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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거짓말을 먹는 나무(The Lie Tree), 제목을 보자마자 떠올렸던
것은 바로 성서에 등장하던 창세기였어요. 에덴 동산에 자리잡고 있던 두 나무 중에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였지요. 원제가 ‘The Tree of Lie’였으면 나름 라임도 맞았을 거 같기도 하고 말이죠.
죄와 악에 승리한 자가 먹을 수 있는 생명의 나무의 열매는 영원한 삶을 준다고 하지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거짓말을 먹는 나무는 거짓말을 먹고 자라나요. 그래서인지 빛에 정말 약하고, 나무에게 속삭인 거짓말이 사람들이 더 많이 믿고, 중요하게 여길수록
큰 열매가 맺힙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비밀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지요.
이 소설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종교 규범이 강력하게 지배를 하는 와중에 자연과학이 발달하던 시절이었죠. 그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정점을 찍게 된 것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이로 인해서 기독교와 과학계가 대립하기
시작했는데요. 목사이자 과학자였던 에라스무스 선더리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거인인 네피림의 화석을 발견하여, 큰 지지를 받게 되지요. 그러나 그가 발견한 화석들이 조작된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는 부인 머틀과 딸 페이스, 아들 하워드를
데리고 베인 섬을 발굴한다는 미명하에 영국을 떠나게 됩니다. 외딴 섬 베인에도 소문은 스며들기 시작했고, 에라스무스 선더리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총명하면서도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 주어서인지 도저히 열네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페이스는 아버지의 죽음에
감춰진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데요. 그런 그녀가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 찾아내게 된 것이
바로 거짓말을 먹는 나무입니다. 때로는 영악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짓말을 먹는 나무를 너무나 잘 이용하는
것이 놀라웠는데요. 거짓말을 어떻게 퍼트려나갈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충동질할 수 있을지 기민하게 대처하는 그녀의 입술 끝에서 베인 섬의 사람들이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듯 했답니다. 물론 그녀가 아버지의 죽음에 얽혀있는 비밀을 찾고 싶어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옆에서 마치 자신이 잘 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는 기분도
들었어요. 언젠가 그 불이 진실조차 다 불태워버리고 결국 자신마저 집어삼킬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어쩌면 에덴동산에 있던 생명의 나무 대신, 인간세계에는 거짓의 나무가
자리잡은지도 모르겠네요.
거짓말을 먹는 나무라는 신비로운 설정 때문에 조금은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의 장점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의 군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페이스에게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들이대기 힘들었는데요. 제가 계속 놀라워했던 14년의
삶을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 만만치 않았죠. 심지어 그녀는 과학자로서의 열망도 컸고, 거기에 필요한 재능 역시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죠. 대부분의
인물이 그랬던 거 같아요. 처음에는 저 역시 페이스와 비슷하게 경멸의 눈으로 바라봤던 미망인 머틀 역시
나중에는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거든요. 물론 지극히 이율배반적인 인물로 느껴지던 에라스무스조차도요. 그런 매력 덕분에 이 소설이 큰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