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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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고의 현역 단편작가' 그리고 최고의 단편 SF작가라는 찬사를 받는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과학소설 혹은 환상문학 작품에 주어지는 상을 석권했던 그의 작품 8개를 수록하고 있다.

곧 한국에서도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개봉하는 영화의 원작 역시 포함이 되어 있다. 평소 언어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특히나 더욱 환상적으로 느껴졌던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이다. 언어학자인 루이즈에게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오고, 그들은 외계인의 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주며 자문을 요청한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은 소통의 매개체이기에, 일방적인 발화과정으로 무엇인가를 추론한다는 것은 힘들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자인 게리와 팀을 이루어 외계인을 만나게 된 루이즈는 낯선 그들의 모습에 당황하게 된다. 원통형의 몸에 필요에 따라 팔과 다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7개의 가지를 갖고 있어 게리는 그들을 헵터포드(그리스어에서 7을 뜻하는 hepta와 발을 뜻하는 pod를 합친 조어라고 부른다. 그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루이즈의 이야기와 함께 루이즈가 자신의 딸에게 하는 이야기가 오버랩되는데, 책을 읽으며 이 두 가지 일의 시점이 정말 묘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작가의 밑그림이 놀라웠음을 느끼는 지점이기도 했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개체를 닮게 되는 것일까? 7개의 가지뿐 아니라 7개의 눈을 갖고 있는 헵타포드에게는 딱히 정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팔다리를 특정한 용도로 제한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 역시 매우 공감각적이었고, 유연했다. 마치 앞뒤로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어서 과거와 미래를 상징했던 야누스의 확장판이라고 할까? 그녀가 헵터포드의 언어를 익히면서 체험하게 것들이 정말 환상적으로 느껴졌다.

이와 비슷한 순환구조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빌론의 탑, Tower of Babylon’이다. 이는 과거로 돌아가서,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과 오만의 상징인 바빌론의 탑이 그대로 건축되었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허락해준 신에게 감사하며, 그 이상을 보고 싶은 자신들의 욕망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들이며 결국 야훼의 주거지인 하늘에 닿았다. 그리고 그 하늘은 생각하지 못했던 곳과 연결되어 있었다. 끝없이 증폭되기만 하는 욕망의 끝을 확인하며, 소설이 더욱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처음 읽을 때와 두 번째 읽을 때의 느낌이 또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고전문학을 읽을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작가가 그렇게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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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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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래가는 감기에 병원을 찾았던 그는 뇌종양 4기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 남은 생명은 길어야 반년? 얼떨떨한 상태로 집에 돌아간 그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를 만나게 된다. 화려한 알로하 셔츠를 입은 남자는 자신을 악마라고 소개하며,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하나씩 없애면, 그의 생명이 하루 늘어나는 것이다. 악마와 거래를 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막상 악마를 만나는 것은 어렵다더니, 그는 이런 거래를 받은 108번째 남자이다. 무수한 잡동사니를 떠올리며, 자신의 삶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가늠을 하지만, 조금은 귀엽고 많이 들뜬 듯 보이는 알로하(악마)는 그렇게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바로 전화기이다. 사람들이 불편을 겪지 않을까 우려를 했던 것과는 달리 전화기가 사라진 것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래서 그 동안 악마와의 거래들이 가능했던 것이다. 전화기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 통화를 하라는 제안에 그는 자신의 첫사랑과 통화를 하고 만날 약속을 하게 됩니다. 두번째날 사라진 것은 영화, 세번째날은 시계였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세상에서 무엇인가 사라질 때마다, 그 동안 잊고 있던 추억들의 가치를 깨달아 갑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죠.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겠지.”라던 어머니의 말처럼 말이죠. 그리고 네번째날, 알로하가 제안한 것은 가족과의 함께해온 고양이입니다. 그냥 고양이가 아닙니다. 이름에도 많은 사연이 있는 양배추라는 고양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결국 알로하의 제안을 거절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을 그리고 세상을 연결해주던 고양이를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알로하가 제안하는 것들이 사라질수록 결국 그 자신이 사라지고 있음을 그도 깨닫게 된 것이죠. 죽음만이 사람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죠. 자신이 오해하고 있던 아빠,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이 아닌 아들을 위해 편지를 남긴 엄마, 그 편지를 간직해준 첫사랑, 자신이 곧 죽는 다는 소식에 하염없이 울던 친구,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는 계속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요? 지극히 만화적인 설정이었지만, 그 속에서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이야기라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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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든 책방 - 제일 시끄러운 애가 하는 제일 조용한, 만만한 책방
노홍철 지음 / 벤치워머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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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신흥시장에 자리잡은 철든 책방’, 일단은 ‘노홍철이 들어 있는 책방이지만 말 그대로 철든책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일 시끄러운 애가 하는 제일 조용한, 만만한 책방이라는 부제에서 제일 시끄러운 애라고 노홍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 같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갖고 있는 독특함은 여전하지만, 책과 사람과 함께하면서 성장해나가는 모습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사람간의 정이 아직도 따듯한 곳이 바로 해방촌이라고 한다. 그렇게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내는 뚝딱뚝딱 소리가 들려오곤 하는 해방촌의 쇠락한 시장에 철든 책방이 자리잡는 과정이 오롯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오래된 집, 그 시간이 느껴졌던 것은 2층의 천장에서였다. 외갓집에 가면 있었던 무늬가 들어간 목재로 마감한 천장의 모습을 보며, 노홍철은 단독주택에서 보냈던 유년시절의 추억에 젖는다. 나 역시 외갓집에서 만들었던 오래된 추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지하에는 한때는 니트사업의 최전선이었던 해방촌의 역사가 남아 있었다. 그렇게 해방촌이 그리고 집이 갖고 있던 시간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새롭고 재미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불미스러운 일로 자숙중일 때, 우연히 걷게 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노홍철은 책과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그는 공부도 하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조금 더 확장하여 사람들과 함께 책으로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는 철든 책방을 연 것이다. 좋은 책과 다채로운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책이 주는 감동까지 함께 나누는 곳으로 자리잡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그렇게 살아가면 어떨까 하면서 내가 그렸던 그림과도 비슷한 면이 많았다. 왜 나이가 들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았을까? 그래서일까?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리는 그래서 더욱 다채롭고 활기찬 해방촌의 풍경을 닮은 그 곳을 나도 찾아가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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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일간의 엄마
시미즈 켄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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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물끄러미 다시 책 표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을 수 있을까?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부터 든다.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에 입원을 했던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퇴원만 하면 정말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며 살아야지, 그런 결심을 하곤 했지만, 내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표지 속의 나오는, 아니 남편인 시미즈 켄이 찍은 모든 사진 속에 나오의 표정은 늘 그렇게 행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부인의 사진에서 강인함과 상냥함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셋이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12일뿐이었기 때문이다.

시미즈 켄은 일본 요미우리 TV 'ten.'의 매인 캐스터이다. 늘 자신에게 시미즈씨라면 문제 없어요라며 웃어주는 나오와 결혼한 시미즈는 결혼하고 1년만에 들려온 임신 소식에 정말 행복해 한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행복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그 행복한 그림에 아주 작은 멍울이 떨어진다. 가슴에 멍울이 잡혀서 검사를 했던 나오는 유방암 판정을 받게 된다. 유방암 중에서도 치료가 어렵고 재발 가능성도 50%에 달한다는 트리플 네거티브 유방암이었다. 늘 남편의 뜻을 존중하던 나오는 아이를 낳고 싶다라는 의지를 드러내고, 시미즈는 처음으로 그녀의 뜻을 따르게 된다. 가벼운 항암치료를 받으며 출산을 하자마자 간과 뼈 그리고 골수까지 암세포가 전이되었음을 알게 된다. 처음부터 간에 전이가 있었고, 도리어 태중의 아이가 그 시간을 늘려준 것일 수 있다니, 나오의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안타까워서 참 많이 울 수 밖에 없었다. 타인인 나도 그렇게 마음이 아픈데, 그녀는 참 열심히 살아갔고,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가는 신사참배인 오미야마이리를 위해 걷는 연습을 하고, 주변사람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곁을 지켜준 시미즈 켄의 사랑도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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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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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량을 바탕으로 언어실력을 평가해주는 테스트가 있었다. 재미로 해봤다가 외국어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평가를 받았었는데, 한국어는 평범한 수준이라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었다. 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서, 몇 일 후에 찬찬히 다시 해보았더니 외국어와 비슷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모국어니까 당연히 잘 할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첫 번째 테스트를 망친 것이 아닌가 한다. 그 후로 한국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조금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되고,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했었다. 그리고 우리말 어휘를 더 바르고 정확하게 정의한 사전이라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을 만나기에 이르렀다.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영어에 얽힌 흥미진진 인문학>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한국어 단어를 공부하면서 인문학적인 소양을 높일 수 있기도 하다. 집을 가리키는 말이 두 페이지를 꽉 채울 정도로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임시로 머무는 집이라 해도 그 기간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햇수를 가리키는 말, 죽음을 뜻하는 말 역시 다양하지만 그 의미가 명확하여, 내가 그 동안 혼용하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9장에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한자어가 수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를 질곡의 삶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자주 봤다. 여기서 쓰는 질곡桎梏에서 질桎은 죄인의 발에 채우는 차꼬를 의미하고, 곡梏은 죄인의 손에 채우는 수갑을 뜻한다. 이를 풀어서 생각해보니 더욱 그 의미가 잘 와 닿는다.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바로 나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통 한나절, 반나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게 어느 정도의 시간인지 나 역시 잘 몰랐던 것 같다. 전에 친구가 갈비찜을 하려는데, 레시피에 반나절을 담궈두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생각하는 3시간을 이야기 했었는데, 대충만 맞춘 샘이 된다. 뭐 책에서 인용된 글, 심지어 신문기사까지 보면, 이를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거 같기는 해서 위로가 되기는 한다. 사람이 활동하는 시간대인 낮, 하지만 낮은 점심을 기준으로 시간이 나뉘기 때문에 이를 지칭한 것이 바로 나절이라고 한다. 즉 하루의 낮은 두 나절이고, 한나절은 하루 낮의 절반을 말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차茶cha와 다茶tay가 왜 다르게 전파되었는지, 비행기가 동산인지 부동산인지같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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