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책을 고르는 대부분의 방법은 저자가 글과 사진을 동시에 담은 책. 글 따로 사진 따로. 따로 국밥 같은 책은 사진작가와 과 글 작가가 따로 놀면 간혹 엇박자가 보이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사진과 글이 있는 책은 저자가 동일인일 것.

 

한 편의 시같은 여행이라는 것이 사진도 시도 서로 닮은 꼴 여행처럼 닮았을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유발하게 된다. 책 표지가 참 이쁘다.

나도 여행이 사진과 시처럼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 가고 싶다. 카메라 걸쳐 매고 어디론가 발길 닿는 대로 훌쩍.!~

 

 

 


하여간 사진 찍는 분이나 글을 쓰는 분들이 감성의 제조기 공장 같다. "멀리 있지만 늘 함께였고 함께였지만 늘 그리운 것"이라는 표지 문구에서 길을 잃은 당신이 너무나도 작게 작게 사람의 모습으로 하고 있다. 길을 찾지 못하는. 그래서 여기가 어디인지를 모르는 나는 그래도 길 잃은 "나"이 듯이 당신도 그랬으리라는 느낌이 돋는다. 표지 사진이 딱 내 스타일이다.

 

길을 잃은 존재는 항상 오늘도 길을 찾고자 길을 떠나야 한다. 

 

 

 

80을 넘긴 할머니의 사진이 궁금했다. 과연 어떤 사진을 찍고 보았을 것인지. 사진은 나이와 더불어서 갈 때 사진에는 늙음이 익음으로 발전되는 놀라운 미학이 담겼을 것만 같았다.

 

할머니에게 카메라를 선물한 손녀의 안목은 할머니의 삶에 눈을 뜨게 했던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이다. 할머니의 삶 속에 늘 그리웠던 시 한 줄한 줄의 문장이 내재되었을 테고 결국 카메라가 그 내재된 시의 문장을 발현시켜냈던 모티브.. 그러니까 동기 부여가 된 것은 아닐까.

 

이처럼 사진을 담는 도구인 카메라는 숨어 있는 인생의 익음을 보여주는 힘을 가졌다. 물론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와도 별 다른 것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외할머니의 파이팅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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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9-17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래에서도 작사, 작곡가가 같은 사람이면 곡에 맞는 가사, 가사에 어울리는 곡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게 어려워서 작사가와 작곡가가 따로 있겠지만요..^^:)

yureka01 2018-09-17 19:09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싱어 송 라이터라고도 하잖아요..

stella.K 2018-09-17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역시 책들이 유레카님스럽습니다.

사진은 인형에 구름 배경인가요? 암튼 하늘하고 무척 가까운 것 같습니다.^^

yureka01 2018-09-17 23:38   좋아요 0 | URL
네 선택과 집중이죠,...

대구 달성 강정 현대 미술제의 작품을 구름 배경으로 구도를 잡은 사진이랍니다.,배경지 이런건 속이는 거라서^^..

강옥 2018-09-18 07: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심재 님의 책이 제 머리맡에도 있네요
표지 사진이 참 마음에 들어서 책을 눕혀놓지 않고 세워놨다는....ㅎ
오대산 노인봉 가는 길에서 만났던 눈 덮인 오두막
법정스님 사시던 수류화개 같기도 하고.
야산 자락에 눈을 둘러쓰고 오두마니 앉은 저 집이 와락 그립다는.....

yureka01 2018-09-18 10:02   좋아요 1 | URL
아고 역시..이 책을 가지고 계셨군요....^^..
그럼요.성향이 비슷한 분의 시선은 비슷한 곳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네요..^^..
저도 와락 그립습니다1~

2018-09-18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8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0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0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1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1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1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재개발 빈집 도로변

아직도 바위 끝에 앉아

집을 지키는 물새 한 마리

 

(디카시집 "이주민", 김종태, 2018.09)

 

이주민이란 사진과 시를 보자면 우선 사진으로는 재개발 현장의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집 앞 도로에서 발견된 페인트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흔적의 형상이 흡사 물새 한 마리를 닮았다. 시인은 이것을 물새를 빗대어 바라봤고 마침 그곳이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이주하고 남은 빈집 앞이었던 것이다. 집 앞이 바위에 걸터앉은 물새는 떠나 버린 이주민을 그리워하며 언제 부서질지도 모르는 빈집을 지킨다는, 이른바 시인의 상상력의 시선과 상상력에 따른 사진 시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기에 따라서는 거친 세파가 휘몰아치는 바닷가에 파도치는 해안선 바위에 물새가 앉은듯한 느낌도 나기도 한다. 역시 거친 세파의 바다는 도심의 재개발 사업일 것일 테다.

 

현대 도시는 도시의 낙후되어 가는 문제로 인해 재개발 사업 등으로 이주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은유를 이 사진과 시에서 물새를 닮은 형상으로 떠난 사람의 유적처럼 표현 되었다. 도시는 낡아 가는데 재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도 늙듯이 건물도 따라서 낡아간다. 마찬가지로 낡아가는 노후주택을 개량하지 못한다면 슬럼화되어가는 경향은 지구상의 어느 도시나 비슷한 전철의 사례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도시의 노후화 혹은 슬럼화에 따른 문제는 도시의 치명적인 허약함을 들어내기 마련이고 이 허약점을 비집고 들어와 여기에 부동산 업자나 건설업자들, 낡은 주택을 소유자들의 개발사업의 이익을 위해 모조리 철거를 하고 재개발의 이름으로 분양사업에 눈을 돌린다. 그렇다면 낡은 주택에 살던 사람들, 혹은  세입자나 원주민은 이주민으로 전락한다. 정착민이 이주할 때 이주에 따른 그간의 흔적들은 깡그리 말살되어 버린다.

 

어느 사진작가는 철거민 혹은 이주민이 떠난 빈집에서 버려진 사진 앨범이나 방안에 걸렸던 사진을 수집하는 작업을 하는 걸 봤다. 버려진 앨범의 사진은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채취가 그대로 버려졌다는 의미이고 자신의 흔적과 자신의 정체성까지 과거를 버린 것이라고 사진작가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앨범의 사진을 구출해내고 버려진 것은 새롭게 수선 작업으로 작품화시킨 작업을 볼 때, 인간에게 있어서 버릴 수 없는 시간을 버린다는 것에 대한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버려진 사진에는 하나같이 무슨 날을 기념하거나 특별한 날의 미소들이 가득한 일상의 사진들에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란 과거의 시간을 유추한다. 마찬가지로 모두 떠나 버리고 빈집으로 언제 철거될지도 모르는 패가에 아스팔트에 뭍은 물새의 흔적은 떠난 사람들의 영혼이 물새로 형상화된듯한 의도를 작가는 그런 시선으로 봐라 봤던 것일 테다.

 

도시의 재개발 사업으로 막대한 차익을 남기는 등의 폐단은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정체마저 깡그리 몰살시켜 버린다. 집에서 사람이 살았든 흔적과 채취가 묻어있기 마련이다. 소위 말하는 "인이 베인다"라는 그 인은 사람이 살아야만 생기는 흔적일 것이다. 그런 과거의 흔적을 모조리 버리고 새롭게 높은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이라는 이익으로 편취될 때 이주민의 불공정은 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빈 집 앞을 지키는 물새가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이주민은 보상받은 몇 푼으로 새로이 들어서는 고가의 비싼 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 그들은 또다시 낡은 곳으로 쫓겨가야만 하는 사태에 대해 도심 재개발사업은 상당히 비인격적이기도 하다.

 

일전에 용산 재개발사업에서 일어난 철거민들이 죽고 경찰이 죽고 누군가는 뒤에서 이익을 앞에 두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처절하게 지키려다 죽어간 사람. 혹은 이를 막아야 했던 경찰들 모두가 재개발사업의 파생된 피해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놓고 지금은 개발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빈터로 남겨져 있다면 과연 그렇게 싸우고 지키려다 죽어간 사람들은 뭐가 된단 말인지 정녕 모를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전면적인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나 올리는 사업은 지양되어야 한다. 마을의 정체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전면적인 철거와 높다란 고가의 아파트만 들어서는 행퍠가 아닐 수 없다. 보상금 몇 푼 쥐여주고 쫓아내는 것이 무슨 재개발이란 말인지, 누군가의 이익에 누군가의 집은 그대로 빼앗기는 사례는 막아야 한다.

 

이제는 전면적 재개발의 방식이 아니라 마을을 그대로 살리면서 재생시키는 이른바 도심재생사업이 나타나야 하는 이유이다. 그간에 살았던 사람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현대적으로 편리하도록 주택의 골격은 유지한 채 내부의 하드웨어를 현대적으로 구축함으로써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떠돌이가 되지 않으면서도 노후 주택을 개량하며 그래서 마을의 모습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련되면서도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고 이른바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떠들고 놀아도 좋은 구역으로 남아야 한다. 자유로운 도심의 낙후지역의 개량 사업이 무엇보다도 도시계획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무조건 부수고 다시 지어야만 것보다는 집의 이력과 역사가 보존되면서 동시에 세련됨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전국의 도시가 아파트 숲처럼 천편일률적이지 않아서 지역마다의 고유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똑같은 아파트의 형태에서 우리의 창작력은 단체로 사그라들고 창조성과 지역성은 오래된 집이 사라짐으로써 매몰되기 일쑤이다. 유럽의 대도시에서 수백 년의 길거리가 아직도 오래전의 모습으로 보존되고 수많은 관광객이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커피의 여유를 우리라고 왜 하지를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도시는 도시마다 저마다 각각의 특색과 지역의 냄새가 있다. 또한 누군가 지나쳐 갔던 그런 골목이 역사의 현장으로 탈바꿈되어 기록되는 모습은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가는 건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는 어디나 엇비슷한 모양새를 하는 특색이 전혀 없는 이유는 재개발이 곧 아파트라는 공식이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에서 너무나도 재미가 없는 도시로 전락해버리는 꼴을 낳았다. 개발 지상주의자의 장밋빛 환상은 비슷한 모습의 독같은 닭장이나 만들었던 것은 도심의 재개발 사업이 얼마나 투기적인 요소로 만들어 낸 것인지 지금의 현상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환경을 만들고 만든 환경에 의해 지배당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환경의 영향력은 인생의 전체를 좌우한다. 나는 어릴 때 한옥집에서 태어났다. 아직도 마당이 넓은 한옥집의 그 정취가 그립다. 구시대의 불편했던 한옥의 집을 현대적으로 개량해서 살고 싶은 마음은 마치 내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집이 모습 그대로이다. 지금의 아파트 생활은 생활의 편리함이 주는 것 이상으로 정서의 악영향이 크다. 사람은 모름지기 땅을 밟고 살아야 하는데 공중에 떠서 한 줌의 땅에 지기조차 받지 못하고 콘크리트 속에 갇혀 사는 거다. 딱딱한 콘크리트의 막혀 버린 숨쉬기는 흡사 정서의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듯하다. 각박한 인심은 각이 진 콘크리트 속에 사는 사람들의 환경에 지배를 받은 꼴에 비유할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지역의 역사성은 마을을 이루는 형세에서 나타나지만 오늘날의 아파트 문화는 도심의 재개발이라는 것의 투기수요와 맞물려 독버섯처럼 자라 버렸다. 여기에 투기의 욕망이 가세를 했으니 오래된 집의 정체는 모두 사라지고 하나같이 성형의 닮은 꼴에 이골이 날 지경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집 주인을 기다리는 물새가 오늘의 도심이 낡고 노후된 주인 잃은 패가의 철거를 목전에 두었다. 하릴없이 기다리는 이 허무를 이 물새를 닮은 사진과 시에서 마주하는, 잃어가는 것들의 돌아오지 않는 기다림처럼 쓸쓸하다.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회한과 미련이 물새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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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9-14 1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가야말로 과거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는 역사가입니다. 그리고 기억 속에 잊힌 존재나 사물을 발굴하여 사진기로 찍는 모습을 보면 사진가의 모습읋 보면 고고학자 같습니다. ^^

yureka01 2018-09-14 14:49   좋아요 0 | URL
네 기록의 역사...뭐든 기록되지 않으면 역사가 들어나지도 못하니 말이죠..
인생의 고고학자..크...사진가라해도 될듯...

감은빛 2018-09-14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시도 사진도 절묘하네요! 이건 사진이니까 가능한 또 하나의 예술이자 역사네요.(요 위에 시루스님 말씀에 완전 공감!!)

요즘 제가 일하는 사무실 주변에 대형 재개발 공사장이 양쪽으로 2개나 있어서 작년부터 늘 먼지와 소음에 시달리며 시선이 닿을때마다 우울한 감정이 들어요. 하지만 저 아파트에 입주할 사람들은 다른 감정으로 보겠지요? 원주민들 중 일부(극소수)는 긴 시간 기약 없는 철거 투쟁을 이어가고 있던데, 그들에게 저 공사장이 어떤 곳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네요. 집을 잃었다는 것은 거의 전부를 다 잃은 것과 마찬가지겠죠.

yureka01 2018-09-14 14:52   좋아요 0 | URL
발견의 묘미가 바로 사진이니까요..
유심히 보지 못했더라면 기록되지 못했을 거니까요..

재개발 공사장 어디에나 철거민과 개발주체간의 싸움이 일어나더군요...
이익과 욕망이 서로 충돌하는 형국이 아닐 수 없어서요..
무엇보다도 공정해야하는데 부당함이 숨어 있는 것이 비일비재하니 말이죠..

네 살던 집을 빼앗기고 낮은 보상금으로는 새로 집을 구입하기 어려운 불평등이 도사리니까요..
재개발 보다는 재생사업이 그래서 철거하지 않고 주거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거든요..

북프리쿠키 2018-09-14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미래에 자연이라는 것은 모조리 인간에 의해 화석으로만 남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yureka01 2018-09-14 14:52   좋아요 1 | URL
네 지구상 어디에 가도 플라스틱 조각이 있다고 합니다...

2018-09-1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4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5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7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8-09-16 2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디카시집 ‘이주민‘을 거의 다 읽었네요
카페에서 한번씩 본 글이라 친근한 느낌이랄까.....
유레카님을 디카시 리뷰어로 명명합니다 ^^*

yureka01 2018-09-17 08:58   좋아요 1 | URL
아고 감사합니다..디카시집 종종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서니데이 2018-09-16 2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같은 순간, 같은 장소에 있어도 사람의 느낌은 다르고, 사진으로 남은 순간도 다른 것 같아요.
지나고 나면 많은 부분 사라지는 것들이 그렇게 조금씩 남는 것 같습니다.
유레카님, 편안한 주말 보내셨나요. 좋은 밤 되세요.^^

yureka01 2018-09-17 08:59   좋아요 1 | URL
서니님 페이퍼 글쓰면 항상 사진을 찍고 올리는 거 좋은 현상입니다..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9-16 2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주민>을 구입해서 읽는데 너무 좋네요 디카시! 이 쟝르 넘 맘에 듭니다 사진도 시도 넘 좋아요 나중에 다 읽고 감상 올리고 싶네요 두고두고 봐도될듯

yureka01 2018-09-17 08:59   좋아요 2 | URL
사진과 시...이 두개의 카테로리가 합쳐서 새로운 감성을 돋구게 하죠~~~^^..

2018-09-21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1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0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주민 - 김종태 디카시집
김종태 지음 / 창연출판사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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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밥을 먹어야 하는가라는 우문의 우답은 자명하다. 배고프니까라는 증상과 허기의 감각을 즉답으로 내놓는다. 아니 너무나도 당연한 답을 굳이 물어야 하는 것은 우리 삶이란 지속적인 허기의 위기에 늘상 직면해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 허기증에는 물리적인 에너지라는 보이지 않아도 증상으로 처절하게 느껴 온 것이 무엇인지 안다. 즉, 인간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면 허기가 생기는 열역학 에너지의 법칙처럼 우리 육체가 이미 이렇게 진화되어 온 이유이다. 움직임에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에너지를 외부로부터 공급받음으로써 생존에 더 효율적이라는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 달리 물어보자.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왜 시를 쓰는가? 왜 예술이라는 빌미로 음악과 그림과 영상과 미학에 에너지를 쏟으려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우문스럽지만 역시 우답에는 허기진다는 것이 그 답이 될 수 있다. 미학의 허기증은 그럼 왜 생길까?


앞서 언급했듯이 물리적으로는 살 수 있지만 인간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복잡다단한 난해의 존재들이다. 물론 일부 특별한 인간은 밥만으로도 충분히 산다. 그러나 모종의 인간들 중에는 도저히 밥만 가지고는 살아낼 재간이 없는 결핍의 인간이 반드시 있다. 미학의 허기와 예술의 허기, 그리고 표현의 허기증은 몇몇 인간들의 중대한 결핍의 증상으로 나타나고, 그래서 나오는 증상으로써 나는 도저히 밥만 가지고 이 세상을 살 수가 없다는 절규가 터져 나온다. 이쨋든 절규의 표현이 되었든 절박의 표출이 되었든 탄식과 탄성의 포효가 되었든지 간에 도저히 밥만 가지고는 못 살겠다는 아우성의 표현이 곧 문장으로 나타낼 때 거창한 문학을 끄집어 내지 않아도 시를 지어서 문장의 푸짐한 밥상을 끼고 한 세상 유람하듯이 표현을 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모든 시는 표현의 허기에 대하여 밥 먹기와도 같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는 명제에 있어서 이 먹기는 시를 먹잇감이라는 거. 생산자의 시와 소비자의 시는 그래서 밥을 짓듯이 시를 지어야 하고 밥을 먹듯이 시를 먹어야 산다. 그래서 삶이란 행위가 마음에서 쌓여 존재의 이유에 밥을 먹어 존재에 대한 사유적인 힘을 내게 되는 거다. 이것이 결핍이 강해지면 얼마 버티지를 못하고 결국 영혼의 아사로 이어진다. 굶어 죽는 사람은 자살자와 다를 바 없다. 인생의 질곡을 좀 더 해안과 통찰로 버무렸더라면 끝없이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방어의 힘을 내는 것이 곧 문학의 역할이고 예술의 힘이다. 문학의 힘이 떨어져 갈수록 세상의 자살자와 타살자는 점점 늘어가는 것은 비단 우연일까 따져 보지 않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결핍이 만든 존재의 끝은 결국 자살자의 지표로 나타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도 없다. 다들 굶어 죽어가는 거다. 허기진 상태에서 움직일 힘도 없어졌을 때 더 이상 움직임을 포기하는 것이 곧 문학의 죽음일 테니까 말이다. 영혼이 거세된 좀비처럼 사는 것은 산다 말할 수는 없는 이치가 시에서 발견하는 이유와도 맥이 닿아 있다.


시인은 농부와도 같다. 마음의 밭에 마음의 양식을 만들고 마음의 밥을 지어내는 요리사이다. ​ 언어라는 도구를 가지고 모락모락 한 공기의 따순 밥을 지어내는 역할이다. 이 밥으로 마음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거대한 자본이 만들어 내는 결핍의 밥상 위를 풍성하게 올리는 풍요의 사신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그리고 색다른 밥과 반찬을 올린다.


이른바 디카시로 최초로 등단한 시인이 지어낸 밥상에는 사진과 시가 올려져 있다. 허기의 시대에 풍성하다 못해 그동안 먹어 보지 못한 새로운 밥과 반찬을 올리는 디카 시인이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허기로 주림의 마음 고픔을 가득가득 채워 포만감이 변환시켜서 일어나는 행복감이다. 여기에 끝없이 치밀어 오르는 허기증에 직면한 나에게 디카 시집을 소비하는 이유와도 같다.


단순히 사진을 찍고 사진에 걸친 시를 소비하는 것은 다른 무엇의 목적보다 내 삶의 허기를 채우고 이 허기를 채움으로써 내 삶의 상상력에 대한 동력을 만들게 한다는 점이다. 모름지기 우리가 살았고 살아가고 살아갈 이유가 단지 밥 끼니나 때우자고 사는 목적이라면 지금 죽어도 하등의 이상할 것도 없으며 다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오늘 내가 사는 이유. 그것은 끝없는 허기에 대한 소비를 반드시 동반한다는 운명을 받았던 까닭이 아닐까 한다. 그만 찍을 힘이 없을 때까지 사진을 찍고 시를 읽고 쓰는 행위는 결국은 우리가 한 세상을 살아가는 운명이라면 그 운명을 겸허히 수렴하는 것이 일종의 도리이자 인간의 품격을 갖추는 일일 것이다. 인간 다움이란 다른 무엇보다 차별화된 행위에서 비롯된다. 오늘 하루 한 끼의 밥을 먹으면서 한 장의 사진과 한줄의 시의 밥을 동시에 먹어야 양식은 불균형에서 벗어난다. 삶이 병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기보다는 불균형과 부조리함과 불공정함에서 비롯된다. 병은 균형이 무너질 때 나오는 허기의 증상일 것이다. 사유의 균형감각, 육체의 균형 감각을 잃어버릴 때에 나타나는 온통의 불균형들의 세상은 더더욱 난해한 바다에 요동을 치며 떠밀려가는 시간 위의 부평일 것이 아닐까 한다.


사진과 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디카 시집 한 권 읽어도 그리 나쁘지 않은 시간을 소비시킬 수 있으리란 믿음을 이 시집을 통해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시집에 나오는 사진들은 우리들이 흔히 만나는 일상적인 사진에 특별한 상상력의 시들이 결부되어 있다. 흡사 기차의 철도 레일처럼 두 개의 카테고리가 서로를 서포트하며 시집은 기관차처럼 상상의 레일 위를 힘차게 달린다. 그 달리는 힘은 시인의 끝없는 일상에서 만나는 언어의 상상력이다. 흔한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그의 시선과 사유가 한 권의 시집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고 녹아든 상상력이 시집에 프린트되어 염색약처럼 우리들의 허기진 상상력에 새로운 언어로 담담하게 쏟구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혹은 내일이나 우리 삶의 일상은 특별할 것도 없는 이벤트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이 어제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미세한 균열같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삶의 스펙트럼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된 작은 변화에서 나타난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이켜 보면 그 작은 차이가 시간을 더할수록 점점 벌어져 큰 격차의 변함으로 이어지듯이,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로 찍고 쓴 시가 그런 미세한 내 삶의 영혼에 균열이 일어나고 점점 치밀해지고 농도를 더해갈 때 그런 시간이 쌓여갈 때 지나고 보니 어느새 이만큼이나 누적되었음을 삶이 결과로 부각되는 것일테다. 하루의 몇 끼를 소비하든 우리 인생은 부단히 먹음으로써 다른 무언가를 생산하고 다시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인생의 윤택함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사유의 행복은 곧 자신의 정체를 만들고 자신의 내면을 구성한다. 이런 점에서 사진과 시의 가장 큰 목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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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9-12 23: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20프로의 인간이 배고픔의 고통에 허덕인다 합니다.
그들도 유레카님이 말씀하신 삶의 허기짐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누리며 살 수있길 ~
죽을 때까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낯선 누군가의 친절에만 의지해서 살아가지 않도록~그리고 마음 고픔을 채우는 행복감도 함께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네요^^;

yureka01 2018-09-13 09:08   좋아요 2 | URL
아마도....말씀처럼 20%는 다 충족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여전히 굶는 자와 남아서 버리는 자들이 있는 불균형의 세계라니 말이죠..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른 골고루의 사회는 이상이었나 봅니다..

겨울호랑이 2018-09-13 0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생명을 유지하는 몸의 양식은 같을지라도, 이것이 충족된 이후 자신의 갈증과 굶주림을 채워주는 것들은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소중하지는 않을 수 있겠지요. 이런 다름과 차이를 모두 이해하고,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진정 행복한 세상일 듯 합니다.^^:)

yureka01 2018-09-13 09:07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아직 먹는 것 조차도 충족되지 못한 경우도 너무 많아서 말이죠.
네...우리 사회는 다름과 틀림을 분간하기 어려움에 빠진 사회같아요..

강옥 2018-09-13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틀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종태 시인의 디카시는 아주 뛰어나지요
자유분망한 사고와 상상력, 창의력
때로는 지나치다 싶은 비약도 있지만
그 또한 작품의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yureka01 2018-09-13 14:03   좋아요 1 | URL
그럼요..곧이 곧대로 쓰면 그게 산문이지 시는 아닐 것입니다.
시적인 다양한 가공의 은유가 돋보이더라구요..
상상은 무한대라서~!~^^..

페크pek0501 2018-09-13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카와 시가 같이 있는 구성이 유행할 거라는 정보를 전에 들었습니다. 긴 글을 선호하지 않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그럴 듯한 것 같아 끄덕끄덕 했던 기억이 있어요.

yureka01 2018-09-13 17:34   좋아요 2 | URL
사진이나 시를 좋아하는 소수의 분들이 꾸준히 찾기도 하죠.다만 그 수가 워낙 적어서 말이죠.....
특히 요즘은 sns에서도 간단한 스마트폰과 짧은 문구로 느낌 적는 것도 많으니까요..

2018-09-13 1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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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0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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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05: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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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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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0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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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0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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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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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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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1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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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23: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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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5 05: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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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5 1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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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5 1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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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08: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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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09: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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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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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카시 : 사진에 짧은 5행 이내의 치밀하고 농축된 시를 넣은 문학 장르. )

 

저자 김종태 시인은 최초 디카시로 등단한 최초 시인이라는 책 소개가 있었다. 그동안의 작품 활동으로 발표한 것만 해도 500편이 넘는 다작의 꾸준함이 시인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흔히, 매년 신년에 발표되는 신춘문예에서 당선작으로 내는 심사평에는 꼭 들어가는 심사자의 평론글이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초라는 의미가 주는 수식어는 하나의 사명감과도 연결된다. 그만큼 새로운 문학 장르에 개척자의 임무가 부여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신춘문예에 투고된 작품은 대체적으로 평이했으나, 본 심사에서 당선작은 시의 작품성이 다소 떨어질지라도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열정을 보았다." 이어서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우리 문학의 반석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기대"를 갖게 한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자주 나온다. 이는 아마도 신춘문예랍시고 등단시켜 놓으니 꼴랑 등단만 하고 나서 꾸준한 작품활동이 전혀 없는 타이틀만 시인이거나 무늬만 시인이 될 우려를 두려워해서일 것이다. "솔직히 뭐 빠지게" 당선 시켜 놓으니 사라져 버린 일회성 시인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당선작을 선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뭐든 꾸준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저력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라도 일회용 휘발성의 시가 아니라 꾸준한 문학적인 향기를 뿜어내는 그런 시인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등단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시를 사랑하고 시와 더불어서 사진을 찍고 지속적인 시적 사유를 끝없이 이어가야 하는 작가의 내적인 치열한 아우라와도 같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시 500편 쓰기도 어렵겠지만 사진을 500컷 찍기란 시보다 어쩌면 더 어렵다. 사진은 특히 시와 달리 장소성과 시간성이 반드시 따라다닌다. 한 번에 한 컷씩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나오는 것이 사진의 특징이다. 500컷의 사진은 500초가 걸리는 것은 아닌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시심은 시에 대한, 그리고 사진에 대한 돈독함을 시집 이 하나로도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직 어떤 사진에 시가 담겨 있는지 읽어 보지는 못했으나 시인의 사진에 대한 시심을 대략 유추해볼 수 있는 통박이라는 것이 굴려진다는 점이다. 사진은 철저히 시인의 주관적 시선이라는 그 고독한 시선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바라본 사진을 어떻게 시의 문장으로 표현된 것인지 그 사상의 고유함을 만나고 싶은 이유이다. 세상에 시집은 많다. 또한 사진도 많다. 그러나 시와 사진의 앙상블 혹은 콜라보에서 느껴지는 하이브리드. 융합은 시심과 시선의 해체와 집약으로 도출되고 그래서 새롭게 뭉쳐지는 사진과 시라는 응어리와 덩어리를 하나로 만들어내는 직조를 볼 수 있다. 씨줄과 날줄의 직조야말로 천 조각의 무늬를 새기게 하고 재단하고 분해하고 다시 이어 붙이며 문학이라는 거대한 예술 패션이란 근사한 웃한벌 만들어지는 원리가 디카시라는 새로운 장르 문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온통 검은 탁류에 때가 켜켜이 쌓여가는 혼탁한 세계에서 문학은 지평이 넓어져야 하고 넓어진 지평에서 깊이가 나온다. 답습과 반복의 새로움보다 새로운 사진이라는 매체가 문학과 융성한 결합이 이루어질 때 혹은 노래가 시가 되고 음악이 되는 것처럼 영상문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이 예술이란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고고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인간의 표현은 본능이다. 따라서 이 본능의 고유함과 융합으로 표현력이 더 확대되어 그럼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 표현이 닫힌 게 아니라 점점 확장되어 열려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인간은 다양한 표현에서 미학이 창조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다. 본능이란 형이하학에서 이상이란 형이상학으로 전염하듯이 인간은 몸은 땅을 짚어 서 있어도 머리는 항상 하늘을 보고 이상을 꿈꾸는, 그래서 이상을 향한 예술적인 집념이 여전히 오늘날의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유효한 행위라는 점이다. 사람은 결코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표현이 막혀서도 안된다. 비록 육신의 한계에서 이 한계를 넘는 초월적 상상력의 표현의 기법으로 우리의 그리고 자신의 삶이 반득반득하게 저마다의 윤기를 자랑할 때, 밥 세끼 먹은 효력은 인생의 긍정으로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디카시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리 시가 은유적이더라도 사진이 있음으로 인해서 은유가 직관성을 들어낸다. 사진을 보고 시를 읽음으로써 시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가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를 공부하지 못하거나 자주 접하지 못한 일반인은 우선 어렵다는 느낌을 갖기 마련이다. 문학성이라는 것이 특별히 어려울 이유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산문처럼 쉽게 읽히는 것도 아니다. 시의 특징은 산문의 나열적 구성이 아니라 압축과 축약 그리고 표현의 응집이다 보니 단어의 저마다의 고유의 뜻이 한번 비틀어진다. 시에서 물이 물이 아니다. 산이 산이 아니라 다른 상징으로 나타나고 이를 은유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하지만 디카시는 산 사진 한 컷으로 다른 어떤 것을 시에 비유를 하더라도 시적 상상력에 대한 유추가 직접적으로 쉽다. 그러니 흔히 가지고 다니는 디지털카메라에 사물이나 자연 혹은 상황을 찍고 이에 시적인 양식을 더한다는 것이 문학적으로도 상당히 광범위한 확장을 의미한다. 시와 사진은 시인의 전유물이나 전매특허도 아니다. 또한 사진도 사진작가만의 고유한 독점적인 것도 아니다. 누구나 시를 읽고 사진을 찍고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인생에 윤택함을 더할 때, 요즘 소위 특징적인 소확행의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점이다. 사실 행복은 거창한 것보다는 작은 일상에서 발현되는 행복이 더 많다. 우린 이 행복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전체의 인생을 조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게 소확행이라고도 하는 이유이다. 일상에서의 감동은 애써 찾지 않으면 보이질 않으며 아름다움은 감나무에 걸린 홍시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부단히 찾는 길만이 자신의 인생을 아름다움과 행복으로 점철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구질구질한 인생인데 실망과 비극으로 장식되어서야 한 번뿐인 인생 얼마나 억울할 것인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시와 사진이 간단하면서도 쉽게 자신의 인생을 미학으로 포장시킬 수 있다면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단히 시인의 시집을 읽고 사진을 감상하는 태도야말로 소확행의 오늘날의 삶의 방식에서 맞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쁘고 아름답고 선한 것만 보고 살아도 모자른 짧은 인생에서는 더더욱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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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04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dslr로 사진찍다가 고장이 나서 수리하는 것보단 새로 사는게 낫다고 생각, 판단후 아직 구입 안하고 못하고 있네요! 음 사진찍는 것도-시도 당연하지만-발품을 팔아야하는 것인데 제가 그러질 못해서 <사진학강의>책은 사두고 미루고 있습니다 언젠가 사진찍는것도 제대로 하고싶은 마음입니다 ㅎㅎ

yureka01 2018-09-04 12:46   좋아요 1 | URL
요즘 Dslr카메라가 전에 비해 아주 쌉니다...ㅎㅎㅎ 고급기나 프레그쉽 바디를 제외 한 중급 하급기 정도면 100만원 미만으로도 충분히 구입하능하죠...
대신 랜즈를 좋은 거 쓰시면 충분히 커버되죠...
네 사진 세계도 무궁무진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9-04 14: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의 말처럼 카메라는 많은 경우 총에 비유되는 것 같습니다. ‘원샷 원킬‘로 마치 엽총처럼 한 장씩 찍어 원하는 사진이 나올 때와 기관총처럼 ‘연사‘를 통해 원하는 사진을 찍었을 때의 느낌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yureka01 2018-09-04 14:03   좋아요 3 | URL
물론이죠.연사는 동영상이 되는 것이고 원샷은 사진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영어에서 사진가를 슈터라고도 하는 이유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9-04 14:12   좋아요 3 | URL
사진기의 그립감이 마치 총을 잡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런 차원 아닐까요? 그립감때문에 사진을 찍는 분들도 있죠 저도 그랬는데~ㅎㅎ

yureka01 2018-09-04 14:35   좋아요 3 | URL
비교적 카메라 오래 쓰는 편입니다..
손이 카메라에 적응하면 착 달라 붙죠..
도구나 연장이 손에 익숙하면 뭘해도 편하죠..

겨울호랑이 2018-09-04 14:43   좋아요 3 | URL
^^:) 저는 거의 핸드폰 사진만 찍다보니 카메라의 느낌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랜 사용으로 인한 익숙함은 편안함을 줄 것 같네요^^:)

yureka01 2018-09-04 14:46   좋아요 3 | URL
스마트폰도 요즘 신형은 사진 잘 나온다는 소문이....
하지만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무리 뛰어 나더라도 카메라 랜즈의 작은 한계는
광량이 제한 적이라서요..
네..오래된 카메라가 주는 익숙한 편안함~~~이게 있거든요..적응력도 생기구요..

2018-09-05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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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5 12: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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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8-09-05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작하는 분인데
그동안 쓴 디카시만 수백 편은 되지 싶네요 ㅎ
기상천외한 발상에다 순발력 있는 표현 등

저는 니콘 610팔고 소니 하이엔드 RX10을 샀습니다.
무거운 카메라 버리고(?) 가볍게 가려구요
작품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즐기는 차원에서 사진생활 하려구용 ㅎ

yureka01 2018-09-05 21:49   좋아요 1 | URL
네 디카시집 기대 됩니다..아무래도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시집일듯합니다..

그나저나 제일 고난도의 사진 생활에 접어 드신거네여.
즐거운 사진생활..이게 사실 제일 어려워요.ㅎㅎㅎㅎ
새기종..들면 이게 또 새로운 사진 기분 나거든요..~~~

2018-09-09 0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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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1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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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19: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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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1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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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0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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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0 10: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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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9-11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점점 다양한 시와 사진을 담은 책이 나오는 것 같아요. 디카시집도 그렇고요.
새로운 것들에서는 이전에는 없었던 좋은 것들을 많이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이전의 것은 이전의 것 대로 좋은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이전의 것을 좋아하는 사람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아요.
유레카님, 즐거운 하루 기분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yureka01 2018-09-12 08:53   좋아요 1 | URL
그럼요.새로운 것들이 우리를 변화하게 만들죠..이걸 발전이라고도 하기도 하고.
폴더폰 있을 때와 스마트 폰으로 바뀐후의 사회상은 또 달라졌으니까요..
문학도 새로운 매체에 변하는 것이니까요..
즐거운 시간 되시길!~~~~
 

 

자본의 명함은 지폐.

신분의 또 다른 증명.


숫자의 다소에 따라

운명조차 달라지는

거룩하고도 험악한 숭배 사상.


지폐는 자본에 갇힌 존재의

비극과 쾌락의 세계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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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0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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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0 16: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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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0 23: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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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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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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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8-31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께서 얼마전 다녀오신 태국의 화폐인 것 같네요. 태국 국왕의 모습으로 생각됩니다만... 요즘은 지폐의 비극을 넘어 카드의 비극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커피소년 2018-08-31 09:43   좋아요 1 | URL
지폐는 저 위의 사진처럼 사람을 노려보면서 적당히 써라면서 무언의 압박을 가하지만 카드는 더 소비하기 위한 여건을 만들어주는 듯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마법의 카드 같으니 말입니다. 그저 긁기만 하면 모든 결제가 이루어지니 말입니다..^^ 그 후에 들이닥칠 후폭풍은 당장에 직면하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카드는 지폐의 한도. 그에 대한 결핍과 무관하니 말입니다..ㅎㅎ

태국은 대놓고 국왕의 사진을 지폐 그림으로 하는군요..ㅎㅎ 차라리 저런 솔직함이 더 낫다고 생각됩니다... ㅎㅎ 자본주의의 실질적인 왕이 지폐에 들어가는 것이 맞죠.. 세종대왕.. 퇴계 이황.. 율곡 이이...신사임당.. 이 분들 죄다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분이었나요...아... 적어도 돈 걱정 없던 기득권이긴 했군요...^^

yureka01 2018-08-31 10:16   좋아요 2 | URL
아고 ..지폐는 현물이라는 물건이라도 있지 카드는 숫자의 화폐로 통용되니..더 골때리는게 맞네요..ㄷㄷㄷㄷ

2018-08-31 0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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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1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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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1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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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1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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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8-08-31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돈은 주조된 자유다‘
도스트옙스키가 아마 그런 말을 했지 싶은데
자유가 지나쳐 방종으로 치닫게 되는 힘도 가진 것 같아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관용구가 되다시피 했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돈은 만물의 연장이다-라는 명언(?)이 있을 정도니 뭐....ㅎㅎ
상대적 박탈감만 없으면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데, 왠만한 멘탈 아니면 그게 어렵죠

yureka01 2018-08-31 10:13   좋아요 1 | URL
주조된 자유..캬..역시 대문호 다운 명언이셨네요..ㄷㄷㄷㄷ
자본 주의의 핵심이 돈이니 뭐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무인도에서 사는 로빈슨 크루소쯤 될 거 같아서요~

2018-08-31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31 14: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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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01: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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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2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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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31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쩌다가 돈의 위력을 실감하고는, 그래서 사람들이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구나, 생각 들 때가 있어요.
소확행을 지지합니다. 소확행의 소중함도 깨달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yureka01 2018-08-31 17:41   좋아요 1 | URL
자본주의가 생존에 전체를 압도해버릴수록,
자본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날듯하더군요.
자본의 집약은 소외가 심화되니 말이죠..

2018-09-02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2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3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3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0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0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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