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가무연구소
니노미야 토모코 글, 고현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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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가가 <노다메 칸타빌레>를 그린 그 작가 맞아????
첫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뒷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화로 봐서는 노다메의 작가가 맞는데 말이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실 충격적일만큼 재미있었다가 맞는 표현일지도.

작가 자신을 모델로 술주정뱅이들의 생태를 거침없이 그려낸 음주가무연구소는 20대때의 내 모습을 여러 가지로 떠올리게 했다. 물론 작가처럼 그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술을 많이 마셨던 시기가 20대였던 만큼 웃지 못할 사건도 많은 건 사실이다.

한달을 30일로 기준으로 잡았을 때 25일을 술을 마시던 때였으니, 기억 몇 개쯤은 우주로 사라졌고, 물건 몇 개쯤은 행방이 묘연한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처음 술을 맛본 건 고교시절이었다. 수능 1세대라는 부담감이 백배 작용해서란 건 거짓말이고, 다들 백일주니 88주니 7땡주니 하면서 酒님, 酒님을 부르짖던 때라 호기심에 마셔본 것이 술과의 첫만남이다.

그후 대학에 들어가니, 완전 자유로운 생활에 그 여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듯이 술을 탐했다. 난 역사 전공이었는데, 사악했다 정말로... 사학을 공부한 게 아니라 사악을 배웠다. 게다가 동아리 활동은 풍물 및 마당극과 탈춤을 배우는 곳이었으니, 풍류를 즐기며 또 술잔을 기울이고.... 대학 다니는 내내 술과 친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만 마시면 사람을 기억 못하는 통에, 술을 즐겁게 마시고 다음날 만나면 사람을 알아 보지 못해 당황스러움을 겪은 일도 한두번이 아니요, 심하게 많이 마신 날은 말그대로 블랙 아웃(필름이 끊김)이 되어 이틀동안 기절한 적도 있고,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으니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뭐... 그렇게 살았던 인생의 10년을 반추해 보니, 이 책의 내용이 공감백배로 다가오는 건 당연하다. 내가 보기에 작가가 이 책을 펴낸 의도는 술을 적당히 마십시다라는 의도로는 절대로 안보인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술에 관한 에피소드 일색, 그것도 어디에 내놔도 절대 꿀리지 않을 만한 포스를 갖고 있는지라, 그저 킥킥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해도 벅차더이다.

술이란게 사실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울 조상님들의 말씀으론 술이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즐겁게 마시고 즐겁게 취하면 그 이상의 천국도 없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위장의 내용물을 다 확인해야할 지경에 이를수도 있고, 까딱하다가는 병원에 실려갈 수도 있고, 괜히 다른 사람들과 분란을 일으킬 소지도 주는 것이 바로 술이니까.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에피소드를 보자면 늘 술을 마시고 후회를 해도 또 술을 마시는 건, 술이 주는 즐거움이 더 컸기에 그런게 아닐까. 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자신의 입장에 맞춰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적당한 음주와 가무는 생활에 활력을 주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기 시작하면 그건 벌써 종점을 향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찬란했던 20대를 보내고 20대말 즈음 들어 운전을 시작하면서 술을 딱 끊었는데, 운전도 운전이지만, 술 먹고 주사가 심한 인간 한 둘을 상대하다 보니 술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술만 보면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을 보면 한심하단 소리가 먼저 나오긴 하지만, 나도 한때는 그런 시절을 보낸지라 대놓고 욕은 못한다. 그냥 슬며시 피할뿐.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 통쾌 상쾌, 더불어 미친듯이 웃고 자지러지게 웃고 쓰러지게 웃었다. 하지만, 왠지 술을 잘 못마시거나 술에 대한 황당한 경험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 혹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라 재미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도 한때는 주당의 한사람으로 이름을 날렸던 적이 있는지라 무척 즐겁게 읽었다.

후반부에 수록된 <한 잔 하러가자>는 엘리트 직원들의 술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파트로 이 부분은 작가의 순수 창작이다. 아무래도 직장인들의 로망을 그려놓은 만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생활하다가는 사회에 발 붙일 곳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픽션과 논픽션이 절묘하게 이루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술과 술주정뱅이들의 묘한 상관관계를 폭소로 그려낸 유쾌한 만화 음주가무연구소는 우울하거나 기분나쁜 일이 생길 때 하나씩 읽으면 바로 웃음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술이라면 떠오르는 생각 한 꼭지는, 덮어 놓고 마시다가는 인간의 탈을 벗게 될 수도 있으니 술마실때는 최소한의 자제는 필요하단 거다.   
색다른 만화를 즐기고 싶은 분, 한때 주당으로 이름을 날린 기억이 있는 분께 강추하는 만화, 음주가무연구소. 이 책을 읽다 보면, 분명 자신의 경험과 싱크로되는 부분 몇 개는 찾을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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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지 콜드 블루 Age Called Blue - 뉴 루비코믹스 634
Est Em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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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토 에무의 책으로는 네 번째로 읽은 에이지 콜드 블루.
이 책은 작가의 첫 단행본인 쇼가 끝나면 만납시다와 이야기가 이어지는 연결구조를 가지고 있는 책이라 무척 흥미로웠다. 어쩌다 보니, 다른 작품을 먼저 읽는 바람에 다시 한번 쇼가 끝나면 만납시다의 이야기 두 편을 새로 읽었는데, 그러고 나니 아하..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었구나 하는 부분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난 사실 사람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현실에서도 그러니 만화 캐릭터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한 작가가 그려낸 캐릭터들은 특정 캐릭터가 아닌이상 각 작품의 주인공 이미지는 비슷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리라.

에이지 콜드 블루를 재빨리 한 번 읽으며 스토리를 파악한 후 다시 쇼가 끝나면 만납시다를 읽고, 에이지 콜드 블루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다시 읽었다. 혹자는 '만화를 그렇게 세세하게 읽을 필요가 있나'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 만화는 글로만 씌어진 소설과는 달리 그림이 들어 있기 때문에 적어도 두 번은 읽어야 제맛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두 번째로 보면 못보고 지나쳤던 세세한 부분도 눈치챌 수 있고, 또한 누구의 대사인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여간에 두 번을, 중간에 전작을 한 번 더 읽게 만든 에이지 콜드 블루는 쇼가 끝나면 만납시다에 나온 락밴드의 이야기인 Rockin'in my head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현재에서 점점 과거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는 방식이 독특해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또한 음악에 대한 열정과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친구가 전해오는 자신에 대한 마음에 대한 대답이란 부분을 과하지 않은 표현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에스토 에무의 책을 읽다 보면 각각의 사람이 가지는 감정의 불분명한 경계에 대한 표현을 참 잘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역시나 이 작품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Isaw blue는 쇼가 끝나면 만납시다의 caf'e et cigarette에 등장하는 뤼시앙의 과거 이야기인데, 애절하면서도 애틋한 그런 느낌이 강했던 단편이었다. 특히 온몸에 물감을 묻히고 있던 뤼시앙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마지막 단편인 니 푸카 니 페라는 우주비행사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우정과 사랑의 경계에 서 있던 두 사람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는데, 굉장히 안타까우면서도 굉장히 따스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한때 열광했고, 나의 해방구라 여겼던 락과 락 밴드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과 화가의 이야기, 그리고 우주 비행사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에스토 에무의 만화는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적절한 감정 처리와 말 대신 그림으로 표현하는 에스토 에무의 표현 방식은 백마디 말보다 한 장의 그림이 보여주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도 에스토 에무의 만화를 더 많이 만나보게 되길 바라며,
니 푸카 · 니 페라, 에스토 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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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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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리노 나쓰오의 책은 <아임소리마마><암보스 문도스> 에 이어 <잔학기>가 세 번째이다. <아임소리마마>의 경우 사회가 만들어 낸 극악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 충격을 던져준 작품이었고, <암보스 문도스>는 악의로 가득찬 여러 여성상을 그려낸 단편집이었다.
<잔학기> 역시 주인공은 여성이다. 10살이란 어린 나이에 납치되어 1년 이상의 시간을 감금상태로 지낸 후 고교시절 충격적인 데뷔작으로 문단에 등단한 여류 소설가 고미 나루미의 고백을 담은 수기형식으로 진행되는 <잔학기>는 실제 일본에서 있었던 니가타 소녀 감금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 한다.

니가타 소녀 감금사건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인 여자아이가 30대 남성에게 납치당한후 9년이라는 시간을 감금당했던 사건으로 당시 일본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 설정을 처음 보았을 때는 마츠다 미치코의 <여고생 납치 사육 사건>이란 책을 바탕으로 제작된 완전한 사육이란 영화가 떠올랐는데, 납치 및 감금이란 설정은 비슷하지만, 니가타 소녀 감금 사건의 경우 초등학생, 마츠다 미치코의 책과 영화의 경우는 고등학생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실제로 있있던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데는 솔직히 충격이상의 경악에 가까운 감정이 든 것도 사실이다.

실제 사건의 피해자는 9년이상의 시간동안 감금당했지만, 잔학기의 주인공은 일여년의 시간을 감금당했다. 그후, 자신이 그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며, 당시 일을 모티브로 하여 소설을 써낸다. 그 소설로 문단에 데뷔를 한 그녀는 그후 그저 그런 작가로 살아가지만, 자신을 납치 감금했던 범인이 풀려나면서 보낸 편지를 받은 후 <잔학기>라는 고백 형식의 수기를 나기고 사라져 버린다.

과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열살짜리 소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가 고교시절 펴낸 소설은 그녀의 납치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을 가두었던 범인과 그 옆집에 살던 남자를 소재로 씌어진 것이었다. 사건 이후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을 원치 않았던 소녀는 그런 식으로 마음의 빗장을 닫아 걸고 마음의 독을 키워 온다.
 
사실상 잔학기라는 수기의 내용도 그렇지만, 그녀가 데뷔했을 당시의 소설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 소설을 쓰는 것으로 자신이 겪었던 일을 극복하려 한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해야 그 당시 자신이 겪었던 일을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여전히 피해자라는 입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굳히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까. 아니면 범인과 자신사이에 있었던 정신적 교류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솔직히 말해, 초등학교 4학년치고는 조숙했던 그녀가 마음속에 품었던 독이라든지 악의는 거대하고 강렬했다. 도저히 어린 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판단력과 냉정함. 물론 그런 큰 사건의 피해자이다 보니 당연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섬뜩함을 가져다 주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을 하고, 외부의 충격을 받아 들인다. 아이가 소녀가 되고,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면서 그녀가 부정하고 싶었던 것, 되돌리고 싶었던 것은 결국 제자리를 찾지 못한채 부유하는 공허함의 덩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니가타 소녀 감금 사건은 2000년에 발생했으니 그다지 오래된 사건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그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이런 소설을 써야 했던 기리오 나쓰오는 어떤 생각으로 이 소설을 썼을까 하는 것이다.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이 소설로 인해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받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되는 것은 공연한 내 노파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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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눈물은 필요 없어 - 러쉬노벨 로맨스 242
미즈하라 토오루 지음, 야마시타 토모코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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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게 이야기해서 금융업자, 나쁘게 말하면 사채업자인 쿠니에다와 고교생인 하루카. 이들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져 만남을 갖게 되었다. 하루카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후 양아버지와 함께 살아가지만, 양아버지의 학대는 날이 갈 수록 심해진다. 그러던 어느날 사채업자가 양아버지의 집에 쳐들어 오게 되고, 양아버지의 빚대신 하루카가 그들에게 잡혀가게 된다.

얼핏 도입부를 보면 "아아 또 뻔한 이야기겠군"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난 끝까지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 사실, 쿠니에다가 하루카를 빚차감 대신 데려간다고 했을때, 바로 데리고 살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설정이 내 예상을 빗나갔다. 그리고 뒷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시종일관 궁금해 하면서 읽었다.

냉정하다 못해 냉혹하다는 것이 맞을 정도로 자신의 일에는 한치의 양보도 없던 쿠니에다는 하루카의 표정에서 어떤 것을 읽어낸 것일까. 자신을 따르는 여자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그가 하루카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이유는 나중에서야 밝혀지지만, 솔직히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때 약간 놀란 것은 사실이다.

쿠니에다가 하루카를 대할 때의 진심은 무엇인지, 좀처럼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쿠니에다를 보며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카를 다시 학교에 보내고, 필요한 것을 갖춰 주고, 대학까지 가도록 배려해주는 그의 모습에 담긴 진의는 무엇일까. 쿠니에다 말로는 모든 것이 빚이며, 나중에 다 갚으라고는 하지만, 하루카가 고교 졸업후 바로 취직을 한다고 해도 대학을 굳이 가라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말수도 없고, 표정 변화도 없는 쿠니에다는 책을 읽는 내내 묘하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왔다.

하루카의 경우도 그렇게 심한 일을 겪었지만, 스스로를 다잡고 공부에 힘쓰며 언젠가는 쿠니에다의 빚을 다 갚겠다고 결심하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보통 이런 경우의 수라면 질질 짜고, 매일 절망하며, 공의 언사 한마디 행동 하나에 신경쓰며 눈치를 보지만, 하루카의 경우는 눈물을 속으로 삼키면서도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고, 미래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보통 bl물을 읽을때 공이 마음에 들면, 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의 경우 공수 캐릭터가 모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수도 공같은 수가 아니라 수같은 수였는데도 말이다. (笑)

또한 주목해야 할 캐릭터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하루카의 친구 나오. 난 이 녀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의 인망도 두터운 나오는 하루카에게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
왠지 하루카에게 마음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딩동댕.
하지만, 고교생답게 조심스러우면서도 순수하게 다가오는 나오의 우정과 사랑사이의 감정은 꽤나 신선했다. 보통 학원물이라면 어른인척 하면서 묘하게 구는 캐릭터들이 많은데, 이건 학원물이 아니라서 그런지, 나오의 캐릭터가 꽤나 순수하다.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이다.

작가님의 말처럼 극악한 키다리 아저씨 캐릭터인 쿠니에다와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면서도 평범한 삶을 꿈꾸는 소년 하루카의 이야기는 자극적인 이야기나 극적인 스토리전개가 거의 없었지만 난 오히려 그런 부분이 더 좋았다. 물론 후반부에 쿠니에다가 크게 상처를 입게 되고, 하루카가 그제서야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 오는 부분은 있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두 사람사이의 감정의 교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쿠니에다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이야기하는 시설에 하루카를 데리고 갔을 때는 하루카에 대한 쿠니에다의 감정이 내게도 전해졌달까.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장면이 몇 장면 있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처음으로 하루카가 준비한 오므라이스를 묵묵히 먹는 쿠니에다의 모습이나, 맨션 앞에서 나오가 하루카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본 후 쿠니에다의 반응이라든지, 하루카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장면은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다. 이 부분은 야마시타 토모코의 그림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나 눈물을 흘리는 하루카를 뒤에서 안고 있는 쿠니에다의 모습은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일러스트였다.
그리고 마지막 일러스트. 울고 있는 하루카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는 쿠니에다의 옅게 미소를 지은 얼굴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웃고 있는 쿠니에다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더욱 귀중하다.

극악한(?) 키다리 아저씨였지만 지금은 온화하고 다정한 키다리 아저씨가 된 쿠니에다와 힘든 역경을 잘 극복하고 조금씩 어른이 되어 성장해 나간 소년 하루카는 이제 앞으로 행복할 일만 남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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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인! - 뉴 루비코믹스 818
Est Em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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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우정사이. 혹은 우정과 사랑사이.
키네인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남녀간에도 우정이냐 사랑이냐로 고민하게 되고 힘들어 하지만, 동성간에는 우정을 넘어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 사회적 금기로 인식되고 있다. 키네인은 그러한 금기를 살짝살짝 넘어가는 듯한 느낌의 책이다. 동성애로 확 넘어가지도 않고, 그 언저리에 얹혀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우정에 한없이 가까운 그런 사랑같은, 사랑에 한없이 가까운 우정같은 느낌을 받았다.

쌍둥이 켄과 마리, 그리고 이웃집의 죠는 어린시절부터의 소꿉친구이다. 그러다 보니, 늘 셋이서 함께 다니게 되었고, 그것은 어느 샌가 사랑이란 감정으로 물들어 간다. 켄을 좋아하는 죠, 죠를 좋아하는 마리. 그러나 켄은 죠를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죠는 마리를 친구의 쌍둥이 동생이자, 친구로 생각한다.

사람은 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100% 연결되지 못할까. 혹은 사람은 왜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과 100% 연결되지 못할까. 만약 두가지 모두 100% 연결된다면 사랑 때문에 고민할 일도 없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사랑에 울고 웃고, 행복해하고 괴로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비록 동성인 죠에게 고백을 받았지만, 부드럽게 거절하는 켄, 친구의 쌍둥이 형제이지만 마리의 고백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죠를 보면서 누구 한 커플이라도 연결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내내 했다. 난 중반부 마리의 말에 큰 공감이 갔는데, 마리는 켄을 좋아하는 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만약 내가 남자라도 죠는 켄을 택하겠지." 라고. 
이래서 사랑이 어려운가 보다. 단순힌 이성, 동성을 떠나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내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조건이. 

고교생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 미래에 대한 준비와 불안감, 사랑과 우정등을 상큼하고 발랄하게 또한 애절하고 안타깝게 담아낸 키네인. 사랑은 언제나 보답을 되돌려 주지는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도 만드는 묘한 존재인가 보다.
 
사루비아와 이발사는 오래된 두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과거사와 현재 이야기가 반복 교차되면서 아련함과 애절함을 주는 작품이었다. 미츠오의 아내 유리가 류지에게 남긴 이야기. 나도 만약 유리같은 입장이 된다면 그런 말을 해줄 수가 있을까.

그 여름 풍경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만난 친아들과 이붓아들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기온 마츠리를 배경으로 그려진 이들의 상처 핥아주기. 그것은 거창한 모습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조금씩 마음을 통해가는 모습에서 드러났다.

믹스 쥬스는 동성끼리의 만남에서 받을 수 있는 불안함을 경계라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남녀사이에서도 우정이냐 사랑이냐의 경계가 분명 존재하겠지만, 때로는 그건 불분명하게 변해간다. 사람 사이의 경계는 칼로 무자르듯 딱 잘라서 혹은 자를 긋고 직선을 긋듯 분명하게 그릴수는 없겠지.

이 단편집은 에스토 에무의 작품으로는 세 번째로 구매한 것이다. 세 권을 읽으면서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인간 관계, 그리고 그들의 사랑의 향방등은 내게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었다. 에스토 에무는 흔하디 흔한 소재보다는 쉬이 볼 수 없는 소재로 쉬이 볼 수 없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준다. 에스토 에무의 다음 작품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건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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