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장편소설에 비해서 단편 소설이 지니는 매력은 글의 호흡이  짧으면서도 결말부분의 반전이 그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  오정희의 짧은 글들을 모은 작품인 '가을여자'는 그런 묘미를 맛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한 편, 한 편 읽어내려가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인 오정희는 1947년생이니, 꽤 연륜이 있는 작가이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하고 근래에는 2003년에 '새'가 독일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독일 주요 문학상인 '리베라투르'상을 수상하였으니 해외에서 한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가을여자'는 저자가 데뷔 41년을 맞는 동안에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이나 휙 스쳐간 단상, 이미지 때로는 한 편의 긴 소설을 위한 스케치가 짧은 소설들로 영상화되기도'(작가의 말 중에서)하였는데, 이렇게 하여 쓰여지고 발표되었던 글들을 추리고, 또한, 발표되지 않은 글들까지 포함하여 25편의 작품을 4부분으로 나누어서 싣고 있다. 글의 형식은 콩트 형식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가을여자'들은 제목에서도 은유하듯이 인생의 봄,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의 20대를 지나서 30대 혹은 40대의 여성들이 주인공들이다. 봄, 여름을 거치는 과정에서 인생의 찬란했던 시절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아직도 결혼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옛추억의 남자를 생각하기도 하고, 시모와의 갈등으로 애궂은 자식에게 화풀이를 퍼붓기도 하는 그런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작가가 연륜이 있어서 그런지,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많은 인물들을 묘사해서 그런지,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작가의 문학적 바탕이 탄탄하면서도 여성들의 마음과 가정의 세세한 이야기까지를 통달했기에 섬세한 인물 묘사와 심리 묘사가 수준급에 달한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어쩌면, 이렇게도 잘 묘사했을까?'하는 공감과 함께, 작품에 따라서는 마무리부분의 반전이 그야말로 속된 말로 '죽여준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기염을 토할 정도로 반전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25편의 글들은 모두 우리가 흔히 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공감이 더 커지는 것이다. 
남편의 갑작스런 질병으로 홀로 된 30대 여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레이스 뜨기 등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언제부턴가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놀아주는 열 살 정도의 연하남에게 살짝 마음이 간다. 그래서 생계수단이 아닌 연하남을 위한 뜨게질을 하고, 소식이 끊긴 그 남자가 궁금해서 그가 산다는 숲속길을 지나 찾아간 곳은 정신 요양원, 그가 가지고 다니던 은빛 펜치, 그는 그것이 자유의 상징이라고 했는데, 그 펜치가 의미하는 자유는? 그는 과연 누구?
그녀에게 살짝 피어오르던 사랑의 마음은 무엇이 되었을까? (그 가을의 사랑)
34살의 시립 도서관 사서는 무료한 토요일 오후를 보내기 위해 자선 음악회에 가고, 자신의 모습처럼 썰렁한 음악회를 보고 맥주 한잔을 하려간 곳에서 친절한 남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호감을 보인다. 그녀의 반지에 관심을 보이며 접근한 그 남자의 실체는?(첫 눈 오던 날)
더 황당한 이야기는 펜팔 친구와의 만남일 것이다.옛날에는 펜팔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녀와의 첫만남을 위해서 갖가지 준비를 다했다. 아름다운 시구, 경구 등을 읊을 준비까지 모두 완료, 멋지게 소나무 아래 앉자마자 그의 손에 소똥이 뭉클...  그 길로 남자는 내달려 버렸다. 오랜 세월이 흐른후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펜팔 친구였던 그녀는 그때의 일을 묻는다. 그러나. 그 순간을 말 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수치심을.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인연이 될까?
그보다 더 심한 그 옛날 똥을 만졌을 때의 그 부끄러움과 배반감이 다시 일어났다. 왜 일까? 그런 것이 모두 가을 여자의 이야기이니 왜 재미가 없겠는가?
죽은 아버지의 물건은 어머니는 모조리 엿장수에게 팔아 버렸다. 돌아가시고 얼마 안되어서... 그런데 칫솔만을 버리지 않고 1년 넘게 운동화를 빨 때 사용하시곤 했다. 그런, 어머니와 성묘를 갔다 오는 길에 어머니는 낚시터 근처에서 잉어 3마리를 사신다. 그리곤 방생을 하신다. 낚시꾼의 미끼에 걸리지 말고 멀리 멀리 가라시면서... 어머니는 '우리 가튼 아낙네야 생사의 깊은 이치를 어찌 알겠느냐만 돌아간 네 아버지 생각이 견딜 수 없이 간절해질 때마다 이렇게 죽을 목숨을 살리는 일로 마음을 달래 왔지, 단지 자기 마음의 위안이겠지만 사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게 이런 것 밖에 더 있겠니.....'(p92) (방생)
이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우리 어머니들의 먼저 간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인 것이다. 
엇나갈 수 밖에 없는 부자의 대화 한 편 소개한다. (시든 꽃의 고백) 석구씨는 언제나 바쁜 스케즐로 얼굴 보기도 힘든 자녀들에게 큰 마음먹고 멋진 외식을 한다. 대학생 딸, 고등학생 아들, 중학교 작은 아들... 사사건건 엇나간다. 집에 돌아와서 뒤풀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침 텔레비젼을 보려 들어온 작은 아들에게 "네 근본이 무엇이냐? 네가 누구냐?" " 단백질과 아미노산 합서에 DNA...." 아들은 말하다 말고 멋쩍은 듯 씩 웃으며 화면의 곧 고꾸라질 듯한 춤을 따라 흥얼거린다. 아이쿠, 석구씨는 도리없이 이마를 치며 신음했다. 밀양 박: 첨정공파의 15대손으로 태어나.... 그가 아이들에게 들려 주려던 가문의 뿌리며 역사가 실로 용비어천가의 구절만큼이나 황당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P128)


이렇게 몇 작품들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가을여자'는 구질 구질한 주부들의 일상의 이야기, 중년 부부의 동창회 이야기, 옛 사랑의 추억, 착각한 사랑 이야기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이 동원 되고 있다. 어쩌면 서른이 넘어 마흔에 접어 들고 있는 '가을 여자'들은 대학 시절에는 패션 모델 못지 않게 잘 차려 입고, 좋은 곳에서 훌륭한 음식을 먹기도 하면서 한 때를 풍미했던 그런 여자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삶에 찌들어서 궁색하고, 시어머니와 갈등, 자식들과의 다툼으로 자신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때는 성악가를 다녔던 아내가 송년회에 갈 변변한 옷 한 벌 없어서 언니집에 가서 빌려 입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남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듯이....
그래서, 왠지 쓸쓸하고 외로운 가을을 닮은 여자들이지만, 삶에 있어서의 그 어떤 불행과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인생은 바래지 않는 순정한 꿈'이라는 것을 (작가의 말 중에서) 그리고 환멸, 슬픔, 쓸쓸함, 또한 우리의 생을 살게 하고 보다 높이 들어 올리는 힘(작가의 말 중에서)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이 담겨 있는듯해서 더욱 친밀하게 느껴지고, 짧은 글들이 주는 반전의 묘미가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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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남긴 한 마디 - 아지즈 네신의 삐뚜름한 세상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9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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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터키의 작가는 우리들에게는 좀 생소한 느낌이 든다. 몇 년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 '내이름은 빨강','이스탄불'등이 우리에게 낯익은 작품들일 것이다. 그런데, '아지즈 네신'은 1915년생으로 터키 출신의 작가이다. 1972년에는 고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위해서 '네신 재단'을 설립하여 죽은 후에도 자신의 인세가 재단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런 '아지즈 네신'의 소설의 성향은 사회풍자 소설과 콩트인데, 짧막한 글속에는 인간의 허황된 욕망이나, 결함,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 등이 날카로운 필치로 쓰여져 있다. 마치 이솝우화를 읽는 것처럼 동물과의 대화와 교감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인간에게 따끔한 질책을 날리는 솜씨가 제법 매섭게 느껴지는 것이 그의 풍자 소설들의 특징이다.



이 책은 1958년에 터키에서 처음 출간이 된 후에 벌써 오십 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터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들이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신선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권위 의식, 위선, 모순, 부정, 부패, 폭력 등을 향해서 작가가 터뜨리는 펀치라고 생각되기 때문인 것이다.

네신은 살아 생전에 부당한 현실과 맞닥뜨릴 때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싸웠다. 그리고 작가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참여의 방식으로 풍자를 선택했다. 풍자는 인간이 지녀야 할 살갑고도 무거운 웃음이며, 부드럽고 인간적인 비판이다.(옮긴이의 글중에서)

 이 책은 15꼭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이솝우화처럼 동물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인간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내용이 아주 쉽게 쓰여져서 구태여 풍자의 탈을 썼다고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해석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그런 짧막한 글들의 모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까마귀가 파다샤(이슬람국가의 군주)를 뽑는다면, 그것도 파다샤가 될 사람의 머리위에 까마귀가 똥을 싸야지 그 사람이 파다샤가 될 수 있다면.... (까마귀가 뽑은 파다샤) , 왕과 빈대 가장 살찐 사람이 왕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곳의 빈대가 마른 사람에게 속삭인다. 나를 살찌게 해주면 당신도 살찌게 해 주겠다고, 그 꼬임에 속아서 빈대를 이 집 저 집 살찐 사람에게 이동시켜 주고, 빈대는 피둥 피둥 살이 찌고, 빈대를 피해서 피신해 가는 집에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은 들어가서 그 집안의 음식들로 배를 채우는 식의 행동이 계속되고, 급기야는 빈대는 너무 살이 찌고, 그덕에 왕이 되기는 하지만, 결국엔 빈대의 밥이 되고 만다는.... 권력을 쫓아 가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인간의 심리가 펼쳐지고, 결국에는 파멸로 끝을 맺는다.

 
'늑대가 된 아기 양'이야기도 참 많은 것을 시사한다.순한 양과 양을 지키는 개와 함깨 사는 양치기 이야기이다. 양치기는 철심이 박힌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양에게 양젖을 짜고, 털을 깎고,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먹는 등 양에게서 뺏었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뺏기에 광분해 있다. 이런 고통에 시달리던 양들은 차츰 줄어 들게 되고, 그러자 어린 양에게 양젖을 짜기 위해서 쫓아 다니자, 어린양은 자신은 아직 너무 어려서 젖을 짤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양치기는 계속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양을 괴롭힌다. 이를 피하기 위해 도망다니다 보니 양의 다리는 길어지고 발톱은 날카로워지고, 이빨도 날카로워지게 되었다. 살아 남기 위한 수단이라고나 할까.그러던 어느날, 모든 양들과 양치기 개는 어린양에게 물려 죽게 되고, 양치기가 어린양에게 다가외니 어린양은 말한다. '나는 어린양이 아니야. 나는 너때문에 늑대가 되었어.'라고... 국민들도 부당한 정책이나 폭력, 고통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떤 분노의 표출이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스타를 닮은 원숭이'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좋은 이야기일 것이다. 외모와 유행을 따라가는, 자신의 취향과는 관계없이 흉내만 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라고 경고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 책의 표제이기도 한 '개가 남긴 한 마디'는 풍자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이야기 일 것이다.
'카슴'은 동물은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카라바쉬'라는 14살 먹은 개였다. 가족도, 친구도 없던 '카슴'은 '카라바쉬'가 죽자, 성대한 장례식을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하여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고 이맘(이슬람 예배 지도자)에게 이야기하고 좋은 관을 준비하여 장례를 치루던 중에 관의 옹기진 부분에 개꼬리가 나온 것을 본 사람들에게 관에 든 것이 아이가 아닌 개라는 것을 들키게 되고, 이곳의 관습에 맞지 않는 개의 장례식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된다. '카슴'은 여러 이야기로 변명을 한다. 이 개는 충견입니다. 라마단도 지켰습니다. 선행을 많이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했습니다. 기부도 했습니다. 신학교에 양탄자도 선물했습니다..... 재판장은 당신 미쳤소, 어떻게 개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이요?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카슴'은 재판장에게 말한다. 그런데 이 개가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허리춤에서 쌈지를 꺼내면서 재판장님게 금화 오백 냥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재판장을 눈물을 글썽이면서 신의 이름으로 개의 명복을 빌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쯤되면 풍자 소설의 백미라고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돈이라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부조리를 눈감아 주기도 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권력자들의 행태에 이야기인 것이다.



독자들은 이런 네신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말도 안되는 엉뚱하고 엉터리 같은 설정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글 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게 되면 씁쓸한 웃음을 짓게도 되고, 때론 통쾌한 웃음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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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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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너무 사소해.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작은 것들로 부터 시작되는게 아닐까?
언젠가 그 안에서 보물을 발견하게 될거야. (prologue)

 
낡고 보잘 것 없고, 망가지고 허름한 것들....
다른 사람들은 '왜 저런 걸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 지는 것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그리고 그 사물만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책이 바로 '사소한 발견'이다. 글은 장현웅, 사진은 장현웅과 동생인 장희엽이 찍었다.

 
(목차)
INDEX 사소한 사물, 그 사전적 의미 
PROLOGUE
PART 1. MY LITTLE DISCOVERY 일상의 사물에서 비일상을 꿈꾼다

(단추, 지구본, 필름, 옷걸이, 털실, 냉장고, 탁상달력, 나침반, 가위, 탁상시계, 안경, 키보드, 변기, 상자, 칫솔)
PART 2. MY LITTLE DISCOVERY 따스한 시선으로 본 추억의 몽타주
(선풍기, 레코드,흑백사진, 모기향, 낡은 운동화, 바비인형, 타자기, 곰인형, 지우개, 봉투, 라디오, 아버지의 구두, 이름표, 리코더,야구공, 연필)
PART 3. MY LITTLE DISCOVERY 아날로그의 냄새와 감촉이 좋다

(깡통로봇, 유통기한, 양초, 전화기, 뽁뽁이, 낡은 카메라 가방, 성냥, 노트, 빨간약, 미니카, 폴라로이드 카메라, 코카콜라. 수현이 한 살 옷, 열쇠)
PART 4. MY LITTLE DISCOVERY 삶과 느림에 대한 소소한 발견

(알약, 손목시계, 선인장, 종이컵, 머리끈, 압정, 백열등, 구둣솔, 잃어버린 모자, 클립, 돋보기, 조화, 자물쇠, 저울, 포크와 숟가락)
- EPILOGUE
- Memory it ㅣ Your little discovery

이처럼 모두 60가지의 사물에 대한 단상들을 적어 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사소한 사물들에 대하여 연필로 정밀 묘사를 하고 그 사물들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적어 나간다. 우리들은 너무도 사소하다고 생각하여 그 사물들에 대하여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 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사전적 의미....
그 사전적 의미를 읽어보니 수긍이 가고 재미있다.

 

우리들은 우리주변의 사소한 사물들에 대해서 언제 한 번 관심을 보이기나 했던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도 그런 사소한 사물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산책길에 핀 들꽃을 보고 어여쁘다고 눈길을 주기도 했고, 동네 강아지를 보면, '안녕~~'하고 말도 붙여 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사소한 사물들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참 수긍이 가는 부분이 많다. 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의 작가도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부분들이었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지만 슬쩍 지나가 버릴 수 있는 하찮은 물건들....
그런데, 그속에는 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바비 인형' - 바비 인형은 우리 세대의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인형이었다. 나는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는 바비 인형, 그런데 막내 동생에게 바비 인형이 선물로 들어 왔다. 동생은 너무 좋아서 네모난 상자속에 바비 인형을 그대로 가두어 둔 채 아끼고 아꼈다. 너무 좋아서.... 그런데, 어느날 보니, 동생은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 나이가 훌쩍 지나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노란색 Tombow 연필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내가 어릴적에는 연필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 당시만해도 연필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았다. 외국에 나갔던 온 사람으로부터 받은 노란색 Tombow 연필과 아주 예쁜 꽃 그림이 그려져 있던 연필을 나도 학창시절에 사용해 보지를 못했다. 아까워서 고이 고이 간직하다가 지금까지도 그냥 가지고 있다.
이처럼 사소하지만 추억과 마음이 담긴 사물들이 찾아 보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아들에게는 미니카의 기억이 그럴 것이다. 하나, 둘씩 사서 모으던 미니카에 대한 추억....
아주 사소한 사물을 통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소한 발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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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양장)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혼마 야스코 지음, 이훈 옮김 / 역사공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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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책 중에 '권비영'의 소설인 '덕혜옹주'가 있다. 이 책보다 조금 빨리 출간된 동명의 책인 '혼마 야스코'의 '덕혜옹주'는 소설이 아닌 역사 문화 부문에 속하는 책이다. '혼마 야스코'는 일본의 여성사 연구가이며 캇스이 여자대학 문학부 일본 문학과에서 전임강사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덕혜옹주'라는 인물에 대한 생각은 일본인과 한국인에게는 어쩌면 껄끄러운 주제인데, 일본인이 이에 대한 생각을 담아 냈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되기도 하는 점이다.






'혼마 야스코'는 일본이 '덕혜옹주'라는 '개인'을 통해 한민족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말살하려고 했는지 그것도 '덕혜옹주'가 여자였기 때문에 왕자들보다도 유린의 강도가 훨씬 강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p10) 고  옮긴이는 말하고 있다.
언젠가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덕혜옹주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있으나 '혼마 야스코'의 '덕혜옹주'는 그 책에서 느꼈던 것과는 좀더 다른 시각으로 '덕혜옹주'에 관한 이야기를 끌어 나가고 있다.

 
고종이 환갑 나이에 얻은 금지옥엽 사랑스럽던 '덕혜옹주'는 멸망해가는 나라앞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한 수 있는 것마저도 빼앗긴채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일본으로 가야만 했고, 그이후에는 대마도 번주의 자손인 소 타케유키와의 정략 결혼을 해야만 했다.
덕혜의 삶은 국가와 권력앞에 희생양일 수 밖에 없었으며, 그로 인해 정신병에 시달리면서 그 긴 세월을 정신병원에 갇혀서 살아야 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특이한 점은 그동안 우리들은 덕혜옹주의 이야기에만 촛점을 맞추어서 생각했었는데, '혼마 야스코'는 덕혜의 남편이었던 소 타케유키의 이야기에도 촛점을 맞추고 있다.
소 타케유키는 죽을 때까지도 덕혜옹주와 그 사이에서 태어났던 마사에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었는데, 뜻밖에도 그는 시, 문학, 영문학 등에 조예가 깊어서 교수직에 있었기에 그가 남긴 시를 통해서 소 타케유키의 정신 세계와 덕혜옹주와 딸인 마사에에 관한 글들이 여기저기에 실려 있어서 그것을 통해서 덕혜와 마사에와의 생활을 분석해 보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1장 : 덕혜옹주의 성장과정
2장: 소 타케유키의 입장에서 그의 성장과정
3장~4장 : 두 사람의 만남과 이혼의 복잡한 상황과 배경
5장 : 덕혜옹주가 고국에 돌아와서의 생활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해서 1994년 여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덕수궁, 창덕궁, 낙선재 등을 둘러보고 한국 복식사의 대가이셨던 석주선 선생님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소 타케유키의 일생을 더듬어 보기 위해서 대마도 등을 방문한다. 그리고 소 타케유키의 시집인 '해향'의 시들을 통해서 덕혜옹주와 마사에에 관한 글들도 찾아 본다. 그밖에도 조선왕조실록과 각 일간지의 덕혜옹주에 관한 내용의 조사 등도 계속하면서 덕혜옹주와 소 타케유키의 이야기를 찾아 본다.
작가가 많은 자료수집과 현지답사 등을 거쳐서 찾아낸 내용중의 중요한 관점은 '덕혜옹주'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한국병합이 이토히로부미의 협박외교였음을 자인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사실과 다른 시각에서 덕혜옹주를 바라보는 것은 그녀의 정신병력에 관한 것인데, 작가는 이미 덕혜옹주의 어머니인 양귀인의 사망이후에 정신병 증세가 있었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소타케유키와의 결혼후에 그의 냉담함때문에 정신병이 걸렸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여러 책들과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 또한, 소 타케유키가 덕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도 잘못된 편견임을 그의 시에 나타난 아내에 대한 시어들을 통해서 해명하기도 한다.

  (어려운 용어는 분홍색 칸속에 설명을 따로 적어 두고 있다.)
 


(소 타케유키의 詩 내용을 통해서 덕혜옹주와 딸 '마사에'에 관하여 알아봄)
 
그러나, 그것은 작가가 일본인이기에 그렇게 해명하고 나서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詩라는 것은 얼마든지 마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미화되어서 써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소 타케유키가 덕혜옹주에게 심한 행동과 냉담한 반응을 보였을지라도 그에 대한 미안함으로 시를 쓸 때는 아내에 관한 이야기가 얼마든지 부드럽고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덕혜옹주의 삶은 조선왕조의 멸망과 함께 질곡의 세월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어릴적의 몇 년을 제외하고는 힘겹고 외로운 생활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친지라고는 영친왕부부 밖에 없는 이국 땅에서 그녀의 설움은 너무도 컸을 것이다.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는 살 수 없는 세월이었을테니까. 그녀가 정신줄을 놓아 버린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덕혜옹주의 비극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인 마사에 역시 신경쇠약으로 어느날 자살을 한다는 유서를 남겨 놓고 가출한 후에 소식조차 없으니 말이다. 그때는 이미 덕혜옹주가 정신병원에 있었을 당시이기에 그런 슬픔을 몸소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본 여성학자에 의해서 쓰여진 우리의 마지막 왕조의 희생양인 덕혜옹주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소설가가 묘사한 덕헤옹주의 이야기는 어떻게 쓰여졌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권비영'의 '덕혜옹주'도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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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어른을 위한 동화 17
이희정 글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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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주 예쁜 책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잠깐 읽을 수 있는 책, 그런데 그 내용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이희정'은 나비하고 참 친하다. '한국미술협회' 회원이기도 하고 연고지는 아니지만 어느날부터 제주도에서 '풍경이 있는 화실'을 운영하고 갤러리 '나비'의 관장이기도 하다. 화실의 창문을 통해 나비들이 들어와서 놀다가기도 한다고 하니 이처럼 행복한 삶이 어디있을까?
내가 부러워하는 것 중의 세가지는 글을 잘 쓰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그리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중에 두 가지를 잘한다. 거기에 노래솜씨도 좋을지 모르니 부럽고 부러운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나비'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읽고 나면 감동이 오는 그런 짧은 이야기이다.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가 모여사는 숲의 초여름에 나뭇잎에 붙어 있는 알에서 깨어난 분홍 애벌레, 그 분홍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의 아픔과 꿈을 쓴 글이다.
초여름의 숲에는 분홍 애벌레가 갉아 먹을 잎새들이 많다. 그런데 구름사이로 날아가는 별왕나비의 이동을 보고는 나비가 되기를 꿈꾼다. 바다넘어 먼 캘리포니아까지 먼 길을 떠나는 나비는 가는 도중에 죽을 수도 있고,너무 멀어서 나비의 날갯짓이 아닌 바람을 타고 날라가야 하기때문이다.
 
'일하고 또 일하고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개미는 분홍 애벌레에게 '너는 그냥 나뭇잎맘 갉아 먹으면서 빈둥거리는 애벌레로 태어난거야' 그러니 그냥 애벌레로 살아가'고 한다. 그런데 분홍애벌레는 별왕나비떼를 본 후에 자신의 안정적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 '나비가 되어 먼 곳으로 가보고 싶어요' 이 말을 들은 상수리 할아버지와 졸참나무 할머니는 분홍애벌레에게 희망을 준다.
"나비가 되려면 먼저 꿈을 가져라. 꿈을 꾸는 것은 너이지만 그 꿈이 너를 이끌어 줄거야. 일을 결정할 때는 신중해야돼. 그리고 네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해." 라고 일깨워준다.
별도 반짝이면서 이야기한다. "내가 빛나는 건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빛을 밝혀주기 위해서야, 그게 나의 소명이야." 라고.
분홍 애벌레는 깨닫는다. 더 나아진 나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할 줄 아는 나비가 되기로 한다.
나비가 되어 '바다 건너편에 닿지 못할 수도 있고, 가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꿈도 없이 오로지 나뭇잎만 먹고 사는 현실에 만족할 수 없다.'
상수리나무 할아버지와 졸참나무 할머니는 분홍애벌레에게 희망을 심어준다. '간절히 원한다면~~' "꿈꾸는 애벌레만이 나비가 될 수 있다."
  어느날 발견한 갈색 덩어리속의 흉칙한 모습의 번데기... 번데기는 '나비가 되려면 잠시 어둠속에 있어야 해' 번데기에서 나비가 탄생한다. 아름다운 날개, 연약하고 비늘가루로 덮인 날개.... 쭈글거리던 날개로 날갯짓을 하니 멋진 모습의 나비가 된다.
분홍 애벌레는 번데기를 통해 사랑을 알아 간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분홍 애벌레도 나무숲에서 번데기가 되고, 잠시 어둠속에서 두려움과 아픔을 느끼지만 아름다운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날라간다. 이제 분홍나비가 된 애벌레는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갈 것이다.
나비가 되려면 기다림이 있어야 하고, 그 기다림은 고통을 수반하며, 그 기다림의 과정, 그 자체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분홍 애벌레가 꿈을 가졌듯이 우리도 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간절히 원한다면 희망은 우리앞에 다가올 것이다.
지금의 풍족하고,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준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 분홍 애벌레가 기다렸듯이, 우리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외롭고 힘들고, 두려운 일들과 마주치더라도 그 아픔을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보석과 같은 별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빛을 밝혀주기 위한 것처럼.....
분홍나비가 어떤 힘겨운 일들이 생기더라도 바다를 건너 훨~ 훨~ 날아가듯이....
분홍 애벌레에서 분홍 나비가 되는 과정이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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