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컨비니언스 - 뉴 루비코믹스 710
아니야 유이지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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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 편의점을 자주 이용한다. 도시락을 산다거나 급하게 뭔가가 필요한 경우 딱 좋은 곳이 편의점이다. 물론 가격이 일반 마트보다 비싸고 품질도 그럭저럭이고 종류도 적은 편이지만 필요한 건 거의 다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건 물론이고. 뭐, 편리함으로 따진다면 편의점만 한 곳이 없긴 하다. 근데 그건 가게의 경우 이야기이고, 편의점같은 남자라면? 흐음. 글쎄 뭐랄까, 딱히 끌리진 않는데... 근데 그것도 사람나름인가 보다.

그저 그런 남자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31살의 편의점 점장 키타무라 세이코우는 그저 그런 센스에, 그저 그런 외모에, 그저 그런 간판에 수입, 불평불만도 그럭저럭, 애정보다는 정으로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는 그저 그런 레벨의 삶을 살아 오고 있다. 21살이라면 그저 그런 그럭 저럭의 삶이 싫다, 라며 분개할 수 도 있지만, 서른 하나쯤 되면 그저 그런 삶도 고맙게 느껴진다. 그렇게 그저 그런 삶이지만 나름대로 평온했던 세이코우의 삶에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지고 만다. 그것도 연애란 문제로!

여자 친구 하루나와는 오랜 기간 교제하다 보니 이게 애정인지 정인지도 모를 지경, 매너리즘이란 게 슬슬 발동하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10살이나 연하인 사람이 좋아한다고 고백해 온다면 두 손 번쩍 들고 환영할 일이겠지만, 남자인 세이코우에게 10살 연하의 남자인 미나미하라가 고백한다고 해서 쌍수들고 환영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너무 오랜만에 고백받은 것이라 아주 잠시 잠깐의 두근거림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삶을 방치해두었던 세이코우는 어쩌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미나미하라에게 리드 당하고 있었다. 밝고 명랑하며 한결같은 미나히하라의 모습이 싫지는 않았던 것. 어쩌면 세이코우는 미나미하라와의 관계가 잠시 맛보는 인생의 단비같은 걸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미나미하라가 한 말이 세이코우의 심장을 덜컹하게 만들고 만다. 지금 하루나와의 관계처럼 미나미하라와의 관계도 어쩔 수 없는 정에 이끌려 가는게 아닌가 싶은 것이었지. 정이란 게 참 좋은 말이긴 하지만 때론 그 정이란 것 자체가 잔혹한 것이 되기도 한다.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에게 정만 줘봤자 상처받는 건 상대일 뿐이거든. 즉. 그런 미적지근한 관계는 좋지 않단 말이다. 예전에 유행했던 '희망고문'이란 말이 딱 맞는 거지.

정신이 번쩍 든 세이코우는 원래의 그럭저럭인 삶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이미 미나미하라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걸. 게다가 하루나 역시 조금씩 변하고 있었으니... 이제 남은 건 세이코우의 결단뿐이란 말.

이 작품에 등장하는 미나미하라 류지란 캐릭터는 설렁설렁 사는 것 같아도 사랑을 할 때는 꽤 진지하게 하는 타입이다. 이건 번외편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교시절의 미나미하라 역시 한결같은 사랑을 하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반면 세이코우는 반듯하게 살아가는 듯 보여도 - 물론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해도 - 사랑을 정열적으로는 하지 못하는 남자였다. 오히려 반듯하게 살아오던 게 사랑의 정열이란 것을 자제하도록 만든 것이겠지만 말이다. 반듯할수록 일탈하기는 힘들지, 암만, 그러나 그런 사람이 한 번 일탈의 맛을 보면 큰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세이코우가 변할 수 있도록 만든 건 역시 그런 면에서 보자면 미나미하라다. 그게 세이코우에게 있어서는 삶의 새로운 국면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겠지. 이제 세이코우는 미나미하라의, 미나미하라는 세이코우의 평생의 소중한 고객(?)이 되었다. 힘들게 시작한 만큼 잘 사시오~~

아니야 유이지의 작화는 여전히 이상하지만, 스토리는 정말 맘에 든다. 함께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도 찌질한 캐릭터는 없고 확실한 캐릭터가 많아서 좋다. 여기에 등장하는 하루나나 하루나의 여동생인 아키나도 괜찮은 캐릭터다. 당차달까. 그래서 매력있다. BL물에선 이런 당찬 여자 캐릭터를 보기 힘든데 아니야 유이지는 남녀 캐릭터 모두 매력적으로 그려서 좋다. 심리묘사도 좋은 편이고. 그래서 이상한 그림이라도 매력적이라 여길 수 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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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가 3
이선영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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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 감추려고 해도 결국엔 드러나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감출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랑이란 것이다. 몰래한 사랑이란 노래도 있건만 사실 사랑이란 건 몰래 할 수 없다. 어떻게든 다 티가 나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간에 말이다.

매화나무 귀신이 만든 아름다운 인형 우희는 10여년만에 재회한 신우와 행복한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그것은 이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만남이었으니... 우희의 아버지와 매화나무 귀신 모두 이 만남을 반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희의 아버지(정확히 말하면 인간 우희의 아버지)는 우희에 대한 집착이 남달라 우희를 새장속의 새처럼 가둬 놓고 싶어한다. 매화나무 귀신은 자신이 우희를 만들었으니, 게다가 인간이었던 자신을 버리고 귀신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우희를 완성했기에 그 집착이 남다르다. 인간 남자인 신우는 10년전 우희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후 우희와 함께 도망가려다 매화나무 귀신인 기현에 붙잡혀 내기를 한 상태이다.

이렇듯 우희의 주위에는 우희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찬 남자들이 셋이나 있다. 아버지의 집착은 과연 그것이 부모의 정에서만 나온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고, 인간 남자인 신우의 경우 무엇때문에 우희를 10년이나 찾아헤맸는지 난 납득이 잘 안된다. 우희의 백치미가 사랑스러웠나? 하긴 남자들은 일단 외모에 반해야 한다고 하니 신우도 그런 식으로 시작했겠지. 게다가 늘 죽음의 위협때문에 가족도 믿지 못한 처지에 있어서 의지할 곳이라곤 우희밖에 없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신우가 말하는 사랑이란 것도 난 잘 믿지를 못하겠다. 매화나무 귀신 기현이야 우희가 자신의 가지 하나를 잘라 만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기현에 대한 사적인 호감일 수도...가 아니라 사적인 호감 맞다)

내 이야기가 이렇듯 삐딱하게 흘러가는 건, 그래, 우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다. 매화나무 귀신인 기현과 인간남자인 신우를 양 손에 들고 어느 쪽이 좋을까요, 하고 저울질 하는 것 같아서이다. 기현이 무서워 도망쳤지만 여전히 기현이 걱정되고 애틋해서 죽을 지경이지만, 신우를 보면 또 인간이 되고 싶기도 하고... 또다른 마음으로서는 그냥 확 사라져 버리고 싶기도 한 우희의 마음은 갈대.

내가 보기엔 우희가 신우보다 기현에게 더 마음을 많이 두고 있는 것 같은데,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신우를 통해 자유를 맛보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사랑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네 심장이 누굴 위해 노래하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 보거란 말이다, 우희야. (설마 네 이름의 우자가 어리석을 '愚'자를 쓴 거냐?)

차라리 어린 여우 요괴인 진이의 사랑이 더 진실해 보인다. 어른들은 꼬이고 꼬여서.. 거참. 삼신총각은 구미호를, 구미호는 기현을, 기현은 우희를, 우희는 기현과 신우를 저울질하고 있는 걸 보니 속이 터진다. 원래 끼리끼리가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나로서는 우희와 기현, 구미호와 삼신총각, 신우는 인간여자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근데 그게 쉽지 않은 게 기현이 가진 구미호의 여우구슬이란 존재 때문이지. 게다가 기현에게 이상한 변화도 보이고 있고... 우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게 아니라 오히려 기현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제 남은 것은 5일뿐.
제발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뿐.
모두 행복해지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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どこにもない國 (EDGE COMIX) (コミック)
쿠사마 사카에 / あかね新社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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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작가, 펜에 모터라도 달았나, 신간이 꽤나 많이, 자주 보인다. 물론 팬으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기는 하나, 엔화가 비싼 탓에... 그러면 번역본 나오면 읽으면 되지, 하는 마음도 있지만 빨리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지르고 만다. (정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느뇨?)

표지를 보아하니... 군복에 각반. 요즘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아니로고. 게다가 군복이란 것과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라. 이래서 제목이 어디에도 없는 나라(유토피아)가 된 것일까. 글쎄. 그건 읽어 보면 알겠지.

『どこにもない国』의 목차를 보면 총 8개가 올라와 있지만, 총 네커플이 등장한다. 일단 표제작인 <どこにもない国>는 <パラダイムロスト>, <遠き島より>로 이어지는데 <遠き島より>는 속편격이다. 남방전선에서 대장과 부하로 복무하고 있는 다케우치와 하야카와. 다케우치는 엄격한 성격으로 때때로 문제를 일으키는 하야카와를 처벌하면서도 늘 마음속은 복잡미묘하다. 그런 다케우치를 보는 하야카와 역시 마음속의 복잡함을 감추지 못한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이끌린다는 건 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신들의 마음을 꼭꼭 감출 수 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공습이 있은 후, 다른 부대원들은 먼저 귀환선으로 돌아가고 둘만 이 섬에 남게 된다. 그제서야 서로에 대한 마음을 풀어 놓는 두 사람. 이곳은 어디에도 없는 곳, 둘만이 있는 곳이 된다. 이후 종전, 그리고 두 사람은 조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함께 살게 된다. 귀환선에서 콜레라에 감염되어 사경을 헤매던 하야카와를 정성스러 간호해준 다케우치는 갈등에 휩싸인다. 하야카와를 집으로 돌려 보내야한다는 건 알지만 마음이 허락치 않는 것이다.

다케우치와 하야카와의 이야기는 대사가 많지 않고, 표정이나 행동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 많다. 이런 부분이 참 좋았는데 그 덕분에 이런저런 상상을 많이 하기도 했다. 말로 드러나는 감정보다 행동이나 표정으로 드러나는 감정이 훨씬 더 마음에 많이 와닿기 때문이다. 조금 아쉬운 것이라면 이 작가의 단편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여백이 많다는 것이다. 뒤는 알아서 상상하시오, 란 분위기랄까. 원서로 읽을 땐 요럴 때가 조금 난감해진단 말이지.

이런 여백이 많은 건 뒤에 수록된 <もののことわり>도 마찬가지. 앞뒤 다 잘라먹고 두 사람의 중간 이야기만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그게 싫진 않지만 왠지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1人인지라... 하여튼 이것도 이 작가의 특징인지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밖에. 음, 그래도 다도 선생이 나와서 기모노를 입은 남자를 보는 건 좋았다오.

<1と2の間>는 소꿉친구 사이의 이야기이다. 물론 소꿉친구라고 해도 나이 차가 나는 소꿉친구이긴 하지만... 고교생인 테츠오는 8살 무렵 곤란에 처한 여학생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여학생이 외치던 절박한 애원. 그게 테츠오는 잊히지가 않는다. 그 이후로 테츠오는 여자에 대해 조금 이상한(?) 관점을 가지게 된다. (이게 참 말로 하기가.. 어쨌거나 너무 순진한 탓인지 아니면 조금 바보 타입인지는 몰라도 남녀 구별을 여전히 잘 못한달까. 난 빵터지고 말았지만, 테츠오 입장에선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더이다)

테츠오는 오랜만에 소꿉친구인 마사요시와 재회한다. 어린 시절 잘 놀아줬던 마사요시는 어느 순간부터 테츠오와 멀어졌고, 그후 오랜만에 다시 고향을 찾았던 것이다. 마사요시와 재회하면서 테츠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작품은 어린 시절 지켜줄 수 없었던 사람을 이젠 지켜주겠다고 나서는 테츠오가 귀엽기 그지 없는 작품이었다. 그래도 테츠오만 생각하면 '그 생각'이 나서 빵 터지고 마는 나는... (허허참) 이 단편집에 나오는 커플중 가장 퓨어한 커플이 테츠오와 마사요시였다.

<0と1の間>, <0か1の世界>는 테츠오편에 조연으로 등장한 테츠오의 동급생인 밋짱과 츠루다의 이야기이다. 고교시절 배구부였던 밋짱과 츠루다는 어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밋짱은 대형광고회사에 취직했고, 츠루다는 프로 배구선수가 된 후 모델인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된다. 츠루다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한 밋짱. 그도 그럴 것이 밋짱은 고교시절부터 츠루다 모르게 츠루다를 지켜주던 흑기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츠루다는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받고 이혼까지 하게 되는 처지가 된다. 재활치료를 받으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한 츠루다는 밋짱을 찾아가지만 밋짱의 갑작스런 거친 행동에 깜짝 놀라게 되는데... 오랜기간 동안 지켜왔던 연심이 폭발했던 것일까. 이 작품을 읽는 나도 밋짱의 변화에 깜짝 놀랐달까. 더이상 츠루다가 자신에게 무의식적으로 의지하지 않기를 바랐던 행동일지도 모르곘지만, 그 방법이 너무 거칠었다.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그런 식으로 밖에 표출하지 못했던 것일수도 있지만...

하지만 그 일을 통해 츠루다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지켜줬던 밋짱의 진심을 알게 되었으니 이건 이것대로 좋을지도. 고교시절의 꿈이라 생각했던 그 기억이 단지 꿈이 아니었단 걸 알게 되었기에.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사랑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퓨어하고 귀여운 커플도 있고, 서로 상처주며 사랑하는 커플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 가장 좋은지에 대해 고민하는 커플도 있다. 그래서 이 단행본을 읽어 보면 사랑 이야기 종합세트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근데 난 역시 이 작가는 단편보다 장편이 좋다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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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이야기 3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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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지구촌 한가족이니 하는 말을 종종 듣게 되지만 실제로 국가, 인종, 지역에 따른 차이는 엄청나다. 우리나라만 봐도 지역에 따라 풍습이나 관습과 문화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어(사투리)의 차이도 많다. 현대도 이럴진대 지금보다 앞선 시대의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차이는 더 심했을 거라 쉬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영국인 스미스는 인류학적인 연구를 위해 중앙아시아 지방을 여행중이다. 유목민과 유목민이었다가 정착민이 된 사람들의 마을에 머물면서 그들의 생활과 풍습, 관습, 문화에 대해 조사하며 커다란 즐거움을 느끼는 스미스는 오랜 기간 머물렀던 에이혼家를 떠나 카라자로 향한다. 그곳에서 앙카라까지 데려다 줄 안내인을 만나기로 했지만 안내인을 만나기도 전에 말과 짐을 모두 도둑맞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한 여인, 탈라스 역시 자신의 말을 도둑맞은 상태였다.

우연히 만나게 되었지만 이 일이 인연이 되어 탈라스의 집에 머무르게 된 스미스. 탈라스는 시어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이 집 장남과 결혼했지만 병으로 사망, 형사취수(兄死娶嫂)의 제도에 따라 차남, 삼남, 사남, 오남과 차례로 결혼했지만 그들 모두 사고사 또는 병사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시아버지마저 충격으로 돌아가신 상태이며 시어머니와 힘겹게 생활을 꾸려가는 여성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서방 잡아 먹은 년이라고 진즉에 소박을 열두번도 더 맞았겠지만, 이곳에는 그런 것은 없나 보다. 어쨌든 그건 다행이지만 줄줄이 신랑을 잃고, 시아버지와 친정 아버지마저 안계시니 더이상 결혼을 할 수도 없다.

탈라스의 시어머니는 이런 탈라스가 애처롭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 차에 스미스가 나타나니 스미스와 탈라스가 결혼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하지만 영국인인 스미스 입장에선 그런 이야기가 당황스러울 뿐이다. 게다가 자신은 여전히 여행을 하는 중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탈라스의 시어머니 모르게 그곳을 떠나고자 하나 탈라스의 숙부가 스미스를 밉게 여겨 그를 고발하고 만다. 스파이라고. 엉겹결에 스파이로 몰려 죽을 처지에 몰린 스미스의 위기.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마음을 준 남자를 그냥 보내게 될 처지에 놓인 탈라스의 운명은 가혹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신부 탈라스. 그녀의 삶이란 있는 힘껏 노력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힘겹다. 그런 삶속에서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스미스에 대한 숙부의 헤살은 탈라스의 진심을 드러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지만 그것은 또다른 비극을 가지고 왔다. 탈라스의 시어머니와 숙부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숙부가 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아버지의 존재는, 아버지의 말은 절대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모진 인생이다. 참으로 불운한 인생이다. 이제까지의 삶에서 몰랐던 걸 알게 된 것이 오히려 탈라스에 있어 더 큰 불행이 되다니. 관습에 얽매여 결국 생애 처음의 사랑마저 빼앗긴 탈라스의 슬픈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보자면 에이혼家에 시집온 아미르는 꽤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아마도 이곳 여인들 대부분은 탈라스처럼 살아갈 테니까. 스미스가 스파이로 몰려 잡혔다는 소식에 달려온 카르르크와 아미르는 여전히 깨소금이 쏟아진다. 아름답고 씩씩한 신부 아미르와 아직 어리지만 어른몫을 충분히 해내는 카르르크와의 바자르 유람기는 즐거웠지만, 신랑감을 만나게 된 파리야의 이야기는 즐겁지만, 역시 탈라스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생에서 두 번 다시 스미스와 탈라스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짧은 만남이 긴 이별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길 바란다. 비록 이 생에서의 인연은 이렇게 끝이 나도, 언젠가의 생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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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면 내 마음은 부서질 거야 - 뉴 루비코믹스 1096
니시다 히가시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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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통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고 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 나타나도, 아무리 멋진 사람이 나타나도 그 사람만이 눈에 보이게 되니까. 그건 아마도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그렇겠지. 하지만 사랑과는 무관하게 원래부터 바보같은 사람도 있다. 아니 바보처럼 보인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들은 대개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어린애처럼 맘에도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거나 자신의 감정에만 파묻혀 상대의 감정을 전혀 읽지 못하고 혼자서 방황한다. 혼자 삽질하고 있는 거지. 그러함에도 이들이 사랑스러울수 밖에 없는 건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시다 히가시의『좋아하면 내 마음은 부서질거야』에는 총 6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단편집이라 이야기가 너무 짤막짤막하긴 하지만 작가가 전하려 하는 메세지는 잘 전달된다. 한결같이 바보같지만 사랑스러운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첫번째 단편인 <SET ME FREE>에는 고교동급생이자 지금은 한 회사의 사장과 부하직원이 된 아리타와 테지마의 이야기이다. 테지마에게 있어 이런 악연이 또 있을까 싶은 아리타와의 관계는 늘 일방적이다. 아리타는 명령하는 사람, 테지마는 심부름꾼. 그런 관계가 오랫동안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테지마는 아리타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묵묵히 곁을 지킨다. 따지고 보면 딱히 아리타가 테지마에게 이렇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할 일도, 테지마가 그 말을 따를 일도 없건만 테지마는 늘 변함이 없다. 그러함에도 오히려 애가 타는 건 아리타쪽이다. 그러니 아리타가 바보란 것이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함께 있었으면서 테지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좋아하는 아이에게 좋아한단 말도 못하고 늘상 괴롭히기만 하는 것처럼 그렇게라도 테지마와 가까이 있고 싶단 마음밖에 없었던 아리타. 만약 그 일이 없었더라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질수나 있었을까?

<ALL FOR YOU>는 럭비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이다. 자신의 영웅이었던 럭비의 신 진노를 따라잡기 위해 그가 거쳤던 길을 똑같이 가고 있는 타카하시는 이제 은퇴시기가 가까워온 진노의 경기를 보면서 안타깝기만 하다. 자신의 삶의 목표였던 그가 은퇴한다는 말에 울컥해진 타카하시는 자신도 그만 두겠다고 해버리는데... 그러고 보면 타카하시에게 중요한 건 럭비가 아니라 진노였단 말씀. 늘 자신을 아이취급하는 진노에 대한 타카하시의 저돌적 사랑 고백이 유쾌했던 단편.

<Thrill or Sweet>은 회사원 미조구치와 그 회사의 경비를 담당하는 츠치다의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곧잘 농담도 주고받는 주제에 자신에게만 데면데면하게 구는 츠치다를 보면서 묘하게 열받는 미조구치.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술을 마시게 되고, 그날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는데... 과묵하면서도 날카롭게만 보였던 츠치다의 변신에 빵터지고 말았던 단편. 급하니까 저도 모르게 그런 고백이 나오는구나.

야쿠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20℃의 애정>은 어찌 보면 좀 황당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는데, 역시나 작가 특유의 유머코드로 유쾌하게 읽었던 작품이다. 말을 직격으로 던지지 못하고 빙빙 돌려서 하는 야스다나 가만 안둔다, 안둔다 그러면서도 그런 야스다를 그냥 내버려두는 타츠미나 똑같은 바보. -20˚C는 이들이 냉동고 안에 갇혔기 때문에 제목이 그렇게 지어진 듯.

<KING>은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데, 너무 짧아서 왜 둘이 그런 관계가 되었는지 여전히 미궁인 작품. 나쁘진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그렇게 되나 싶네.

표제작인 <좋아하면 내 마음은 부서질거야>는 리맨물이다. 무능한 직원으로 점찍혀 상사 오오시의 미움을 고스란히 받는 야마자키는 어느 날 오오시의 커다란 비밀을 입수하게 된다. 그걸 약점으로 삼아 앞으로 좀 편하게 지내볼 생각이었으나, 오오시의 의외의 모습에 여러번 놀라고 마는 야마자키였다. 결국 약점을 쥐려다 사랑에 덜컥 빠진 게지. 뭐 이런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 수 있겠네.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일은 잘 하고 있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바보같은 인물들이랄까. 상대방이 너무 소중해서 오히려 그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는 바보, 이제까지 가졌던 감정이 호감인지 아닌지도 몰랐던 바보, 자신의 마음이 들킬까 전전긍긍하면서 오히려 어색하게 구는 바보 등 다양한 바보들이 등장한다. 사랑을 함에 있어 약지 않았단 건, 반대로 순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만, 과연 어떨지. 실제로는 자신의 감정이나 상대의 감정을 읽는 데에 둔한 바보였을지도!? 그래도 그들은 사랑스럽다.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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