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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까지 보장받을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인간 그 자체를 규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아니, 우리는 그것에 대한 판단을 내릴 권리라도 있는 것일까.
의학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생명 연장의 시대를 살고 있다.
줄기 세포 연구등으로 동물의 세포를 이용해 인간의 장기를 복제하고, 동물 복제는 복제 양 돌리를 비롯해 복제 개 스너피까지 동물을 복제하는 것도 성공했다.
그럼 인간 복제란 것도 있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종교적 이유나 윤리적 이유를 언급하며 실현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진다.
불사, 불멸의 존재가 아닌 이상 이렇게 바라는 것이 큰 욕심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다른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를 보내지마>는 인간 복제와 그 복제 인간들의 장기 기증을 다룬 소설이다.
현재로서는 인간 복제를 할 수 없지만(혹은 하고 있지 않지만), 소설의 설정은 그렇다.
따라서 SF적 요소가 있다고 봐야 하지만, 이안 맥그리거가 출연한 영화 아일랜드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출연한 6번째 날과는 좀 다른 전개 양상을 보인다. 아일랜드같은 경우는 클론인 주인공이 자신의 근원자를 위해 죽고 싶지 않아하며 투쟁하는 이른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여섯번째 날은 클론에게 자신의 위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따라서 두 작품은 SF적 요소가 많이 추가된 반면, 나를 보내지마는 복제 인간, 즉 클론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촛점이 맞춰져 있고, 그들이 그들의 운명을 수용해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영국 교외의 헤일셤이란 곳은 어린 소년 소녀들이 공동으로 기숙생활을 해나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이런 저런 교육을 받으며 16세까지 성장한후 코티지로 가서 2년간의 생활을 한다. 그후 그들은 몇 년동안 간병인의 임무를 완수하고, 그후 장기 기증자로서 삶을 마감한다.
총 3부로 나뉘어진 이 책은 1부에서는 헤일셤의 생활을, 2부는 코티지에서의 생활을, 3부는 간병인과 기증자로서의 삶을 보여준다. 외부와 차단된 채 살아가는 아이들. 그들이 어디서 왔고,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처음에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캐시라는 여성이 자신과 그 친구들을 회상하는 식으로 서술되는 이 소설은 처음엔 보통 이야기로 보이지만, 간간히 튀어나오는 생소한 단어로 인해 이 소설이 여타의 성장소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은 집단 안에서 살아가며 외부와의 접촉이 일체 허용되지 않다가 그 중간 단계인 코티지 생활을 거치며 외부의 자극을 받아 들일 준비를 한다. 그들은 우리속에서 갑자기 해방된 새들처럼 우왕좌왕하며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지만, 운명은 그들을 기증자로 만들어 놓았기에 그들은 별다른 저항없이 자신의 삶을 받아 들인다.
세뇌란 것일까.
도대체 캐시를 비롯해 루스나 토미 같은 헤일셤 출신의 아이들은 왜 자신들의 운명을 거부하지 못한 걸까. 살아 있는 인간에게서 장기를 적출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몇 번의 장기 적출로 살아 남는다 해도 그들을 기다리는 건 나머지 장기를 적출하여 수요자에게 공급하는 것 뿐. 즉, 클론에게는 죽음만이 남는다.
인간은 장기 이식이란 것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을 배웠고, 그것은 더욱더 큰 욕심을 불러왔다. 인간을 복제하여 그들의 장기를 적출한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가. 아마도 소설속에 나오는 인간들(클론이 아닌)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중세시대에는 동물에게 영혼이 없어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들은 복제인간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그걸 장담할 수 있지?
아무리 클론이라도 영혼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겉모습만이 인간이 아니라 속도 인간인데, 왜 영혼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랑도 하고 질투도 하는등 온갖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도 영혼이 없는 것일까.
헤일셤 출신자들의 특혜, 서로의 사랑을 증명만 할 수 있다면 기증자가 되기 전 3년간의 유예 기간이 있다는 말을 믿고 마담을 찾아간 캐시와 토미를 기다리고 있는 건 그 희망을 무참히 밟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헤일셤 출신이기 때문에 다른 기증자보다 나은 대접을 받아 왔다. 헤일셤이 아닌 곳은 일종의 농장처럼 클론이 사육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눈앞이 아찔했다. 토미와 캐시를 가르치던 선생 역시 자신은 인간, 토미와 캐시는 클론이란 구분을 확실하게 내려버린 것이다. 인간의 오만은 지독하다. 인간이 클론에게서 빼앗는 것은 장기만이 아니라 그들의 존엄성마저도 빼앗아버리는게 아니었을까.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 정말 이런 일이 없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인류는 인간과 클론이란 두 종족으로 분화되어 한쪽이 한쪽을 끊임없이 약탈해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들은 인간을 쏙 빼닮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 그 자체이며,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위해 남의 생명을 담보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삶이 좋지 누구도 죽음을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렇다면 상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