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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 개국에서 노벨상까지 150년의 발자취
고토 히데키 지음, 허태성 옮김 / 부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일본인으로 노벨 과학상을 최초로 수상한 유카와 히데키를 동경하여 물리학자를 꿈꾸고, 실제로도 의학박사이자 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인 고토 히데키. 그는 ‘개국에서 노벨상까지 150년의 발자취’라는 부제를 가진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라는 책을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유카와의 노벨상 수상까지 40여 년간 일본 과학의 별은 누가 뭐라
해도 노구치 히데요였다. 그러던 것이 1949년부터 유카와
히데키로 교체되었다. 그 후로 다시 60년이 지나 유카와
히데키라는 이름을 모르는 일본인도 늘어났다. 우리의 새로운 별은 대체 어떤 분야에서 출현할까.(353p)
하지만 나는 이 글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유카와 이후 일본의
많은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띠 지에는 ‘21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배출까지’라는 문구가 있지만,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추가하면서, 과학 분야의 수상자는 22명이
되었다. 그래서 일본 과학의 별은 아마도 북극성처럼 빛나는 하나가 아닌 은하수처럼 일본과학계를 수놓는
별들이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솔직히 부러운 일이다. 일본 혹은 작년의 중국까지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으면, 한국은 ‘왜 우리나라는 노벨 과학상을 받지 못하는가’라는 자문을 하고 거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니 “10년내 노벨상급 과학자 1,000 육성’같은 근시안적인 정책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는, 일본사를 배울 때 교수님이 해주었던
농담이 떠올랐었다. 실험실에 박혀서 실험만 하던 어떤 일본 과학자가 오래간만에 학교를 벗어나서, 일본이 패망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런 천재
혹은 괴짜 과학자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보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부록으로 ‘일본 근현대 과학사 연표’를 제공해줄 정도로, 일본의 과학사를 살펴보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제 62회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 수상작’답게 배경지식이 부족해도 충분히 읽을만하게 구성되었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다.
러일전쟁인 영양소 결핍으로 큰 피해를 받았던 ‘비타민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양국의 전쟁보다는 일본은 각기병으로
러시아는 괴혈병으로 수많은 병사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때 연구중심이던 독일의학을 신봉했던 모리 오가이가
‘각기병은 감염병’이라는 신념으로 농민학부 교수였던 스즈키
우메타로의 연구를 무시했다. 세계 최초로 비타민 B1을 추출하면서, 각기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에 성공했던 스즈키는 도쿄대학의 파벌싸움에 희생되어 노벨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니
안타깝다. 노벨상 거부한 ‘최초의 수상자’가 되어 더욱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는 말에 노벨상을 수상한 파인만의 일화가 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책에도 있었다.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평소에도
허약한 편이라, 추운 12월에 스톡홀름에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상자로 결정되고 축하파티를 하다 뼈가 부러져 시상식에 갈 수 없게 되었다니 다행이었다고
할까? ^^
물론 세균학자 이시카와 다치오마루 같은 인물도 등장한다. 731부대에
자원입대했던 그는 일본이 패망하자 반인륜적인 신체실험을 통해 수집했던 슬라이드 표본을 빼내서 자신의 강의에 활용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화학연구소에 설치되어 있던 사이클로트론으로 원폭을 만들 수 있다며 미군이
없애버린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 후 미국에서 고문으로 물리학자를 파견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에 대한 것은 조금 알쏭달쏭했다. 아무래도 731부대에서 가져온 슬라이드 표본을 미국과 거래하여 관계자들이 무죄로 풀려났다는 것에 맞물려서 그런 것 같다.
‘일본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니시나 요시오는 일본인과 서양인의
차이처럼, 혹은 일본인은 과학에 적합하지 않아서, 일본의
과학이 서양의 수준에 이를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곤 했다. 거기에 그의 학문의 아버지였던 보어는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다. "학문은 인종의 차이라든가 유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전통뿐이다." 그리고 작가는 150년간의 일본 과학사를 살펴보며, 이제 일본이 배워야 할 서양의
지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이미 일본은 자신의 과학사를 통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과학이라는 학문에서 평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물리학보다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사회의 민주제도, 개인의 독립, 자존’ 같은
것에도 같은 고민을 하며 진지하게 접근하자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