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재학 중인 대학 홈페이지를 간혹 검색하는 경우가 있다. 학부형으로써 학교의 행사 등에 관한 관심은 곧 딸아이의 학업에 대한 앞으로의 관심으로 나타난다. 특별히 눈에 띄는 항목이 대학에서 실시하는 독서인증제라는 제도였다. 신입생이라서 엠티며 동아리 등등 뭐 잡다한 행사가 연속이고 게다가 무슨 술꾼이 나셨나 싶을 정도로 월요일부터 모임 술자리가 있으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슨 음주가 많은 지도 웃기기도 한다. 술도 유전인가 싶었다.
기억을 복기해보면, 나 또한 대학에 처음 입학하고 나서 특별히 감동했던 것이 대학에 소장된 도서들이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탓도 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서 벅찬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전공이 공학 계열이었어도 전공과 관련 없는 주로 문학서 이를테면 소설류들, 문학 관련 책들이 많았던 것도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고 문학으로 이어지는 인문학 관련 사회과학 관련 서적들은 고등학교 때는 접해 보지 못한 책 들이었다. 1학년 여름 방학 때 도서관 열람실에서 에어콘 바람에 시원스럽게 읽어 댓던 추리 소설책은 아직도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한창 읽어 댔던 소설들의 작가들, 이외수 이문열 김성동 등등. 그런 추억이 있었던 던 탓에 딸아이의 독서에 대한 재미를 많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요즘 들어 대학 생활이라는 게 고학년이 되기도 전부터 사회가 먹고 사나이즘에 매몰되어서 일반교양 책은 거들떠보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독서의 열기는 싸늘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인증제라는 것이 학교에서 오죽했으면 독서에 대한 열의가 희박하니 어쨌든 독서의 동기부여나 의무를 지워서 읽게 하고 싶었을까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도 책을 읽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이런 독서인증제가 나오나 싶었기 때문이다. 학점에 치이고 나아가 취직 준비에 오로지 매진하는 세태에 있어서 과연 교양서적의 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책이란 무릇 지식을 밟아 지혜를 찾는 첫 단추이자 출발이 아닐까. 통계에서도 나타났듯이 문자의 문맹률은 낮다고 해도 문장의 문맹률은 의외로 높다. 기본 바탕의 지식이 부실한 가운데 지혜의 탑을 쌓을 수가 없다. 하다못해 솔까, 4년제 대학이라고 나와서 취직의 스킬은 저마다의 노~오력 덕분에 높아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학 정도 다닐 수준이라면 한 번쯤은 읽고 넘어갈 지식의 징검다리는 건너야 하지 않을까 하는 까닭이다. 문장에서부터 말귀를 못 알아듣는 수준이나 이해력이 바닥나는 수준이라면 결국은 정보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가 없고 가짜 뉴스라도 검정할 수 있는 찾기도 못하고 진실을 찾아가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사람이란 자고로 사람다운 것이 무엇일까를 따지는 것도 책에서 나오는 점액질 같은 삶의 분비물이다. 지식의 끈적함으로 지혜로 접착력으로 다듬어지는 것이 바로 책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선택의 판단과 기로이다. 어느 선택에 대한 판단이 개별적 운명을 만든다. 그런데 이 선택에 대한 판단력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지식의 축적됨과 배움의 체적으로써 선택하는 삶이다. 인생에 있어서 산다는 것이 곧 선택과 다를 바 없다. 불가역적인 운명도 있지만 가역적인 숙명도 부지기수다. 하다못해 오늘 점심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건강이 야금야금 결정된다. 따라서 이런 선택의 판단력은 개개인들의 경험과 지식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이 배운 것과 배우지 못한 것의 차이는 천차만별로 나타나는 결과이다. 지식과 학습의 과정 없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는 본능과는 그래서 전혀 다르다. 그래서 우리들이 전부 빠짐없이 학교를 다니고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사람이 본능으로만 산다면 그건 짐승계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지식이 이성으로 점차 전이될 때 삶의 바탕에서 책이 그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매일매일 빡빡한 시간을 수업에 열중하지만 대학은 몇 학점 이수로 제한하고 수업시간이 고등학교 때와는 상당히 적다. 이렇게 비는 시간에 술 마시고 놀라고 비워둔 게 아니었다. 전공과 관련한 수업에 자료를 찾고 개론의 폭넓은 학문의 기초를 다지라는 시간적 배려였다. 수업 이외의 시간에 독서의 량과 깊이는 대학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의무이다. 하기야 놀려면 한도 끝도 없이 놀 수 있는 시간이지만 스스로 학문의 맛베기라도 만날려는 공부는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서 파헤쳐도 못다 볼 것들이 차고 넘친다.
인생을 살면서 제일 좋은 시기라는 때가 있다. 이를 우리는 적기라고 한다. 책 읽기의 적기는 바로 학교 다닐 때가 아닐까 한다. 기회와 적기가 만날 때, 하지 못한 후회도 반드시 따라 오기 마련이다. 책 읽을 수 있는 제일 좋은 적기가 대학 다닐 때라고 확신한다. 졸업하고 나서 직장이나 먹고사는 일에 매진하는 삶이 도래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책은 특별한 취미의 이상을 가진 것처럼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가 정말 어렵다. 우리 사회가 쉽게 책과 접하도록 기회가 박한 것도 사실이다. 회사 다니면서 책을 자주 읽게 되거나 집에서 서재라도 개인 공간을 가진 가장이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쉽게 농담 건네듯이 책을 읽으면 당장에 " 어쭈, 요즘 한가하구나. 책이나 읽고? "라고 빈정대는 소리 듣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가하니 책을 읽는 게 아니라는 것은 기본 인식일지라도 가끔 그런 소리를 들게 되면 화가 난다. 한가해서가 아니라 절박해서라고 왜 말도 못 꺼낼까 싶었다. 따라서 학교 다닐 때만한 적기를 자신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만들 수 있는 것은 굉장히 한정적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