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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평점 :
주제는 등기보관소의 사무보조원으로 약 50세의 남자다. 그의 취미는 유명인들의 기사를 수집하는 것으로, 약 100명 가량의 유명인들의 정보를 수집해 놓았다.
그는 어느날 문득 자신이 일하는 등기보관소에서 그 유명인들의 인적사항을 빼돌려 자신의 집에서 기록하기로 하고 아무도 없는 등기 보관소에서 서류를 빼왔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보니, 유명인과는 상관없는 어느 여자의 등기부가 한장 껴 있었다. 30대즈음의 젊은 여자로 결혼 한 번, 이혼 한 번... 주제는 이상하게도 이 알지 못하는 여자에 대해 궁금함이 생겼다. 오히려 유명인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 이 여자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한다.
오 하나님, 제가 만일 저 책장 속에 보관되어 있는 백 명 중의 하나, 아니 그보다 덜 유명한 다섯 명의 후보자 중 한 사람이기만 해도 이런 수집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왜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기록부를 다른 그 어떤 것들보다 중요한 것처럼 바라보고 있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주제는 일단 여자의 주소로 찾아가 보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등기소의 서류까지 위조해서 옛주소 건물에 살고 있는 입주자를 방문해 그 여자에 대해 캐묻는다. 그 여자가 다니던 학교를 알아 낸 주제는 비가 심하게 오던 날, 몰래 학교로 침입했다. 그러나 그 여자가 그 학교를 다닌 건 오래 전.. 창고에서 몇시간을 뒤진후에야 그 여자의 생활기록부를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를 맞고 독감에 걸린 주제가 등기소에 출근해서 다시 그 여자의 기록을 찾아 보았다. 그러나 그 여자의 기록은 산자들의 기록부 속에는 없었다. 그날 밤 주제는 등기소에 들어가 죽은 자들의 서류를 뒤져 그 여자의 기록부를 찾았다. 그랬다. 그녀는 며칠 전 죽은 것이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주제는 이제 그 여자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그는 공동묘지로 가서 그 여자가 죽은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 여자는 자살했다. 공동묘지 직원의 도움으로 그 여자가 묻힌 장소를 알아내 그 곳으로 향한 주제는 그 곳에서 밤을 샜다.
그리고 아침에 양치기를 만났다. 그 양치기는 주제에게 당신이 찾는 사람은 그 무덤의 주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왜냐면 양치기는 수시로 무덤 앞의 번호표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왜 내가 무덤의 번호판을 바꾸기 시작했는지는 아직 얘기하지 않았네, 별로 알고 싶지 않습니다, 알고 싶지 않다고, 말씀해 보세요, 내가 생각하기엔, 물론 그렇게 믿고 있기도 하지만, 자살한 사람들이란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을게 틀림없소, 선생이 말했던 내 악의에 찬 장난으로 인해서 그들은 더 이상 성가신 일을 치르지 않아도 된단 말일세, 사실 나 자신도, 만약 이것들을 제자리에 꽂아두고자 할 때,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야,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은, 이름과 출생, 사망일이 적힌 이 대리석판 앞을 지날 때, 어떤 생각이 든다는 것 뿐이야, 어떤 생각이요, 눈앞에 바로 보고 있어도 거짓을 보지 못할 수가 있다는 걸,
주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곰곰히 생각했다. 이제 남은 건 그 여자의 부모와 전남편 뿐.
주제는 등기소에 출근도 하지 않고, 그 여자의 부모를 찾아가 그 여자의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묻고,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의 열쇠와 주소를 받았다. 주제는 그 여자가 살던 집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주제. 그러나 집에 불이 켜져 있었고, 집안에는 등기소 소장이 있었다. 소장은 이제껏 주제가 수집한 유명인의 자료와 주제가 지금까지 조사하던 그 여자의 서류기록을 꺼내보고 있었다. 주제는 이제 등기소를 그만두어야 하나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소장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 여자의 기존 기록부를 없애고, 다시 기록부를 만들어 산자로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지난 금요일, 당신이 면도도 하지 않고 출근했을 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나, 예 소장님, 전부 다, 예 전부 다, 그렇다면 산 자와 죽은 자를 분리해 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에 대해 언급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나, 예 소장님, 그럼 내가 뭘 얘기하고 있는지 더 설명할 필요가 있나, 아닙니다 소장님,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Todos os nomes, 1997, 원제: 모든 이름들)』은 내가 세번째로 읽은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다. 이 책이 2008년 첫출판되면서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와 더불어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로 제목이 바뀌었지만, 원제는 조금 다르다.
물론, 내용도 『눈먼 자들의 도시』나 『눈뜬 자들의 도시』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원제를 그대로 쓰지 않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터, 다 읽을때까지... 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주제라는 사람이 왜 이토록 모르는 여자에 집착을 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였다. 만약 그 일이 들키면 사회적 위치의 박탈까지로 이어질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일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날밤 등기소에서 몰래 가져나온 서류중에 그 여자의 서류가 없었더라면, 주제는 끝까지 그 여자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집착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다만 수없이 쌓여있는 서류중의 하나였을 뿐....
솔직히 탁 까놓고 얘기해보자면, 이 책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어려웠다. 게다가 저자 서문이나 저자 후기, 혹은 역자 서문이나 역자 후기 조차 없었다. 뭐.. 만약 그런게 있다면 책에서 받는 내 느낌은 상쇄되어 밋밋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다 읽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 봤다. 이름이 갖는 의미를....
우리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을 비롯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이름을 붙이는 이유가 뭘까... 만약 혼자 산다면 이름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음... 이 세상의 사람들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해보자.
완전한 타인(他人)과 지인(知人), 여기서 내가 쓰는 지인의 의미는 보통 우리가 쓰는 지인이 아니라, 나를 알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저 타인과 구별하기 위해 쓴 말이다.
타인에게 있어 내 존재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내 이름도 무의미하다.
물론 지인들에게 있어서 내 존재나 이름이 의미있고 가치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인들에게 있어 내 이름은 타인과 나를 구별하고, 타인이 아닌 나를 부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 뿐이다.
결국 나란 존재는 등기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서류 한 장에 불과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그이하의 의미도 없다. 뭔가.. 굉장히 씁쓸하다. 그것도 살아있을 때 뿐...
죽은 후라면.. 보관된 서류가 삭아 없어지듯, 내가 존재했던 것도, 그 이름을 가지고 살았던 것도 점점 줄어들어 이 세상에는 티끌하나 남지 않겠지....
내가 가진 이름은 나를 위한 것일까.. 다른 이를 위한 것일까....
내가 가진 이름의 의미는 나를 위한 것일까, 다른 이를 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