 그렇군요...ㅋㅋ

yureka01 2020-02-18 22:04   좋아요 0 | URL
^^.사진 시집이랍니다..사진과 시의 조합..

2020-02-17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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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8 22: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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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8 23: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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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09: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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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20-02-18 0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촌로들도 초상권을 알아요
함부로 사진 찍다간 클나죠
시장 상인들도 뭐라고 해요. 물건이나 사고 찍거나 하라고 ㅎㅎ

텔레비전 화면에서 취재경쟁하는 사진기자들 보면 참 불쌍해요
카메라 두세개씩 목에 걸고 뛰는 걸 보면 목디스크가 걱정되기도 하고 -

yureka01 2020-02-18 22:05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는 사진찍는데 부담이 없었거든요..
이젠....함부러 카메라 들이 댓다간 ㅎㅎㅎㅎㅎ

카스피 2020-02-18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좁은 공간에서 사진을 찍다가 웬 분한테 자기 사진을 찍냐고 멱살잡이 당할뻔 했어요^3^

yureka01 2020-02-18 22:06   좋아요 0 | URL
카메라도 철저히 동의를 구하고..
동의를 구했다고 해서 마음대로 포스팅은 안되죠..
포스팅까지 동의를 구해야 가능한거라서 발표하는 건 별개로 동의가 필요하니까요..
제가 동의 구하지 않아도 되는 사진들을 찍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카스피 2020-02-27 21:59   좋아요 1 | URL
흠 제 경우는 사람을 찍으려고 한것이 아니라 장소(ㅎㅎ 곧 폐점하는 삐에로 쇼핑 open시저)를 찍으려고 한 것인데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의도치않게 사라밍 찍힐수 밖에 없더군요.

yureka01 2020-02-28 09:07   좋아요 0 | URL
그럴땐 기다려야죠..사람들이 지나가는 타이밍이 무리를 이루니까요..
기다리면 비는 때가 왔을 때 잡는거죠...^^..

2020-02-19 1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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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1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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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1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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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2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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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1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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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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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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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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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2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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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2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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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2 0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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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2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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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k68 2020-02-22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심스럽지요.

yureka01 2020-02-23 19:47   좋아요 0 | URL
사진찍을 때 인물이 들어간다면.....꼭 동의 구하는 순서지키고자 합니다..

2020-02-23 0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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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3 1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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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내용으로 감독과 배우 제작자를 블랙리스트로 올린 이유>

 

 

 

먼저 기생충 영화가 아카데미 오스카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에게 축하드린다. 대구 출신이라면서 봉준호 생가가 어쩌고저쩌고 하기도 하고 영화 기념관을 만들자는 둥 보자니 웃기는 소리가 나온다. 그것도 지난 정권에서 영화 예술인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배척하며 제외하는 모종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한 정권과 그 숭구리당당에서 나오는 썰이다. 그야말로 숟가락 얹기가 이렇게 사람들이 후안무치한 것에 대해 가상하다 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곧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이곳에서야 그 당에 공천만 받으면 따놓은 당상이니 본선보다 예선이 더 치열할 것이 뻔하고 뭐라도 이슈 하나 더 챙기기 바쁘다.

 

아무래도 그렇지. 자기들이 봉준호 감독, 송강호 배우에게 블랙리스트를 올려놓고 친 정권적이지 않다고 배제시킬 때는 언제고 이제 외서 오스카상을 4개나 받았다고 배재 시킬 때는 지난 것이니 지금은 다르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렇지. 늘 이런 식이거든. 그때마다 시기마다 손해난다 싶으면 배척하며, 이익이다 싶으면 언제든 손을 잡겠다는, 어떻게 보면 세상 참 편하게 사는 가치일지는 모르겠으나, 아닌 건 아니고 기는 긴 것이다. 뭔 주관이 이렇게도 없냐. 이랬다저랬다 나 꼴리는 대로 사는 게 웃기지도 않아 화가 난다. 인간들이 말이야. 이랬다 저랬다 하는데 어떤 일관성이 있어야지. 곤조면 곤조로 살든가, 이랬다 저랬다. 이게 뭐냐.

 

평상시에도 저분들이 언제 문화 예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나. 전혀 없던 관심이 오스카상 받았다고 쏟아 오르는 열의에 대해 기막혀서 어안이 벙벙벙하다. 이곳처럼 문화 예술계가 거의 황무지처럼 척박한데 미국의 로컬 상 받았다고 난리라니, 그렇다면 칸느에서 황금종려상은 글로벌한 세계적인 상일 때는 왜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던 건가 말이다. 하여간 뭔가 이익이 된다 싶으면 숟가락 걸치는 기회주의적인 행태는 조금도 새롭지가 않다. 아 너무 진부하다.

 

영화의 맥락이 뭔가. 자본주의적인 비판적인 메시지가 있는데, 자본과 정치권력에 붙어서 지역의 유지로 지역의 이익을 챙기면서 살았던 사람들, 방해가 된다 싶으면 배척하고 소외시키며 살았던 사람들이 손을 내밀고 악수를 창하는 모습에서 모종의 역겨움이 느껴진다. 생색일랑 그만하시라. 지난 정권 때 그 사람들이 블랙리스트라며 명단 올리고 문화 예술계 인사를 탄압하다가 이제 정권이 바뀌고 나니 다시 문화 예술 분야의 창달을 위해 손을 내밀고 영화산업에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란 것에 대하여 그 어떤 진정성 1도 없는 거짓말이란 걸 모르면 그렇게 또 당한다. 사람이란 말보다는 행동이다. 그들이 했던 행동에서 삶이 보이는 이유이다. 선거철이니 면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것 쯤은 안다. 다면 그 면면이 뻔뻔스러움일 때, 뻔뻔해서 수치스러움을 모를 때, 혐오와 구토를 유발한다. 어제는 이랬다가 오늘은 저랬다가 이익 앞에서 그 면의 바꿈에 대해 그럴 수 있음에 대한 무치스러움. 보편적인 감성으로 일관성의 유지와 가치관의 일관성을 철학적으로 주장하지만 이게 얼마나 일부 사람들에겐 공염불이고 공치사인지, 감히 쪽팔려서 나서지도 못할 텐데 그들은 그렇게 뻔뻔스러움으로 숟가락을 걸쳐 올려댄다.

 

사람이 살다가 실수할 수도 있고, 일을 거르쳐 잘못할 수도 있다. 사는 게 어떻게 모든 일에 완벽만 할 수는 없는, 그래서 인간적인 한계가 반드시 있다. 간혹 지나고 보면 쪽팔리는 일도 부끄러운 일도 없을 수가 없다. 사는 게 무수한 실수와 오류의 반복으로 점철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게 인생이란 거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도, 살아가는데 있어서 오류가 너무나 뻔히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제의 행위가 오늘의 행위에 모순이 된다면 결국 자기 자신의 과오는 여실하다.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를 올려 살생부인 것처럼 옥죄는 (심리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억압적 행태를 자행해 놓고 그기에 동조하여 일언반구도 없었으면서, 이제 자신의 선거에 도움이 될 성싶으니 지난 일은 까먹고 오히려 없었던 것처럼 하며 두 손들어 환영을 하고 가두에 현수막을 걸며 축하한다는 짓이 진짜 짜증과 혐오의 복합적 작용이 치밀어 오른다는 거다. 사람이 말이야. 왜 이렇게 뻔뻔하냐? 응.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최대 처신의 무기가 뻔뻔함을 무시한다는 거다. 배울 만큼 배우고 생각할 만큼 생각한다. 일일이 디테일하게 따지면 생각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왜? 삶의 방식이 뻔뻔한 것일까라는 심리 상태에서 의문스러운 것은 없다. 전염병이 돌아 마스크를 매점매석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이익 앞에서는 자신의 가치관쯤이야 아랑곤 하지 않는 조변석개의 삶의 방식이다.

 

왜? 그렇게 분위기 타는 게 얼굴 바꿈의 면면이 유리하니까. 일단은 분위기에 걸쳐 놓고 숟가락에 표가 쌓이고 당선에 유리하니까 그러는 거다. 그럼 다시 분위기가 반전될 때는? 그야 당연히 난 그런데 관심이 없고 멀어진다. 그런 약속 따위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부정한다. 부인하기에서 첫 번째가 지기 부정할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치고 빠지는 게 우리 인생사에서 경쟁에서 더 많이 더 빨리 채우는 삶의 방식이 곧 살아가는 행태로 나타나는 까닭이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당사자는 자신의 문제였을 테니 너무나도 정확히 판단할 것이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속내는 얼마나 씁쓸하게 여길 것이며 배척했던 사람들이 다시 손을 내밀 때의 그 머쓱함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참 오글거리는 뻔뻔함에 대해 인간적인 환멸 같은 느낌이 없을 수가 없다. 지난 때는 척결의 대상이었다가 오늘은 손 맞잡고 지원의 대상이 되는 상반된 현상에 대해 인간으로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라야 할 것인지. 선거에 나가 당선해야겠다는 목적이 과연 국민을 위한 봉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아니란 것은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던 이유가 아닐까 한다. 혹여 그런 것을 보고서도 지역민의 줏대 없는 지지에 웃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다시 국회에 보내 달라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올 것이고 그들은 허리 디스크가 걸릴 정도로 허리를 굽히며 제발 이번만은 국회에서 다시 봉사할 수 있도록 아부를 떨 것이다. 인간 중에 제일 저질이 뭐겠는가. 화장실 갈 때와 화장실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데 있다. 급할 땐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하다가 원하는 대로 되고 한 후는 안면 몰수하며 외면해버리는 인간형이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처신의 약삭빠름이라고도 하고 유연한 대처하는 거라고 추켜 세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렇게 말한다. 지조를 지킨들 무슨 소용이 있나.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부동산 시세 차액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자 불철주야 파사삭 요령을 피우며 빈틈을 노리는 사고방식이라는 거다. 그래서 선비가 없다. 지조 따위는 멀리 내던져 버리면서도 졸부적 가치가 최고가 아니냐라고 과시할 것이다.

 

얼마나 일회성으로 던진 거짓말인지에 대해 따져 봐도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다. 영화 박물관, 생가 터 복원, 영화 진흥산업 지원 등등 대부분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 사업들이다. 돈은 뭐 하늘에서 떨어지냐. 그거 다 세금 아닌가 말이다. 그럼 세금 내는 시민들의 의사를 한 번이라도 물어 본적도 없이 단순히 상품성 높아졌다고 앞뒤 검토 없이 마구 질러 버리는 식이라면 뭐 답은 나온다. 분위기 뜰 때 타는 거고 물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는 거라. 걸핏하면 죄파 빨갱이 영화감독이라는 오명을 쒸우고서, 사회불안 조장성 영화라며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그 면면들의 모순된 두꺼움이 이내 곧 역겨움으로 돌변하는 이유이다.

 

일전에 봉준호 감독이 말하길, 자신이 정권으로부터 블랙리스트에 올려진 것이 트라우마라고도 했다. 그래 내가 뭘 잘못했지?라며 스스로 백 번도 더 물어봤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란 사회적인 현상과 모순과 비리를 은유하는 영상 예술이기도 하다. 그기엔 감독이 주장하는 메시지를 담고 하고 싶은 말들을 영화로 표현한다. 이 표현에 대한 제갈을 물리겠다는 발상은 여전히 개발 독재가 판을 치던 60년대 70년대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점이다. 아 정권이 바뀌면 역사는 퇴보한다는 걸 스스로 느꼈을 것이다.

 

사실 어느 정권이 권력을 잡아도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했지만, 실수도 있고 오류도 분명 따라다닌다. 어느 사회이든 권력은 지상천국을 목표로 하지만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천국을 이룬 적도 없다. 그러나, 예술에 대해 억압적이거나 정권의 입맛에 따라오도록 제어하려 할 때 반드시 퇴보하는 경험은 부지기수로 겪었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어느 사회이든지 간에 어떤 말이라도 억압당하지 않고 비록 완전한 표현이 아닐지라도 인류가 가진 보편타당한 오랜 경험이 축적된 가치에 의거한 표현에 대해 배척과 수용의 기준을 권력의 도구쯤으로 여겼을 때 문화는 죽는다. 아직도 많은 예술가들이 돈보다는 의미와 가치에 더 목숨을 거는 것을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자본의 더 약탈적이고 고도화되어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소리가 권력과 자본의 입맛에 재단될 때 인류가 가진 가장 고귀한 가치가 빛을 잃고 천국은 이루지 못해도 지옥은 금방 성립되는 현상을 겪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 그들이 주장하는 무슨 지원 운운할 것이 아니라, 그들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져서 배척 당했던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성찰하고 반성의 전화라도 한통 넣어 주는 게 먼저 해야 할 인간적인 도리가 아닐까. 그 땐 미안했다. 얼마나 심적 고충과 고민이 많았을지에 대해 사과드린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뭐가 쪽팔린 줄도 모르고 다시 표를 구걸하는 게 아니다. 뭐 지역 정서상, 또 저런 무치한 자가 당선될 것이 아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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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2-13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지나가던 소가 다 웃을 일이죠.선거철은 선거철인가 봅니다ㅡ.ㅡ

yureka01 2020-02-14 08:51   좋아요 0 | URL
봉감독 입장에서는 이해안될듯해서요...

레삭매냐 2020-02-13 1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숭구리당당 완완쉐이~~~

yureka01 2020-02-14 08:51   좋아요 0 | URL
당이름을 차라리 <<얼굴두껍당>>이 어울릴듯해요..

가넷 2020-02-14 0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숟가락 얹기가 언제나 과도한 동네긴 한데 이건 좀... 다들 비슷한 생각인 것 같네요

yureka01 2020-02-14 08:52   좋아요 0 | URL
네..문화예술이나 문학가들을 블랙리스트 올리는 짓이 얼마나 잘못된건지 말입니다....

강옥 2020-02-14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굴두껍당에 뿜었네요 ㅎㅎ
정치인이 되면 다들 저렇게 뻔뻔해지는 걸까요?
지들이 힘 있을 땐 블랙리스트로 낙인 찍었다가 정세가 바뀌니까 ...
한국 정치의 현실이 이러니 국민들만 봉이 됐던 거죠.

yureka01 2020-02-15 09:05   좋아요 0 | URL
내손이 한걸 내가 모를리가 없죠...
당장 표를 얻어야 하니 마구 질러 보는 거니까요..
저런 정치인이 정치계에 있는 이유는
저런 뻔뻔함이 세상살아가는 처세라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 겁니다...

2020-02-17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7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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