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포토스의 배 - 제14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쓰무라 기쿠코 지음, 김선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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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돈에 파는 듯한 기분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몸이 굳었다. 일하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계약직으로 고용한 회사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시간을 팔아 번 돈으로 음식물과 전기, 가스와 같은 에너지를 고만고만하게 사들여 겨우겨우 살아가는 자신의 불안한 삶이.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이. (14,15p)

 

소풍보다 설레는 시간이 소풍 가기 전날이라고 하지 않는가? 화장품 공장에서 단조롭기 그지없는 라인 작업을 하며 어느 순간 그냥 자신이 라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나가세 유키코는 공장에서 보내는 1년의 시간을 그렇게 변화시키려 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쉬는 시간 우연히 보게 된 광고전단지에서 그녀는 자신의 1년치 연봉과 세계일주 크루즈 여행 비용이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시간을 돈에 파는 듯한 기분이 아니라, ‘크루즈 여행을 위한 1을 만들기로 결심을 한다. 공장에서 주는 돈은 오롯이 저축을 하고, 알바로 버는 돈으로 생활하기로 결심하고, 어느새 수첩을 꺼내 그날의 지출을 하나하나 기록해나가는 나가세에게는 세명의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친구가 있다. 잠시지만 자신의 딸과 함께 나가세와 살아가게 되는 리쓰코도 있고, 나가세가 알바로 일하는 가게의 주인인 요시카도 있는데, 이상하게 내 눈길을 끈 것은 소요노이다. 큰 이유는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선택했던, 그리고 어느새 함께 어울리던 무리와 멀어졌던 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꼈던 불만은 나가세나 요시카의 감정과 닮아 있었지만, 그 친구의 마음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결국 크게 보자면 다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소요노는 자기가 먼저 집이나 이웃 이야기를 한다.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나가세나 요시카에게 그때그때 어떻게 지냈는지 묻지만, 결국 시어머니를 따라 연극을 보러 갔지만 눈치를 보느라 피곤했다느니 인테리어를 바꾸었는데 커튼 색을 잘못 골라 우울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로 빠진다. (36p)

 

소요노에게 라임포토스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잎을 보며 즐기는 관엽식물인데, 물만 있으면 잘 자라나서 그녀가 즐기는 몇 안 되는 오락거리나 마찬가지다. 생활비를 아껴야 해서인지 혹시 먹을 수 없을까 고심했지만, 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여 잠시 멀리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키워나가기 위해 빗물을 모을 수 있는 물탱크를 구입하는 것을 보면 참 담백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런 그녀였기에, 전에 다니는 회사에서 상사의 괴롭힘을 받고 퇴직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녀가 그때 사귀었던, 도움은 안되었던 남자친구의 말처럼 넘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라임포토스의 배뿐 아니라 ‘12월의 창가라는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둘 다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을 소재로 쓰여지는 사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녀가 목표한 돈을 다 모았다고 해서 마치 드라마처럼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부쩍 마음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페달에 발을 얹고 내리막길을 달리면서 목표 금액을 모은 기념으로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비에 발이 묶이기 전에 역 앞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 했다. 몸이 이 정도로 움직이는 감각은 몇 년 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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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와 나무 -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와 나무 인문학자의 아주 특별한 나무 체험
고규홍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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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각 수용기 중 70퍼센트가 모여 있는 것이 시각이지만, 또 그래서 사람들은 시각에 너무 많이 의존하다가 다른 것들을 놓치기도 하나보다. 그래서 나무 인문학자인 고규홍이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인 김예지와 함께 흥미로우면서도 감동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로 잘 잘라진 나무를 매일 만지고 두드리는 사람이지만, 안내견에 도움으로 세상을 걸을 때는 나무가 그저 하릴없는 장애물로 느껴지는 김예지와 함께 나무를 더욱 깊이 만나는 여정이다. 그녀의 집에서 가까운 숙명여대 캠퍼스에서 능소화 꽃 무리를 만나며 시작하여, 포도의 풍성함과 밤송이의 강렬함이 함께했던 그녀의 여주 시골집, 그리고 직접 분갈이를 하며 나무의 뿌리를 만져볼 수도 있었던 아름다운 풍경의 수목원과 높이 25미터 규모의 오가리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는 괴산까지…… 그리고 1년여에 걸친 나무여행을 그녀의 음악 속으로 녹여내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은 푸르른 숲을 걷는 것처럼 청명하게 느껴졌다.

"한 생애를 마친 열매는 아주 단단해요. 그리고 새로 다음 생애를 시작하려는 꽃봉오리는 말랑말랑하네요. 꽃봉오리 안쪽에는 틈이 많은가 봐요. 새 생명을 탄생시키려면 그런 틈,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년 봄에 피울 꽃을 준비하고 있는 목련을 만져보던 그녀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냥 눈으로 코로 즐기기 쉽지, 손으로 직접 만져볼 생각은 많이 못해서인지, 더욱 그런 느낌이 궁금했다. 나 역시 너무나 좋게 읽었던 책이고, 김예지를 더욱 잘 이해하게 해주고 또한 만지는 것으로 그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 오가리 느티나무를 김예지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고규홍에게 영감을 주었던 책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가 있다. 그 책에서 무언가를 만진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록 시각은 사라졌지만, 청각으로 후각으로 또 촉각으로 더욱 풍부하고 섬세하게 세상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김예지가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었기 때문이고, 자신이 연주를 함으로써 삶의 다양성까지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처음에는 나무 인문학자의 가이드가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금새 두 사람이 서로의 감각을 나누며 함께하는 대화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자연과 깊이 소통하는 김예지와 그녀에게 더욱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함께 걸어나간 고규홍의 이야기가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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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평전 -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
최광진 지음 / 미술문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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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라는 작품의 위작논란으로 절필까지 선언했던 천경자 화백이 작년에 별세를 하면서, 다시 한번 천경자 화백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었다. 거의 일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출판된, 천경자 평전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은 도리어 위작논란은 부록으로 다루면서, 천경자라는 여성화가의 삶에 집중을 하고자 해서 읽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호암미술관(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할 당시 그녀와 인연을 맺고, 천경자 전문가가 되어 강의도 진행했던 미술평론가 최광진이 엮어낸 천경자의 삶과 작품은 나에게 슬프도록 아름다운이라는 표현을 절로 떠올리게 했다.

천경자가 어린시절을 보낸 옥하리는 그녀에게 참 많은 영감을 주었던 곳 같다. 꽃상여가 주는 이질감, 그리고 그녀에게 강렬한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뱀 그리고 꽃을 사랑했던 외조부덕에 풍부한 색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화가가 되길 바라며 일본 유학을 가고자 했던 그녀의 의지도 놀라웠고, 한국으로 돌아와서의 삶 역시 참 만만치 않았다. 일본에서 성행했다는 이유로 채색화가 일본화로 매도되는 상황에서도 여러 겹의 색으로 층을 쌓아 자신을 표현할 정도로 심지가 굳었던 그녀지만, 그림 외의 세상은 그녀에게 가혹하기만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결혼식과 신혼에 대한 꿈을 담아낸  ()’을 그리게 만든 평탄하지 않은 두 번의 결혼생활과, 뱀을 두려워하던 그녀에게 뱀을 그리게 할 정도로 한계까지 밀어붙이게 만들었던 여동생의 죽음까지세계를 여행하면서, 20년 넘게 이어왔지만 그녀를 좀먹기만 했던 관계를 결국 끊어내고, 교수자리까지 내려놓고 그림에 집중했던 그녀의 행보에 도리어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였다고 할까? 어쩌면 그 모든 상황을 온몸으로 부딪쳐내며, 작품을 그려냈기에, 더욱 그녀의 그림들이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천경자는 아름다움의 원류로서 한을 사랑하고, 슬픔 뒤에 오는 정화로 생의 의지를 복원하고자 했다. 이처럼 한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렇게 그녀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보고 위작논란을 살펴보니, 그림 그리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는 천경자가 절필을 선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심지어 이게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러한 논란이 지속된다는 것이 속상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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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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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지만, 한때 위스키를 즐겨 마셨던 적이 있다. 아무래도 그때는 위스키의 맛을 제대로 알기 쉽지 않은 나이여서 그런가? 나에게 위스키는 수많은 향을 간직한 건조함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은희경의 여섯가지 단편을 담아낸 <중국식 룰렛> 역시 그런 느낌을 전해준다. 작가의 말처럼 , , 신발, 가방, 책과 사진, 음악, 늘 가까이하는 사물들에 관한 여섯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단편집인데, 책의 제목이자 처음으로 등장한 단편이 특히 씽글몰트 위스키에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독일 영화 중국식 룰렛에서 이루어진 거짓된 진실게임이 독특한 바텐더 K의 가게에서 펼쳐진다. 그들은 진실게임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그저 자신이 갖고 있는 진실, 하지만 그저 착각일 수도 있는 진실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그런데 문득 그들의 이야기가 현대인의 삶과도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어떤 것이 진정한 나인지부터 가늠하기 힘든 세상이랄까? 자신의 정직성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냐는 질문에 5을 선택하면서도 그 진실게임을 이어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소설에서는 다른 맥락으로 풀어갔지만, 위스키에는 천사의 몫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숙성시키는 동안 매년 2퍼센트에서 3퍼센트 정도가 증발하는 것을 그렇게 부른다는데, 우리 삶에 있어 천사의 몫은 행운이 아니라, 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신발에 대한 그리고 말 그대로 대용품으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와, 음악에 대한 정화된 밤속의 가면을 수없이 바꿔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아무래도 첫번째 이야기를 조금 더 길게 끌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편집을 읽을 때면,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데,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기도 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짧게 끝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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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선물한 자연치유 80
장석종 지음 / 지식공방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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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문제로 약을 많이 먹는 편이라, 약의 개수를 줄이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약과 수술은 건강을 돌보는 일시적인 수단일 수 있다며, 스스로 알아서 치유하는 우리 몸의 힘을 키우는 자연치유법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에 관심이 많았다. 바로 서울 장신대학교 자연치유선교대학원장이자 한국푸드테라피연구소 대표인 장석종의 <신이 선물한 자연치유 80>이다. 사실 원래 책을 읽고 싶어했던 의도대로라면 자기 몸을 다스릴 수 있는 기본 이론인 오감테라피, 푸드테라피, 형상체질학, 장상학을 담아낸 2부에 관심을 두어야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갖고 있는 병이 많아서인지, 80개의 질병과 원인과 증상에 따른 치유법을 소개한 1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요즘 나를 괴롭히는 문제 중에 하나가 손 관절과 견관절에 생기는 염증이다. 이는 이 관절에 지나친 정신 에너지를 사용하거나, 천기 불순응 (밤낮이 바뀐 생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는데, 내가 여기에 다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생활을 해왔기에 회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다는데, 생활습관은 그대로 둔 채로, 약물 뿐 아니라 잠시의 고통을 지울 수 있게 주사요법에 의지해 왔으니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 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회복을 돕는 영양법 역시, 내가 즐겨먹지 않는 식품이라, 계속 자충수를 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거 같기도 하다. 사실 질병이라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결과라고 한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행동했는지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을 회복하는 것 역시 하루하루 내가 만들어나가는 방법이 가장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천식 같은 경우도 그러하다. 찬 공기가 체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폐가 수축하게 되는 것이 문제인데, 나는 찬 공기를 정말 좋아한다. 한 여름에도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가동하고, 양모이불을 덥고 자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지 않는 한은 내 폐는 계속 찬 공기와 만날 수 밖에 없다. 치료를 위해 열심히 약을 먹었지만, 그 근원을 차단하지 못했던 것이다. 폐를 따듯하게 하는 방법 역시 생각보다 어렵기는 했다. 대추와 생강, 그리고 꿀을 넣어 아주 맵게 달인 음료가 필요한데, 일단 실내 온도를 높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이 뿐만 아니라 탈모나 다이어트, 당뇨나 고혈압, 고지혈 같은 병에도 필요한 다양한 음식과 차, 그리고 경락마사지 같은 것도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으니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또한 형상을 통해 체질을 분류하는 형상체질학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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