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선배
히라노 타로 지음, 방현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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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선배>는 일본 인기 잡지 ‘POPEYE’ 3년간 연재한 동경하는 선배를 만나러 갑니다의 완결판입니다. 사진가인 히라노 타로는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선배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낡은 필름 카메라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카메라와 함께 36인의 인물을 만나 사진을 찍고 선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글로 옮기지요. 그리 긴 글은 아닙니다. 정말 축약된 수준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아트디렉터 아사바 가쓰미와의 대화에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더군요. 그가 좀더 무게를 둔 것은 그 사람이 쌓아온 세월 즉 시간의 축적이기보다는, 그 사람의 절정기가 아닐까 합니다. 50년간 자전거를 만들어온 자전거빌더 와타나베 쇼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자전거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히라노 타로가 만난 사람들은 앞으로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분들이 쌓아가고 있는 인생의 순간을 포착하는데 최선을 다한 것 같네요.

낡은 카메라를 들고 처음 만나 사람은 테일러 오쓰카의 점주 오쓰카 다다오입니다. 가게 유리창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요즘 유행과는 거리가 멀었죠. 하지만 양복점을 운영하는 선배는 멋있어야 돼!”라고 그에게 말해줍니다. 생각해보면 멋있다라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최신 유행을 열심히 따라가는 것처럼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오쓰카 다다오가 말하는 멋은 다르죠.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일하고 있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멋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림책 작가 가타야마 겐의 아틀리에를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물감상자를 벽에 붙여서 작품을 만들어놓기도 했는데, 수를 놓는 사람들이 실밥을 병에 모아놓는 것이 떠오르더군요. 물론 완성된 작품이 큰 가치를 갖겠지만, 그 과정을 담아놓은 것은 자신만을 위한 선물이 될 테니 말이죠.  

또한 화목난로 장인 이르카 와인과 대화에서 히라노 타로의 마음을 읽으며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갖고 싶어지는 것이 달라지죠. 그리고 히라노 타로는 선배가 만든 화목난로를 갖고 싶은 마음을 단순한 물건이 아닌 그것이 필요한 생활을 꿈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난로가 필요한 곳은 도시가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진 산장일 테니까 말이죠. 산장을 사면 난로를 사야지라던 그는 난로를 먼저 사두면 산장을 갖는 계획이 빨라지지 않을까 하며 마음을 바꿔먹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그렇죠. 내가 꿈꾸는 것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음을 알지만, 아직 큰 조건이 부합하지 않았기에 작은 것들을 실행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하죠. 문득 그 반대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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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는 최강의 실험실 - 학문의 상식을 뒤흔든 사고실험
신바 유타카 지음, 홍주영 옮김 / 끌레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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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사고思考 실험이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정의란 무엇이나를 통해 노면전차의 딜레마를 소개한 마이클 샌델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이야기하는 공리주의적인 사고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그 실험을 따라가면서 내 막연한 생각과 달리 운명론자적인 입장을 갖고 있음을 깨닫기도 했었다. 사실 노면전차 실험은 실제로 시행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머릿속 추론만으로 현실의 실험을 대신하는 사고실험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이런 실험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갈릴레이, 뉴턴, 데카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각 분야에 손꼽히는 최고의 지성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사고실험을 수행해 왔다. 그리고 신바 유타카는 <두뇌는 최강의 실험실>을 통해 이들의 사고실험을 소개하고, 인문학부터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20가지의 실험파일을 소개한다.

내가 재미있게 참여했던 실험파일 중에 하나는 순간이동을 한 당신은 원래의 당신과 동일 인물인가?’라는 주제이다. 여기에서는 인격 동일성 문제를 고찰하는데, 신체설과 기억설로 나눌 수 있다. 나는 기억설 쪽에 가까웠었는데, 결론을 지나 등장한 ‘COLUMN’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바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테세우스가 타던 배가 보존되고 있다는 가설로 시작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은 부품을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하다 보니, 결국 원래의 재료가 완전히 교체된 테세우스의 배와 떼어낸 낡은 부품을 수거하여 또 다른 배를 조립했다면, 과연 어느 것이 테세우스의 배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내가 줄곧 고수하던 입장이 순간 애매해지는 기분이었다.

또한 케인스의 미인 투표 게임과 성선택이라는 실험도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의 생물은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기 때문에, 수컷은 암컷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여기에 사례로 제시된 동물은 엘크이다. 암컷이 매력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뿔의 모양에 호응하기 위해 정말 지나치게 큰 쪽으로 진화하면서, 생존에도 불리하게 느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 역시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크기는 정말 컸다. 엘크를 비롯하여 인간의 비합리적인 선택 역시 다윈의 진화론과 그 역설적인 현상을 인기 있고 유행하는 것이 상호주관적 추론에 의해 선택된다는 피셔의 런어웨이 가설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최고의 재미와 지적 쾌감을 선사한다라는 책소개가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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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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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NCIS, 그리고 크리미널 마인드까지 범죄수사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법의학서 세원집록洗寃集錄 필자 종사가 펼치는 간난신고의 드라마라는 소개에 끌릴 수 밖에 없었다. 중국 최고의 명판관인 송자宋慈가 1274년에 집필한 세원집록에는 검시, 해부, 감별중독 같은 법의학적인 영역과 법률이나 판관의 자세 같은 것들을 총망라했다고 한다. 심지어 CSI 라스베가스에서 곤충학을 정공한 법의학자가 등장한 것과 비슷하게 곤충을 이용하 범죄 수사법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처음에는 궁즉통 수준의 과학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저 시간이나 품이 더 들뿐이지 과학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나가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런 송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체읽는 남자>이 저자가 스페인사람이라는 것이다. 안토니오 가리도는 철저한 고증과 분석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정말 송나라로 타임슬립을 한 듯 했다.

수도인 린안에서도 가장 현명한 판관이라는 펭 밑에서 일하면서 판관을 꿈꿨지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공부는 저 멀리 밀려나고 하루하루 형의 땅에서 힘겨운 육체노동을 하던 자는 논을 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인 샹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형인 루가 살인범으로 지목되고, 끔찍한 고문 끝에 형은 범죄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폭풍우에 부모님까지 돌아가시고 병약한 여동생을 홀로 건사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전재산을 처분하여 항소를 하기 전까지 형의 목숨을 연장시키려 하지만, 도리어 탐관오리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수배범이 된다. 천신만고 끝에 수도로 돌아와,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준 밍교수를 만나게 된다. 판관양성학교에서 재능을 뽐내던 그는 황제의 부름을 받고 연쇄살인사건을 조사하게 되는데, 사건을 파헤칠수록 이 사건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시체판독가라는 별명처럼 재능 있는 검시관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도 정말 독특한경험이었다. ‘간난신고艱難辛苦의 드라마를 써가는 인물답게 정도 조금은 질척될 정도로 많고, 좌충우돌 다혈질인 성품도 재미있었다. 왠지 송자하면 역사속 현인 같은 이미지가 덧입혀져 멀리 느껴지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송자는 글을 읽는 사람을 끌어 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신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갖고 있다 보니 정신적으로 더욱 예민한 사람이 된 것인가라는 근거 없는 추측까지 들 정도로 뛰어난 관찰력과 상황판단력과 임기웅변을 보여주는 것도 흥미로웠다. 세원집록에서 송자가 자신이 해결한 수많은 사건들을 소개했다고 하는데, 그 것을 기반으로 추출해낸 성품인 것일까? ‘압도적인 역사추리 소설이라는 문구를 책띠가 아닌 표지에 넣은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자신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송자와 세원집록을 연구했다는데, 2편도 만들어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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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독한 오후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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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독한 오후, Truly Madly Guilty>, 제목도 표지의 이미지도 참 딱 잘 어울린다. 범죄수사물을 보면, 빗물은 사건의 진실로 다가갈 수 있는 증거를 훼손시킨다. 그리고 정말 지독한 오후에 벌어진 바비큐 파티의 진실 역시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사람들의 기억에 의해 끊임없이 변질되고 있다.

기억이라는 것은 일단 자신의 편집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같은 날에 함께 있던 사람의 기억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거기다 그 날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고,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일정부분의 책임을 나누고 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냥 평범한 하루일 수 있었던 그 날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켜나갔는지를 정말 잘 포착해내고 있다.

리안 모리아티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면서 사람들의 바람에 의해 재단된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도 그 입장에 서게 된다. 과연 무엇이 사건의 진실인지, 아니 그 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작가와 함께 퍼즐을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평이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복잡하기만 한 사연을 간직한 세 쌍의 부부와 아이들 그리고 괴팍한 옆집 노인이 등장하는 바비큐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그리고 문득 이 초대를 거절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한국에 번역이 된 작가의 소설을 다 읽어본 것이 문제인 거 같다. 딱 그녀스러운 소설이라는 느낌지루할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시간을 교차하는 기억의 퍼즐조각을 흩어놓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게 된 거 같다. 물론 그 과정이 몰입감이 뛰어날 것이라는 것을, 정말 섬세한 감정묘사와 사람들간의 관계,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가리워진 진실에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작품의 틀을 짜나가는 과정이 전작과 닮아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자신만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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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선 1 레드 라이징
피어스 브라운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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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정말 몰입감이 좋은 책인가보네요. 3부작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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