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와 겐이치로 A - 대단한 겐지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겐지와 겐이치로는 A, B 두권 세트로 『A : 대단한 겐지』, 『B : 짓궂은 겐이치로』로 이루어져있다.
이 책을 택한 이유는... 단순히 귀엽고 사랑스러워할 테디베어가 사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책 표지에 반했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뭔가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 책 내용은 역시나....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 문학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 책에 대해서 뭐라고 해야할까..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뭔지 확 와닿지 않는다. 물론 사전적 의미정도야 알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무엇, 그렇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것이 표방하고 있는 심층적 의미를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따라서 포스트 모더니즘 문학의 최고봉이다... 뭐 이런 수식어는 집어 치우고, 그저 책을 읽고 받은 느낌으로 글을 포스팅해볼까 한다.

일단 이 책에 대한 사전지식 하나.
이 책은 1세기전에 살았던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의 동화책을 모티브로 따왔다는 것..
그러나 공교롭게도 난 이 책을 읽으면서 타카하시 켄이치로와 미야자와 겐지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내공부족 ㅡㅡ;)

미야자와 겐지의 대표작으로는 『은하철도의 밤』,『주문많은 요리점』,『북극쥐의 모피』,『구스도부리코의 전기』등등이 있다.
타카하시 겐이치로의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존 레논 대 화성인』,『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등이 있다. (그러나, 읽어본 작품이 하나도 없다. 다음에 꼭 읽어봐야겠다..)

목차 (괄호안은 간단한 내용)

오르베츠와 코끼리 :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살며 코끼리를 키우는 남자 오르베츠 이야기
기아 진영 : 어느날 우연히 TV를 보다 자살하기를 마음먹고 자살한 4명의 남자와 여자 이야기
고양이 사무소 : 변변한 직장없이 살던 아버지가 취직한 곳은 고양이 사무소
주문많은 요리점 : 책이라곤 읽지 않던 에로 비디오 조감독
베지테리언 대축제 : 치매걸린 아내를 양로원에 보낸 후나하라의 국제 노인회의 참석
첼로켜는 고슈 :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채 노숙생활을 하며 첼로를 켜는 고슈
스물엿샛날 밤 :치매에 걸려 양로원에 간 아톰, 더이상 날지 못하는 뚱뚱한 늙은이 피터팬과 한때는 세상의 영웅들이었던 배트맨, 수퍼맨등등 여러 히어로의 말로
이하토브 농학교의 봄 : 늙은이들이 갑자기 젊어져서 결국 무로 돌아가는 이하토브 마을이야기
축제의 밤: 이건..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몰라서 패스
포라노 광장: 책읽는 원조교제 소녀
수선월의 4월 : 설동자이야기
구스코부리코의 전기 : 관찰당하는 나와 관찰하는 인간의 관계

내가 써도 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 책을 처음 읽은 느낌은 이랬다. 그러나 도통 이해가 안되서, 결국 한번 더 읽었지만 그래도 아리송할 뿐...
다만 한가지...
이 이상한 이야기들은 지금 일본의 현실적인 문제-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있을 법한 문제들-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가지 이야기만 따로 더 살펴보자면...

사람과들과의 연결접점을 찾지 못한채 코끼리를 키우는 오르베츠는 사람도 키우는 대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와 함께 살던 여자들은 " 당신, 나를 사육할 생각이었지? 흥 안됐네~"란 말만 남기고 나가버렸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란 사육과 사육당함의 관계가 아니라 공존의 관계란 걸 모르는 오르베츠는 결국 또다시 애완용 인간이란 소리에 솔깃해진다. 이 이야기는 결국 현대 인간들의 사람과의 관계 단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기아 진영의 경우 우연히 TV를 보다 자살하기로 마음 먹은 4명의 젊은이들 이야기다. 충동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생각없이 자살해버리는 현대 인간들의 나약함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다.

고양이 사무소의 경우, 이제껏 변변한 일 한번 해본적이 없는 가장이 처음으로 직장을 가지게 된 이야기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주문많은 요리점은 책이라곤 도통 본적이 없는 에로비디오 조감독이 다음 비디오 촬영을 위해 책을 사러가지만, 애시당초부터 책제목부터 제대로 아는 게 없다. 근데... 사실 이 이야기가 뭘 말하고 싶어하는 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베지테리언 대축제의 주인공 후나바라의 아내는 요양원에 있다.  그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존재로 속옷까지 아내가 갈아입혀줄 정도였다. 그런 아내가 요양원에 가지 아쉬운거 투성이다. 병든 노모를 모시지 않으려는 아들과 며느리, 아내의 존재를 단지 도구로 생각하는 남편.. 씁쓸할 따름이다.

첼로 켜는 고슈는 노숙자들의 이야기이다. 일명 홈리스들 이야기. 돌아갈 곳도 없고 머무를 곳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

스물엿샛날 밤도 씁쓸한 느낌이 들긴 마찬가지다. 한때는 시대의 영웅으로 살았던 이들이 늙고 지쳐 양로원에 보내지고, 그들을 위해 위문공연을 온 꼬마들은 '빨리 죽어, 치매 영감들, 아무 도움도 안되는 것들, 귀찮은 것들, 쓰레기들.'이란 생각을 한다.
우리 아버지들은 어린 시절 우리의 영웅이 아니었던가.. 그런 영웅들이 늙고 병들었다고 버려졌다. 그리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건 이정도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고, 평론가들의 입장은 나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읽는 사람나름대로 받아 들여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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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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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2004년에 한번 읽었고, 요번에 짬을 내서 다시 읽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한번 집어들면 일주일은 꼬박걸린다.
아무래도 이미 100년전에 씌여진 소설인데다 워낙에 어려운 말로 뒤범벅된 소설이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익숙치 않은 용어도 많고... ㅡㅡ;
게다가 하이쿠나 우타이는 잘 모르므로...
음.. 이런 비유면 적당할까? 우리나라의 1900년대의 신체시나 신소설등을 접하는 기분이다. ^^

어쨌거나 고양이의 시각에서 본 인간사는 참으로 쓸데 없이 복잡하고 위선적이다. 물론 등장인물들중 하나같이 멀쩡해 보이는 인간은 없다. 전부 어딘가 비뚤어지고 모자란 인간투성이다. 사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지만...

예전에 읽을때는 일하는 짬짬이 읽느라 전투적으로 읽어서 참된 재미를 사실 못느꼈다. 사실 좀 지루한 면이 있기도 하다. 번역판 소설이긴하나 분량이 500쪽이 넘으므로...
게다가 이상한 주제로 떠들어대는 걸보면(아마도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서 일본의 풍속이나 문화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최 이해도 안되고 무슨말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면이 꽤나 많은 부분을 차지 한다. 특히 메이테이가 나오면 어이없을 정도로 허풍을 치므로 더욱 더 그러하다...
그런부분을 잘 고려해서 끝까지 읽어본다면 이 소설의 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두번째 읽으면서 혼자 많이 웃었다. 첨엔 그냥 그랬는데, 두번쯤 읽으니 이 작품의 풍자성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면 한 번만 읽을게 아니라 두 번정도는 읽어보는게 낫지 않나 하고 권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100여년전에 이 소설을 썼다. 즉 메이지 시대, 일본이 서양에 국호를 개방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던 혼란의 시기였다. 따라서 그 당시 지식인들의 설 자리가 좁아져갔다. 그리고 새로이 부흥한 상인세력등... 그전에는 구샤미 선생이 그러하듯 사업은 천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미 돈이 중심이 되어 가는 사회...등등.. 이런속에서 책이나 파던 서생들이라든지 하는 사람들이 설 곳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되겠다. 이러하다 보니 오히려 구샤미, 메이테이, 간게쓰 같은 사람들(逸民、いつみん:세속을 피해 조용히 사는 사람들)이 더 생겨났는 지도 모른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사회의 단면은 이 시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더욱더 '돈과 다수에 복종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구샤미 선생는 속세에 달관한게 아니라 적응을 할 수 없었을 뿐이란 생각이든다. 겉으론 달관한척 무심한척 하지만 사실은 변화하는 세상이 너무도 무서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달관한척 해도 신선이 되지 않는 이상은 그건 척일뿐이니까.  

이건 여담인데...
우리 집에도 고양이 두마리가 있다. 흠.. 혹시 우리 고양이도 이런 시각으로 우릴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야옹소리만 한다는게 다행이다. (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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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딸
마크 탭 외 지음, 김성웅 옮김 / 포이에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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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바뀐 딸>은 2006년 4월 26일에 발생한 한 사고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야기이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할 때는 단순히 제목만 보고 구입했기 때문에 소설인줄 알았다.
그러나 책을 받고 찬찬히 살펴 보았을 때, 이것이 실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발생한 사고는 두 가족의 삶을 크게 바꿔 놓았다.
물론 이 사고가 두 가족만이 관련된 사고는 아니었다.
무려 다섯명의 희생자를 낸 큰 사고였다.

트럭 운전사의 졸음 운전으로 중앙 분리대를 넘어 사망 5명이라는 희생자를 낸 사건은, 단순히 큰 사고였기에 화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 날의 사고는 로라와 휘트니라는 두 여학생의 신원이 바뀜으로 인해 나중에 더욱 큰 화제를 모은 사고였다. 그렇다면 왜 두 사람의 신원이 뒤바뀌게 된 것일까.

사고로 인해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온 휘트니의 옆에 우연히 로라의 가방이 떨어져 있었고, 게다가 두 사람의 외모, 체형등이 놀랄 만큼 비슷했다.
게다가 휘트니의 부모는 딸의 시신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고, 대신 다른 사람이 시신의 신원확인을 했다. 그래서 착오가 더 커진 것이다.

로라의 부모는 그렇게 휘트니가 자신들의 딸, 로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가 자기 딸을 몰라볼 수 있을까?
일단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자신의 딸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는 입장이다 보니, 당연히 휘트니가 로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게다가 머리를 다쳐서 얼굴이 퉁퉁 부었다면 딸의 모습이 달라 보이는 건 당연지사다.  

그렇게 5주란 시간이 흘러, 로라(실은 휘트니)의 인지 능력이 돌아오면서 로라의 부모는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했던 로라가 로라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로라였던 휘트니는 자신의 부모 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두 가족이 각각 딸의 사망과 생존에 대한 태도에 우리는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정말 힘든 순간에 자연스레 신을 찾게 된다.

하지만 시련이 너무 크다보면 신을 버리기도 하는게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락가족은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성경구절이나 신에게 기도를 하는 장면이나, 신과 관련해서 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나는 비록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부분이 눈에 거슬렸던 것은 아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두 가족에게는 하느님이라는 신이 있었을 뿐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인 두 가족.
우리는 이러한 것에 더욱더 집중해야 한다.

반 린 가족이 딸의 생존에 대해 감사해 하고, 딸이 회복을 해나가는 과정의 아주 사소한 변화에도 감사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반면 딸의 죽음에 대해서도 신에 대한 원망보다는 신앙으로 극복하려는 자세는 정말 가슴 아팠다.
특히 휘트니의 장례 절차를 준비하는 세락 가족의 모습과 로라라고 생각했던 딸이 사실은 휘트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반 린 가족의 모습은 너무나도 비통했다.

결국 신원이 밝혀져 휘트니는 부모의 곁으로 돌아갔지만, 로라의 부모는 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의 딸은 이미 5주전에 사망했을지라도.

이 책의 내용은 자칫하면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실화이지만, 사고의 참혹함이나 신원의 뒤바뀜으로 인한 화제성을 떠나, 두 가족이 힘든 시기를 견뎌내온 과정에 대해 집중해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휘트니의 인지 능력이 돌아 오면서 힘들어 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는 주의깊게 살펴 봐야 할 것이다.
로라가 생존했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그게 휘트니였다니.
물론 휘트니가 생존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휘트니가 느끼는 감정은 그와는 다른 무거운 것이었다.
로라 대신 자신이 살아 남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휘트니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
그러나 휘트니는 그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올해 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은 케냐의 고아원에서 일하고 있다.

휘트니의 생존을 기적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일에 대해서 그정도로 규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가족의 믿음, 사랑, 그리고 희망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책은 엄청난 사고와 그에 따른 일들을 조용하고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의 사망에 대한 슬픔과 생존에 대한 기쁨, 회복에 대한 희망이라는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조심스럽게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자 하는 태도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로라의 가족들이 운영하던 블로그에 올라온 로라(휘트니)의 회복 모습과 사람들의 응원, 희망의 메세지, 두 가족이 로라와 휘트니에게 남긴 메세지는 이 책이 주는 메세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중간중간 로라와 휘트니의 사진이 나오는데, 실제로 이 두사람은 자매라고 해도 될만큼 많이 닮아 있다. 여러가지 우연이 겹쳐 두 사람의 신원이 바뀌는 큰 아픔을 겪은 두 가족이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던 희망이, 사랑이, 믿음이 이 두 가족을 여전히 지탱해주는 큰 힘이 되어 오고 있다.

신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내려주신다고 한다.
가족의 죽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시련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로라 가족이 로라대신 휘트니를 돌보면서 느꼈던 희망과 기쁨, 휘트니의 가족이 딸의 죽음에 대해 느꼈던 절망과 슬픔은 이 두 가족의 사랑과 믿음을 더욱더 공고히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이렇게 끝났지만, 희생자들의 가족과 사고 당사자인 휘트니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더 큰 희망의 앞날을 위해서.

 

 

★ 이 책에서는 오렌지 색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데, 이것은 희망을 상징하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기억에 남는 한마디>
그래도 우리가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건 로라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또 언젠가는 우리가 로라를 다시 만날 걸 알기 때문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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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담 잭 런던 걸작선 1
잭 런던 지음, 이성은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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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포 아담」은 잭 런던의 1907년 작품으로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00여년전에 쓰여진 소설인데, 현생 인류 이전의 세계를 배경으로, 시기는 대략 홍적세 중기에 존재했던 과거의 자신의 삶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준다는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 책의 화자이기도 한 현대 미국에 사는 한 청년이 어린시절부터 꿈에서 보아 왔던 세계는 현재와 너무나도 다른 세계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류의 조상들의 모습이었고, 그들의 삶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는 그 꿈이 공포였지만, 대학에 가서 진화론을 공부하면서 그의 꿈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유전자에는 그의 조상이자 또 하나의 자신의 기억이 고스란히 축적되고 기억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꿈으로 나타났고, 그 꿈에서 본 이야기를 정리해서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 이유인즉슨, 젊은이의 과거의 기억을 가진 또 하나의 자아는 그 시대에 언어란 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과거의 자신인 '큰 이빨'의 삶을 꿈속에서 바라 보는 현재의 자신이 서술하고 있다는 구조를 취하게 된 것이다.

'큰 이빨'은 나무부족에서 태어났지만 원래 자신이 살던 공동체에서 쫓겨나 다른 부족에 편입되어 살아 가면서 친구 '늘어진 귀'를 만나 우정을 나누고, '붉은 눈'과 불부족과의 대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불부족의 옛구성원이었다고 짐작되는 '빠른 것'을 만나 사랑을 하고 자손을 낳고, 자신의 기억을 현세의 <나>에게 물려 주었다는 스토리는 마치 로드 무비처럼, 로맨틱 코미디 처럼, 때로는 사무라이 활극처럼, 다양한 연출을 통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잭 런던의 시각은 아주 흥미로웠다.

이 책에는 총 3가지 부족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나무부족>은 가장 원시적인 부족으로 인류가 처음으로 직립하고 보행을 하기 시작했을 때의 인류의 모습이다. 그러나 대부부의 생활은 나무위에서 하므로 손과 발은 모두 엄지가 갈라져 있는 형태이고, 집단적인 공동생활을 하며 사회구조는 모계사회에 가깝다. 그들은 도구도 언어도 없으며,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장 약자를 대변하는 그룹이기도 하다.

<동굴부족>은 <나무부족>보다 한 단계 위의 원시인류로 동굴속에서 살아가며, 채집과 저장을 할 줄 아는 부족이다. 물론 처음에는 저장이란 것을 모르지만, 살아가면서 배우게 된다. 물론 사냥도 할 줄 알지만, 아직 도구를 사용하거나 하지는 못한다. 물론 언어도 없다.

<불부족>은 세 부족 가운데 가장 발달한 두뇌를 가진 부족으로 그들은 수렵생활을 하며, 동물의 털가죽으로 몸을 가리고, 활과 화살이란 도구를 이용해 다른 부족을 사냥하고, 그들의 영토를 빼앗는 등 세 부족 중 가장 강하며 잔혹한 부족이다. 게다가 불까지 사용한다.  

세 부족 이외에 이 책에서 주목할 인물은 동굴 부족에 속해 있는 붉은 눈과 큰 이빨이다.

붉은 눈은 나무부족과 동굴부족의 중간적 진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그는 동굴부족 내에서도 아무도 손을 댈수 없는 존재이다. 마치 푸른 수염이야기의 푸른 수염처럼 그는 수시로 아내를 취하고, 죽이고, 남의 아내를 빼앗는 악행을 거듭한다. 그런 그가 결국 <불부족>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것은 강자가 늘 강자일 수는 없다는 이 세계의 냉혹한 룰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약자의 입장에 있던 큰 이빨(현재의 나)가 붉은 눈과의 대립에서도, 불부족의 습격에도 살아 남아, 그 기억을 현대에까지 전한다는 것은 강자가 아무리 약자를 짓밟고 지배하려 해도 그들은 끈질기게 살아 남아 그 기억을 후손에게 전한다는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봐도 극명히 들어나는 진실이다. 즉, 현생 인류 이후 수많은 강자들의 흥망성쇠 속에서도 늘 끈질기게 살아 남아 후세를 이어가는 것은 늘 약자들의 몫이었다.  

물론 진화론적 입장에서나 인류학적인 면에서 볼 때, 이 세 부족이 동시에 존재했다고는 할 수 없다. 세 부족의 진화의 과정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잭 런던이 이 세 부족을 동시에 등장시킨 것은, 강자와 약자의 관계라는 부분을 더욱더 간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일종의 장치라 생각한다. 

또한 이 세 부족이 살고 있는 것은 원시 아프리카인듯 한데, 초원과 숲에서 사는 동물들이 함께 나온다거나,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존재하는 동물이 같은 대륙에 존재하기도 한다. 물론 그 동물을 가리키는 명칭은 현재의 <나>가 설명하는 것이므로, 현재의 동물 이름으로 나오긴 하지만, 그 생김새는 현재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생긴 것으로 나온다. 딱 잘라 말해, 과학적 근거는 떨어지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은 소설속 장치로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하다. 
 
책 제목인 비포 아담은 아담 이전의 세계, 즉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난 현생인류 이전 세계를 의미한다. 당대의 새로운 학설인 진화론을 도입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소설을 쓰고, 그것을 현대에 빗대어 풍자한 잭 런던의 필력은 나의 시선을 잠시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책 속의 삽화는 찰스 리빙스턴 불이란는 삽화가가 그린 것으로 그 당시 인류의 모습과 생활상, 동물의 모습, 그리고 배경이 되는 곳의 지도도 볼 수 있다. 삽화는 글로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한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했던 것은 <현대의 문명화 된 털없는 원숭이들은 원시시대 인류를 미개하다고만 생각했지, 그들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현재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 똑같다는 것을 깨닫고는 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기억에 남는 한마디>
그 겨울에 붉은 눈은 학대와 잦은 구타를 일삼아 새로 맞이한 아내를 또 죽여버렸다. 내가 그를 격세유전을 가진 자라 부르긴 하지만, 사실 아내를 죽이는 그의 행동은 격세유전을 가진 자보다 더 야만적인 모습이다. 우리보다 덜 발달된 동물들의 수컷도 자신의 짝을 학대하거나 죽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가진 엄청난 격세유전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나는 붉은 눈만이 앞으로 다가올 남성 성향의 전조라고 생각했다. 인간 수컷만이 자신의 짝을 살해하는 유일한 종이니까. (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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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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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1990년 作.


TV피플은 이제까지의 하루키의 소설과는 무척 다른 느낌이다.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한 상실과 재생, 그리고 그곳에서 생겨나는 진실한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온 전작과 비교해보면, 이 책은 정말 독특하다.

<가노 크레타>는 체질적으로 남자들을 끌어당기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남자들은 그녀를 보면 범하려는 생각만 하고, 그녀는 벌써 몇번이나 그런 일을 당해왔다. 그래서 그녀는 숲속에 숨어서 언니와 함께 살고 있지만, 어느날 경찰이 찾아와서 그녀를 범하려고 했고, 언니인 마루타가 경찰을 죽이고 만다. 크레타는 화력 발전소 건축일이 들어와 세상밖으로 나가서 성공을 거두지만, 그녀는 결국 경찰이 죽임을 당했던 방식으로 죽임을 당한다.

<좀비>는 두 연인의 이야기이다. 어느날 두 사람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불평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싸움은 점점 더 심해진다. 하지만, 눈을 뜨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꿈은 현실과 연결이 된다.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 고도자본주의 전사(前史)>는 하루키 단편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을 가진 단편이다. 즉, 하루키 자신이 화자가 되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단편은 고교 시절 친구를 우연히 만나 그와 그 여자친구 였던 여자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는가 -비행기>는 말그대로 시를 읽듯이 혼잣말을 하는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잠>은 어느날부터 잠을 자지 못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로, 그녀는 잠을 자지 않을수록 오히려 정신이 더 맑아지는 경험을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점점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어 간다.

은 어느날 나타난 TV피플이 가져다 놓은 TV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변화하고, 아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6편의 단편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교감과 교류의 단절을 비롯해 연애라는 것으로 성립되는 순수한 사랑과 사람의 진심이 더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가노 크레타>의 경우, 여성을 남성 욕구의 발산 수단으로만 보는 사회 풍조를, <좀비>는 순수한 연애란 것은 더이상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는가 - 비행기>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교류의 단절을 보여주고,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 고도자본주의 전사(前史)>는 처녀성에 대한 우화이지만, 단순히 그런 것의 의미가 더이상 없는 요즘 현실에 대해 꼬집고 있는 듯하다. 

<잠>역시 가족과의 단절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고, 은 TV의 영향으로 인해 생겨난 사람들 사이의 감정과 교류의 단절을 보여준다. 

사실 TV를 보는 순간은 누구와의 교류도 필요없다. 단순히 TV만 보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물질 문명이 사람들 사이의 끈을 침식해 오고 있다.   

인간들이 지녔던 순수한 감성과 감정의 교류는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 문명 앞에서 말초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변화해 간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면 결국 사람들은 타인과의 교류를 잊은채, 자신과의 교류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한마디>
사람의 마음이란 깊은 우물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그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 가끔 떠오르는 것들의 모양을 보고 상상할 수 밖에 ㅡ 비행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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