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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지구 벙커X - 강영숙 장편소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평점 :
저자는 가뭄, 해일, 황사, 바이러스 등의 소재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여러차례 다뤄온 작가라고 한다. 나는 이번 <부림지구 벙커 X>에서 처음 만난 작가님이다. 이번 <부림지구 벙커 X>는 네번째 장편소설로 지진이 휩쓸고 간 도시의 모습과 벙커 속에서도 끈질기에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진이라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생소한, 아니 어쩌면 나에게만 생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간혹 우리나라에서도 지진이 발생했고, 몇해전 경주, 포항지역에 다소 큰 지진이 발생하여 멀리 떨어진 우리 동네 경기 북부지역에서도 그 진동을 가족들은 느꼈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무딘 신경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지진으로 인해 부림지구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화분에 꽃힌 풀처럼 땅속에 박혀 있다가 구출된 유진은 부림지구 벙커에서 정착해 살고 있다. 정부는 부림지구를 오염지역으로 판단하고 고립시켰고, 오염지역의 이재민들이 부림지구를 떠나 근처의 N시로 이주하기 위해서는 몸에 생체인식 칩을 주입하고 '관리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길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부림지구 벙커에 남게 되었고, 간간히 제공되는 생존키트로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데 없다.
그냥 이주시키면 될 것을 왜 굳이 생체 인식칩을 주입하려 하는 것인가? 이것은 또 다른 차별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감염병이나 다수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관리대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의 다른 이면을 보는 것만 같다. 어쩔수 없이 지금의 확진자들을 동선을 공개하고 감염병 예방과 치료를 위한 관리대상이라고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아시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이나 자가 격리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에 "한국사람의 집"이라는 스티커를 붙히는 듯한 행위는 그릇된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부림지구는 한때 제철단지로 잠깐의 번영을 누렸지만, 지금은 대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모인 지역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더더욱 재건을 신경쓰지 않고 부림지구를 오염지역으로 고립시키고 방치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 혹은 우리나라에서 출발한 사람들의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다소 이해할 수 있으나, 대구 지역의 봉쇄라는 막말이 나왔을 때는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고(그럴 생각도 없었겠지만) 전염병으로 인한 우려에 목소리에서 일부 사람들이 언급했다고는 하나 폭발적인 확진자의 증가로 공포스러울때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위로하고 함께 이겨나가야 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일 터이다.
그럼에도 부림지구 벙커에 사는 사람들은 소설 속 정부의 지침에 반하고 그곳에 남고 일상을 이어간다. 함께 생활하던 노부부의 아내가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노래가 생각이 났다.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그 노부인은 결코 혼자서 먼길을 떠난것 같지는 않다. 몇 안되는 사람이지만 부림지구 사람들이 함께 했으니 말이다. 부디 부림지구 벙커에 남은 사람들에게도 차별이 아닌 인정의 손길이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