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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7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의 101번째 작품.
처음 히가시노를 만났던 것은 단편집이었을테다. 단편은 조금 익숙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다가, 다른 책을 읽었을 때 매우 흥미로와서 한때 엄청나게 그의 책을 읽었더랬다. 책태기를 날려버릴 위력이 그에 이야기 속에서는 있었다. 그러다 한동안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초반에 그의 작품에서 느꼈던 힘이 사라졌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다른 작가로 애정을 옮겨간 것일까. 아마도 후자였던 듯 싶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내 생각은, 다시 히가시노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가가형사 시리즈는 < 기도의 막이 내릴때 >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혹은 잘 못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 희망의 끈 >을 읽었을 때는 세대교체를 하는게 아닌가 했는데, 이번 <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에서 어김없이 가가 형사가 돌아왔다.
한여름, 호화 별장지에 휴가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바베큐 파티를 즐긴 밤, 다섯명이 살해당하고 한명이 다치는 참극이 벌어지고 만다. 더군다나 이 사건의 범인은 호기롭게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경찰을 불러달라며 피묻은 나이프를 내놓는다. 범행동기는 사형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밝힌채... 내가 히가시노를 좋아했던 이유도 간혹 그의 작품에서는 범인을 초반부에 밝혀둔다. 이런 발칙한 일이.. 장르소설이라면 누가 범인일까를 맞추지는 못하더라도 의구심을 가지며 찾는게 독자의 소임일텐데, 대놓고 '이 사람이 범인이야'라고 밝혀놓고, 왜 그 사람이 범인인지 서서히 옥죄어 오는 수사방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범인은 내가 죽기 위해 그냥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거야라며 스스로 잡히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그래도 왜 가족을 잃어야만 했는지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싶어한다. 게다가 이들에게 전해진 메세지 하나.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당혹스럽지만 분명 이 메세지를 받은 이중에 제 발이 저리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당시의 사건을 되집어보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검증회를 열기로 했다. 이 때, 장기 휴가중이던 형사 가가 교이치로가 참석하게 된다. '그에게는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평범하게 보이려고 해도 그의 매서운 눈은 피해갈 수도 없다. 서서히 밝혀지는 그날의 참상이 드러나면서 그 속의 작은 사건들도 수면위로 나타나게 된다.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대형 재난이 벌어질 때 그것과는 상관없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대형 참사 속에 가려진다는 글을 읽었는데, 이것도 그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다섯명이 죽는 끔찍한 사건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책장을 덮을 때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가가를 속여서도 안된다. 그에게는 거짓말은 통하지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