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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15
제프리 초서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12월
평점 :
처음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접한 것은 조금은 엉뚱할지도 몰라도 영어의 역사를 배우면서였어요. 그
때는 중세 영어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 책을 접했는데, 이번에 ‘현대지성 클래식’으로 읽어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네요.
아직 활자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거의 100여개에 이르는 필사본으로 남아있는 작품인데요. 그 중에 가장
권위있는 엘리스미어의 필사본을 바탕으로 번역을 했다고 해요. 책에는 다양한 자료가 수록되어 있는데, ‘엘리스미어 판본(미국 캘리포니아 헨리 E. 헌팅턴 도서관 소장)’을 저도 전에 봤던 것이라 더욱 반갑게
느껴지더군요. 특히나 이 판본은 등장인물의 삽화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들의 복식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토마스 베켓하면 헨리2세때 성직자로 법률가로 행정가로 그리고 외교관으로까지
출중한 능력을 보였던 인물이죠. 생각해보니 예전에 퇴마록에 등장하는 ‘베케트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찾아가봤던 곳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순례를 떠났던 ‘캔터베리 대성당’이었고, 그
때 우연히 들렸던 캔터베리 테일스네요. 캔터베리 테일스에서 봤던 것들이 이 소설속의 이야기를 재현하고
있었던 것인 것, 이제서야 단편적으로 남아있던 추억들을 하나로 묶어내게 되었습니다.
31명의 순례자들이 때로는 화자로 때로는 청자로 교차하는 구조인데요. ‘병들어 고생할 때 도와준 거룩하고 복되며 성스러운 순교자’, 토머스
베켓을 찾아가기 위해 떠나온 사람들은 타바드 여관의 주인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받게 됩니다. 갈 때, 그리고 돌아올 때 총 네가지의 이야기를 해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사람에게 큰 상을 주자고요. 신분사회였던 중세 영국이라지만, 순례길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던
것일까요? 다양한 직업, 당연히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군의
사람들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아무래도 포상이 있는 경쟁이기 때문일까요?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극적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MSG가 조금 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이야기도 있었답니다. 물론
자신의 실수나 잘못은 어느 정도는 순화시켰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많았고 말이죠.
덕분에 다양한 인간군상의 향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네요. 1387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여, 1400년 초서의 사망으로 미완성인 상태로 남았는데도, 그 것도 의미있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말 그대로, 백인백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침표는 없을 테니 말이죠. 현대로
올수록 물질문명뿐 아니라, 정신문명 역시 발달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들도 있어요. 처음에는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서, 읽는 속도가 느렸었는데, 차츰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욕망에 집중하면서부터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인간사에
대한 눈이 깊어지는 느낌도 들더군요.
성서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적혀진 것은 모두 우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제 목표도 이런 것이었습니다. (p636) –초서의 고별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