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팝스 이근철씨가 로맨티스트는 콩글리쉬라 했다. Romantic에 명사로 '로맨틱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단다. 나도 사람들도 로맨티스트라는 말을 잘도 썼는데, 애초에 잘 못 만들어진 말이란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과 '확인'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랑'에 의해 유발되는 이 두 행동은 '사랑하는 행위'를 같은 목적으로 둘 것인데 말이다. '표현'이 '확인'을 포함하는 것일까? '확인'의 과정에 '표현'이 종속된 하나의 단계일까?















엄청나게에서 가장 흥미로운 커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할아버지는 로맨틱 - 우선 이 글에서부터 로맨티스트를 로맨틱으로 써보자 - 이고 나쁜 남자이고 할머니는 지고지순의 고통받는 여인이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소설을 써보라고 한 것 같다. 그래서 할머니는 매일 방에 앉아 종이를 쌓아두고 소설을 쓴다.

할머니는 눈이 거의 안 보인다. 할머니는 소설을 쓰는 척한 것이다. 그렇다, 몇 개월인가 쓴 분량이 모두 백지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이 글을 쓰고 있다는 '행동'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독자는 할머니에게는 측은함을, 할아버지에게는 분노를 느낄 것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쓰는 시늉만 하는 것을 알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그 사실을 아는 것조차 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눈물 겹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한 상황은 -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런 상황을 많이 만들어 낸다 - '표현'이 만들어낸 것일까? '확인'이 만들어낸 것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랑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만들어낸 것일까?















로맨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대상'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 '대상'이 곁에 있든, 화석이 되어 과거의 유물이 되었든. 단 한 번의 사랑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영화나 소설을 통한 간접경험만으로도 그 '대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다시 처음으로 '대상'이 있어야 로맨틱한 삶은 존재할 수 있을까?

옥스퍼드의 Romantic에 대한 그 네 번째 뜻의 삶을 위해서 말이다.

having an attitude to life where imagination and the emotions are especially important; not looking at situations in a realistic way (초딩 번역: 어떤 상황에서 현실적인 것보다는 생각이나 감정이 더 중요하게 살아가는 것)

















부조리는 두 세계의 대면에서 생긴다고 한다. 어긋나 도저히 맞출 수 없고 맞춘다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이는 그 대면의 틈에서, 카뮈는 '희망'을 말한다. 어쨌든. 나는 부조리만 열심히 탐독했는데, 그래서 희망을 찾지 못했는데.















그저 또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그 무상함과 덧없음만이 가득 느꼈는데, 아니 그 부질없음을 논리적인 이론으로 더 채워 넣어 버렸는데.


그런데 궁금하다. 다시 책을 펴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참존가의 결말이 희극이었는지 비극이었는지.

아니,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점심이 한참 지나간 소리가 들린다. 로맨틱한 삶을 잠시 또 접어두고 현실적인 삶으로 전환해 본다. 시지프가 굴러간 돌을 다시 산꼭대기로 밀고 올라가기 위해 그 언덕을 내려왔듯이.

거기에서 카뮈는 영감을 얻어 부조리 셋트를 시작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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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1 18: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딩님의 글을 읽고 영어사전을 검색해봤어요. romancist와 romanticist가 있던데, 각각 발음이 ‘로맨시스트’, ‘로맨티시스트’였어요. 오늘 로맨티스트가 콩글리쉬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

초딩 2016-09-02 00:31   좋아요 1 | URL
그리고 romanist 라는 단어는 로마 카톨릭 교회 사람들을 폄하하는 뜻이라네요. 비슷하게 생겨서 봤습니다 :-) 언제나 좋은 밤 되세요!
 

가르침에 있어 불친절한 분. 하지만, 초딩이 너무 어리석어 초딩에게만은 특별히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는 분. 그분이 캐릭터는 '햄릿'과 '돈키호테'가 있다 하셨다. 초딩의 어쭙잖은 기억이 맞으면... 최소한 '돈키호테'는 확실하다. 그런데 책이 참 두껍다.













끝도 없이 사유하고 고민하는 인간 '햄릿'과 좌우지간 무모한 '돈키호테' 이렇게 초딩은 해석했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의 전반부를 신나게 읽다가 '부조리한 인간' 장 어디서부터 갈피를 못 잡았다. 그는 철학자로서 이 책을 쓰지 않았다고 후반부에 나오지만 그것을 부정하기 싫었나보다. '부조리한 인간'에서 '돈 후안주의'에 나오는 '돈 후안'은 카뮈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돈 후안처럼 많은 아주 많은 여자를 끊임없이 만나는.


"어째서 드물게 사랑해야 많이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p109, 시지프 신화

















저 말이 곱게만은 들리지 않는다. 불편한, 여자가 남자를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것에서 범위를 넓혀 '살아가는 것', '경험하는 것'으로 소재를 넓혀보았다 - 나는 지금 '사랑'을 주제하기보다는 '사랑'을 포함한 '삶'에 대해 사유해보려 한다.

카뮈가 '돈 후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양의 윤리학'이다. 


"사물들의 심오한 의미를 믿지 않는 점이야말로 부조리의 인간의 특성이다" p113, 시지프 신화


이를 통해 그는 앞 장에서 거론한 가장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이 사는 것'을 복습하고자 한 것 같다.


"그리고 만약 나의 자유가 한정된 운명과 관련해서만 의미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때 나는 중요한 것은 가장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이 사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p92 시지프 신화


사유해본다. 카뮈는 '인간은 구원을 호소하지 않고 사는' 부조리의 인간을 추구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의 모든 '한정됨'을 인정하고 받아드려 우리의 생이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느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를 추론하고 있다. p92의 말을 곱씹어 보면,

인간은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한정되어있다. 그래서 질보다는 양으로 살아가야 한다.

인 것 같다. 초딩이 놀이동산을 놀러 가 관람차를 타고 회전목마를 탈 시간이 3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면 '질'적으로 신나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가장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타고 가장 맛있는 스낵을 먹으로 쫓아 다녀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카뮈는 재미가 없어 보여도 줄이 짧은 놀이기구를 많이 타고, 주문하면 금방 나오고 가진 돈으로 많이 사 먹을 수 있는 스낵을 먹으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혼란스러워하는 초딩에게 카뮈는 질문을 던진다. 초딩의 사유를 무기력하게,


"첫째, 사람들은 양의 개념을 충분할 만큼 심사숙고하지 않았던 것 같다" p93, 시지프 신화


획일화된 사회에서 보통의 개인이 - 우리는 역시 다 비슷비슷한 보통의 나와 당신이다 -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비슷하다고 내던진다. 카뮈는


"현대 생활의 제반 조건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동일한 양의 경험을, 따라서 동일한 깊이의 경험을 부과한다" p93, 시지프 신화


그리고 그는 슬쩍 가장 잘 사는 것보다 가장 많이 사는 것이

"현대 사회에세 어차피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비슷하니, 최대한 많이 경험하며 살고 거기에서 의식을 가지고 질 높게 살아라'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초딩이 '가장 많이 사는 것'을 오해하며 읽었다고 말하듯이.


"부조리가 한편으로는 모든 경험에 차별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많은 양의 경험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으니 말이다."

...

같은 횃수를 사는 두 사람에게 세계는 항상 같은 양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의식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p 95, 시지프 신화


"인생이 살아갈 가치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먼저 들었다.

해설을 읽고 있지만, 인생이 살아갈 가치가 있느냐?라는 답은 명징하게 이 책에서 찾지는 못한 상태다. 아무튼.

'시지프 신화'는 이 대목에서 '바른 생활' 책이 되었다. '슬기로운 생활'이 되기에는 아직 초딩이 찾아 할 답이 많은 것 같다.



잠시 다른 주제를 꺼내 본다.

돈 후안이 마지막에 수도원에서 암살당한 것에 대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쾌락은 여기서 금욕으로 끝난다. 우리는 이 쾌락과 금욕이 동일한 헐벗음의 두 가지 모습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p118 시지프 신화.


마찬가지로 나는 이번에도 주제를 확장한다. '쾌락'을 인생의 '기쁨, 행복, 희열' 등으로 '금욕'을 그 인생의 밝음을 위해 백조의 발이 되는 "인내, 노력, 노고, 고통" 등으로 확장해본다. 단순하게는 인생에서 즐거운 것과 힘든 것이다. 카뮈는 이 둘 다 헐벗은 모습이라고 한다. 원문이 어떤지 궁금한 대목이다. 어쨌든 '헐벗다'는 

1. 가난하여 옷이 헐어 벗다시피 하다.

2. (비유적으로) 나무가 없어 산의 맨바닥이 드러나다.

이라고 한다.

인생에서 걸치고 있던 어떤 옷이 너덜너덜해져 벗겨지다시피 한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둘 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님을 뜻하기도 한 것 같다. 희열을 느낄 때와 극도의 고통을 느낄 때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유사하다고 하니 말이 되는 소리 같다. 둘 다 '시간'을 인지했을 때는 무상하리만큼 짧게 쏜살같이 지나 가버린 '과거'임에도 유사성을 가진다. 그래서 말하자고 하는 것이 둘 다 유사한 헐벗은 상태이니 헐벗지 않은 '인생이 무언가 제대로 걸치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추구하라는 것인지, 둘은 비슷하니, 고통은 잠시이다 곧 쾌락이 올 것이다. 쾌락은 잠시이니 그것에 빠지지 말라. 식의 바르고 슬기로운 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무엇인지 모르겠다.

좀처럼 좁힐 수 없는 확장되기만 한 주제이다.

최소한 '고통은 잠시지만 즐거움은 영원하다'는 정도의 말은 내칠 수 있겠지만, 그래서 이 둘을 어떻게 의식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일 시험이 있는데, 오늘 너무 재미있는 일이 있다. 공부해야 할까? 그것을 가지고 놀아야 할까?" 정도의 선택은 일소할 수 있겠지만, 인생의 문제가 어찌 그렇게 간단할까?


초딩자체가 망상이 많으니, 이제  '돈키호테'를 읽어봐야겠다.



- 생각이 많아져 쏟아 내버리고 싶은 날에 초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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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물고기 2016-08-29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권다 읽으려면 최소 일주일은 걸릴거 같네요 ㅋ 돈키호테가 참 오래 걸렸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초딩 2016-08-29 16:04   좋아요 2 | URL
흐 저는 훨씬 더 많이 걸릴 것 같아요 :-)

단발머리 2016-08-31 2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제쯤 돈키호테를 읽을 수 있을지 ㅠㅠ
쾌락과 금욕에 대한 설명 흥미롭네요. 그럼 시지프 신화도?? ㅎㅎ

초딩 2016-09-01 10:26   좋아요 1 | URL
이방인, 시지프 신화는 한권으로 보는게 더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첫 부조리 셋트에 칼리쿨라도 포함되지만, 저는 희곡은 아직 ㅎㅎ
시원한 하루 되세요~

마르케스 찾기 2016-09-02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산초여, 끝나지 않는 행운과 불행은 없다네˝ 끝나지 않는 책도 없다는 마음으로ㅋㅋ 삽화와 주석들이 도와줄 겁니다ㅋ 빠져들어 읽다보면, 손에 느껴질 만큼 얇아진, 남은 쪽수가 아쉬워지실 듯ㅋㅋ
홧팅!!ㅇ하셔요

초딩 2016-09-02 20:58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합니다!!! 산초도 멋진 캐릭터라던데 어서 읽어 보고 싶네요~
좋은 저녁 시간 되세요 :-)

마르케스 찾기 2016-09-02 2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충,,,, 이런,,,말이 있었던 거
제가 돈키호테를 좋아하게 된 계기죠ㅋㅋ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초딩 2016-09-02 21:02   좋아요 2 | URL
아 가슴뛰는 말이네요!!!! 정말!!!

초딩 2016-09-02 21:06   좋아요 1 | URL
꼭 찾아 읽겠습니다 ㅜㅜ
이 문장을 좀 빨리 봤으면 좋았을텐데 ...
 

길은 지저분할 따름인데, 그 위에 걸쳐진 나무는 하나의 더위 없이 싱그러운 초록이다. 폭염을 부정하며 가을마냥 잘 보이지 않는 그래서 잎인지 무엇인지 분간하기 힘든 것들을 시원하게 흩날리는구나. 나는 어느새 여기에 와있담? 생경하지는 않지만 익숙할 필요는 없는 보도 위다. 여기는 왜 이렇게 지저분할까? 허리 높이의 화단 가장자리를 빗질한 것마저 그 지저분함을 더한다. 걸쳐진 나무 사이로 계절을 분간할 수 없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누군가 저 파란 하늘을 보고 울었다지. 울먹였다지. 그게 나였나?

길이 지저분해서 내 눈앞의 이 길만 토막 난 것 같다.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것 같은. 그런데도 차도 사람도 무심하게 지나가기도 하고 머뭇거리기도 한다. 그들도 저 파란 하늘을 보는 걸까? 나에게만 박제된 저 하늘을 보면 안 되는데.

나는 고백하는데, 음치다. 화음을 맞출 줄도 모르고, 박자도 따라가지 못한다. 노래를 좋아하는데, 잘 흥얼거리는데, 핸들 위의 손과 그 손에 연결된 어깨로 박자도 곧잘 맞추며 장단 질을 하는데, 내 노래는 음치를 증거한다. 나는 매사에 이런 식이다. 그래도 나는 마냥 흥얼거린다. 어차피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을 한정된 자유는 가지고 있으니.

이 여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내 의식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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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맑음 2016-08-25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오늘은 제게도 우울한 하늘이네요.........

초딩 2016-08-25 20:00   좋아요 1 | URL
결국 지금껏 열어두었던 창문들은 틈을 타 배신을 해버렸어요. 쏟아지는 비가 베란다를 넘어 속절 없이 방 한 가운데까지 들이쳤어요. ㅜㅜ
오늘 하늘의 종지부를 찍었어요 ㅜㅜ

구름물고기 2016-08-26 14: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런 날도 문득 그리워지는 순간도 있을거에요..좋은 글이네요

초딩 2016-08-28 02:42   좋아요 1 | URL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밤 되세요!

sslmo 2016-09-02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이 시 같이 노래같이 아름다워 몇번이고 따라 읽었어요.

저는 모든 노래를 동요처럼 불러내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데,
그래도 곧잘 혼잣말 하듯 흥얼거린답니다.
저도 `어차피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을 한정된 자유는 가지고 있으니.`라고 님 따라쟁이하며 쿨녀가 되어보려구요.

여름은 지났습니다.
이 정도 쿨함이면 가을 맞는거죠?^^

초딩 2016-09-02 17:52   좋아요 1 | URL
우앗, 양철나무꾼님의 칭찬에 아주 부끄럽고 아주 좋아하고 있답니다. :-) 너무 감사드려요!!!

반팔에 반바지 입고 여름을 우기며 다녔는데, 네 쿨함이 느껴지는 가을 맞습니다 :-)

˝여름은 지났습니다.˝ 그 도장을 다시 한번 찍어 봅니다.

쿨한 금요일 저녁 되세요~
 
시지프 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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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읽고 부조리에 대해 생각을 '시작'했었고, 백년 동안의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그 부조리에 '취했고', 이제 시지프의 신화로 마치 '영원 회귀'한 것처럼 다시 카뮈의 부조리에 흠뻑 빠져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글자를 익히고 처음 책을 접한 이처럼 온통 파란줄을 그어가며.



"다만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

"권태는 기계적인 생활의 여러 행동이 끝날 때 느껴지지만, 그것은 동시에 의식이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을 뜻한다"."

p29


7시 5분까지 5분을 더 부여해서 청승을 떨겠다는 나의 다짐은 뒤로한 채 7시 8분 이제 7시 59분이 되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짙은 생각의 반복과 그것으로 어김없이 같은 모양으로 뱉어진 망상의 잔재인 몇 문장들. 어떤 우표 소인을 찍어야 할지 난감한 수취인 불명의 그 문장들. 그 애석함이란.



"그리하여 이 언덕들, 다사로운 하늘, 이 나무들의 윤곽이 지금까지 우리가 부여해 왔던 허망한 의미를 단숨에 잃어버리고서 이제부터는 잃어버린 낙원보다도 먼 존재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p31


전국을 전 세계를 전 우주를 먹이를 찾아 줄지어 다니는 개미처럼 쏘다녀도 결국 또 이 벤치에 그 떠돌아다니기 이전에 앉아 있던 그 벤치에 다시 앉아있다. 생경하기도 비슷하기도 했던 장소와 사람들. 그것에 대한 '체험'은 억울함을 느끼며 '추억'의 더미에 '회상'을 희망하며 내팽개쳐졌다. 항상 어김없이 이 벤치에 다시 앉아 건물 사이로 보이는 보도와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앉아 있음은 다른 장소와 시간에게는 역시 과거의 한 장면일 뿐임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부질없어진다.



"즉, 세계의 두꺼움과 낯섦, 이것이 바로 부조리다" p32


"비합리와 인간의 향수 그리고 두 가지의 대면에서 솟아나는 부조리, 이것이 바로 한 실존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논리와 더불어 필연적으로 끝나게 되어있는 드라마의 세 등장인물이다." p49


"그 어느 경우에든 부조리함은 두 항의 비교에서 생겨난다" p52


'상대적'인 것은 참 편리하다. 검은 것이 있으니 흰것이 있을 수 있다고 간명하게 말할 수 있으니. 정.반.합의 변증법도 이런 식일까? 그 변증법의 '모순'도 말이다. 



그리고.

"부조리를 의식하게 된 인간은 영원히 그것에 매인다"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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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3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본래 존재가 참 부조리하다랄까요....참 어려운 주제입니다.

초딩 2016-08-24 12:07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런갓 같습니다. 잊고 살다가도 스믈스믈 올라오는 주제이기도하고요 :-) 시원한 하루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8-23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기 시작했어요!!

카뮈에 대해, 카뮈가 쓴 글들에 대해 많은 연결고리를 주는 책인 것 같아요. <이방인>의 어느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카뮈의 산문 속 글들이 제 머릿속에서 다 같이 합창하는 느낌이에요 ㅎ

부조리의 극한까지 사유하는 글인데도 저는 카뮈의 글을 읽으면 막 심장이 뛰어요. 그러니까 삶이고, 그러니까 자유지!, 이런 느낌으로요. 젊은 카뮈의 심장이 제게서 뛰는 것 같아요.

근데 진지한 글을 읽고 너무 신나게 얘기하는 것 같아 죄송하네요^^(같은 책을 읽고 있어 너무 반가운 맘에 ㅎ)

막 몰아서 정신없이 읽고 싶은데 지금 진행 중인 국제다큐영화제 때문에 시선이 분산되는 게 안타까워요;;

초딩 2016-08-24 12:09   좋아요 1 | URL
우아 저도 비슷한 느낌이에요~ 심장이 뛰고 희열마저 느끼고 있어여. `그러니까 자유지!` 무척 좋아합니다~ ㅎㅎㅎ
내가 읽은 책은 이방인이고 시지프 신화고 내가 읽은 책을 쓴 작가는 카뮈. 그 것만으로도 족한 하루들이에여 :-)
아 국제다큐영화제 근사한 것을 준비하시네요~ 파이팅입니다!!!!

물고기자리 2016-08-24 12:43   좋아요 1 | URL
이런! ㅋ 그러고 보니 제가 오해를 하시게 댓글을 달았네요 ㅎㅎ

그러니까 지금 eidf 기간인데(ebs에서 해마다 국제다큐영화제를 하거든요^^)

훌륭한 다큐멘터리들을 일주일 내내 감상할 수 있어요.

(제가 엄청난 다큐 덕후거든요 ㅎ)

본의 아니게 오해하시게 해서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카뮈도 읽고 싶고, 다큐도 보고 싶고, 현실 일도 해야 하고, 맘이 너무 바빠요 ㅋ

초딩 2016-08-24 12:46   좋아요 1 | URL
천진한 오해와 유쾌한 해명이네요~
정말 맘이 바빠요 ㅎㅎㅎ
마음의 색깔도 어둑어둑 불긋불긋 침울 밝음 짬뽕이구요. :-)
 
과학과 휴머니즘 - 스티븐 제이 굴드의 학문과 생애
리처드 요크.브렛 클라크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진화에 대한 너무나 흥미로운 소재를 이렇게 써버리다니. 굴드가 쓴 것도 아니다. 그를 두리뭉실하게 찬양하며 다른 이론을 뾰족한 논지 없이 비판한 두 사회학자가 저자다. 게다가 번역은 도대체 역자가 이해하고 쓴 것인지 무척 의심스럽다. 영어의 부정에 부정에 부정도 토악질 나게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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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찾기 2016-08-29 0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꼼이, 잘 읽고 갑니다~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이 더 늘어 버렸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