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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평점 :
가끔씩 일본 단편 소설을 원문으로 필사를 하고, 직접 번역을 해보곤
하는데, 자주 만나게 되는 작가가 바로 에쿠니 가오리입니다. 덤덤하면서도
씁쓸한 느낌, 마치 커피 향을 머금고 있는 듯한 이야기와 문체가 제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된다고 할까요? 나만 이렇게 찰나의 행복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번에 만난 <개와 하모니카>는
제38회 가와바타 야스나리 수상작인 ‘개와 하모니카’를 비롯하여 총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어요. 그 중에 ‘알렌테주’는
제가 필사와 번역을 해봤던 작품이라, 더욱 재미있게 읽었던 거 같습니다. 그 때 느꼈던 건조함과 대비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끝없이 어긋나는 수많은 감정들이 다시 기억나더군요. 물론 제가 했던 번역과는 다른 전문번역가의 매끄러운 글도 인상적이었고, 아주
가끔은 번역을 하는 사람 사이에 관점 차이라는 것도 있구나, 라는 생각도 하고요.
“저기 저 섬의 늘 푸른 상록수는 변치 않지만 물 위의 조각배는 어디로
흘러갈까?”, “세월의 흐름도 잊은 사이에 한 해도 내 인생도 오늘로 끝나는가”와 같은 구절로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겐지 이야기’를 에쿠니 가오리의 시선으로 다시 그려낸 ‘유가오’도 기억에 남네요. 상록수와 같은 사랑을 맹세하는 자신도, 그리고 그 고백을 받는 사람도 과연 한 치의 의심도 없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찰나의 감정이라고 애써 자신을 설득하려 해도, 사랑이라는 말에 자꾸만 ‘영원’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그 끝은 때로는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침실’이라는 소설도
참 좋았습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그래도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리는 ‘미지의’ 여자 그리고 남자일 수
밖에 없는 서로이니까요. 때로는 그러한 이질감을 나만 느낀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갖기도 했었기에 더욱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아닐까요. 소설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 형태의 사랑들도 존재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고, 비슷한 딜레마에 빠지곤
하죠.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장 설레는 사람들처럼, 사랑
역시 그러하니까요. 참 이상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게 되는 거 같지만 말입니다. 사실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그런 생각을 했고, 소설을 읽는 내내 더욱 깊어졌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