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기쁨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류재화 옮김 / 열림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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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네요. <검은 기쁨>이라는 제목부터 참 아이러니하잖아요. ‘생 소를랭의 이상한 여인’, ‘귀환’, ‘검은 기쁨’, ‘엘리제의 사랑’, 4편의 단편이 실려 있지만, 모든 단편에 검은 기쁨이 참 잘 어울려요. 검은 기쁨이 만들어내는 변주라고 할까요? 아니네요. 검은기쁨을 만들어내는 4중주라고 할 수 있겠어요.

엘리제의 사랑은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엘리제 궁을 배경으로 완벽한 사랑을 보여주는 대통령 부부의 내밀한 이야기입니다. 완벽한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살아가던 영부인 카트린 모렐은 점점 자신의 가식적인 삶에 질려가고 있었지요. 그녀는 대통령 앙리의 비밀을 빌미 삼아 자신의 삶을 찾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홀로 새장을 뛰쳐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지요. 적어도 제 생각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다시 완벽한 사랑속에 박제되고 말았거든요. 그녀의 기쁨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네요.

검은 슬픔은 저에게는 성경에 나오는 카인을 위한 레퀴엠처럼 느껴졌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이 카인과 아벨입니다. 선량한 아벨을 질투했던 카인은 결국 성경에 등장한 최초의 살인자가 되는데요. 결국 아벨은 후손을 남기지 못했기에, 인간을 카인의 후예라고 하죠. 이 소설에 등장하는 크리스와 악셀도 그러합니다. 신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듯한 악셀의 음악적 재능과 밝은 성격을 크리스는 질투하고 있었지요. 마치 카인처럼 말이죠. 카인과 마찬가지로 크리스는 함께 연주하는 듀오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음악도 아니 삶 전체가 상대와 경쟁하는 듀엘일 뿐이었죠. 그런 그의 경쟁심은 결국 악셀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요. 아니 죽음에 이르게 한 줄 알았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다시 만난 두 사람, 크리스는 음악도 밝은 성격도 잃고 완전히 변해버린 악셀을 보며 도리어 자신을 아벨에 비유합니다. 저는 그 순간 할 말을 잃었는데요. 스스로 반성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가 아벨이 될 수 있을까요? 그저 자기위안, 그저 검은 기쁨이 아닐까요? 악셀이 받은 정신적 육체적 상처는 그대로인데 말이죠. 그 상처로 변해버린 악셀을 보며 자신을 아벨로 생각하는 모습에, 도리어 저는 그가 영원히 카인의 후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카인의 안식을(requiem) 위한 노래가 아닐까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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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
브리타 뢰스트룬트 지음, 박지선 옮김 / 레드스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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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독특했던 <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의 원제는 ‘Waiting For Monsieur Bellivier’입니다. 두 가지 제목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할까요? 그 어떤 제목도 이 소설의 이야기를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네요. 책을 다 읽고 다시 원제를 보니 문득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 떠올랐는데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느낌이 문득 떠올라서였던 거 같아요 

일단 만체보씨부터 만나볼까요? 그는 프랑스 파리, 바티뇰 대로 73번지에 자리잡은 작은 식료품 가게의 주인입니다. 튀니지 출신인 만체보 덕분에 사람들은 이 곳을 아랍인 가게라고 부르는데요. 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이미 그의 삶은 거리의 풍경 한 조각이 되어버렸거든요. 한없이 평화롭지만, 조금은 지루한 그의 일상에 갑자기 변화가 생긴 것은 한 여성 덕분이었죠. 승무원인캣은 자신의 남편 이 바람을 피우는 거 같다며, 남편을 감시해달라고 부탁을 해옵니다. 물론 대가도 탐이 났겠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삶에 작은 변화가 더욱반갑게 느껴진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만체보의 눈에는 매일 같은 그림을 돌리는 것처럼 흘러가던 희색 빛도시의 풍경이, 쌍안경을 드는 순간 호기심으로 채색되기 시작하는데요.문제는 그녀의 남편인 작가뿐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던 가족들의 일상까지 눈에 들어오기시작했다는 것이죠. 그저 평범한 하루를 구성하는 작은 조각들처럼 느껴졌던 가족들이 비밀스러운 행동들이그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밸리비에씨를 기다려야 했던 한 여성이 있습니다. 프리랜서 기자인 나는사건을 취재하던 중에, 그 여성을 자처하게 되는데요. 호기심에벌인 일탈덕분에 높은 빌딩의 꼭대기 층에서 아주 간단한 일만 하면 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퇴근을할 때면, 1층 로비에서 주는 꽃다발을 받아야 하는데, 그녀는그 일이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기만 합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게 꽃다발을 나누어줘도 그녀의 손에는여전히 꽃다발이 들려져 있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만체보의 쌍안경처럼 나의 꽃다발은 세상을 다르게 만날수 있는 통로가 되어줍니다. 표지에서 만체보가 선글라스를 쓰는 순간 느낌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죠. 처음에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각각의 단편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아니거의 마지막까지 그랬던 거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런저런 상상을 많이 했었는데 말이죠. 막상 비밀이 드러나니 그냥 가볍게 웃게 되었던 거 같아요. 조금엇나갔지만, 문득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CuriosityKills The Cat’라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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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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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먹는 나무(The Lie Tree), 제목을 보자마자 떠올렸던 것은 바로 성서에 등장하던 창세기였어요. 에덴 동산에 자리잡고 있던 두 나무 중에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였지요. 원제가 ‘The Tree of Lie’였으면 나름 라임도 맞았을 거 같기도 하고 말이죠. 죄와 악에 승리한 자가 먹을 수 있는 생명의 나무의 열매는 영원한 삶을 준다고 하지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거짓말을 먹는 나무는 거짓말을 먹고 자라나요. 그래서인지 빛에 정말 약하고, 나무에게 속삭인 거짓말이 사람들이 더 많이 믿고, 중요하게 여길수록 큰 열매가 맺힙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비밀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지요.

이 소설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종교 규범이 강력하게 지배를 하는 와중에 자연과학이 발달하던 시절이었죠. 그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정점을 찍게 된 것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이로 인해서 기독교와 과학계가 대립하기 시작했는데요. 목사이자 과학자였던 에라스무스 선더리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거인인 네피림의 화석을 발견하여, 큰 지지를 받게 되지요. 그러나 그가 발견한 화석들이 조작된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는 부인 머틀과 딸 페이스, 아들 하워드를 데리고 베인 섬을 발굴한다는 미명하에 영국을 떠나게 됩니다. 외딴 섬 베인에도 소문은 스며들기 시작했고, 에라스무스 선더리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총명하면서도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 주어서인지 도저히 열네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페이스는 아버지의 죽음에 감춰진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데요. 그런 그녀가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 찾아내게 된 것이 바로 거짓말을 먹는 나무입니다. 때로는 영악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짓말을 먹는 나무를 너무나 잘 이용하는 것이 놀라웠는데요. 거짓말을 어떻게 퍼트려나갈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충동질할 수 있을지 기민하게 대처하는 그녀의 입술 끝에서 베인 섬의 사람들이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듯 했답니다. 물론 그녀가 아버지의 죽음에 얽혀있는 비밀을 찾고 싶어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옆에서 마치 자신이 잘 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는 기분도 들었어요. 언젠가 그 불이 진실조차 다 불태워버리고 결국 자신마저 집어삼킬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어쩌면 에덴동산에 있던 생명의 나무 대신, 인간세계에는 거짓의 나무가 자리잡은지도 모르겠네요.

거짓말을 먹는 나무라는 신비로운 설정 때문에 조금은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의 장점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의 군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페이스에게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들이대기 힘들었는데요. 제가 계속 놀라워했던 14년의 삶을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 만만치 않았죠. 심지어 그녀는 과학자로서의 열망도 컸고, 거기에 필요한 재능 역시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죠. 대부분의 인물이 그랬던 거 같아요. 처음에는 저 역시 페이스와 비슷하게 경멸의 눈으로 바라봤던 미망인 머틀 역시 나중에는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거든요. 물론 지극히 이율배반적인 인물로 느껴지던 에라스무스조차도요. 그런 매력 덕분에 이 소설이 큰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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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호랑이 - 중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가
피터 나바로 지음, 이은경 옮김 / 레디셋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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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중국전문가이자 미국 국가무역위원회 초대 위원장인 피터 나바로의 <웅크린 호랑이, crouching tiger> 이 책의 부제는 중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가인데요. 원서를 보니 ‘What China's Militarism Means for the World’라는 부제가 달려 있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패권경쟁을 하고, 세계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중국의 군사주의 역시 상당수준 이상으로 올라선 느낌이 들더군요.

생각해보면 한때 중국의 군사전력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라는 도광양회, 韜光養晦였지만, ‘대국으로 우뚝 선다대국굴기,大國堀起로 전환되었지요. 그리고 이제는 과거의 중국의 영광을 재연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을 이야기 합니다.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패소하면서, "중국은 하나의 점도 잃을 수 없다,中國一点都不能少"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었는데요. 하지만 그 때 함께 올렸던 지도를 보면, 중국이 생각하는 중국과 세계가 생각하는 중국의 차이가 상당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중국의 행보에서 끊임없이 여러 가지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요. 일본과는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을 벌이면서 무역보복공세를 벌였고, 한국의 경우에는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설치에 대한 보복이 이루어지기도 했어요. 그리고 최근 인도와도 국경을 둘러싼 일촉즉발의 대치를 벌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한국, 일본과 달리 인도에는 경제적 보복조치가 없었는데요. 그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를 꼽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그런 부분들이 더욱 잘 보이더군요. 중국이 이렇게 팽창의 욕구를 숨기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자원과 무역 통상로 확보에 있다고 이 책의 저자는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시진핑 주석이 외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죠. 중국이 외치는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가장 큰 장애물은 아무래도 미국이겠지요. 2000년도에 개봉했던 와호장룡의 영어 제목이 바로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이었었는데요. 2015년도에 나온 이 책에서도 중국을 ‘Crouching Tiger’로 표현한 것이 어쩌면 미국의 바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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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간과 함께한 시절 - 명화와 함께하는 달콤쌉싸름한 그리스신화 명강의!
천시후이 지음, 정호운 옮김 / 올댓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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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그리스 신화를 좋아해서 다양한 책을 읽어왔는데요. 이번에 읽은 <신이 인간과 함께한 시절> 역시 너무나 좋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대학에 개설된지 20년 가까이 되었고, 해마다 수강생이 2천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 있는 강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요. 100여점의 명화를 통해 더욱 풍부하게 그리스 신화를 만날 수 있고요. 현대적인 시각에서의 재해석이 흥미롭습니다. 불평과 비난의 신 모모스와 아프로디테의 이야기에서는 말이죠. 작가는 결국 모모스가 아프로디테의 결점을 찾지 못해 죽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고 하지만, 저는 생트집이기는 하지만 결국 비난할 거리를 찾아낸 것에 더욱 모모스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로불편러(pro+불편+er)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살다 보니 더욱 그런 거 같아요. 그리고 동양적인 시각을 함께 만나볼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어요. 예를 들면 아테나에 대한 해석인데요. 마오쩌둥이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더군요. 또한 중간 중간에 유머러스한 코멘트, 약간 아재개그같기도 했지만 그런 부분들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어요. 사실 저는 복수의 여신하면 네메시스를 떠올리곤 했었는데요. 두 여신의 업무범위가 조금 달랐던 거 같더군요. 네메시스를 율법의 여신으로 소개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사적인 영역을 담당한 것이 에리니에스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복수의 방식은 매우 비슷해서, 복수의 여신은 괴로운 양심이라는 표현이 정말 딱 어울립니다. 제가 복수의 여신 하면 떠올리는 그림은 피에르 폴 프뤼동의 범죄를 뒤쫓는 정의의 여신과 복수의 여신과 윌리엄 부게로의 오레스테스의 자책인데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이 두 그림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면 네메시스와 에리니에스를 구별할 수 있겠더군요. 특히 이 책에서 오레스테스의 친모 살해사건에서 드러났던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의 투철한 프로정신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복수와는 조금 다르지만, 신들이 내리는 형벌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시간이 바로 형벌이고, 끊임없이 희망과 절망 사이를 순환해야 하는 형벌이라니요. 문득 인간사와 닮아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음을 중국의 근대시인 저우스의 시로 풀어나가요. 그 시가 주는 느낌이 참 좋더군요. 신과 인간이 함께하지 않는 현대사회 같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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