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뒤에 숨겨진 사랑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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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명의 음악가, 화가 그리고 작가의 작품 그리고 그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명작 뒤에 숨겨진 사랑>KBS 2라디오 해피FM '그 곳에 사랑이 있었네'를 통해 100회를 넘게 연재되었던 것을 정리했다고 한다. 책으로 보니 그 상황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명화나 작품에 관련된 자료를 풍부하게 볼 수 있었다.

그 중에 기억남는 것은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남긴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의 이야기에 수록된 그림이다. 브론테 남매의 아버지가 정착한 곳은 요크셔 지방의 황무지였다. 바람이 너무나 강해서 풍력 발전소가 많았다고 하니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 폭풍의 언덕이 절로 떠오른다. 존 컨스터블의 쌍무지개가 있는 풍경이라는 유화를 보면 그 곳에서 황량하게 휘몰아 치는 차가운 바람소리를 벗삼아작품을 완성했던 세 자매의 모습을 상징하는 거 같아서 자꾸 눈길이 갔다. 외아들이었던 브란웰 브론테이 직접 그린 네 자매의 초상화도 기억에 남는다. 영민한 세자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그림으로 남겨놓았을 정도였다. 그 시대의 여성들은 성경대로 인내하고 순종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성의 역할 역시 그 반대의 선에서 고정관념이 있었을 텐데 거기에 부합할 수 없었던 브란웰의 고민이 느껴지는 그림에 그대로 담겨 있었던 느낌이다. 브론테 자매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도리어 그들과 함께 성장했던 브란웰의 이야기에 눈길이 갔다.

차이콥스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앨런 튜링이 떠올랐다. 남과 다른 성적 취향 때문에 처벌받아야 했던 것이 안타까웠다. 자신을 돌봐주던 하녀가 생모였던 것을 알게 된 다빈치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어머니의 고운 모습을 잊지 못하던 다빈치는 라파엘로의 사랑과도 닮아 있었다. 르네상스 3대 작가가 된 라파엘로에게 빵집 아가씨인 마르게리타와의 연애는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라 포르나리나뿐 아니라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영원히 남긴 모습이 이 책 제목 그대로 명작 뒤에 숨겨진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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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 당신에게 반했어요! - 파리를 파리답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승예 지음, 황채영 사진 / 이야기나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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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사랑하기에 만들어진 여행 에세이가 <파리지앵, 당신에게 반했어요>이다. 에어프랑스 통역원으로 일하는 이승예는 파리를 파리답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파리지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 황채영과 함께 도시를 여러가지 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케치해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정말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행복검표원으로 일하는 에마뉘엘 아르노이다. 그는 파리 지하철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파리지앵을 보고 다양한 주제로 작은 연설을 하고 사람들의 미소를 모아서 더 큰 행복을 만들어내는 행복검표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가 장래가 밝은 꼬마 철학가라는 별명을 지어준 10살짜리 꼬마는 아저씨, 행복 검표원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게 슬프지 않아요?’라고 물었었다고 한다. 사실 나는 행복검표원과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내가 있는 곳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했었다. 그래서 꼬마의 질문에 살짝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도 작은 미소와 행복들이 사라져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작가의 모습에 기억이 나는 인터뷰도 있다. 물랑루즈, 나 역시 여성이 가도 되나 망설이기도 했었고, 물랑루즈라는 영화에 매료되어 방문했던 곳이었다. 그 곳에 무용수 소피 에스코피에와의 대화도 좋았고, 물랑루즈에서 그녀가 느꼈던 것이 나의 감상과 닮아 있기도 했다. 파리의 인형의사 앙리 로네, "망가진 인형을 고치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세월에 잊히고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기억을 지키는 일이죠"라던 그의 말에 나 역시 작가처럼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나 역시 정말 변덕스러웠고, 싫증을 낼 인형들은 코를 꽉 깨물어놓곤 했다. 물론 친척들은 그래서 니가 코가 높아졌다며 농담을 하곤 했는데, 문득 어린 나는 왜 그랬던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연말에 파리여행을 가기 때문에 꼭 기억해두고 싶은 곳도 있었다. 바로 파리 지하철 13호선 플레장스 역 부근에 위치한 작은 빵집 오 파라디 뒤 구르망, 미식가의 천국에서이다. 튀니지에서 온 리다 카데는 제빵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24년간 제빵사로 정성을 다한 결과 2013년 파리시가 주관한 바게트 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상금도 있지만, 1년동안 프랑스 대통령 궁인 엘리제 궁에 납품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니 큰 영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가 프랑스 사회에 잘 동화되었다는 걸 느껴요라던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그 환상적인 바게트 맛을 보러 방문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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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Film Poster - 120분 영화를 1장에 담는 영화포스터 아트웍
이관용 지음 / 리더스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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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영화잡지를 사면 주는 영화포스터를 참 열심히 모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영화포스터를 참 좋아했는데, 이제는 너무나 온라인상에서 포스터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도리어 관심이 줄어든 기분이랄까? 그래서 영화 포스터 디자인 스튜디오 스푸트닉의 대표이자 아트디렉터인 이관용의 <THIS IS FILM POSTER>를 읽으면서 오래간만에 영화포스터를 수집하던 시절의 즐거움을 떠올리기도 했다.

명량, 터널, 범죄와의 전쟁, 복수는 나의 것, 화차, 고양이를 부탁해를 비롯하여 19년간 300편의 영화포스터를 만들어온 그는 디자인의 70%는 아이데이션이다라고 말한다. 영화포스터의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인상깊었던 지문과 대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화차의 티저포스터나 화이의 시나리오 표지 디자인 같은 것을 보면서 그가 어떻게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런 포스터들은 다양한 이유로 메인이 되지 못했는데, 그런 B컷을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정말 많았다.

한국영화가 서양에서 개봉되는 경우든, 서양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되는 경우든, 그 두가지 포스터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유난히 인물 중심의 포스터가 많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주연배우에 대한 선호도와 티켓파워에 많이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인물들의 감정상태나 인물관계를 드러내는 포스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에 제시된 다양한 포스터를 통해 다른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타이틀로고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아직까지 대중들은 영문 타이틀과 인포메이션이 들어간 광고물을 더 고급스럽고 멋지다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래서 한글로 타이틀로고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것도 정말 의미 있었다. 그리고 포스터를 볼 때 타이틀로고가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고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영화를 현대 예술의 총체이자 전위라고 한다. 그런 영화를 단 한 장의 포스터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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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을 통해 진짜 중국을 만나다 - 13억의 리더 시진핑이 고전으로 말하는 중국의 현재와 미래
인민일보 평론부 지음, 김락준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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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고전의 유명한 구절과 선현의 명문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시진핑이 고전을 통해 그려내는 중국의 모습을 민생, 정치, , 외교, 관료, 부패 척결, 인재 등용, 교육, 신념, 개혁과 창조라는 키워드로 분석했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이 정말 많았고, 덕분에 수많은 중국의 고전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인시수견형, 시민지치불(人視水見形, 視民知治不)맑은 물에 비추면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고, 백성의 정신을 보면 그 나라의 통치 상황을 알 수 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요즘 시대에 정말 의미있게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거울론은 당태종 이세민이 더욱 발전시켜나갔다. 그는 직언을 아까지 않던 위징의 죽음에, “다른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나 자신의 잃고 얻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나에게 더욱 의미있게 느껴졌다.

복유시서기자화(腹有詩書氣自華), 시진핑은 이 말을 통해 관료들이 중국의 전통 문화 서적을 읽고 자신의 근본을 탄탄히 해야 함을 강조한다. 단절되지 않고 이어온 중화문명의 정수가 담긴 경전을 연구해서 성공과 실패, 옳음과 그림, 흥함과 쇠퇴함을 연구하고,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과 정신 수준을 높일 것을 요구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명나라 사상가이자 철학가인 이지의 말을 통해 옳고 그름의 가치 기준은 시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더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온고지신 (溫故知新)의 정신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관료들은 적극적으로 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다. 청나라 초기 사상가 당견의 <잠서>나 증국번의 <치심경, 성심편>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를 통해 중국이 다른 국가의 정치제도와 발전모델을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예전에 들었던 인문학 수업에서, 시대가 강조했던 가치들은 도리어 그 시대에 가장 부족했던 소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시대의 요구를 제대로 인식하고, 채워나가려는 시진핑의 지도력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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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독 :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자서전
필 나이트 지음, 안세민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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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거다. 그 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24살이던 1962년 새벽 자기 자신과 이런 약속을 한다. 그리고 신발 연구에 미친 사람이라는 뜻의 <슈독 SHOE DOG>은 절대 멈추지 않는 삶의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남편은 여러 가지 운동화를 수집하고 있지만, 그의 소장품 중에 거의 90%는 나이키이다. 왜 그렇게 나이키가 그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항상 운동화를 신는 날이 올 거라고 믿던 오니쓰카의 회장처럼 운동화의 가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것이 바로 나이키였고, 남편 역시 운동을 그리고 운동을 할 때 최적화된 신발을 사랑하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끌림이 아닐까……

세계여행을 떠났던 그는 일본을 찾아 오니쓰카를 방문하여 미국 판매권을 달라고 말한다. 회사도 갖고 있지 않아서, 자신의 방의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육상 선수 시절에 영예의 표시로 받은 블루 리본을 즉석에서 회사명으로 정해 대답할 정도로 무모한 시도였다. 다행히 서부지역 판매권을 갖게 된 그는 아버지에게 오니쓰카로 50달러를 송금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곤, 여전히 누를 수 없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4개월의 여행을 더 하고 나서야 그는 오리건 포틀랜드에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생각했던 그리스에서 그는 아테나의 니케(nike)신전을 마지막으로 보고 오게 되는데, 어쩌면 그가 나중에 여러 가지 이름 중에 나이키(Nike)를 선택하게 된 것도 하나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

그보다 더 늦게 도축한 오니쓰카의 샘플 제품들을 육상 선수로 활동했던 오리건 대학시절의 은사였던 빌 바우어만 코치에게 보냈다. 선수들의 기록 향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던 바우어만은 필 나이트의 사업에 동참하기로 하고 공동창업자가 된다. 오니쓰카의 제품을 판매하는 중에도 신발 개조실험에 열중이었던 바우어만은 결국 미국인의 체형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해낼 정도였다. 문제는 오니쓰카와의 계약 연장과 판매권 독점 그리고 수입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브랜드를 만들어내기로 결심을 하고, 중간에 법적인 문제까지 생겨서 험난했지만, 그 결과 나이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신발을 사랑하는 사라들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인물들이 더해지면서 나이키는 지속적인 발전을 해나갈 수 있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오리건의 아주 오래된 오솔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해왔다. 오리건으로 오려면 사람들은 새로운 길을 열어야 했고, 겁이 많거나 약한 사람들은 올 수 없었던 곳이 오리건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에게도 그런 개척자 정신이 살아 숨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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