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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독특한 제목과 강렬한 표지 그림.
그리고 재니스 리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에 난 이 책을 골랐다.
작가가 한국인 2세라는 것과 이것이 그녀의 데뷔작이며, 사랑 이야기란 단순한 정보만을 가지고 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홍콩의 상류층이라...
그럼,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일수도 있겠군 이라는 편견을 가진 건 사실이다.
도입부도 그런 분위기였고.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난 책에 점점 집중하게 되었고, 빠른 전개와 독특한 구조, 특이한 소재라는 것에 푹 빠져 버렸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3부는 1950년대와 1940년대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며, 2부는 1940년대 정확히 말하면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그 전쟁의 여파가 홍콩에 밀려들어 오는 시기의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은 꽤 많지만, 주인공은 3명으로 집약할 수 있다.
1950년대, 즉 소설에서 현재의 주인공은 클레어와 윌이고, 1940년대의 주인공은 트루디와 윌이다.
클레어는 영국인으로 나이 차이가 많은 남편과 결혼해 홍콩으로 오게된 여자로, 홍콩의 거물 빅터 첸의 집에서 그의 딸 로켓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게 된다. 그녀는 홍콩 상류 사회를 경험하면서, 그들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고, 그녀는 그날 이후 조금씩 변해가게 된다.
클레어는 빅터첸의 아내 멜로디의 물건을 훔치면서 그들과 비슷해지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사회에서 이방인일 뿐이다. 그리고 남편이 아닌 남자인 윌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도 역시 이루어지지 못하고 파경을 맞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후 홍콩의 상류층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나와 완차이라는 조그만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고, 그곳의 평범한 삶이 진정한 행복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트루디는 포르투갈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유라시아 혼혈계로 홍콩 사교계의 꽃과 같은 존재였다. 그녀와 윌을 서로 사랑을 했지만, 전쟁이 일어나 모든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그녀는 생존과 사랑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윌에게 버림받은 후 희망을 잃었고, 당시 홍콩의 점령군이었던 일본군인에게 살해된 듯 하다.
윌은 영국인으로 트루디와 클레어의 연인이 된 남자다. 트루디와 만날때는 트루디가 주도권을 쥐었지만, 클레어와의 만남에서는 윌이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도 그는 여전히 트루디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트루디에게서 등을 돌린 죄악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듯하다.
1940년대와 1950년대를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얼핏 보면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과거와 현재는 끊임없이 교차한다.
이건 읽다가 느낀 점인데, 클레어는 결국 윌과 트루디 그리고 그들의 과거의 일이 여전히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끼어든 인물이다.
결국 과거는 청산되지 않았고, 여전히 현재에 영항력을 주고 있으며, 공교롭게도 그 사이에 클레어가 끼어들게 된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전후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여러가지 묘사가 워낙 섬세해서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홍콩 상류 게급들의 생활을 비롯해 전쟁 중의 상황, 즉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하면서 벌어지는 약탈과 살육, 전쟁 포로에 대한 대우, 그리고 홍콩 사회에 있던 상류층인 외국인들과 중국인들의 모습, 그리고 살아 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음모와 배신, 상류층 사람들의 독특한 세계관과 가치관등등.
이 책 한 권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피아노 교사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만이 아니다. 전쟁이란 극단의 상황을 지나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인한 사람들의 변화는 처절한 정도였다.
홍콩을 식민지로 두고 있던 영국 정부가 일본군에 밀려 후퇴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묘사는 참혹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쟁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일들에 대한 묘사가 많았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면, 전쟁이란 소재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간의 대립을 극도로 몰아가는 하나의 구성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전쟁에 대한 묘사는 또한 제 2차 세계 대전이 홍콩이란 작은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우리가 잘 몰랐던 부분이기도 하다.
전쟁 이야기와 더불어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트루디가 침략자가 영국 정부에서 일본 군대로 바뀌어 버린 홍콩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모습이다. 죽음이냐 생존이냐의 문제에서 트루디는 생존하고, 또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쳤지만, 윌은 영국인의 도덕심과 자존심을 들어 트루디를 용서하지 못하고 그녀에게서 등을 돌려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윌은 그당시 자존심을 세워가면서 트루디를 저버렸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1940년대를 묘사한 부분은 전부 현재형으로 서술된다. 즉, 그에게 있어서 1940년대에 있었던 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트루디는 여전히 그의 마음 속에 살아 남아 존재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전쟁이란 것이 없었더라면 트루디와 윌은 행복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가정일뿐...
전쟁은 두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죽음을 각오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야 하는 게 옳았을까, 아니면 생존과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옳았을까.
이 물음에 대해 난 이렇게 답을 내리고 싶다.
결국 신념을 지키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살아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결국, 책의 마지막에서는 전쟁과 관련된 트루디의 진실이 모두 밝혀지게 된다. 이미 그녀는 존재하고 있지 않지만, 이제서야 그녀는 눈을 편히 감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윌은 트루디를 잃었다는 큰 상실을 겪었으나,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고, 클레어는 윌과의 사랑과 상실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배우게 되었다.
난 <피아노 교사>를 읽고 난 후, 전쟁과 상실의 고통을 통해 보여지는 진정한 사랑과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