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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평점 :
<프랑스 유언>은
상당히 예스러운 제본으로 만든 책이다. 이를 ‘누드제본’이라고 부르는 거 같은데,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생각보다 탄탄했고, 익숙해지니 도리어 읽기 편한 느낌이었다. 원제는 <Le Testament Francais>인데, 작품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묘사와 문체의 서정성과도 잘 어울린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속의 프랑스인으로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속의 러시아인으로살아야 했던 작가, 안드레이 마킨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그는 러시아 시베리아에서1957년 출생하고, 모스크바에서 공부를 마친 후, 노브고로드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1987년 프랑스를 여행하다 정치적인
망명을 한 그는 프랑스에서 작가로 인정받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어에 대해
갖고 있는 자부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러시아 출신 작가인 프랑스 출신인 할머니에게
어린 시절 배운 프랑스어로 직접 작품을 써서 프랑스 최고 문학상은 공쿠르상을 비롯하여 3관왕을 차지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여름이 오면 시베리아의 초원지대에 위치한 초원지대를 찾아가는 소년이 이 책이 주인공이다. 그의 할머니 샤를로트 르모니에는 프랑스인이지만 러시아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어온 인물이기도 했다. 한때는 ‘쁘띠뽐므’하며
화사하고 우아한 미소를 짓던 사진 속의 여인이었지만, 그녀가 거쳐온 시간은 그녀의 입가에서 미소를 지워버리고
말았다. 할머니는 큰 가방 안에 들어있는 신문스크랩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과정을 정말 아름답게 그려내는데, 처음에는 내가 러시아나 프랑스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소년도 마찬가지 아닐까 했다. 나 역시 소년의 마음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나의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이야기를 듣던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며, 그렇게 읽어나가니 조금 더 쉬워졌다. 그렇게 프랑스어까지 배우며 살아온 그의 마음속에는 프랑스인의 사고방식이 깃들게 된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프랑스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었고, 소년은
성장하면서 할머니와 달리 철저하게 러시안인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프랑스
유언이 아닐까 했다.
프랑스인이면서 러시아에 정착한 할머니와 러시아인이면서 프랑스에 정착한 작가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그렇게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소년의 이야기로 조금씩 축이 움직여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과거와는 정 반대로 프랑스에서 러시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어쩌면 러시아에서의 프랑스인으로의 삶에 유언을 고했지만, 영원히
프랑스에서의 러시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