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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일기 - 윤자영 장편소설
윤자영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4월
평점 :
대학교 새내기 시절... 낯선 강의실에서 과조교가 새내기를 확인하기 위해 이름을 불렀었다. "이지영"이라고 불렀을때, 60명중 여학생이 4명이었던 우리 강의실 여학생의 대답을 기대했는데.. 굵직한 목소리의 "네~" 그때부터 '지영'이라는 이름은 여학생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이 일이 생각나는 건... 윤자영작가님의 이름을 처음 들어을때, 단연코 여성작가분이라고 생각했다. 왠 항상 이름에 대해서 우리는 편견이 있을까. 윤자영작가님이 남성작가분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또 한번 당황했었다. 그랬는데, 이번에 그분의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괜시리 더 반가운 소설...
공대출신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었을 때, 역시 공대 출신이다 보니 이야기 소재가 나와 맞는것 같고, 전문성이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작가의 역량덕분이었겠지만, 왠지 전문성이 넘쳐 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자영작가님도 현직 생명과학 교사라고 한다. 아마 더 그래서 이 <파멸일기>가 더 사실적으로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학생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부모는 학교를 탓한다. 학교는 관심부족의 부모를 탓한다. 학생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이지만, 대부분 한 쪽의 문제만은 아니다.....(생략)... 부디 희망의 학교가 절망의 학교로 느껴지는 학생이 한명도 없기를 희망한다. - 작가의 말 中, p.333 -
이승민은 존재감이 없었다. 그냥 없는 아이같았다. 어느날 찾아온 승민의 아버지. 혹시 학교생활에 문제가 없느냐. 승민이가 자살시도를 했었단다. 승민의 담임 홍서린 선생인 그래서인지 자꾸만 승민이에게 눈길이 갔다. 하지만 여느때처럼 승민이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근처에서 학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생겼다. 피해자는 홍서린 선생이 가르치는 1반 학생 공승민이었다. 공승민의 어머니는 아들을 확인하고는 이승민의 짓이라고 실신을 반복하면서도 이야기했다. 이승민이 중학교 때부터 아들을 괴롭혀 왔다고...
얼핏보면 누구나 공승민이 학교폭력의 피해자라고 느낄수 있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이승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중학교 시절부터 공승민이 이승민을 괴롭혀 왔다. 교묘하게 공승민은 이승민 앞에 나타나서 뺨을 때렸다. 공승민이 너무나 괴롭힌 탓에 한번 날렸던 주먹이 앞니를 강타했고 공승민에게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이승민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냉정해보일지 모르지만 공승민의 죽음이 별로 안타깝지 않다. 순간 야쿠마루 가쿠의 <침묵을 삼킨 소년>이 떠올랐다. "마음이랑 몸이랑 어느 쪽을 죽인게 더 나쁘냐?"라며 소리치던 어린 중학생 아이.
학생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라는 작가님의 말이 유독 눈에 띄었다. 공승민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승민의 엄마가 학교를 원망하고 중학교시절부터 얽혀있었던 이승민과의 관계때문에 난리치는 것은 조금 이해는 간다. 실질적으로 아이를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의 행동으로 보면 안하무인격 엄마이다. 또한 여자친구에게는 이제 맘을 잡은 아이이지만, 이승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역시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 <파멸일기>는 학교를 배경으로 씌어져 있지만 단순하게 학교폭력으로 인한 사건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학교폭력'이라는 기반위에서 우리 사회의 더 큰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항상 지적하고 우리가 아는 사회 문제들은 왜 조금도 나아지질 않는 것일까. 청소년들의 범죄는 더욱더 교묘해지고 더욱더 잔인해졌다. 과연 강력한 처벌만이 그것을 막을수 있을 것인가. "학습된 무기력"으로 점철된 가정의 문제점은 아니었을까. 삐뚤어진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나 남녀간의 사랑도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희망의 학교가 절망의 학교로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처럼 우리의 인생도 절망적이지 않길, 어두운 밤을 지나 아침이 오듯 희망적이 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