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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 - 시로 추억하는 젊은 날
현새로 지음 / 길나섬 / 2016년 3월
평점 :
시와 산문 그리고 사진이 어우러진 <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 예전에도 자신이 즐겨 읽는 시와 자신의 시간을 담아낸 책을 몇 권 읽으며, 시가 낯선 사람들에게는 참 좋은 구성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 역시 학창시절 예반이라는 시인의 시집을 즐겨 읽은 것 말고는 딱히 시와 가깝지 않게 지내왔는데, 덕분에 감정을 정제하여 담아낸 시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은 사진작가인 현새로의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지는 사진이 더해져서 아련한 추억여행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김현승의 ‘플러터너스’를 읽으면, 마치 영상처럼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 역시 그러하다. 학창시절 멋쟁이 신사로 유명했던 문학선생님께서 이 시를 읊어주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연세가 높으셔서 차분하게 수업을 진행하시곤 했는데, 그날의 목소리는 참 달랐다. 그래서일까 창문으로 쏟아지던 햇빛이 더 밝게, 그리고 교정의 나무가 더 싱그럽게 느껴졌었다. 글을 읽으면서도 내내 선생님이 떠올랐고, 그 시에 함께한 베르사유 정원 구석에 있는 나무를 담은 흑백 사진이 푸르게 느껴졌던 것은 내가 잠시 잊고 있던 추억의 힘일 것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한 구절만 알고 있던 오규원의 ‘순례의 서’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별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자주 올리던 이형기의 ‘낙화’, 아무래도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만나보니 첫 구절만큼이나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이 책과도 참 잘 어울리는 느낌이랄까? 기형도, 곽재구, 신동엽, 김현승, 이형기, 정호승, 조병화, 김승희, 장석주, 황동규, 정현종, 오규원, 이들 시인의 아름다운 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은 ‘꽃답게’ 끝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