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현대사 혹은 과거사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과 사고들이 일어난 공간의 기록을 몇몇 사례로 정리하고 공간의 개념과 의미 부여를 이야기한다. 공간도 역시 시간과 더불어 기억이 녹아 있는 곳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공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특별화되는 과정의 설명이다. 그러나 페이퍼에서는 책에 대한 분석보다는 건축공간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건축공간에 대한 책에 해석이나 분석의 사족을 달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개인적으로 평소 생각하던 것들을 논해 보고자 페이퍼를 열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 어느 공간인지 알고 있는가? 또는 그 공간을 찾아가 본 적이 있는가? 누구나 태어나서 생을 시작한 곳이 있듯이, 각자가 생을 시작하며 영위하는 공간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없다면? 아, 없을 수가 없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의 시작이란 결국 어느 곳이든 일정 부분 차지하는 공간 내에서 였을 것이다.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났다고 했고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이라고 하니, 따지고 보면 다 태어난 저마다의 공간은 반드시 있었다. 또한, 어린 시절에도 어느 공간이든 거쳐 왔었을 것이고 당장의 현재도 어느 곳이란 공간을 차지하고 어떤 공간 내에서 체적의 부피를 점유하고 있다. 소유와 비소유를 떠나서 어느 공간이든 간에 반드시 있게 된다. 무엇이든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은 없다. 3평짜리 쪽방에서부터 200평이 넘는 펜트하우스까지 차지하고 있는 양태는 실로 다양하다. 어쨌든 인간은 의식주 중에서 주거에 해당하는 것도 거의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그 공간에 대한 추억이 제각각으로 만들어진다. 시간의 덧게처럼 역시 반드시 인간에게 공간의 흔적은 쌓이기 마련이다. 태어난 곳, 자란 곳, 학교 다녔던 모교, 군대에서 지냈던 병영의 막사, 회사 사무실의 공간들. 혹은 일하는 곳, 혹은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어 입원하는 병원, 죄를 지어 징역형을 받아 들어간 교도소의 몇번 수감방. 혹은 지난날 여자친구나 아내와 처음으로 만나 마셨던 찻집이나 레스토랑, 결혼했던 예식장, 엄마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할머님이 세상을 하직했던 병실이나 혹은 문상을 가서 마지막 추념을 하는 장례식장, 혹은 아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났던 수술실. 수학여행 가서 처음 친구들과 한방에서 누웠던 그 때 그 여관방. 혹은 아파서 누워 지냈던 병실. 이렇게 삶에 있어서 공간은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용도에 따른 이 공간에서 삶이 이루어져 왔던 거다. 공간의 추억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기억하게 한다. 삶이란 시간과 공간의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는 시공간에서 뭉치며 생기고 살다가 흩어지고야 만다.
가끔 오랫동안 비어 있는 채로 방치된 집을 보면 알 수 금방 알 수 있다. 급속도로 낡아가며 쇠락한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곳은 인이 빠진다는 의미와도 같다. 사람이 사는 공간에는 인이 베인다.(인 + 원소 기호로는 P, Phosphorus)) 인은 무기염류인데 사람의 뼈와 이빨 등 신체에 딱딱한 부분을 이루는데 필수적 원소이다.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발한다는 의미였다. 어떤 거주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 생활을 하면 이런 인이 배여든다. 사람의 손때가 타고 반질반질해짐으로써 사람의 신체 일부가 베여 들어간다. 사람의 향이 축적됨에 따라 건축의 공간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어느 집이든 사람이 살지 않으면 이 윤기가 빠져나가고 공간이 급격히 쇠락하는 이유이다.
내가 태어난 집이 지금은 없다. 자신의 태어나고 자랐고 내 인이 박힌 곳이 없어졌다는 것은 고향이라는 태생의 정체성이 사라졌다는 말과도 같다. 고향을 찾는다는 것이 고향의 집이라는 본적을 찾는 것일진대, 고향에는 내가 살았던 집이 없다. 없으니 단순히 고향의 지역만 찾아갈 일도 좀처럼 생기지도 않는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고향 집을 떠나 도시에 나와 사는 삶이 허허로운 궁극적 이유가 고향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정체성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의 추억이 기억 속에서만 간직 된 채로 뿌리의 정체성에 대한 부재는 도시에 살며 고향을 떠난 실향민의 고향에 대한 정의 그리움을 낳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설날이고 추석이고 명절날이 되면 바리바리 싸 들고 몇 시간이나 막히는 고향집을 기어코 찾아가고자 하는 도시민의 허전함의 모습이 이를 증명해주는 현상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고향을 다시 찾아간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라고 했으나 고향은 너무나도 변해버렸다. 그래서 나온 후렴구가 가슴이 더 아파진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향과 그리움은 항상 병립된 사고 구조 속에서 맴돌고 있다. 고향을 떠난 도시민의 그리움이란 정체는 떠나 버린 고향과 변해버린 고향의 불일치에 따른 내 삶의 어린 시절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지금의 고향은 내 옛 고향이 진짜인데 새 동네의 고향은 이미 멀어져도 너무나도 멀리 와버린 지금의 내 나이를 떠 올린다는 것. 고향집은 그 속에서 살던 그리움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운 내가 살던 고향집. 없음의 부재로 인해 오늘의 도심에 높다란 아파트에서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울적이는 어린아이가 바로 나 자신은 아니었던가.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의 고아 같은 측은함이 잃어버린 고향집에 머물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비록, 오래된 집이었으나 여름이 되면 대청마루에 뒷문을 열어 놓으면 소슬바람이 지나치며 시원했고 한판 소나기라도 뿌리는 날에는 마당에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흙탕물마저 정겹다. 겨울이면 뜨끈하게 지핀 아궁이에는 불씨가 새록새록 숨을 쉬며 구들장 고래로 타고 들며 따스한 바람을 불어 넣고 마당에 높다란 대추나무가 가을이 되면 붉게 익은 대추를 가을 빛살에 붉게 반짝였던, 그 고향 집이 없다는 부재의 우울함이다. 시간은 되돌이키지 못하듯, 사라진 집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의 공간이 기억 속에서 오늘의 나를 자꾸 긁고 우울의 부스럼을 만들어 낸다. 오늘날 아파트에 사는 도시인은 자기 집터조차 없다. 집터가 없다는 것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도 같이 두발도 서 있는 자기 터가 없다는 거다. 둘러쳐진 담장이 없이 사방이 막힌 공간이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지어 버린다. 차단된 콘크리트의 막힌 곳이란 현관문은 세상의 거친 숨결을 직접 맨살에 맞부딪치게 하고 살벌하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방문을 나서고 마당을 지나서 담장의 대문을 거쳐야 하는 과정이 없이 아파트 현관은 철저히 차단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담장 너머의 표정을 읽은 길도 없으니, 현관을 마주 보는 맞은편 현관 내의 이웃에 대해 무관심함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공간이 닫힐수록 소외는 늘어나도 고독은 깊어간다. 누군가 옆에서 죽든 살든 닫힌 현관 너머의 이야기는 전혀 들을 수가 없는 아파트는 공용 스피커의 공지 내용의 사무적인 이야기만 알릴뿐이다. 옆 집 현관이 동시에 열려 이웃을 마주 보고 눈인사 한 번이라도 했던가라고 생각해 보니 거의 없다. 차단된 공간은 마을의 공동체라는 연대가 사라진다. 옆집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구조가 아닌, 막힘의 구조는 그래서 숨이 막히든 사람끼리의 단절로 이어진다.
이제 집은 아니 부동산은 단순히 거주 공간을 넘어서 재테크의 수단이 되어 버렸다. 어느 집이든 집터를 잡고 수대를 물려가며 자신의 뿌리를 이어내려가는 집은? 이제는 상상하기 어렵다. 유럽만 가더라도 수백 년 내려오는 집이 여전히 건재한 곳도 많지만 우리는 시골의 어느 가문의 종택을 제외하면 뿌리 없는 공중 부양하는 듯이 허공에 매달려 사는 닭장 같은 집에서 살고 있으니 마음이 늘 정하지 못하고 어질어질한 것은 아닐까. 차라리 몽골 어느 촌락에 게르를 가지고 다니며 풀을 찾아 돌아다니는 유목민이었더라면 초원이 터로 삼았을 텐데, 흡사 공중에서 매달려 사는 게 고향 집을 잃어버리고 집터의 흔적조차 사라진 도시민의 고독과 닮아 있는 느낌이 든다. 30년, 40년만 되어도 콘크리트는 낡아서 떨어져 나가고 창문은 뒤틀리며 미세 바람 하나 막지 못하고 쉽게 썩어가는 도시의 주택들. 오늘날처럼 수십층의 높은 고층 아파트에서는 과연 몇십 년이 지나고 나면 이 세월의 쇠락하는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정녕 모를 일이다. 수년간 전세살이 후에 근근이 도시에서 내가 살 집이라고 아파트 하나 장만했으나 여전히 내 집다운 고향집 같은 느낌은 1도 없다. 아니 생기지를 않는다. 언젠가 여기도 떠날 수밖에 없고 허물어질 것만 같은. 그러니까 내 정서의 인이 전혀 베기지 못하는 아파트는 허허롭다. 생활이야 고향집에 비해 엄청나게 차이가 나고 너무나도 편리하지만 한구석에 도사린 추억을 가진 한, 편안하지가 않는다. 그냥 집이라는 주거 공간에서의 정이 들지 않는 삭막함이랄까 싶었다.
공간에서의 대가 끊기는 마당에 사람의 대를 이어서 무엇할까. 시골에 아직도 찾아갈 고향집이 있고 터가 있는 사람은 그나마 아직은 행복하다. 나중에 찾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회귀 본능을 가진 연어떼처럼 다시 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죽어 가면서도 자신이 태어난 곳을 향하여 머리를 돌리는 여우가 우리 마음에 한 마리씩 돌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살던 동네는 오늘의 동네와는 전혀 달라져 버린 지금, 가끔은 내가 가야 할 고향집의 부재는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한다. 다시는 갈 수 없는 곳. 그곳은 오늘 밤 꿈에서나 봐야 하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