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풍경에게
나태주 지음 / 푸른길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풀꽃이라는 시를 쓴 나태주시인, 그의 포토 에세이 <풍경이 풍경에게>를 읽다 보면, 절로 외갓집이 떠오른다. 금새라도 손끝에 느껴질 듯한 따듯한 온기와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행복한 추억이 그리고 이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애틋함까지 골고루 녹아 있다.

그의 발길을 잡아 끈 플라스틱 채반에 호박고지에서부터 그랬다. 그의 시 눈부신 속살을 읽으면서 내내 바지런하시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어린시절 할머니가 그렇게 채반에 내어놓으신 것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다 혼나기도 했었다. 호박나물을 좋아하는 손녀를 위해 김치냉장고에 살뜰히 보관해두신 호박고지를 꺼내서 해주시던 그 뒷모습도 아직 생생하다. 눈 의자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했다. 노인병원 옆에 노인들이 나와 앉아 있던 그런 의자가 외갓집 대문 앞에 있었다. 호박넝쿨이 타고 올라가는 대문 앞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시던 두 분의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람도 풍경이 되는 이야기를 읽으며 시간 역시 풍경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공주문화원장으로 재임중이셔서인지, 공주의 풍경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은 바로 공주 제일교회이다. 그 곳은 박목월 선생이 유익순 여사와 결혼식을 올린 곳이라고 하는데, 결혼식 때 사진과 현재 모습이 다 수록되어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 본 것 같다. 박목월하면 바로 떠오르는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가 떠오르는데, 이제는 공주가 떠오를 것 같다. 아내가 고우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더니, 부인이 공주 출생이라 그런지 공주와 인연이 있는 분에게 그렇게 잘했다니 말이다. 그리고 나태주 시인의 모교인 공주사범학교, 이제는 다 헐리고 나무 몇 그루 만 남은 그 곳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가,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다들 다른 곳으로 급하게 자리를 옮겼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개발이다 뭐다 해서 때려 부수는 것만 제일로 아는 인간들의 막돼 먹은 손길에 의해서였다. 생각해보면 이것도 폭행이고 폭력이다.” 정말 나태주 시인의 말을 빌려 나 역시 꼭 하고 싶은 말이다.

소박한 멋이 더욱 운치있게 느껴지는 사진과 시인의 글이 보여주는 사색의 깊이에 빠져 정말 행복하게 읽은 수필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정치 - 밀과 토크빌, 시대의 부름에 답하다
서병훈 지음 / 책세상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득 인류 최초의 핵실험 프로젝트인 트리니티가 성공했을 때의 대다수는 침묵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상황은 2017년 대한민국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정치>이 저자 서병훈은 서론에서 한국의 지식인들이 보이는 비지성적인 행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대한 정치에서 다루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과 알렉시 드 토크빌의 삶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물론 <자유론>을 쓴 밀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토크빌은 학문적인 성과에 비해서 정치적으로는 미미한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침묵하지 않았다. 후에 글로서 역사적 소명에 답하는 것이 좋았을 것을 깨닫기도 했지만, 자신의 글을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투영시켰고, 행동하는 지성으로 살아갔기에 그런 통찰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밀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외치며 도덕정치를 추구했고, 토크빌은 새로운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위대한 정치를 꿈꾸었다는 작가의 글에 정말 공감한다. “우연히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참정권을 얻을 수 없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애썼던 밀은 투표권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를 배우고 그래서 정치적인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진보적 자유와 도덕정치라는 것은 그런 것이지만, 시민의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고양될 수 없다는 것을 역사가 답해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도덕과 종교와 질서 거기에 자유와 평등이 다 연결되는 어떻게 보면, 공자의 대동정치가 떠오르기도 하는 이상향을 꿈꾸었던 토크빌이 생각하는 자유는 질서 속에 규율이 있는 자유였다. 21세기에서도 도리어 쇠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유에 대한 토크빌의 생각은 19세기 프랑스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 거 같기도 하다. 그들이 정치인으로 많은 실패를 경험한 이유 역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신념과 원칙을 고수하는데 있었다는 것이 양날의 칼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대중정치인은 어때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자적인 양심을 지켜낸 것이다.

두 사람은 짧게나마 서신으로 우정을 쌓기도 하고, 논쟁을 펼치기도 했던 토크빌이 자유야말로 우리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함께 걸어가야 할 영역"이라고 마지막 편지에 쓴 것이 이해가 간다. 요즘 우리나라를 들여다보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기본부터 다시 살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이 책은 거기에 대한 좋은 답이 될 것이다. 조금 더 홍보에 신경을 쓰고, 책 표지도 잘 만들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찾을 거 같은 책인데, 그런 면은 좀 아쉽다. 그 역시 머리와 양심의 거리에서 나온 결과물인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내 안의 잠재력을 깨우는 자기 발견의 심리학
일레인 아론 지음, 노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고 생각해보니, 엄마는 내가 무남독녀로 태어나서 사회성이 부족할 수 있다고 느끼셨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촌들과라도 시간을 많이 보내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지금도 이모들이 웃으면서 들려주는 에피소드가 이 때 생겨났다. 어느 순간 내가 없어서, 찾아보면 자기 방에 있었고, 뭐하냐고 물어보면 쉬고 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향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아서, 나는 나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민감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성이기도 했다.

자신이 민감한 사람이기에, 자신이 먼저 관찰 대상이 되기도 했던, 일레인 N.아론의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5년동안 민감함에 대해 연구한 그녀는 사회가 갖고 있는 민감함에 대한 편견을 깨고 민감한 사람들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예전에 <콰이어트>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는 내향적인 사람, 조용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그저 기질의 차이이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었다. 어린 시절 아빠에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조언을 자주 듣던 나로서는, 어쩌면 사회가 요구하는 표준적인 인간형이 있고, 거기에서 어긋나면 문자 그대로 정을 맞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민감함도 내향적인 성격도 다 개인의 특성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것은 민감하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심리학적으로도 상당히 부정적인 소양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내 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상담을 받다 보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라는 소리를 많이 듣곤 해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아마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일단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먼저 했을 것이다. 그런 나의 성향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를 잘 닦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다 그런 부분에 대한 조언도 풍부하게 담겨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아직은 현재 나의 예민한 면모에 대해 대놓고 쓰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책을 읽으며 개인 공간에 더 많은 메모를 하게 되는 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과 함께 생각을 바꾸어나간다면, 언젠가는 나 역시 달라지지 않겠는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madhi(眞我) 2017-03-28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다가 미뤄두었어요. 스무살까지는 남글보다 둔하다 싶을 만큼 잘(?) 지내다가 그 뒤부터 갑자기(?) 예민한 인생이 시작되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지요.

고양이라디오 2017-03-29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민감한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저도 저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편입니다ㅠㅋ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뇌과학에 관심이 커지게 된 계기가 된 책이 있다. 바로 뇌와 마음 그리고 사회의 연결점을 찾아나가는 <뇌로 통하다>인데, 이 역시 ‘21세기북스에서 출간된 책이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책을 접하다 다시 뇌과학의 즐거움에 흠뻑 빠지게 만든 책이 있다. ‘21세기북스에서 출간된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이다. 이 책은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가 2015년에 건명원(建明苑)에서 진행한 다섯 차례의 과학 강의를 묶어놓은 것이다. 몇 일전에도 김대식의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읽었었는데, 사진자료가 정말 풍부한 것이 흥미롭다. 자칫 어렵게 느껴지기 쉬운 뇌과학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특히나 이 책은 강의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강의에서도 이렇게 많은 시청각자료가 사용되고 있는지 궁금해질 정도이다.

다만 제목이 좀 난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뇌과학 하면 사람들은 말그대로 과학이나 의학의 분야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뇌과학이라는 프리즘으로 사람과 문화가 갖고 있는 다양한 빛을 보여준다. 크게 뇌와 인간, 정신, 의미, 영생, 그리고 뇌과학자가 답하는 철학적 물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뇌과학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컨텐츠로 변주될 수 있다는 것에 내내 놀랍기만 했다. 렘브란트, 고흐, 고갱, 그리고 구스타브 쿠르베처럼 다양한 자화상을 그린 화가나, 나를 주제로 한 시를 쓴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와 이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흘러갈 때는 절로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모든 생각은 나로 시작하여 나로 끝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면 인간이 갖고 있는 1.4킬로그램의 뇌일 것이다.

내가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혹은 나의 뇌가 가장 잘 하는 것을 보여준 부분은 바로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 p117”이다. 나는 자기합리화를 잘하는 것을 약점 중에 하나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 역시 인간의 뇌가 갖고 있는 역할 중에 하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마더 테레사와 같은 헌신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고, 히틀러와 같은 악마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는 초반에 언급되었던 이야기인데, 합리화 부분에서 더욱 많이 와 닿았다. 그러다 문득 전에 읽었던 사이코패스에 대한 뇌과학자들의 연구가 떠오른다. 이 역시 타고난 뇌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뇌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고작 19세기부터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전에는 관찰과 철학을 통해 인간의 뇌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 결과가 지금의 연구를 통해 검토해도 상당히 합리적이고 사실에 가까운 것도 많았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가능성은 사색과 통찰과 추론등을 수행하는 뇌에 있다. 처음에 뇌과학으로 4차 산업혁명에 판을 우리가 짜보자고 하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탐일기 - 디킨스의 만찬에서 하루키의 맥주까지, 26명의 명사들이 사랑한 음식 이야기
정세진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지만, 책을 읽고 나서도 제목이 정말 아쉽게 느껴지는 정세진의 <식탐일기> 음식을 사랑한 26명의 명사들의 이야기와 그 시대의 풍경까지 엿볼 수 있는 정말 매력적인 책인데, ‘식탐이라는 것이 자칫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점이 그런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인물들을 떠올려 보자면, 일단 일본이 사랑한 미식가 기타오지 로산진이 있다. 만화 맛의 달인에 등장하는 꼰대 캐릭터가 알고 보면 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요리의 90%는 재료", "진정한 미식가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이 아니라 맛있게 음식을 먹는 사람이다" 그가 남긴 말들이 요즘처럼 음식이 흔해진 시대에 도리어 큰 의미를 갖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끝없이 탐했던 그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제인 오스틴이 명작을 탄생시키게 된 배경에도 음식이 있었다. 바로 티타임이다. 그녀는 오스틴 가에서 티 소믈리에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티타임에 나누는 수다는 그녀의 소설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처음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고, 약간 우리나라 드라마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매력이 풍부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무래도 홍차의 깊고 향긋한 맛이 더해져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폴리적인 생각이란 삶에 대해 낙천적인 시선을 가진다는 뜻"이라는 말을 남긴 소피아 로렌이 있다. 소피아 로렌은 우리 세대의 배우는 아니다. 나 역시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의 수상소감 때였으니 말이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그녀에게는 나폴리적인 생각뿐 아니라 또 하나의 비법이 있다. 바로 나폴리의 파스타이다. 이 부분에서는 일본의 미식가 기타오지 로산진이 떠오른다. 담백하면서도, 재료의 맛을 풍부하게 살리는 파스타, 소피아 로렌의 미모와 몸매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여러분에게 보이는 이 모든 건 전부 스파게티 덕분이에요"라고 했다니, 내일 친구를 만나면 나폴리식 파스타를 먹으러 가야겠다. 물론 식사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