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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가든 (리커버) - 개정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10여년 전쯤에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홀리 가든>에서 저는 도대체 어느 쪽에 서야 할지 알 길이
없었어요. 도리어 가호에게 충실한 나카노에게 ‘도망쳐’를 외쳤던 거 같기도 하고요. 10년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난 홀리
가든, 사실 표지를 보자마자,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느낌이 신기했어요. 그렇게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이 아닌 거 같은데, 왜 그 들이 기억나는 것이었을까요? 그렇게
다시 읽게 된 홀리 가든의 두 주인공 가호와 시즈에는 저에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줄줄이 끌어 들여서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자는 거, 이제 그만 해.”
(중략)
“하지만 정신적인 친구들이 그렇게 많다는 거, 좀 음란하지 않니, 나는 이해가 안 된다. 그거에 비하면 자는 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지.”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시간을 겹치며 우정을 쌓아왔던 가호와 시즈에, 두
사람의 시간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열병 같았던 가호의 사랑이었습니다. 과거의 상처에 매몰되어 여러
남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가호를 보며 변해가는 시즈에의 감정은 지극히 보통의 친구답다고 할까요? 하지만
시즈에 역시 몇 시간을 달려 가서 만나는 유부남과의 관계를 놓지 못하고 있어서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뿐이죠. 생각해보면
다 그런 거 같아요. 오죽하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겠어요. 자신에게 지극히 관대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는 지극히 도덕군자인양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예전에 이
책을 읽을 때 그렇게 어려워했던 거 같습니다. 저 역시 소설 속의 인물들을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번에 읽을 때는 두 사람의 마음이 조금은 더 잘 보이는 거 같아요. 특히
사랑 앞에서 무너졌던, 그래서 허상처럼 느껴지는 사랑의 맹세에 집착하지 않는 가호가 그러하죠. 그리고 두 사람의 우정도 그러합니다. 저 역시 학창시절 정말 단짝처럼
지내다 서로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멀어진 친구가 있거든요. 그 때는 잘 몰랐던 거 같아요. 한 친구의 결혼과 출산이 친구들끼리의 생활에서는 나름대로는 낯선 것이었고, 그
친구 역시 새로운 삶과 이전의 삶이 많이 달랐겠지요. 시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자연스럽게 흩어버리기도 하고, 그럴 때는 서로에게 어느 정도 여유를 줘야 하는데 그때의 우리는 그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사랑과 우정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문득 예전에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을 다시 꺼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흘러간 시간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