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는 동생과 저녁을 먹기로 해서, 기다리는 시간에 이 책을 읽고 있었다. 동생이 책 제목을 봤는지, 첫말이 언니는 충분히 까칠한데 더하게?’였다. 농담조였기 때문에 같이 웃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분명 그 동생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예전에는 소수의 친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집중했었다. 그래서 나의 심각한 감정의 기복 때문에 가끔 삽질을 할 때를 제외하곤, 인간관계에 대한 아주 큰 고민은 없었던 거 같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심각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 그런 욕망이, 내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와 친해지면, 첫인상과 참 다르다는 소리도 듣게 되는 것일까?

물론 이 책의 제목에서 시사하는 까칠하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런 부분을 의식해서인지, 30만부 기념 개정 증보판에는 건강한 까칠함이라는 표현과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도리어 자존감을 올리고, 자기 자신과 친해지는 법에 집중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존감이라는 말을 조금은 지겨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얼핏 하기도 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왜 나 자신에게 조언을 할 수 없는 걸까에 대한 답이었다. 호르헤 보르헤스의 글을 인용했는데, 사람들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바로 지금 나한테 일어난 일뿐이라는 요지였다.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특수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답게, 다양한 상담사례를 통해 인간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상담사례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꼭 남의 이야기 같지만은 않아서,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상담을 받고 있는 듯 했다. 때로는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것에 사로잡히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 엄청나게 가깝지만 의외로 낯선 가깝지만 낯선 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2
후촨안 지음, 박지민 옮김 / 애플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후촨안은 일본 곳곳을 다니며, 일본의 맛을 통해 일본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리고 < 일본, 엄청나게 가깝지만 의외로 낯선 >을 통해 음식을 통해 일본을 살펴보고, 나아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누군가 덴푸라가 기독교(포르투갈)에서 왔다고 했다. 사순절 기간의 음식이었는데 일본인의 손을 거쳐 빼고 고치고 기교를 더해 정교하게 다듬어 완성한 것으로, 시고을 초월한 음식이다.”

이는 일본 문화에 종계가 깊었다는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한 말이다. 일본의 식문화를 집약적으로 잘 설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1200년동안 가축과 가금류를 거의 먹지 않았던 일본인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고기를 먹게 되면서, 돈가스나 데판야키같은 음식들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이를 서양요리의 범주에 넣지만, 서양에서는 이를 일본 특유의 창작요리로 생각한다. 이처럼 서양의 요리를 일본식 양식으로 만들어낸 것, 이것은 단순한 모방의 범주를 넘어서서, 음식문화의 교류에서 오는 미각의 전환이었다.

물론 이렇게 외국 문화를 일본식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었다.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위스키를 만들고자 했던 도리이 신지로, 그리고 정통 스카치 위스키 맛을 재현하는데 힘썼단 다케쓰루 마사타카가 있다. 이들의 노력은 나름의 방식으로 일본의 스카치 위스키를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데 기여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양의 식습관과 문화를 대대적으로 받아들이며 식문화를 개선했지만, 사람들에게 계절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식재료를 활용한 제철음식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것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졌다.

일본의 식문화를 보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또 손님의 입맛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절대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일본의 식문화를 넘어, 일본 문화 전반에 깔려 있는 흐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醫美, 의학과 미술 사이
전주홍.최병진 지음 / 일파소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미醫美, 의학과 미술사이>, 막연하게 미술에 나타난 의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했다. 예를 들자면 위대한 해부학자라는 찬사 역시 받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가 자신의 해부학적인 지식을 어떻게 미술작품에 녹여냈는지에 대한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 생각과는 달리, 의학사를 다루면서, 이를 반영한 미술작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한 편의 역사책을 읽은 거 같은 즐거움도 있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그에게 그런 칭호가 주어진 것은 질병을 신의 개입이 아닌 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환자의 임상증상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병에 걸린 사람의 몸을 살피는 합리적인 접근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병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라시스트라토스가 있다. 그 역시 관찰과 분석을 중요하게 여겼다. 시리아 왕인 셀레우코스 1세의 아들 안티오코스 1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에라시스트라토스는 환자를 살펴본 결과, 그가 상사병에 걸린 것을 파악하고, 이는 많은 화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유럽에서는 종교의학이라고 하여 정교한 의식으로 의학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이 18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어서,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네 명의 사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도 중세의 연금술은 의화학 발전에 기여를 했고, 장기이식이라는 개념 역시 만들어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최악의 대재앙 페스트는 다양한 미술 작품속에 남아 있다. 이탈리아 작은 소도시 클루소네의 오라토리움 정면부에 배치된 프레스코화 죽음의 춤이 기억에 남는다. 페스트가 만들어낸 두려움을 사회적 계급이나 지위 역시 죽음 앞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이런 것이 시민혁명에도 조금이나마 기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신을 개발한 에드워드 제너,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그의 새로운 시도를 비판하는 그림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풍자삽화가 제임스 길레이의 우두 또는 새로운 예방의 놀라운 효과라는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다. 또한 체액설이 무너지고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현대의학이 어떻게 미술작품속에 드러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림들도 있었다. 미술은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의학사를 통해 미술을 감상하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폴리, 나 좀 도와줘
헤더 히브릴레스키 지음, 김미란 옮김 / 걷는나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폴리, 나 좀 도와줘>의 저자이자 일명 폴리인 헤더 히브릴레스키는 최고의 인기 칼럼니스트라고 한다. 그녀는 뉴욕 매거진New York Magazine’의 고민 상담 칼럼인 ‘폴리에게 물어봐Ask Polly’를 통해 5년 동안 매주 글을 써왔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의 글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거 같다. 사람들의 고민을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솔직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가 정말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삶이 더 풍요로워지길 바라는 사람에게 누군들 안 그러겠냐고반문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냥 인생일 뿐, 황금빛 인생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그녀는 잊지 않는다. 나쁜 감정을 몰아내고 건전한 습관을 만드는 법, 나이가 든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더 노력해야 함을 이야기 해준다. 마흔이라는 나이, 공자는 이 나이를 불혹(不惑)’이라 했지만, 너무나 멀게 느껴지기만 한다. 차라리 인생이 제멋대로 흘러가도록 방치할 수 없는 나이라는 그녀의 말에 더욱 공감이 가는 아직은 부족한 나이다. 하지만 마냥 낙담할 수 만은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 낙담했지만 최선을 다할 거야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 나이가 들수록 좋은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친절한 호구가 되기 싫다는 고민을 갖고 있는 여성의 질문도 기억에 남는다. 여기에서 그녀는 영원히 멈추지 않는 자기 계발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말이다. 친절하게 행동하라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나 자신을 소모시켜버릴 컨베이어 벨트에서 과감히 내려와,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살 수 있는 여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친한 친구들과 멀어지고 외톨이가 된 거 같다며 슬퍼하는 이야기에 대한 그녀의 답은 정말 명쾌했다.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 비슷한 처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외로움에 지쳐 타인의 삶과 우정을 이상화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 역시 정말 공감이 되었다. 외로움뿐 아니라 각종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모습들도 그 것을 가속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처럼 정말 공감이 가는 이야기도 많아서, 내가 간직하고 있는 고민도 털어놓고 싶어질 정도였다. 폴리, 나도 좀 도와줘!!!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재 이상설 평전 - 독립운동의 선구자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재 이상설, 나 역시 이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평전을 읽고 나니, ‘독립운동의 선구자라는 부제가 붙은 것이 너무나 이해가 되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 몰랐다는 것이 조금은 머쓱하게 느껴졌다. 하기야 이런 경험이 낯선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를 읽으면서도 얼마나 낯선 분들이 많던지 말이다. 그래도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들이 좋은 책들을 펴내서, 그 분들이 펼치고자 했던 뜻과 활동을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20세가 넘으면서 이미 학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이상설은 당대의 석학인 이건창에거 율곡 이이를 조술祖述할 학자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조선의 마지막 과거인 갑오문과에 합격했던 그이지만, 그가 살아가던 조선은 이미 국운이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현실에 순응하지 않았다. 독학으로 외국어를 익히고 신학문을 연구하며 시대의 변화에도 민감했던 이상설은 1905년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압으로 체결했던 을사늑약에 부당함을 밝히기 위해 앞장섰다. 고종에게 을사늑약을 막지 못하면 차라리 자결을 하라는 상소와 함께 을사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고, 이 조약이 갖고 있는 의미를 국민들에게 알라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이상설은 사직서를 내고, 민족교육을 위해 앞장선다. 이후 1907년 고종의 뜻을 받아 이준, 이위종과 함께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지만, 일본의 방해로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하지만 각국의 대표들에게 호소문을 나눠주며 조선의 입장을 설명하려 애쓴다. 이를 이유로 궐석재판을 통해 사형이 선고되고, 그는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신학문 민족교육 기관인 서전서숙을 만들고, 독립운동단체와 최초의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우는 등,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활동한다. 독립운동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다 48세의 나이에 순국한 그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은 와중에도, 이렇게 평전이 나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 망해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지만, 불의에 항거했던 조선의 관리로서의 이상설의 책임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육자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이상설을 만날 수 있었던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