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 북원더러 서진의 뉴욕서점 순례기
서진 지음 / 푸른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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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에게 있어서 서점은 만남의 장소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2가에 위치했던 종로서적의 입구는 언제나 사람들도 북적거렸다. 책을 사려는 사람들보다는 만남을 위한 약속장소로~~ 그러나 꼭 약속을 위한 장소는 아니었다. 약속시간보다 좀 일찍 나가서 새책코너을 둘러보고는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손을 들고 나오기도 했는데, 그중 많이 선택된 책이 아마도 문고판이었을 것이다. 100권 이상 번호가 넘어가는 소형책자인 문고판을 한 권씩 사서 읽고 모으는 재미도 솔솔했으니까....
그리고, 학교앞에서 살 수 없는 대학교재를 사기 위해서는 무교동에 있는 전문 학술 서적을 파는 서점을 들리곤 했다. 지금은 이름도 잊혀진 서점이 되었지만.
그런데, 언제부턴가 생활속에 자리잡은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에서 신간서적까지. 클릭만으로 내용까지 검색해 보고 카드결재까지.... 그리고, 다양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서점에 갈 기회는 줄어들게 되었다. 아들 동화책에서부터 학습교재까지 사주던 동네 서점은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슬며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이런 서점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이 아닌 북러버들의 성지라고 하는 뉴욕의 서점 순례기. 83+4일 동안 51개의 서점을 찾아다닌 이야기이다. 그러나, 내용은 그렇게 간단 명료하지는 않다. 북원더러의 뉴욕 서점 순례기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아니, 여행에세이가 아니었어? 이 책의 장르가 소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서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그가 소설가라고는 하지만,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었다. 그는 장편소설 '체리'와 연작소설 '하트모텔'을 자체 출판하였으나, 별로 팔리지 않았고, 3번째 소설인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이 책도 그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는 않을 것같다. 그리고, 그는 인디 문화잡지 '보일라(VoiLa)'의 편집장을 지내며 30여 호의 잡지를 기획하였고, 2004년부터 현재까지 대안출판 프로젝트 ‘한페이지 단편소설’을 운영하면서 다수의 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문화웹진 〈나비〉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자 소개를 읽어보니 평범하지는 않은, 어찌 보면 책과 관련되어 낭만적인 삶이라고 볼 수 있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름도, 그가 쓴 작품도 읽어 본 적은 없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느낀 것은 문장력이 유연하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장르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 것은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는 참 독특한 책이라는 것이다. 뉴욕하면 세계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록펠러센터, 링컨센터,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 센트럴 파크를 비롯하여 관광할 많은 곳이 있는데, 뉴욕의 서점가를 순례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 4차례씩이나. 그가 서점에서 찾는 책은 '내가 쓰고 싶은, 만들고 싶은, 인생의 모든 궁금증을 풀어 줄 책'을 찾는 것이다. 뉴욕의 대형서점, 소형서점, 중고서점, 그리고 분야별로 특화된 서점들. 동화책, 추리소설, 희귀본,예술서적, 만화책, 슈퍼히어로물 전문 등등~~~ 그런데, 이렇게 특화된 서점중에 게이가 작가인 작품, 또는 그런 류의 작품들만을 취급하는 서점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점들을 돌면서 만나는 사람과의 인터뷰 형식의 글도 함께 실려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에세이 형식이지만, 이 책에는 3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북원더러인 이 책의 저자인 '서진', 그는 종이책을 좋아한다. 책이라는 물건 자체를 좋아한다. 책 냄새를 좋아한다. 그리고, 서점 순례를 통해 서점들이 사라지는 것을. 종이책이 사라져서 책장을 넘기는 것조차 미래에는 꿈같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나는 종이로 만든 책을 사랑한다. 서점에 들어서면 서가에 꽉 차 있는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평생이 걸려도 꽂혀 있는 책들의 절반, 그 반의 반도 읽지 못할 텐데, 이미 다 읽어버린 것 같은 황홀한 느낌이 든다. 수많은 책들이 바로 눈앞에 있기때문에 그런 착각을 하게 된다. 무형의 지식과 이야기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어서, 읽기도 전에 경험한 것 같은 그런 착각말이다. 멋진 표지와 묵직한 장정, 책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감촉과 종이 냄새는 또 어떻고, 나는 책의 내용을 사랑하는 것일까? 책이라는 물건을 사랑하는 것 일까? (p72)
또 한사람, '로버트',서점가에서 만난 사람으로 60년대 서점가로 꽉 들어찼던 뉴욕을 그리워하며, 아직까지 뉴욕에 서점다운 서점이 남아 있어 죽을 때까지 뉴욕에 있겠다는 사람이다.
마지막, 제니스. 미래에서 온 여자, 책이 사라지는 것을 구하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책이 불탄다면 구하고 싶은 세 가지 책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것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세상의 모든 책이 불타더라도 구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바로 '궁극의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이 세 명의 주인공은 쓰여지지 않은, 그러나, 쓰여진 책인 '도서관을 태우다'를 둘러싸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시공간을 넘나들고 있다. 그리고, 뉴욕서점 순례를 바탕으로 하여 찾아간 서점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그 서점의 종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들에게 책 속에서 나오는 내용인 '세상의 모든 책이 불탄다면 구하고 싶은 세 가지 책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고 그에 대한 답을 실어 준다. 그 책들이 그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즌지도 함께 덧붙여서 물어보고 내용도 실어준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이런 내용외에 로버트와 제니스라는 가공의 인물과 서진이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듯이 픽션이 가미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가 바로 픽션인 것이다. 여행기에 소설적 픽션까지. 서점 순례기, 소설, 인터뷰 기사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특색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가 알려주고 싶은 뉴욕서점들의 정보와 함께, 그가 아쉬워 하는 것은 음악에서 CD가 슬며시 사라지듯이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종이책이 북리더의 등장으로 어느 순간에는 사라질 것이며, 이미 서점들은 사라지고 있음이 너무도 확연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도서관을 태우다'라는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내용인데, 작가가 쓰는 글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꾸며내려는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그대로 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은 'The My Sterious book shop'의 파트타임 할머니의 충고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그냥 둘러보았던 서점에 대해서 써보는 건 어때요? 때로는 소설보다 논픽션이 더 픽션 같으니까. 어차피 소설을 쓰기 힘들다면, 지금까지 돌아다닌 것을 바탕으로 편하게 써요, 그렇게 워밍업 한다면 소설의 돌파구가 마련될지도 몰라요. 소설로 어설프게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설을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좋으니까요. (p84)
점점 사라져 가는 서점, 거기에 비례해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서점.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종이책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고, 우리들은 편리한 문명의 이기인 전자책 리더를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책을 읽게 될 것이다.
새 책을 받으면 갓 제본된 느낌의 빳빳한 책의 느낌, 그리고, 읽은 후에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 있다가 어느날 문득 뽑아서 읽으려는 순간에 느껴지는 묵은 종이책의 냄새. 그런 것들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도 아직은 '서진'처럼 종이책이 좋다. 그리고, 책 냄새도......
어느땐가 뉴욕에 가게 된다면 이 책에 소개된 서점중에 몇 군데는 들려 보리라.
그리고, 그때는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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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을 건너려거든 물결과 같이 흘러라 - 다시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옛이야기
이강엽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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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로 청춘들에게 우리의 옛이야기를 들려주던 '이강엽' 교수가 이번에는 '강물을 건너려거든 물결과 같이 흘러라'로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중년이후의 독자들을 찾아 왔다. 저자가 말하기를 '인생의 오후이거나 가을의 어름에 서 있는 모든 이들과 이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한다.

'오후3시'

청춘이 쇠했다고 느낄 무렵이면 우리는 곧잘 포기한 채 어딘가에 걸터앉고 만다. 일어선 것도 주저 앉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다. 누군가 이런 때를 오후 3시에 비유한 적이 있다. 무엇을 새로 하기에는 좀 늦은 듯하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른 시각이라는 것. 오후 3시. 그러나 아직 날이 훤하다. (책 뒷표지에서)
중년, 노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의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느낌을 '오후3시'로 참 잘 표현한 것 같다. 청춘들에게 열정이 있다면, 오후 3시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깊은 연륜이 쌓이는 때가 아닐까? 그들도 청춘시절이 있었기에 생동감있고 힘차게 세상을 살아 왔기에, 이제는 좀더 다듬어진 삶의 지혜들이 응집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또다른 새로운 길이 생기듯이 청춘이 끝난 자락에서 그동안의 삶의 지혜를. 그리고 세상살이 이야기를 풀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도 저자인 이강엽 교수는 오후3시에 도착하려는 지점에 있거나, 이미 그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들려주는 옛이야기 53편은 전작인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보다 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풍부해졌고 넉넉해 진 것이다. 바로 '일희일구(一喜一懼)' 인 것이다. 한 편으로는 기쁘고, 한 편으로는 두렵다. 이 시기에 접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살아온 세월들이 쌓인 만큼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안목은 그만큼 깊고 높아졌을 것이다.
'현실에 꿈과 유머를 더한 것이 지혜' (p146)라고 했다. 이런 유머가 깃든 지혜가 옛이야기인 것이다. 대부분의 옛이야기들은 비유법을 많이 사용한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은유적으로 풀어 나감으로써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은연중에 깨달음을 갖게 한다. 그런 장치로 옛이야기들에는 대조적인 인물이나 동물, 사물들을 등장시켜서 그 의미를 비교하게 되고 거기에서 또 깨달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옛이야기들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그 속에 유머와 위트가 곁들여져 있어서 듣거나 읽는 맛을 더 해준다. 이런 이야기들을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에 의한 현실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에 해당되는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자 나름의 신선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해석까지 해준다. 아무러면, 오후 3시에 접어든 사람들이 옛이야기를 듣고 그 해석을 못 할까마는 그의 해석은 때론, 우리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설명해 주기에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은 언젠가,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들이지만, 다시 들어 보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도  재미있고,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흰 볼기, 검은 볼기'의 이야기처럼 똑같은 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인생에서도 똑같은 경우를 경험하기도 했을 것이다. 현실과의 괴리감이 없는 이야기들이기에 더 의미있게 느껴지는 것이다.채근담에 나오는 말 중에
태평한 세상에는 몸가짐을 반듯하게 해야 하며, 어지러운 세상에는 몸가짐을 원만하게 해야 하고, 말세에는 반듯함과 원만함을 함께 써야 한다. (p152)
옛 문헌에 나오는 글들이나 옛이야기들은 선조들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에 농익은 경험과 지혜가 묻어난다.
'흑치상지의 말무덤'의 일깨움처럼 우리들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서둘러서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지지는 않는가.... '너무 빠르면 무엇하랴~~~' 이것이 옛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지혜인 것이다.
어느덧 인생의 가을은 깊을 대로 깊어서 가만 두어도 열매가 여물고, 단풍이 들며 잎이 떨어진다. 천리마를 타고 팔구백 리만 간들 어떻겠으며, 말을 잊고 하릴없이 가을 산을 소요한 들 또 어떻겠는가. (p221)
저자는 우리에게 옛이야기를 통해서 지나온 삶의 소중함과 새로운 꿈을 꾸고 그 꿈을 펼치기에 아직도 충분한 시간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놓쳤던 부분들, 소홀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를 일깨워준다.
그리고, 마지막 말. 심상(心想). 그 안에 모든 답이 들어 있다 말해준다.
워런 버핏 같은 투자의 귀재가 만일 사람에게 투자한다면 대체 그 사람의 무엇을 보고 투자할까? 보나마나 심상일 것이다. 사주를 보고 투자하면 하수이고, 관상을 보고 투자하면 중수이며, 심상을 보고 투자하면 고수이다. 또한, 과거만 보면 하수요, 현재도 보면 중수요, 미래까지 보면 고수이다. 심상, 그 안에 모든 답이  들어 있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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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아버지
카렐 판 론 지음, 김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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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덜란드'하면 아름다운 풍차마을이 떠오르기도 하고, 유명한 화가인 고흐, 렘브란트, 몬드리안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항상 함께 생각나는 것이 매춘, 안락사, 게이들의 결혼, 마약 등이다. 그만큼 네덜란드는 아름다우면서도 개방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쓰는 것은 '내 아들의 아버지'의 작가가 네덜란드사람인 '카렐 판 론'이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에서는 상당히 명망이 있는 작가라고 한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 뿐만 아니라. 저널리스트,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로도 활약을 하고 있다.
'내 아들의 아버지'
처음엔 한 여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의외로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아내의 외도? 소설은 상상의 세계이기에 외도에 관한 이야기도 얼마나 다양하던가.... 자신의 아내가 남편모르게 결혼을 했다는 설정까지.
그런데, '내 아들의 아버지'는 아버지가 소설의 주인공이니, 아들의 아버지는 그가 아니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나(아르민)는 30대  한 아들의 아버지이다. 아내 모니카는 10년전에 너무도 갑자기 감염성 질환에 걸려서 며칠만에 세상을 떠난다. 3살난 아들 Bo를 남겨둔채로. 아르민은 아내의 친구였던 엘런과 애인관계가 되는데, 그녀가 아르민의 아이를 낳기를 원하는데, 임신이 안되자 검사를 받게 되고,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무정자증 환자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아들인 'Bo는 누구의 아들이란 말인가. 누구나 닮았다고 하는 눈매와 왼발이 오른발보다 5mm 정도 작은 것은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

죽은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아들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추적한다. 아내가 알고 있던 남성들을 한 번쯤은 의문해 보면서.....
그 추적과정에서 아르민이 느끼는 모니카와의 사랑들. 그 사랑을 의심해 보기도 하고, 아내의 불륜을 추측해 보면서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배경이 네덜란드이기에, 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개방적이다. 아르민과 모니카는 아들을 낳아 기르는 부부관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르민과 모니카의 사랑에 모니카의 친구인 엘런이 끼어들기도 한다. 이성을 사귀는 과정에서 다른 이성과의 관계도 개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것들이 네덜란드의 성문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르민과 모니카의 사랑, 아르민과 엘런의 사랑.... 히피적이고, 즉흥적인 자유연애와 동성 연애와 같은 이야기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이 안되는 것이기에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자유분방한 성문화속에서도 자신의 아들인 줄 알았던 자식이 다른 사람과의 외도에서 낳았다는 사실은 아르민에게 큰 상처로 다가온다.13년이란 긴 세월을 속아서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리라. 이와같이 이 소설은 내 아들의 아버지를 추적한다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로 출발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과연 누가 Bo의 아버지일까에 관심이 집중되기는 하지만 강한 추리력은 없다. 어디에서 아들의 아버지를 찾아야 할지 실마리를 찾기도 그리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이야기의 구성이 과거와 현재를 어떤 규칙성이 없이 그저 왔다 갔다 한다. 어떤 사건이나 단상에 의해서 과거의 이야기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무질서한 시간 이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상황에 따른 아르민의 심리 변화는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결말은 반전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추측조차 할 수 없었던 커다란 바위 하나가 가슴에 '쿵'하고 떨어질 정도로 큰 충격을 가져다 준다.

"여자가 잉태한 아이는 그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닮는다. 남편을 사랑한다면 남편을 닮을 것이요, 난봉꾼을 사랑한다면 그 난봉꾼을 닮을 것이다. (p356)
번개 때문에 시작된 일이라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만도 못한 일이군." 나는 엘런에게 말했다. "진짜 인생은 할리우드 영화만도 못한거야." 엘런이 말했다. (p357)
한마디로 '쇼킹' 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우리의 정서로는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누가 알고 있었을까? 왜 아무도 이야기 할 수 없었을까?
그렇게 큰 비밀을 가슴에 안고 아내인 모니카가 남편인 아르민을 마주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으로 남게 된다.
'있을 수 있는 일'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그 사이에서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오른편과 왼편, 이것들은 서로 형제이다. 이것들은 불가분의 관계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선은 선하지 않고, 악은 악하지 않으며, 삶은 삶이 아니고,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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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위하여 - 그리운 이름, 김수환 추기경
한수산 지음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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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작가, 그 분의 작품이라면 망설임없이 읽을 수 있는 작가중의 한 분이 '한수산'님이다.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작가들에 대해서는 흘러간 날들의 추억들이 함께 담겨져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겐 이런 추억이 아마도 없을 것이며, 오랜 세월이 지난후에 지금의 독서가 그런 추억의 한 장면을 만들어 줄 것이다.
작가 '한수산'은 70년대에 아주 인기있는 작가였다. 특히, 그의 작품중 세월의 흐름속에 잊혀져가고 퇴락해 가는 곡마단을 소재로 하여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는 곡예사들의 삶과 그속에서의 사랑과 슬픔을 그린 '부초'는 요즘 말로 '인기짱'이었다. 그밖에 '해빙기의 아침'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들이 그의 유려한 문체로 쓰여져서 독자들에게 많이 읽혔다. 그당시에 중학교 교사였던 나는 출퇴근시간과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읽었다. 옆자리의 음악 선생님은 결혼을 하신 2자녀의 엄마이며, 남편이 미국에 있어서 이민을 가기 위해서 대기상태였었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나, 이민이 수월하지 않아서 기다림에 지쳐 있던 중이었다. 그런 그 분도 책을 많이 읽으셨는데, 내가 읽는 '한수산'님의 소설을 아주 좋아했다.

음악 선생님은 주부였기에 읽고 싶은 책은 많았으나, 책을 구입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읽고는 그 선생님에게 빌려드리곤 했는데, '한수산' '박범신''최인호''김홍신' 등의 작가의 작품들을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요즘도 그분들의 작품을 대할 때는 꼭 '민구' '정화'엄마였던 음악 선생님이 생각난다. 지금도 미국에서 그분들의 책을 열심히 읽고 계시려나.....
이렇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한수산' 작가가 어느날 갑자기 절필을 하셨단다. 나중 나중에 알려진 소식은 일명 '한수산 필화사건' 그리고 '일본에 계신다' 등등....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했지만, 1980년대가 그런 시대였기에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후에 나가사키 원폭투하와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의 처참한 삶을 그린 '까마귀' 시리즈를 읽으면서 우리의 역사속 불행을.... 그리고 작가의 섬세한 문체와 힘있는 문체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그런 '한수산'님의 신간인 '용서를 위하여'는 어떤 내용일까? 그리고, 얼마나 힘있는 글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의 큰어르신이셨던, 그러나, '바보'로도 불리셨던 '김수환'추기경...
그 분의 선종이후, 싸늘한 막바지 겨울의 명동거리에 나도 서있었다. 발이 시리고, 손이 시리고. 1~2시간이면 되겠지 하는 맘에서 줄을 섰던 것이 명동의 골목 골목을 돌고 돌아서.... 점심도 굶은채로 조용히 그 줄에 서있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닌 내가. 신교인 개신교의 모태신앙은 있지만, 세례교인이라는 명칭은 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신앙의 세계와는 담을 쌓은 내가 그곳에 있었다. 차마 그분을 그냥 보내드릴 수가 없어서. 그분의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그 한마디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용서를 위하여'는 작가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마카오로 김대건 신부와 함께 신부수업을 받으러 갔던 한국의 2번째 사제인 '최양업'신부에 관한 소설을 쓰는 과정의 2월 어느날. 김수환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그분의 발자취를 더듬어간다. 군위의 어린시절의 집에서부터, 소학교, 동성고, 그리고 일본에서 신부 수업을 받던 조치대까지. 조치대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가진 '김수환'이 겪었을 마음까지도 가늠하여 가면서. 그리고, 첫 사제가 되었던 성당과 추기경과의 짧았던 단 한 번의 만남까지를 생각하면서 1년여에 걸쳐서 추기경의 삶을 더듬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의 씨줄이 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날줄은 무엇일까..... 그것은 70년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그가 어느날 갑자기 '국가원수 모독'‘군비방과 이적행위’‘사회부정시’라는 말도 안되는 죄목으로 끌려가서 갖은 고문과 인간적 모욕을 당한 후에 겪게되는 정신적 혼란. 그것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작가의 삶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그래서, 그들을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소설의 씨줄이 된 김수환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화해와 일치는 남을 받아주고 용서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60)

작가는 말한다.
신부님, 이걸 누가 모르나요? 진리와 정의와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 세상이 그래야 한다는 거 다 잘 압니다. 그걸 위해서 추기경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러써 우리 모두 하나가 되는 일치를 향해서 나아가자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그분 말씀이 오히려 저를 참 힘들게 합니다.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 일치로 가자고 하시는데, 사랑과 용서라는 걸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거 같아서요. (263)
한수산 작가의 고문 사실은 그 일이 있은 오랜 시간이 흐른후에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언론매체를 통해. 그리고 작가의 어떤 글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바로 이 책 '용서를 위하여'에 그 상황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잔인한고 모욕적인 행동을 서슴치않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어찌 이런 일은 당한 사람에게 감히 '용서'라는 단어조차 내뺃을 수 있겠는가. 그의 글은 정말 이런 부분에 대해서 너무도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담고 있다. 우리가 금기시하는 '신앙'에 대한 부분까지도. 그리고 '주님'에 대한 원망과 비난까지도.
미움을 넘어서기 위한 흐름에도 순서가 있으리라고. 용서란 무엇인가. 사랑, 그렇다. 그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너희의 살도 나의 삶도 그리고 우리들의 삶도 사랑하는 것이었다. 용서는 거기서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p286)
누구든 참으로 용서한다는 것은 그를 참으로 잊어버려야 가능한 게 아닐까요? 하느님이라면 가능하지만 그건 인간으로서는 좀처럼 이루어내기 힘든일이지요.(p329)


그러나, 이제 작가는 30년동안 마음속에서 진정한 용서를 하지 못했던 그가 당했던 고문들을 곱씹어보면서, 그리고, 김수환추기경의 삶과 말씀을 되새겨 보면서, 또 자신에게 백두산 정상에서 세례의식을 거행하시고 좋은 말씀으로 위안을 주셨던 이경재 신부를 기리면서, 일본의 시라야나기 세이치 추기경의 선종을 접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된다. '글로 하느님을 증거하리라' 그가 쓰려고 하는 최양업 신부의 이야기를 쓸 때에, 그리고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쓸 때에 그가 고문 받았던 체험이 그대로 작품속에 녹아내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이 작가에게 행한 고문의 의미가 아닐까.... 작품속의 글이 단순한 활자가 아닌 체험에서 우러나온 글이 아닐까.... 추기경님도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오는데 한 평생이 걸렸다." 하시지 않았던가.

아름다운 옛추억과 함께 떠오르는 작가 '한수산'
그의 신작인 '용서를 위하여'는 이렇게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말씀을 추적하면서, 작가 자신의 삶과 개인적 체험, 특히 30여 년에 걸친 세월속에서도 도저히 용서를 할 수 없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이 작품이 소설이기에 픽션인지, 아니면 너무도 생생한 인물의 삶이기에 '논픽션'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픽션'과 '논픽션'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연륜이 쌓인 삶의 단상들이 유연한 문체로 쓰여져서 읽는내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겨지는 조각, 조각의 퍼즐들이 쌓여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도중에 30 년만에 제자 8 명을 만나게 되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내가 첫 수업에 입었던 옷차림, 수업시간에 공부한 내용중의 일부분까지도 기억하는 그들. 처음엔 낯설게 느껴지던 얼굴들이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하는 과정에서 옛날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매치되어서 하나로 만들어짐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의 작가의 30 년전의 처참했던 고문의 기억과 나의 30 년전의 아름다웠던 시절의 기억들은 상반되기는 하지만,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듯 하다.
이 책을 덮는 이 순간, 오랜만의 시간 여행에서 돌아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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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여행처럼 - 지금 이곳에서 오늘을 충만하게 사는 법
이지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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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여행에세이를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낯익은 이름이기에 망설임없이 선택한 '언제나 여행처럼'
'삶이 여행처럼 새롭고, 즐겁다면.... ' 하는 단상을 가지고.
  내가 '이지상'작가를 알게 된 것은 2004년에 터키여행을 준비하면서 였다. 동로마제국의 수도였기에 오랜 기간동안 영화를 누렸던 곳. 그러나, 우리에겐 유럽이나 미국의 역사를 중심으로 공부하다보니, 이슬람 문화권의 나라들의 역사를 등한시하였고, 그래서,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읽었던 책이 '길 위의 천국'(2003)이었다. 그때 저자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글의 흐름이 마음에 들었었다. 얼마후, '황금소로에서 길을 잃다'(2004)가 출간되었음을 알자마자 또 그 책을 읽게 되었다. 2000년에 여행을 했던 프라하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서.....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던 '황금소로'... 그러나, 내 기억엔 길을 잃기에는 너무 단조롭고 좁은 길이 아니었던가. 물론, 은유적인 표현이겠지만, 여행객들로 북적이던 그 길위에서 아름다운 동행들과 느꼈던 느낌들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어둡고 통제된 모습이 아닌, 자유롭고 활달한 사람들로 넘치는 중세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던 것이었다. 이렇듯, 여행은 나에게는 새로움과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는 일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지상'에게 있어서 여행은 무엇이었을까? 그도 처음엔 나처럼 이렇게 규칙적인 직장생활의 틈바구니속에서 일탈을 꿈꾸면서 떠났던 여행이었지만, 나처럼 잠시 머물다 돌아오는 여행이 아니고, 오랜 동안~~~~ 그리고, 유명 관광지가 아닌 일반인들이 쉽게 찾지 않는 곳까지 자신의 마음이 가고자 하는 곳을 찾아서 배낭을 메고 떠나서, 머물고, 또 다른 곳을 향하여 떠나고, 머물고, 그리고 돌아오고....
이런 과정을 오랫동안 하게 된다. 그가 '여행은 황홀한 독'이라고 했던가.


우리들에겐 그의 방랑생활(?)이 부럽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직장생활의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떠났던 여행속에서 또다른 권태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무엇때문에?'라는 마음의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토록 열망하던 여행길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고, 고통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도 했고, 노마드적(유목적인)삶이 될 우려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한계였고, 인간의 한계였던 것이다.
그에게 '삶은 여행이고, 세상은 수행의 장'(p76)이었던 것이다.

방랑과 방황은 존재 자체의 숙명인 것이다. (p17)
떠남과 돌아옴. 고뇌와 희열, 유한과 무한은 하나가 없으면 하나가 존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공존하고 있으며 이를 알아 차리는 것은 '깨어 있는 마음'이다. (p130)
'언제나 여행처럼'은 그런 깨달음을 알게 된 저자가 쓴 13번째의 여행이야기이다.
나는 왜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고, 돌아와서도 정신은 안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가? 그 흔들림의 정체는 무엇인가? (p8)
그가 여행을 하면서 부딪힌 많은 고민들.
그것은
방랑과 방황, 그리고 노마드적인 삶은 인간의 숙명이었고, 흔들림은 인간을 효율성, 생산성, 기능, 수단으로 대하는 근대화된 사회에 대한 저항이었다. (p8)
저자는 이런 삶과 여행사이에서 가지게 되었던 고민들을 사회학적 시각으로 넓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가 지금까지 '공간여행자'였던 것에서 벗어나 인식의 지평선을 넓혀서 '시간 여행자'가 되어서 이 책을 쓰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에세이라기 보다는 삶과 여행사이에서 가지게 되는 것들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들이 들어간 인문서에 가까운 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부모들의 관심사인 교육에서부터, 88만원세대, 백수세계, 노마드적인 삶, 공정여행 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사회학적 시각으로 풀어준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50줄에 들어선 저자가 늦깎이 대학원생으로 '사회학 석사'가 되고, 강연을 하고, 대학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다져진 인문학적 지식들이 풍부하기때문이다. 이 책의 4부 '노마디즘과 상상력의 세계'는 그중에서도 가장 인문학적 시각이 많이 들어간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여행에세이라는 생각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려고 했던 독자들은 당황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쯤은 우리가 일탈로 꿈꾸는 여행을 통해서 이런 사회학적 시각으로 삶과 여행을 함께 풀어보는 것도 좋은 독서가 아닐까 한다.
그가 이 책에서 남기는 마지막 글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지평선을 넓히는 일이다. 시간 여행자가 되면 매일 똑같은 아침을 맞아도 가슴이 설렌다.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꽃과 아이들 웃음소리와 빵 한 조각, 커피 한 모금 속에서 여행을 한다. 무지개만 보아도 설레던 동심을 찾으면 일상이 여행이 된다. 그러다 언젠가 다시 배낭을 메고 떠나는 그 순간, 우리는 하늘을 나는 것이다. 혹시라도 공간 여행자에서 시간 여행자로 가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세상은 넓다. 그러나, 사유와 상상의 세계근 더욱 더 넓다. 사유하고 상상하시라. 우리는 지구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고 있지 않은가? 일체유심조(일체유심조). 세상은 스스로 맏느는 것이다. (p360)
'모든 것은 자기의 선택이요, 운명'이라고 덧붙인다.
어떠십니까? 시간 여행자가 되어서 '일상이 여행'이고 싶지 않으신지요~~
그리고, 가끔은 낯선 길위에서 새롭고 아름다운 만남을 가지고 싶지 않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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