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버지와 아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5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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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 3대 문호라 하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를 꼽을 수 있다. 본의 아니게 수다쟁이 도스토예프스키 - 아직도 타자 치기가 어려운 이름 - 를 많이 읽었고,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와 단편 몇 점을 절절하게 읽었다. 둘의 연보를 보면 항상 투르게네프가 있었다. 특히나 어지러워 보이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투르게네프가 있었다. 투르게네프는 보이지 않게 중심을 잡으며 항상 곧은 길을 가는 것 같았다. 물론, 톨스토이와 심한 말다툼으로 결투까지 할 뻔했다고 하지만. 아무튼 그래서 투르게네프를 너무너무 읽고 싶었다. 하지만 인연이 참 닿지 않았다. 체호프도 읽었건만 왜 그를 읽지 못했을까. 그래서 눈 딱 감고 그의 책을 구매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표작이라고 해서 골랐다.

'아버지와 아들' 은 원제가 아버지들과 아들들이라고 한다. 두 아들들과 그들의 아버지들과의 갈등과 마찰을 이야기한다. 물론 한 아들 아르카디의 큰아버지 파벨의 비중은 굉장하다. 책에서는 방랑의 우여곡절 속에 자의 반 타의 반 독신인 자들의 말로가 좋지 않고, 그 중 최고봉은 큰아버지 파벨이다. 문체는 아주 단정하고 전개는 꼭꼭 다지며 물 흐르듯 나아간다. 시간의 간격도 잘 조절해서 지루하지도 내용을 놓치지도 않게 해준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와의 관계에서 투르게네프처럼. 솔직히 셋이 어떤 삼각관계인지는 모르지만, 몇 개의 사건들로 상상하게 된 이미지가 크다.

그리고, 그는 안나 카레니나의 톨스토이만큼 아니면 더 '사랑꾼'이다.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무정부주의자에서 냉철한 비평가로 뜻이 바뀐 니힐리즘과 니힐리스트를 다루지만, 그는 굉장한 사랑꾼이고 그 경지에 이른 사랑꾼으로서 각 인물의 -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 감정의 무의식의 내면을 그려낸다. 평성을 사랑하며 절절하게 맴돌았던 하지만 이룰 수 없는 '비아르도'를 통해서 그는 '사랑꾼'이 된 것 같다. 하지만 그답게 그 사랑꾼도 담백해 보인다.

3대 문호들은 죽음을 '화해'로 생각하는 것 같다. 투르게네프의 '루진'을 또 구매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마지막, 니힐리스트 바자로프의 무덤에서의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오, 아니다! 아무리 정열적이고 죄 많은 반역의 심장이 그 무덤 속에 숨어 있을지라도 무덤 위에 자란 꽃들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평온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꽃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이나 ‘무심한’ 자연의 위대한 평온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p 284

오, 아니다! 아무리 정열적이고 죄 많은 반역의 심장이 그 무덤 속에 숨어 있을지라도 무덤 위에 자란 꽃들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평온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꽃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이나 ‘무심한’ 자연의 위대한 평온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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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9-09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말하는 영원한 화해와 생명에 대해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ㅎ

초딩 2020-09-10 00:43   좋아요 0 | URL
ㅎㅎ 넵 :-)
아 전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
좋은 밤 깊은 밤 되세요~

희선 2020-09-12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투르게네프 잘 모르지만, 투르게네프 하면 《첫사랑》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걸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그것도 생각나지 않지만, 제목만 기억하는 것일지... 아니 조금 본 것 같기도 해요 어딘가에 나온 거


희선

초딩 2020-09-12 14:45   좋아요 1 | URL
^^ 첫 사랑도 많이 거론되는 것 같아요 ^^ ㅎㅎㅎ
즐거운 주말 되세요 희선님~
 

영등포 교보문고에서 5년 정도 전에 산 것 같다.

사진 섹션에 있는 책을 모조리 뒤져 여러 권 샀을 때 구매한 것 같다.


미국 아이들은 새로운 개념을 적용하면서도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사진 앱들을 어떻게 그렇게 기가 막히게 만드는지에 대한 답을 준 책이 '사진 그 후'이다. 사진의 미래에 대해 쓰여있었고, 한참 애플 스토어에서 주목받던 앱들의 거푸집이 거기에 있었다.


그날들은 제목처럼 표지처럼 참 '그날들'스러운 사진과 그 사진에 대한 글의 책이다.

책의 표지를 제하고, 펼쳐진 책은 대부분 여백과 글뿐이어서 글을 읽어 들이지 않으면 감상을 느낄 수 없지만, 사진이 가득한 책은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사진 감상과 간접 독서를 할 수 있다. 글은 머리에 안 들어오는데, 책은 느끼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지친 몸이 책에 기대고 싶은 날 말이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살 때부터 헌책 느낌이 나서 그런지, 그때 모습 그대로이다. 깨알 같이 써놓은 포스트잇도 그대로이고, 정신없이 그은 줄들도 그대로이다. 내 차도 그대로인데, 그 그대로에 저렇게 털썩 동승한다.


그 해 남이섬에서 찍은 사진을 추억한다.


하늘은 숨 막힐듯한 노란색이 자욱했고, 땅에는 질식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일으킨 먼지가 가득했다.

책도 사진도 이미 출발점을 상실한 지 오래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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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9-05 0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마지막 문장은 마치 사진첩에 들어 있는 시 같네요!ㅎ 즐건 주말되세요!

초딩 2020-09-05 00:38   좋아요 0 | URL
우앗 언제나 최고의 찬사 감사합니다~
일잔 하고 자야겠습니다 ㅎㅎㅎ 굿밤 되세요~

하나 2020-09-05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의 남이섬 참 좋지요. 사진을 보다보니 저도 언젠가의 그날들이 기억나네요. 좋은 밤 되세요 ^^

초딩 2020-09-05 01:06   좋아요 1 | URL
아 하나님~~ :-) 또 태풍이 온다고하는데
평온한 하지만 즐거운 주말 되세요~

coolcat329 2020-09-05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뮈가 가을은 두번째 봄이라 했는데, 저 ‘숨 막힐듯한 노란‘빛이 딱 봄 같습니다. 아 먼지마셔도 좋으니 저렇게 봄같은 가을 구경 가고 싶네요.

초딩 2020-09-05 19:48   좋아요 0 | URL
:-) 사진 칭찬 해주셔서 넘넘 감사합키다~ 겨울이 지난 봄 넘넘 좋은 거 같아요.
좋은 시간 되세요~

페크pek0501 2020-09-06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슨 가을 풍경이 이렇게 아름답습니까. 한참 보고 갑니다.

초딩 2020-09-06 19:03   좋아요 1 | URL
우앙 페크님이 이렇게 좋아하시니 제가 기쁩니다 ~ 좋은 저녁 되세요
 
[eBook] 나무의 시간 - 내촌목공소 김민식의 나무 인문학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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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충격이었다. 저자는 1970-80년대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목재 딜러, 컨설턴트로 일한 장인에 가까운 아니 장인이다. 그 시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달러에서 1,000달러로 급성장할 때였고, 세계 최대 합판 수출국이었단다. 그 한국의 합판을 팔기 위해 휴스턴에서 만난 상황이 한국 합판 10장에 50달러인데, 같은 면적의 영국 바닥은 5만 달러였다. 이 하나의 사건으로 저자는 나무 제조사 원산지를 미친 듯이 조사하며 나무에 빠졌고, 그의 그런 세월이 이 책을 출간하게 만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 책에 그토록 몰입하게도 만들었다.

왜 같은 면적의 '나무'라는 재료로 만든 물건이 1,000배의 차이가 날까? 그것은 나무의 문제에서 확장해서 한국산과 영국산, 한국과 영국의 모든 차이로 뻗쳐 나갔다. 익숙한 공산품 또는 백화점에 즐비한 명품의 이야기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나무로 만든 고급 가구였다면 끄덕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무 바닥이 1,000배의 가격 차이라니.이건 억울한 상황이었다. 획일화된 교육의 폐해로, 2차 3차 산업만이 부국을 만든다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나는 이런 나무를 아예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반까지 점입가경이다. 고대문명부터 열강의 시대 유럽, 현대의 미국까지 모두 나무로 흥하고, 나무로 망하고, 나무를 약탈하고, 나무로 지배한다.

레바논의 국기에 있는 나무가 삼나무이고, 그것은 그들의 조상이 카르타고와 한니발의 알파벳을 최초로 사용한 페니키아인이었고, 그들 조상은 모두 삼나무로 갤리선을 만들어 로마를 공포에 빠뜨렸지만, 나무가 고갈되어 쇠락해버렸다.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까지 지속적인 남벌이 붕괴의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18~19세기 유럽의 교회, 공공건물, 배의 내부는 모두 인도차이나,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진귀한 티크, 마호가니, 로즈우드, 흑단으로 도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나무들은 모두 원산지에서 멸종되었다. 유럽 열강이 대항해 시대 이후 수백 년간 수탈해서 밀림이 슬픈 열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나무가 사라진 곳에서 문명은 황폐해 갔다." p31

"문명 앞에는 숲이 있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따른다." p32


이 책과 저자가 이 문장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의 역사, 미술, 문학, 건축, 음악, 경제, 문화의 아주 넓고 깊은 그리고 구석진 곳의 지식은 굉장한 설득력을 더해준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저자는 잡식성이긴 한데, '나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즉, '나무'가 들어간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삼켜서 본연의 큰 나무라는 도메인 용광로에 녹인다.

시와 소설에 등장한 나무와 그 나무의 스토리를 재미있게 들려주며, 나무의 경제성에 대해서도 경제학자처럼 깊은 지식으로 호소력 있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세계 목재 산업의 중심인 미국을 한참 이야기하다, 일본의 나무에 대한 자부심과 장인 정신, 장기적인 조림의 결과로 이룩한 숲을 부럽게 보여준다.
그의 목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 번쯤 배워보고 싶다. 특히,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는 숨이 막혔다.

( Tadao Ando, https://en.wikipedia.org/wiki/Tadao_Ando)

<이미지 출처: https://gokodama.com/visiting-tadao-andos-church-of-the-light/>


그의 활자로 쏟아지는 나무 이야기는 주제나 목적 없는 그저 넓은 지식이 아닌 강렬한 하나의 주제인 나무로부터 그 뿌리처럼 온 세상으로 뻗어 나가 다시 나무로 귀결해서 푸르르고 풍성해진다. 억울함 마저 든다. 이 장대한 나무의 이야기를 나는 왜 하나도 모르고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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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9-04 05: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서도 이스터섬의 붕괴 원인을 자원의 남획에서 찾았던 기억이 나네요.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파멸에 이르지 않도록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겠습니다...

초딩 2020-09-04 13:21   좋아요 1 | URL
^^ 네 유현준교수님의 ‘어디서 살 것인가‘에 이스트섬 및 지나치게 거대한 건축물로 붕괴한 문명의 사례가 나옵니다.
어떻게 읽다 보니, 유현준 교수님의 책과 이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어는데, 두 분이 마치 한 저자 같았습니다. ㅎㅎㅎ
^^ 좋은 하루 되세요~

하나 2020-09-04 0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빛의 교회 참 좋아요. ^^ 초딩님은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는 책을 잘 발견하시는 거 같아요. 덕분에 저도 두 권 따라사서 요즘 틈틈이 읽고 있는데 곧 리뷰 남길게요~ 좋은 하루 되시길!

초딩 2020-09-04 13:23   좋아요 1 | URL
^^ 어떻게 읽다 보니, 요즘 도시, 건축에 관한 책과 물리, 양자역학에대한 좋은 책들을 만나게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을 비록한 북풀의 책을 사랑하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Book] 좀머 씨 이야기(리뉴얼)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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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장자크 상페 그림


오디오북에 좀머씨 이야기가 올라왔다. 열린책들에서 2020년 4월 20일에 신판 1쇄를 낸 것이다. 아주 예전에 읽었는 것 같지만, '좀머'라는 특이한 이름만 겨우 남아있어 오디오북을 대견하게 여기며 들었다. 요즘은 오디오북을 들으면, 활자를 보며 줄을 그어야 해서 전자책을 산다. 그러다 또 그중 제대로 된 책을 보고 싶으면 종이책을 산다. 그 절차에 따라 알라딘 전자책을 샀는데,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장자크 상페의 그림이 있다. 따뜻하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상페의 책을 몇 권 보았기에 친근하고, 그것이 글에 그림을 덧붙인 것인지 그림에 글을 삽입한 것이 모를 만큼 잘 어우러져 있었다.

좀머씨를 서술하는 화자의 말마따나, 그처럼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어린 시절의 것들을 모조리 까먹고 있었다. 냠냠.

좀머 (Sommer)는 여름이라는 뜻이란다. 'o'만 바꾸면 영어의 여름이고, 독일어 같으니 좀머라고 읽는가 보다. 외워야 할 것도 없고, 이해할 것도 없고, 메모할 것도 없이 동화처럼 좀머씨의 이야기는 읽힌다.

갈릴레오의 낙하 제2 법칙으로 전나무에서 떨어진 찰나의 시간을 표현한 것과 풍켈 선생에게 호되게 야단맞고 자살하고 싶은 충동에 떨어지는 때를 상상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과학이나 수학도 없다. 그것도 양송이 스프에 쳐주는 후추 정도로 봐줄 만하다.

은둔 고수인 쥐스킨트 자신의 외침처럼, 좀머씨가 이야기한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p99

우리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말 못 하고, 무섭고, 부끄럽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때의 주저함이나 회피를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화자는 동화처럼 한다. 그뿐이다. 더도 덜도 없이 담백하게 해버리고 만다.

단편은 참 묘하다. 읽고 나서 나의 지식이 쌓인 것도 없는 것 같고 표현 적절한 감상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전히 알 수 없는 어떤 무언가가 진하게 밀려온다.

그래서 태풍이 또 온다는 전날, 창밖에 점점 세지는 비를 보며, 밀린 일과 다급한 일들을 팽개쳐두고 이렇게 듣고 본 좀머씨 이야기에 관해 쓰고 있다.


안녕.


p.s. 오디오북으로 잘못 리뷰를 써서, 다시 올린다. ㅜㅜ 책 선택에서 오디오북과 전자책을 구분할 수 없다. 표지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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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1120zz 2020-09-03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좀머씨 이야기..오랫만에 추억이 뿜~~

초딩 2020-09-03 14:33   좋아요 0 | URL
^^ 안녕하세요.
ㅎㅎ 맞습니다. 정겨운 추억.
좋은 하루 되세요. 태풍 바람이 엄청 쎄네요. 지나갔다고하는데 ㅜㅜ
 
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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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좀 화가 난 모양이다. 식물들의 사생활, 생의 이면, 욕조가 놓인 방, 사랑의 생애 등 그의 작품에 있는 현란한 글 속에서도 촌철살인 같은 치명적인 문장들을 입에서 얕고 짧은 탄성을 자아내는 스토리로 나를 휘감는 구루와 같은 마법사 같은 이승우의 느낌은 아니었다.

무는 동물이 아니고 물 수 있는 동물인 개의 두려움과 그 실체가 나인 웅덩이인 나의 구출에 관한 단상으로 책은 시작한다. 세상에는 나와 대상이 관계하는데, 대상의 실체라고 생각한 것은 표면적인 것뿐이었고,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과 대상을 향한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를 향한 것일 뿐이었다.


무서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p8

사람이 사람에 대해 하는 모든 말은 결국 자기에 대한 것이다. p9

나에게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알려준 사람이 나이다. p12


그는 꼬투리를 잡듯이 문장을 쓴 사람이 억울할 만큼 하나의 형용사, 변두리의 문장, 급하게 맞춘 조사를 집요하게 물고 본질을 위협한다. 그 문장을 쓴 사람이 그 어떤 위인이든 간에 전방위로 날 선 해석을 꽂는다. 거론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잣대로 대하는 것을 보니 그는 많이 억울한 것 같다.


소설가는 알고 있는 것을 쓰는가. 아니다. 알기를 원하는 것을 쓴다. p17


'~ 체하기'와 '혼잣말'의 서글픔을 이야기하고 수도 없이 그려내고 있는 '자화상'을 그리고 화가의 다른 모든 작품도 결국 자화상이라는 처절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발 있는 자는 걸어라'로 지각이 있는 사람은 이제 좀 들어보라고 한다. 이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나보다.

잠시, 아무리 써도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수 없기에 물에 흐트러지듯 글을 쓰는 것을 이야기하고는 - 그 어려움을 토로하고는 - 손을 잡는다. 생명의 끝에서 손을 뻗은 이, 그리고 잡은 이의 절박하고 긴박하고 또 고요함의 손 잡기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써야 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쓰는 것의 산고의 고통, 독자 이런 것들을 토마스 만, 버지니아 울프, 로맹 가리, 카프카, 이청춘 등의 작품과 작품들을 거론하며 쏟아낸다. 그리고 말한다.


"세계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어쩌면 저 말이 저 불평이 저 억울함이 저 화남이 저 분노가 말하고 싶었나 보다.

앞뒤 없이 등 떠밀며 세계화하라고 하는 것, 제대로 번역도 하지 못하는데, 그리고 소설이 상품화되어가는 것. 이것에 그는 노했던 것 같다.


합정 교보문고에서 손에 들었을 때, 감촉이 너무 좋았는데, 그의 가시가 너무 예리하고 날에서 있어서 이렇게 표지를 보들보들하게 만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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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8-30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언가를 알려고 소설을 쓴다는 말 본 적 있어요 정말 그게 된다면 좋을 텐데,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알지 모르겠어요 무슨 책을 봐야 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글을 쓰다보면 몰랐던 걸 알게 되는 때가 있기는 하죠 소설가는 소설로 그걸 하는군요


희선

초딩 2020-08-30 11:43   좋아요 1 | URL
이승우 작가는 소설을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할 때 이청춘 선생의 소설을 읽었다고 하더라구요.
사람은 항상 배우고 선생님들도 그런거 같아요 :-)

반유행열반인 2020-08-30 0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 놓고 꽂아만 뒀는데 조만간...읽겠다는 책만 느네요 ㅋㅋㅋ

초딩 2020-08-30 10:22   좋아요 1 | URL
중후반에 약간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그래도 전체의 맥락을 근사하게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초반 무서운 개 이야기가 멋졌어요 ㅎㅎㅎ
즐거운 독서 되세요~

페크pek0501 2020-08-30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승우 작가의 소설로 <생의 이면>이 참 좋았어요. 명언 같은 말들이 듬뿍 들어 있어 몇 번이나 반복해 읽었어요.
그 뒤에 나온 소설을 읽고는 실망했죠. 생의 이면보다 못해서요. 생의 이면을 읽지 못하셨다면 추천합니다.

초딩 2020-08-30 19:03   좋아요 1 | URL
생의이면 좋았고 충격이었습니다 ㅎㅎ
전 식물들의 사생활도 절절 했습니다 ~
사랑의 생애는 잔잔했고 욕조가 노인 방은 좀 괴괴했고요 :-)
밖이 밝은 초록으로 비가 오고 있어요 :-)
저녁 맛있게 드세요~

깊이에의강요 2020-08-30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나는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깊은 깨달음)^^;

초딩 2020-08-30 21:31   좋아요 0 | URL
깊이에의 강요님음 깊이에의 강요라는 책으로 저에겐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ㅎㅎㅎ

AgalmA 2020-08-31 00: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랜들 먼로가 어린 시절 멍청했던 질문을 회상하며 ˝멍청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에는 꽤나 흥미로운 곳에 도달할 때도 있더라고요.˝라고 했죠.
창작은 답안지 작성이 아니라 무언지도 모르는 답을 찾는 과정인 건 공통인 거 같습니다^^

초딩 2020-09-01 09:06   좋아요 2 | URL
^^
기시감이 아닌 미시감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경이로운 것 같습니다. ^^
그리고 또 그래서 사람은 귀 기울릴 줄 알아야하고,
겸손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0-08-31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