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책이 사진이 곁들여진 산문집인데, 찾다 보니 중고책이 눈에 띄길래 주문을 하고 책을 받았다.
표지를 열자마자, 책 저자의 친필 사인을 만났다.
책 한 권 사고 황망하기는 또 처음이다.
차라리 나에게 받은 책이 아닌 마냥, 어색하기도 하거니와, 어쩌다 증정한 책이 중고시장에서 돌아다니게 된 것인지 난망한 생각도 들었다.
설마 중고책 팔아서 궁한 형편을 모면하리라는 생각까지 이렇게 들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돌고 돌아 나에게까지 오게 된 것일까?
나도 간간이 작가 혹은 시인으로부터 책을 선물 받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시인의 시집이나 작가의 책을 별도로 똑같은 책을 구입까지 한다.
책을 내느라 혼신의 힘을 다했을 텐데 그저 안다는 대가로 받기에는 노고에 뭔가 미안한 구석도 있고, 조금이나마 책을 낸 작가의 자부심도 복 돋아서 다음에 또 책이 나올 때는 더더욱 완성도 있는 책을 기대하는 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때까지 다 그랬으니까.
저자에게서 받은 책은 저자의 이름이 박히고 받은 사람의 이름도 박히는 책의 문신이자 책의 고유 지문이라 여겼다.
책장에 같은 책이 나란히 꼿혀 있는 것을 보면 뭔가 모르게 흐뭇한 인연이란 것에 대한 미소가 번지곤 한다.
또한 구입한 책은 읽어 나가면서 밑 줄도 치고 접기도 하고 포스트잇도 붙이고 낙서도 해가면서 읽은 티가 팍팍 날 정도다.
물론 받은 책이야 마치 작가 초상화를 내 책장에 모셔둔 마냥 고이고이 꼽아둔다.
책은 어떤 의미에서 주고받는다는 것은 일종의 연의 끈이 닿아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에서건, 오프라인에서건 이랬던 저랬던 스쳤거나 이름이나 아이디라도 일말의 엮임이 있었길래 가능한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싫든 좋든 인생사에 인연이란 함부로 맺을 수도 없고, 쉽게 끊는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조차 내 발에 걸리기까지 수억 년 동안 어디에서 흘러와서 오늘에 이르렀다면, 이것이 그리 쉽게 차버리고 말 것도 못된다.
하물며 심혈을 기울인 책이야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익과 편익, 또는 손익에 따라 끊고 맺는 타산적일 수도 있을지라도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억지 부려서 맺은 게 아니라면 오늘의 인연은 다 어떤 섭리에 따라 맺은 것이고 끊어진 것일 텐데, 책인들 작가의 마음이 어디로 굴러다니는 게 영 개운치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책이든 아니든 간에 책을 구입하고 나서도 작가에게 참 면구스러운 기분은 처음이다.
차라리 불쏘시개라도 쓰고서 책을 영원히 봉인이라도 시키든가.....
하기야 자기 몸에서 나온 자식마저 내팽개치거나 부모도 버리는 마당에 책인들 꼴랑 저자 이름이 적혔다고 뭐가 그리 대수냐라고 여겨도 할 말은 없다만은, 그럼 도대체 뭐가 그리 무책임으로 사는 꼴도 마뜩지 않는 것도 피장파장 아니겠는가 한다.
그러면서도 인생은 외로운 것이야라고 주접떨며 누가 내 손을 잡아 주는 이 아무도 없구나 따위의 한탄일랑 절대로 내뱉지나 말았으면 한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아 달라 바라기 이전에, 내가 누구의 손부터 먼저 잡아 준 적도 없다면 바라지나 말 것이다.
이것이 인연의 공평함이란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은 한 적도 없으면서 만날 누가 먼저 와서 잡아 달라는 바람은 없어야지. 사람 바글바글 한 도시에서 외로운 섬처럼 사는 것이 그리 큰 자랑 꺼리는 못되니까.
아니면 제 잘난 맛에 살든가.
그래놓고 자신의 고독사를 염려하는 모순은 좀 지겹지 않는가 말이지.
그래도 이 세상 나와서 어떻게 무연고 행려자 신세로 행정적 처리로 끝내서야 되겠는가? 서글프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