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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평점 :
CSI, NCIS, 그리고 크리미널 마인드까지 범죄수사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법의학서 세원집록洗寃集錄 필자 종사가 펼치는
간난신고의 드라마’라는 소개에 끌릴 수 밖에 없었다. 중국
최고의 명판관인 송자宋慈가 1274년에 집필한 세원집록에는 검시, 해부, 감별중독 같은 법의학적인 영역과 법률이나 판관의 자세 같은 것들을 총망라했다고 한다. 심지어 CSI 라스베가스에서 곤충학을 정공한 법의학자가 등장한 것과
비슷하게 곤충을 이용하 범죄 수사법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처음에는 궁즉통 수준의 과학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저 시간이나 품이 더 들뿐이지 과학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나가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런 송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체읽는 남자>이 저자가 스페인사람이라는 것이다. 안토니오 가리도는 철저한
고증과 분석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정말 송나라로 타임슬립을 한 듯 했다.
수도인 린안에서도 가장 현명한 판관이라는 펭 밑에서 일하면서 판관을 꿈꿨지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공부는 저 멀리 밀려나고 하루하루 형의
땅에서 힘겨운 육체노동을 하던 자는 논을 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인 샹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형인
루가 살인범으로 지목되고, 끔찍한 고문 끝에 형은 범죄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폭풍우에 부모님까지 돌아가시고 병약한 여동생을 홀로 건사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전재산을 처분하여 항소를 하기 전까지 형의 목숨을 연장시키려 하지만, 도리어
탐관오리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수배범이 된다. 천신만고 끝에 수도로 돌아와,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준 밍교수를 만나게 된다. 판관양성학교에서 재능을
뽐내던 그는 황제의 부름을 받고 연쇄살인사건을 조사하게 되는데, 사건을 파헤칠수록 이 사건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시체판독가라는 별명처럼 재능 있는 검시관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도 정말 독특한경험이었다. ‘간난신고艱難辛苦의 드라마’를 써가는 인물답게 정도 조금은 질척될
정도로 많고, 좌충우돌 다혈질인 성품도 재미있었다. 왠지
송자하면 역사속 현인 같은 이미지가 덧입혀져 멀리 느껴지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송자는 글을 읽는 사람을
끌어 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신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갖고 있다 보니 정신적으로 더욱 예민한
사람이 된 것인가라는 근거 없는 추측까지 들 정도로 뛰어난 관찰력과 상황판단력과 임기웅변을 보여주는 것도 흥미로웠다. 세원집록에서 송자가 자신이 해결한 수많은 사건들을 소개했다고 하는데, 그
것을 기반으로 추출해낸 성품인 것일까? ‘압도적인 역사추리 소설’이라는
문구를 책띠가 아닌 표지에 넣은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자신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송자와 세원집록을 연구했다는데, 2편도 만들어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