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듯 저물지 않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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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제목을 보고,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 감이 올 때가 있어요. 이번에 읽은 <저물 듯 저물지 않는>도 그러했는데요. 문득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죠.”라던 <한낮인데 어두운 방>이라는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이 떠오르는 제목이기도 했고요. 물론 원제는 なかなか暮れない夏の夕暮れ이었지만 그 역시 비슷한 감각이 아닌가 합니다. 역시나 책을 다 읽고 나니, 알 수 없는 경계에 서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그녀의 작품세계 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네요.

처음에는 솔직히 깜짝 놀랐어요. 건조하기만 한 현실 속에서 부유하듯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잘 그려내던 그녀의 소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시작되었거든요. 바로 북유럽 미스테리였죠. 저는 북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를 읽다 보면, 하얀 눈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숨기고 싶은 모든 것을 덮어버릴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아무래도 그 곳의 자연환경이 만들어내는 장애물들이 많아서일까요?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 조야와 그녀를 찾아 나선 라스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눈보라처럼 펼쳐지는 것인가? 하던 와중에 인기척에 이야기는 끊기고 마는데요. 바로 그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있던 미노루의 친구이자 고문 세무사인 오타케의 등장이었지요.

가문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미노루는 오로지 책에 빠져서 살아가는 인물인데요. 그의 나이 역시 저물 듯 저물지 않은’ 50대 입니다. 그의 아이를 낳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다른 남자를 선택한 나기사에게도 친구에게도 좀 더 어른이 될 수 없냐라는 부탁을 받는 미노루, 처음에는 그들의 말에 공감이 가기도 했어요. 하지만 점점 미노루와 함께 책을 읽고 그의 일상을 걸어 나가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의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 하물며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고 믿고 있는 나기사 역시 미노루와 크게 결이 다르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멀어져 가는 사랑의 그림자에 갇혀버린 오타케도, 일본과 독일을 오가며 살아가는 미노루의 누나 스즈메도 정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가 다 그러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그럼 나는 어른이 되어 있고, 내 삶은 마치 소설 속처럼 어떤 기승전결이 갖추어져 있는가? 그렇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어쩌면 사람들은 소설을 읽는지도 몰라요. 거기에서는 선과 악이 분명하게 나뉠 때도 있고, 심지어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도 사건의 맥락이 존재하기도 하죠. 소설 속의 시간들은 잘 짜여져 있는 느낌을 주곤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러하지 않죠. 정말 생이 끝나간 그 순간에도 내 존재의 의미를 전혀 모를 수도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자꾸 생각나는 거 같네요. ‘저물 듯 저물지 않은’, 프랑스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는 모든 것이 모호한 세상에서 자신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관조하는 미노루까지 많은 여운을 주는 소설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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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고 싶은 날 숨은그림찾기 - 빨간고래와 떠나는 숨은그림 여행 40코스 혼자 놀고 싶은 날 미로찾기
박정아(빨간고래) 지음 / 조선앤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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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고래박정아의 <혼자 놀고 싶은 날 숨은그림찾기>는 제목 그대로 어린시절 많이 했었던 숨은그림찾기 책인데요. 색감이 풍부하고 밝은 느낌의 그림이 눈에 익다 했더니 전에컬러링북으로 만났던 <컬러링 앤 더 푸드>의 작가였더군요.

, 조금만 버티면 된다.”

그리고 시작되는 신나는 짐싸기, 면세점, 그리고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크로아티아, 독일, 핀란드, 네덜란드, 그리스, 호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태국, 인도, 러시아, 터키, 미국의 여행지와 짐풀기로 총 40코스로 이루어져 있어요. 각 나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관광지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묘사해놔서 더욱 생동감이 있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숨은 그림을찾으려다보면,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하기에, 사람들의표정이나 작은 소품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더군요.

물론 숨은그림찾기의 난이도 자체는 낮은 편인 거 같아요. 숨어있다기보다는그냥 그 곳에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래도 한 두 개씩은 잘 숨겨져 있는것들이 있어서 나름 찾는 재미도 있었어요. 끝에는 정답편과 컬러링을 해볼 수 있는 페이지도 있고요. 최근에 친구의 생일이기도 해서, 선물로 보내주었더니 귀엽다고 하더라고요. 그림은 마치 여행을 함께하는 것처럼 생동감도 있고 현장감도 느껴져서 좋은데요.다만 숨은 그림 찾기하면, 절묘하게 숨겨져 있는 그림을 찾는 재미도 기대하게 도어서, 그 부분을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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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언력 - 한마디로 상황을 올 킬하는 7가지 말의 기술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안혜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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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다 보면, 어느 샌가 장황하게 늘어지기도 하고, 딴 길로 새기도 하고, 때로는 뻘쭘함에 맥락없는 유머를 구사하게 될 때도 있지요. 심지어 사적인 대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래서 <일언력>이라는 책이 궁금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한마디로 상황을 올 킬하는 7가지 말의 기술이라니, 정말 제가 바라던 바로 그 것이었거든요. 이 책의 저자 가와카미 데쓰야는 그의 이름을 딴 가와카미 광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 최고의 카피라이터인데요. 특히나 이야기의 힘을 마케팅에 활용한 스토리 브랜딩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라고도 하네요. 광고는 짧은 시간 내에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니, 그가 말하는 일언력에 더욱 힘이 실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와카미 데쓰야의 일언력은 요약력, 단연력, 발문력, 단답력, 명명력, 비유력, 기치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그 중에 제가 먼저 익히고 싶은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인 비유력입니다. 저 역시 맛집 리포터 히코 마로의 독특한 요리 비유법을 기억하고 있는데, 방송계에서 살아남고 싶은 절실함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그녀의 비유법은 맛을 시 구절처럼 표현하는 느낌을 주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의 대화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순발력 있는 비유는 개그맨들을 관찰하면 된다고 하는데요. 저는 문득 고든 램지가 떠오르더군요. 해동이 덜 된 식재료를 보고, 식재료가 렛잇고를 부르고 있다고 독설을 날렸었는데요. 그런 모음집들을 보면서 그냥 웃고 넘길 것만은 아니었네요.  

또한 마음을 사로잡는 물음표인 발문력도 기억에 남는데요. 저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해왔기 때문에 창의력과 혁신을 이끌어내는 질문에까지 나아가질 못하고, 상당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왔는데요. 하지만 게토레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닌 거 같더군요. 미식축구팀 '게이터스'의 코치인 드웨인 더글라스는 활동량이 많아서 경기중에도 많은 물을 섭취하는 선수들이 경기가 끝나고 바로 화장실로 가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졌어요. 그리고 마신 물보다 땀을 더 흘렸고, 심지어 땀으로 대량의 전해질이 빠져나간 것을 깨닫고 게토레이를 만들게 된 것이죠. 이런 에피소드를 보다보면, 발문력은 바로 내 주변에서 조금만 관찰력을 키우면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 중에 하나라고 하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그 연설문은 총 266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고, 2분간 진행된 짧은 연설이죠. 그 연설 중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저 역시 잘 알고 있는 문구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짧은 연설 안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녹여낼 수 있는 힘이 일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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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곰 라이프 - 더 적게 소유하며 더 나은 삶을 사는 법
안나 브론스 지음, 신예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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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할 때 대응하는 단어를 찾기 힘들 때가 많아요.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스웨덴어인 라곰, Lagom’이 아닐까 해요. 굳이 해석을 하자면, ‘딱 좋다’, 혹은 적당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요. 이번에 요리웹진 푸디 언더그라운드의 설립자이자, 스웨덴에서 성장한 예술가 어머니의 영향으로 라곰을 체득한 애너 브론스의 <라곰 라이프, Live Lagom>를 읽으면서 라곰이 갖고 있는 풍부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더군요.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형태 그리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통해 일상의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이랄까요? 물론 라곰의 여왕이라고 하는 작가의 할머니는 아니, 라곰을 가지고 어떻게 책을 한 권이나 쓸 수 있다니?”라며 놀라워했다지만 말입니다.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라곰이 내면화 되어있기 때문이지만, 우리에게는 조금은 낯선 개념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라곰이 그렇게 낯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라곰 알 배스트lagom ar bast, 라곰이 최고라는 속담에 공감이 갈 정도였습니다.

적당히라는 말은 요리를 할 때 정말 딜레마로 다가오게 되는데요. 집에서 맛있게 먹은 것이 기억나서 여쭈어보면, 양념이 계량화된 것이 아닌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언젠가 꼬치꼬치 도대체 적당히 넣으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여쭈어본 적이 있는데요. ‘맛을 보면 알잖아라는 답을 들었어요. 사실 간을 맞춘다는 것은 지극히 자신의 입맛이 기준이 되기 쉽잖아요. 라곰 역시 자신에게 맞는 적당한 선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더라고요.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비워낼 줄 모르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적도 많은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적정한 수준, 제가 원하는 딱 그만큼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불어서 제철음식과 로컬 식재료를 심플한 레시피로 만드는 스웨덴식 레시피도 알려주는데요. 제가 워낙 치즈를 좋아하고, 할 줄 아는 요리 중에 코티지 치즈가 있어서 이를 활용한 스웨디시 치즈 케이크 ‘Ostkaka’도 도전해보고 싶어집니다. 저만의 라곰라이프의 첫발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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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내나는 서울지앵 - 우리들의 짠한 서울기억법
서울지앵 프로젝트 팀 지음 / 리프레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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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에게 서울은 제 2의 고향으로 기억되겠지요. 그리고 그들 중에 사람들의 기억에 모여 도시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6명이 모여서 서울지앵 프로젝트 팀을 만들었는데요. 그들이 들려주는 서울에 대한 이야기 <짠내나는 서울지앵>입니다.

그런 동네가 있고,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만 알아주면 된다. 우리의 동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면 봉천동, 혜화동, 신림동, 방학동, 화양동, 홍대는 살아 숨 쉬게 도리 것이다. 여러분의 동네도 각자가 기억한다면 모든 동네가 살아나게 되고, 도시 서울은 생명력 가득한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다. 저자들이 서울을 기억하는 방법은 우리만의 서울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우리 모두가 서울을 기억하는 과정은 위대한 여정이 된다 - 서울지앵 프로젝트 팀을 대표하며 이종현이 쓴 프롤로그에서.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냥 뉘앙스로만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던  짠내가 어떤 뜻일까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보았는데요. ‘짠내난다를 네이버 오픈 사전에서는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는 뜻으로 자신의 상황이 아닌 주로 제3자의 상황에 대해 지켜보는 입장에서 쓰이는 말이다.”라고 설명해두었더라고요. 물론 이 책의 내용을 다 공감할 필요도 없고 그저 알아주면 된다고 했지만, 문득 그런 느낌이었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네요. 저에게는 상당히 그립고 정다운 느낌의 에세이였거든요. 아무래도 저에게 서울은 고향이라고 그런 것일까요? 왠지 고향은 정겹고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오니까요.

이영아 서울생활 5년차 대구시민입니다

이종현 어쩌면 마지막 혜화동 이야기

차오름 신림동 고시촌, 청춘애가(靑春哀歌)

안선정 도봉구 24년차 주민의 추억 여행

엄사사 24시 카페에서 유학생의 하루

최하경 홍대앞 20년 추억의 공간들

어쩌면 마지막 혜화동 이야기를 읽으며 혜화동이라는 노래를 배경으로 깔아놓고 있었는데, 이 책이랑 참 잘 어울리는 노래와 가사더군요. 그리고 이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엄사사의 이야기었는데요. 유학생으로 바라보는 서울,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 마음의 결에 공감이 많이 갔어요. 특히 자신의 일기를 수록해준 부분이 그러했는데요. 7년전의 일기에서 자신이 한 당부를 돌아보는 것도요. 저도 일기를 쭉 써왔기 때문에, 가끔 오래 전의 일기를 열어볼 때의 감각들이 다시 떠오르는 기분이 들더군요. 왜 그렇게 자신에게 하고 싶은 당부도, 경계도 많은지 말이죠. 마치 언제나 몇 가지 테마가 반복되는 것만 같던 엄마의 잔소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렇게 엄마의 잔소리를 지겨워했으면서, 이제는 자신에게 그러고 있네요.

책을 읽다가 짧은 역사라는 표현이 마음에 콕 박히더군요. 서울에 참 잘 어울리는 표현이죠. 분명 서울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지만, 이상하게 그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파편과 같은 시간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어린 시절 제가 살았던 곳들을 지나칠 때면, 추억할 공간조차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 추억을 담을 공간은 사치인 것일까요? 그래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추억을 읽다 보니, 저와 서울이 만들어온 시간을 돌아보게 됩니다. 단순히 공간의 사라짐을 아쉬워하지 말고,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에세이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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