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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을 발로 찬 소녀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냉전시대의 유물인 세포의 비밀조직 통칭 살라첸코 그룹의 실체가 드러났다. 리스베트를 위시해 리스베트의 조력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동면에서 깨어난 뱀을 사냥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리스베트는 아직 병원에 있으며 퇴원과 동시에 교도소에 수감, 그후 재판을 받아야 한다. 뱀 둥지의 뱀들은 리스베트를 어떻게든 정신병자로 몰아 다시 정신병원에 수감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는 한편, 자신들의 조직에 대해 캐내고 다니는 미카엘에 대해서도 모종의 조치을 취하기로 한다. 리스베트쪽과 뱀 둥지쪽은 각각의 위치에서 서로를 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뱀 둥지의 뱀들은 너무 오랫동안 동면을 했기에 상대의 전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파악을 하지 못한다. 아니 그것보다는 자신들의 전력에 대해 과신하기 때문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그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후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을 것이다.
밀레니엄 시리즈 3부『벌집을 발로 찬 소녀 2』의 전반부 내용은 리스베트 쪽의 준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해커들의 비밀 조직과 연락을 취한 리스베트는 그들에게 검사 엑스트룁 쪽을 감시하도록 한다. 뱀들이 도청과 감청, 불법 가택침입을 일삼는데, 이쪽이라고 법을 다 지키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엑스트룀쪽에서 나온 정보를 바탕으로 리스베트는 재판에 대비할 것이다.
아르만스키는 세포와 연이 닿아 있어 세포 쪽이 이 조사에 착수하도록 건의했고, 경찰인 홀름베리는 예전 수상을 찾아가 세포의 비밀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온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미카엘은 당시 정황을 알고 있는 스웨덴 대사를 찾아 네덜란드로 향한다. 그곳에서 미카엘은 상당한 정보를 입수한다. 그후 미카엘은 세포의 비밀 경찰과 정보를 공유하며 살라첸코 조직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숨어 있는 뱀을 사냥할 거대한 팀이 그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 것이다. 위로는 법무부 장관과 수상이 포함되고, 세포 헌법부 수호부 부장도 자신의 부하들을 모아 살라첸코 전담반을 조직했다. 또한 경찰 중에서는 엑스트룀과 반대 노선에 서있는 부블란스키를 비롯해 소니아, 스벤손이 합류한다. 말하자면 사방에서 포위망을 치는 것이다.
한편, 에리카가 사이버 스토커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는 소식을 접한 리스베트는 에리카에게 도움을 주기로 한다. 비록 병원에 감금되어 있지만,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리스베트가 하지 못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에리카가 거대 신문사의 편집장이 된 후, 에리카는 괴상한 메일들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고 차의 타이어가 펑크나고, 집안에 누군가가 침입하는 등 위협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게 된다. 도대체 누가 그런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에리카의 사이버 스토커 사건을 보면서 경찰의 대응 방식이 참 허술하단 걸 느꼈다. 목숨의 위협을 느낄 판인데, 경찰의 대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우리나라 경찰도 이런 부분에선 마찬가지이다. 특히 가정 불화로 인한 신고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데, 의외로 이런 문제가 큰 사건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집안 일은 집안에서 끝내시오, 라는 태평한 소리를 한다니까. 또한 에리카 사건은 우리가 사이버 공간에서 얼마나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기 쉬운지를, 그리고 이유없는 악의가 어디에든지 도사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리스베트의 도움과 아르만스키의 경비회사의 도움으로 이 사건이 무사히 해결되긴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일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 끔찍한 일이다.
리스베트 쪽이 이런저런 준비를 진행할 무렵 뱀 둥지도 또다른 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재판은 엑스트룀 검사와 텔레보리안 박사가 알아서 잘 진행할테니, 이들은 미카엘이 세포 내의 비밀 조직에 대한 폭로를 막고자 하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의외로 밀레니엄의 방어력도 만만치 않아 이들은 똥줄이 탈 지경이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미카엘을 더러운 사건으로 엮기로 한다. 바로 냉전시대에나 유행했던 코카인 사건으로! 미카엘을 처분할 준비를 마친 살라첸코 그룹은 미카엘의 집에 또다시 무단침입, 코카인을 숨겨놓는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감시의 대상이란 걸 아는 미카엘은 미리 그물을 설치해 두었다. 그 그물에 그들은 간단히 걸려들 것이다. 하지만 미카엘에게 닥친 위협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확실히 끝내기 위해 청부살인업자까지 동원한 것이다. 미카엘에게 또다시 절체절명의 순간이 닥친 것이다. 청부살인업자가 파견된 곳은 일반 식당으로 이곳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면 민간이 피해자가 발생하지만, 이들은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콜래트럴 데미지라 여겨버린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따윈 상관없는 것이다. 미카엘과 에리카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지는데, 이는 경찰과 세포의 공조수사 덕분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세포의 비밀 조직 살라첸코 그룹은 완전히 파멸하게 된다. 이것이 후반부의 첫번째 결착이다.
두번째 결착은 리스베트의 재판이다. 재판을 받기 위해 교도소로 보내진 리스베트는 경찰 한스 파스테의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은 텔레보리안이 와도 마찬가지이다. 텔레보리안은 어차피 리스베트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은 없다. 대충 인터뷰 흉내를 낸 후 미리 써둔 소견서를 제출하기로 마음 먹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스베트는 자신의 변호사인 안니니와는 대화를 열어 두고 있다. 물론 리스베트가 처음부터 안니니에게 마음을 연 것은 아니지만, 그녀와 만나면서 신뢰를 쌓게 된 것이다.
재판 과정은 짜릿하고 통쾌했다. 일방적인 단정과 밀어붙이기 전략을 사용하려던 엑스트룀과 텔레보리안 쪽이 밀리는 걸 보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비공개로 진행된 재판과정에서 엑스트룀과 텔레보리안이 준비한 자료는 깡그리 깔아뭉개졌다. 처음에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엑스트룀과 텔레보리안이 멋대로 떠들게 만들던 안니니가 입을 열면서 얼마나 통쾌하게 재판을 이끌던지. 또한 리스베트 역시 차분한 어조로 재판에 임한다. 이제까지의 반항적이고 반사회적인 모습은 간데 없이 똑똑하고 차분한 원래의 리스베트의 모습을 보여준다. 리스베트와 안니니가 준비한 자료는 엑스트룀과 텔레보리안이 준비한 자료의 효력을 없애기에 넘치도록 충분했다. 리스베트에게 걸렸던 기소내용은 모두 기각, 그리고 리스베트의 후견인 체제도 끝이 났다. 비록 몇번 출석해서 진술을 해야할 일은 남았겠지만, 리스베트는 이제 완전한 자유인이 된 것이다.
세번째 결착은 리스베트와 이복오빠 로널드 니더만과의 결착이다. 도주후 행방이 묘연했던 니더만의 종적이 우연히 밝혀지는데, 리스베트가 왜 이걸 놓쳤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난 살라첸코의 재산 목록을 보면서 감이 오던데... 하긴 그동안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낸 리스베트가 진정한 자유의 몸이 되어 살짝 긴장을 풀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이 일로 니더만과 MC 스바벨셰가 한번에 처리된다.
『벌집을 발로 찬 소녀』를 읽다 보면 다른 시리즈보다 리스베트가 많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은 믿지도 않고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지도 않았던 리스베트가 자신의 주치의에게 마음을 열고, 변호사 안니니에게도 마음을 연다. 물론 한번에 이루어진 과정은 아니지만, 예전같으면 절대 없었을 일일 것이다. 그런 리스베트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특히 재판이 끝난 후 안니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망설였던 리스베트의 모습을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 정도로 많이 변한 것이다. 아버지 살라첸코때문에 스웨덴 정부의 핍박을 받았고,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감되고, 후견인까지 붙여져 타인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신경했던 리스베트의 모습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만약 이 시리즈가 계속되었다면 리스베트가 점점 더 많이 변해가는 보습을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밀레니엄 시리즈에 등장하는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활약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리스베트나 미카엘은 혼자 힘으로 싸운 게 아니다. 리스베트와 미카엘과 정보를 공유하고 공조하는 무수한 사람의 노력이 있었기에 세포내 비밀조직 섹션을 햇빛 밑으로 끄집어 내고 그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리스베트의 재판에 관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병원 담당 주치의의 도움을 비롯해 미카엘, 세포, 수상과 법무부 장관, 경찰, 변호사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혼자 감당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리스베트와 미카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매가 되어 뱀을 사냥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공조란 것에 있다. 뱀은 둥지 안에 숨어서 모든 사건을 일으키고 조작해 오다 보니 바깥의 상황에 무신경했고, 자신의 조직력과 정보력만 믿고 자만에 빠졌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자가 있을 거란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뱀은 때론 나무에 올라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땅에만 산다. 야간에는 야간투시경같은 눈을 이용한 자신만의 전력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결국 위를 보지는 못했다. 매가 상공에서 뱀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스웨덴 사회의 겉모습 뒤에 감춰진 어두운 뒷면을 폭로해가는 밀레니엄 시리즈는 정치, 경제비리 문제를 비롯해 여성인신매매, 무기밀매와 마약거래, 사이버테러 같은 사회 문제, 정부기관의 공권력 악용문제, 사회복지제도의 문제, 언론기관의 문제 등을 심도 있게 다루는 작품으로, 진보성향 잡지의 편잡장이었던 작가의 신념을 그대로 담고 있다.
총 6권, 약 3,000 페이지의 대작인 밀레니엄 시리즈는 5월 내내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재능을 가졌던 저자 스티그 라르손에 경배를, 그리고 그의 너무 이른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