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을 듣고 참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것과는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다. 프롤로그를 읽을 때부터 이해할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삐딱선을 타고 책을 읽은것만 같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이라는 말을 이야기하기에는 뭔가 억지가 느껴진다. 이주민을 향해 "한국인 다 되었네요"라는 말이 가장 모욕적인 표현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자신이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아도 우리는 당신을 온전히 한국인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모욕적이라고 했고, 굳이 한국인이 '되고'싶은 것이 아닌데 왜 한국인이 된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였단다. 아무리 지구촌이라고 해도 엄연하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인데, 애초에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니고 사고방식도 다를진데, 당연히 외국계 한국인이지 어찌 한국인이 되겠는가. 어떤 말을 할때 그 사람의 의향까지 알아보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한국이 될 생각도 없으신데 한국인이 다 되었다고 해서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가.


혹은 대학의 본교 캠퍼스와 분교 캠퍼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분명 본교 캠퍼스와 분교캠퍼스간의 대학선발 기준도 다르다. 그 선발 기준이라는 것은 성적과 역량일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 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은 저자가 너무나도 일반화만을 시켰다고 생각된다. 어쩜 본교 캠퍼스에 다니는 학생들은 머리가 뛰어나지 못해서 엄청난 노력으로 인해서, 가령 노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공부를 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노력을 한 학생은 더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이라면 학생 개개인의 노력은 무시하고 오로지 단순한 분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는 이해할수가 없다. 노력의 댓가에 차별이라는 것을 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하지만 무조건 공감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드라마 "미생"은 보지는 않았지만 그 곳에서 언급된 명절선물의 차이이다. 정규직은 햄세트를 주고 비정규직은 식용유 세트를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이미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임금과 계약기간등에서 차이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물 세트라든가 호칭으로의 차별은 옳지 않다고 본다. 또한 나는 노키즈존에 대해서는 찬성이다. 식당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싫어한다. 대중교통에서 신발을 신고 의자에 올라서는 아이들도 싫다. 이것은 보호자가 충분히 제지 해 줄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스레 입장을 거부할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차별이라고 한다면 어느 외딴섬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많은 사람과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는 배려라는 항복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유색인종이라서 내가 몸이 불편해서 입장을 거부한다는 것은 엄연히 차별이라고 할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이 불편했던 이유는 모든 사안에 있어서 너무나 일반화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아이를 보면 어떤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이해를 잘한 아이도 있고, 잘 찍은 아이도 있다. 낮은 점수를 받은 아이를 보면 열심히 노력은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런아이도 있고, 전혀 공부를 하지 않은 아이도 있다. 열심히 했던 아이들이 차별을 논한다면 난 이해해줄수 있을것 같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은 아이들, 요행을 바라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이들은 차별을 논하면 그냥 무시할것 같다.


어떤 경우라도, 무엇을 할지라도 누군가는 차별당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누가봐도 차별이 맞다 할수도 있고, 이게 왜 차별인데라고 의문을 가질수도 있다. 우리가 차별의 간극을 줄일수 있는 것은 성숙된 의식이 아닐까. 내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당신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은 이것을 할수 없을꺼야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내가 도와주면 그 사람도 문턱을 잘 넘을수 있으니까, 시간을 단축할수 있으니까라는 생각때문이다. 이것을 그 사람도 문턱을 잘 넘을수 있는데 왜 굳이, 단축한 시간도 겨우 조금인데 왜 굳이라고 말한다면... 어디 이 세상 살아갈수 있을까. 그래서 더 성숙한 의식을 갖기 위해서 책을 읽고, 고민하고, 생각을 교환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차별주의자가 되련다. 그것이 선량하든 불량하든간에.. 나는 노력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좋다. 하지만 안하무인격인 사람은 싫다. 아무리 선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도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은 싫다. 나의 행동에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타인을 차별하는 행동을 했다면 나도 무언가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멸일기 - 윤자영 장편소설
윤자영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교 새내기 시절... 낯선 강의실에서 과조교가 새내기를 확인하기 위해 이름을 불렀었다. "이지영"이라고 불렀을때, 60명중 여학생이 4명이었던 우리 강의실 여학생의 대답을 기대했는데.. 굵직한 목소리의 "네~" 그때부터 '지영'이라는 이름은 여학생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이 일이 생각나는 건... 윤자영작가님의 이름을 처음 들어을때, 단연코 여성작가분이라고 생각했다. 왠 항상 이름에 대해서 우리는 편견이 있을까. 윤자영작가님이 남성작가분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또 한번 당황했었다. 그랬는데, 이번에 그분의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괜시리 더 반가운 소설...


공대출신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었을 때, 역시 공대 출신이다 보니 이야기 소재가 나와 맞는것 같고, 전문성이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작가의 역량덕분이었겠지만, 왠지 전문성이 넘쳐 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자영작가님도 현직 생명과학 교사라고 한다. 아마 더 그래서 이 <파멸일기>가 더 사실적으로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학생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부모는 학교를 탓한다. 학교는 관심부족의 부모를 탓한다. 학생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이지만, 대부분 한 쪽의 문제만은 아니다.....(생략)... 부디 희망의 학교가 절망의 학교로 느껴지는 학생이 한명도 없기를 희망한다. - 작가의 말 中, p.333 -


이승민은 존재감이 없었다. 그냥 없는 아이같았다. 어느날 찾아온 승민의 아버지. 혹시 학교생활에 문제가 없느냐. 승민이가 자살시도를 했었단다. 승민의 담임 홍서린 선생인 그래서인지 자꾸만 승민이에게 눈길이 갔다. 하지만 여느때처럼 승민이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근처에서 학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생겼다. 피해자는 홍서린 선생이 가르치는 1반 학생 공승민이었다. 공승민의 어머니는 아들을 확인하고는 이승민의 짓이라고 실신을 반복하면서도 이야기했다. 이승민이 중학교 때부터 아들을 괴롭혀 왔다고...


얼핏보면 누구나 공승민이 학교폭력의 피해자라고 느낄수 있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이승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중학교 시절부터 공승민이 이승민을 괴롭혀 왔다. 교묘하게 공승민은 이승민 앞에 나타나서 뺨을 때렸다. 공승민이 너무나 괴롭힌 탓에 한번 날렸던 주먹이 앞니를 강타했고 공승민에게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이승민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냉정해보일지 모르지만 공승민의 죽음이 별로 안타깝지 않다. 순간 야쿠마루 가쿠의 <침묵을 삼킨 소년>이 떠올랐다. "마음이랑 몸이랑 어느 쪽을 죽인게 더 나쁘냐?"라며 소리치던 어린 중학생 아이.


학생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라는 작가님의 말이 유독 눈에 띄었다. 공승민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승민의 엄마가 학교를 원망하고 중학교시절부터 얽혀있었던 이승민과의 관계때문에 난리치는 것은 조금 이해는 간다. 실질적으로 아이를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의 행동으로 보면 안하무인격 엄마이다. 또한 여자친구에게는 이제 맘을 잡은 아이이지만, 이승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역시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 <파멸일기>는 학교를 배경으로 씌어져 있지만 단순하게 학교폭력으로 인한 사건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학교폭력'이라는 기반위에서 우리 사회의 더 큰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항상 지적하고 우리가 아는 사회 문제들은 왜 조금도 나아지질 않는 것일까. 청소년들의 범죄는 더욱더 교묘해지고 더욱더 잔인해졌다. 과연 강력한 처벌만이 그것을 막을수 있을 것인가. "학습된 무기력"으로 점철된 가정의 문제점은 아니었을까. 삐뚤어진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나 남녀간의 사랑도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희망의 학교가 절망의 학교로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처럼 우리의 인생도 절망적이지 않길, 어두운 밤을 지나 아침이 오듯 희망적이 되길 빌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카오프렌즈, 그건 사랑한단 뜻이야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흔글·조성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시절 까지만 해도 이런 예쁜 책을 참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아니아니, 사회 초년생 시절에도 읽은것 같은데... 메세지를 보낼때도 스티커를 붙힐때도 그냥 곰돌이(라이언 미안), 토끼(무지 미안), 가발쓴 고양이, 엉덩이(어피치 미안)... 그정도였던 것같다. 카카오프렌즈 아르테 에세이로 이녀석을 만난후로는 제대로 아이들 이름도 알고, 귀여운 모습들에 마음 속 날카로운 감정도 점자 둥글둥글 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코로나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날선 요즘 읽으면 더욱더 안성맞춤일것 같은 책이다.


간혹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나타나

우리의 마음을 헤집기도 해

그럴 땐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는 게 좋을지도 몰라

모든 사람을 반드시 이해할 필요는 없어

- 냅두자 (p.38) -


항상 책을 읽을 때는 그날의 내 감정, 그날의 내 상황이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게 당연한것 아닌가.. 일률적으로 밑줄쫙, 숨겨진 의미, 반어법, 은유법... 이러면서 읽을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요즘 가장 공감하는 글을 만났다. 요즘 통 이해할수 없는 사람이 나타난다. 왜 저러나..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하다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저러나... 하고 싶기도 하다가 고민이 많았었다. 그런데 간단하게 해법을 찾았다. 굳이 내가 이해할 필요가 없는것 아닌가. 어차피 남인걸 뭐.. 나를 이해하기도 힘든세상, 남의 행동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 전혀 고려않고 'My way'를 택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금물! 지킬건 지킨다구~


날 행복하게 만드는 작은 습관들

몇 개쯤 만들어 두는 것이 좋아.

아무리 힘든 일이 다가와도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행복해질 수 있어.

- 행복해지는 습관(p.167) -


날 행복하게 만드는 작은 습관이 무언인가 생각을 해봤다. 단연코 책을 펴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책만 많이 넣어준다면 2, 3주간의 자각격리도 거뜬히 견딜수 있어라고 말하는 나를 보면 참 어이가 없다.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책을 집어들었는데, 요즘에는 당연히 책을 집어든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에스컬레이터를 타로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에도 한장이라도 읽기 위한..남들이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못할때, 뭐 그리 급한게 있다고 걸어가면서도 보나 했는데, 남들도 나를 보면 그러겠다. 뭐 급한게 있어서 책을 손에서 못놓나. 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작은 습관들이었나보다.


항상 한놈만 패듯 추리스릴러를 읽어왔던 내게, 오늘은 카카오프렌즈 친구들이 내게 사랑을 전한다. 덩달아 내 입꼬리도 올라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다. 외국에서 입국해서 혹은 확진자와 접촉때문에 자가격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헌데, 2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이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이기심 때문에 무단으로 이탈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나는 책만 많이 넣어준다면 2주든 3주든 외출하지 않고 자가격리를 잘 할 텐데 말이다. 그만큼 그냥 책이 좋다. 재밌는 책을 다 읽지 못할까봐 조바심이 나곤한다. 그래서 대단한 독서가들을 보면 감탄스러움을 놓을수 없다. 특히나 이 책의 저자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으로 재직중이고 작가이자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수상했으며 '책의 수호자', '우리 시대의 몽테뉴', '도서관의 돈 후안'등으로 불리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독서가이자 장서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들었던 생각이 나는 요즘에 태어난 것이 참 잘한 일이다 싶다.수 세기 동안, 그리고 수많은 나라에서 이뤄졌던 것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초기의 기독교 사회에서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은 - 교회 밖에서 - 거의 귀족과(13세기 후에는) 상류층 부르주아들의 특권(p.108)이라는데 그 예전에 혹시라도 상류층이 아니었다면 억울해서 어찌 살았을지 모르겠다. 또한 아르헨티나의 작가인 에세키엘 마르티네스 에스트라다는"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독서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다.(p.37)"라며 체계적인 도서 목록을 불신하고 그런 간통 같은 독서를 권장한다. 솔직히 한때는 어느 학교의 권장도서라든지, 아니면 가끔 독서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책들을 읽은적이 있다. 모두가 다 아는, 요즘에 유행하는 그런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독서의 형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 그런 독서는 싫다. 자신만의 독서의 색을 잃는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나만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조금씩 그 독서의 폭을 넓혀가고 싶다.


요즘 참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는 독서인구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를 책에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고야 말았다. 수 세기에 걸쳐 수많은 독재자들이 잘 알고 있었다시피 대중은 문맹일 때 가장 다스리기 쉬운 집단으로 남는다(p.406)라는 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피에르 볼의 <혹성탈출>에서도 인간이 유인원의 지배를 받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두뇌를 쓰는 일을 싫어하게 되었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았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조차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영화는 유치해서 우리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유인원들은 조용히 생각했다. 그들의 두뇌는 고독한 사색 속에서 발달했다."라고 말한다. 양질의 독서라는 것은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 고전을 읽어야 양질의 독서일까, 인문학 서적을 읽어야 양질의 독서를 하는 것일까. 어떤 책의 종류를 읽는다는 것보다는 독서후에 사색이 단연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활자라는 자체로만 남들에게 보여주기식의 독서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책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책과의 의사 소통은 입술과 혀 끝이 아니라 두 뺨의 홍조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보내지는 법이다(p.84)라는 말이 더욱더 마음에 와닿는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정말로 책읽기를 좋아하는 독서가들은 책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사색을 하면서 두뇌를 쓰기때문에 그래서 독재자들은 대중이 독서가로 변하는 것을 제일 두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책이 좋다. 무거워도 좋고 가벼워도 좋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책과 소통하고 싶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옛 현인들을 지혜도 만나고 싶고, 미래도 만나보고 싶고, 그리고 설레는 마음도 느끼고 싶고 뒷내용이 궁금해서 눈커풀을 들어올리면서 밤을 새워가며 그렇게 읽고 싶다. 그리고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도 시간가는줄 모르게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염없이 하고 싶다. 아마 이런 생각은 이 책을 둘러봐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녹슨 도르래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스터리 전문 서점. ' 살인곰 서점', 나랑 완전 맞는 서점이다. 책속에서 애정하는 마이클 코넬리가 언급되어서 더더더욱 맘에 든다. 한때 일본 작가들의 비전문적인 사람들,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져서 미스터리한 일들을 해결하는 풍의 소설을 많이 읽었었다. 표지도 너무 끌렸고, 짧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에 실제로 굵직한 사연이 들어 있었던 이야기들. 서점 주인도 있었고 바리스타도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이 책도 전작이 있다고 해서 비슷한 류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한가지 사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마도 탐정계에도 비수기 바람이 불었나보다. 살인곰 서점일을 도우며 탐정일을 하고 있는 하무라 아키라. 서점이 일주일에 사흘만 열게 되면서 수입이 대폭 줄어들어 난데없는 생활고로 고생중이다. 자신의 "백곰 탐정사"에도 좀처럼 의뢰인이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날 74살의 할머니의 뒷조사 의뢰가 들어오고 미행을 하던 가운데,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할머니가 아키라의 머리위로 떨어지게 된다. 안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미쓰에 할머니와 인연으로 그녀의 연립에 머무는 대신 시시콜콜한 일들을 돕게 된다. 미쓰에 할머니의 손자 히로토는 8개월전 아버지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사건에 대한 일시적 기억상실을 겪고 있다. 히로토에게 그날의 기억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아키라. 그런데 일은 이상한 방향으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이 소설의 저자인 와카타케 나나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스터리 단편의 세 가지 필수 요소를 "적어도 두 번 이상의 반전, 독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인상적인 복선, 그리고 강렬한 마무리"라고 밝힌바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단편에서 과연 이럴수 있을까. 단편에 무지 약한 나는 반전을 찾기도 전에 이야기가 끝나버려 단편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400여페이지의 장편소설이라면 저자의 말에 수긍할 수 있다. 단연코 미스터리 소설이 갖추어야 할 자세가 아닐까 싶다. 요즘 자주 그런 강렬한 결말들도 장식된 책들을 읽다보니 표지만 보고 이 책을 너무나도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표지가 왜 이리 귀여운지 말이다.


이번 책으로 하무라 아키라 탐정을 처음 만났지만 그녀의 첫 등장은 1996년 <네 탓이야>에서 20대의 날선 탐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의 <녹슨 도르래>에서는 40대 베테랑 탐정이라고 한다. 어쩐지.. 책속의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나의 움직임처럼 뭔가 삐그덕 거린다는... 몸은 삐그덕 거려도 베테랑 탐정의 면모를 볼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