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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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의 <소설, 향>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 김사과님의 <0 영 ZERO 零>이다.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선을 보인 '소설향'을 리뉴얼해 선보이는 중편 소설 시리즈로, "소설의 본향, 소설의 영향, 소설의 방향"이라는 슬로건을 가진다. 요즘에는 이렇게 시리즈로 한국소설을 선뵈고 있는 출판사가 많은것 같다. 그래서 유심히 여러 출판사의 작품들을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그 중 처음으로 작가정신의 <소설, 향>을 만났다. 책이 작고 아담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양장본이라 책장에 쪼로록 세워놔도 매우 뿌듯하리라 생각된다.


'0'이 숫자로 한글고 영어로 한자로 늘어져 있어서 무언가 '0'을 강조하는 느낌, 혹시 아무것도 없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이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 제목을 타이핑 하다가 한자를 보고 무언가 뜻을 숨겨놓은듯한 것을 느꼈다.(아닐수도 있지만 뭐, 그것은 독자의 몫이 아니던가) 한자 영(零)은 숫자가 없다라는 뜻도 있지만 떨어진다, 비가 온다, 부슬부슬 내리다라는 뜻도 있다. 처음에는 "떨어질"이란 의미만 보고 나락으로 떨어지는이라고 생각을 했다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라는 뜻도 있는 것을 보면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수도 있다고 생각도 했고 여러가지 중의적 표현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이것은 뭐 온전하게 나의 몫이니까 잘못 짚었어도 상관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의 느낌은 나의 것이니 말이다.


1인칭 시점으로 묘사하는 이 소설은 남자친구인 성연우와 헤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분명 연인과 헤어지는 장면인데 알리스(주인공이 지은 영어식 이름)는 무언가 다름이 느껴진다. 이야기를 하는 연우에 전혀 집중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방학때는 유럽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만난 피터 슐츠. 하지만 그는 김명훈이라는 이름의 한국인이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엄마가 재혼하면서 이름이 피터 슐츠가 되었다. 피터의 이야기를 할때는 매우 인정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야기에 진행됨에 따라 무언가 이상한점을 느끼게 된다. 알리스 그녀는 매우 독버섯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食人)하는 종족이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 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 삼킨다. 조심하고, 또 경계하라.(본문 中, p.46)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 알리스인지 모르겠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남을 잡아 먹어야겠지. 하지만, 모두 그렇게 남을 잡아먹으면서 살지 않는다. 아마도 이성적인 판단을 할수 있기에 만물의영장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닐까. 무조건 남을 밞고 일어서지는 않는다. 그런면에서 알리스는 자신의 삶외에는 중요한게 없어보인다. 다른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말이다. 대부분 화자들은 나쁜 사람들을 보지 못해서 매우 이 소설의 알리스가 독특해 보였던 것 같다. 분명 악인인것 맞는것 같은데, 어찌보면 그녀의 상황을 이해할수 있었다가 또 어찌보면 뭔가 이상해 보이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독버섯 같은 알리스 같은 사람은 솔직히 만나고 싶지 않은데... 첫느낌이.. 안좋아서.. 근데, 한번 다시 이 소설을 읽어봐야할것 같다. 그러면 알리스의 다른면이 보일것 같은 느낌에서이다. 혹시 나도 알리스의 독에 중독된것은 아닐까. 조심해야 겠다. 아무래도 조심하지 않으면 알리스에게 잡아먹힐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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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미트 - 인간과 동물 모두를 구할 대담한 식량 혁명
폴 샤피로 지음,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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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는 수많은 동물이 있다. 사자가 4만 마리라고 하면 가축용 돼지는 10억 마리, 코끼리가 50만 마리라면 가축용 소는 15억 마리, 펭귄은 5,000만 마리라면 닭은 500억 마리가 있다. 평상시에 사자, 돼지, 코끼리, 소, 펭귄, 닭... 이렇게 동물들의 종류만 생각했고 멸종 위기종의 동물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가축용으로 길러지고 있는 동물들의 숫자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세계 인구들의 의식주를 풍족하게할 동물들이 이렇게 많은 숫자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의 복지를 염두해두지 않는 공장식 사육의 문제점만 생각했지 엄청난 숫자의 동물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세계 인구가 늘어나고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육식을 선호하는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수요를 맞추기 위해선 더 많은 가축들이 희생되어야 하며 그 많은 가축들을 도축 기준에 맞도록 키우기엔 또 많은 사료들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소에서 근위성 세포를 추출하여 배양액에서 넣어 증식시켜 실제 근육으로 자라게 한다면, 소 한마리에서 얻은 샘플 하나당 고기 20톤, 즉 소 40만 마리 분량의 고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맥도날드 쿼터파운더버거를 1억 7,500만개를 만들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 과연 실제로의 식감을 재현할수 있을까. 정말로 고기를 먹기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동물로부터 얻어지는 유제품이나 알류같은것도 전혀 섭취하지 않는 비건 정도라면 인정할수 있지만 어설픈 채식주의자들은 완전이 끊지도 못하면서 보이는 면에서만 동물을 사랑한다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한다. 조금더 동물 복지에 힘쓰고, 억지로 사료를 먹여가며 지방간을 만들면서 요리하는 푸아그라 같은 것만을 외면하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도 했다. 생태계에서도 먹고 먹히는 관계가 존재하는데 왜 굳이 인간들만 유난인가라는 생각도 하지 않은건 아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인간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먹이 피라미드의 한쪽으로 비껴 서있는 존재인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먹이사슬내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동물을 빼내서 본인들의 욕심을 채우는 이들인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고통이나 두려움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상품의 가치만을 따지는 냉혈한들이 아닌가. 언젠가 털코트를 위해 가죽이 상할까 기절시켜 가죽을 벗기는 장면, 구스다운을 위해 억지로 털을 뽑기도 하고 요리를 위해 지느러미만 자르고 상어를 그대로 바다로 쳐넣기도 한다. 지느러미가 잘린 상어는 헤엄도 치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한다.

 

비록 인간은 생명이 있고 감정이 있는 그들을 무참하게 저지르며 얻은 것들을 입고 먹고 하면서 우리는 과연 행복한 것이 맞을까. 발전하는 과학과 기술로 인간의 생명만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이 행복해지는 미래를 택하는 것이 맞는것 같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생명공학의 결정체, 클린 미트! 사육과 도살이 사라진 미래는 어떨까. 더 나은 지구를 위한 발걸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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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홈즈
전건우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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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 작가님 신간이 나왔네요.. 완전 기대되는 책입니다. ‘주부탐정단‘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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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한 고양이
최은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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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쓰는건 이젠 너무나도 식상해진 말이다. 지금은 그냥 고양이도 좋다. 매력적이다. 요즘은 고양이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지내기에 너무나도 정신이 없다. 얼마전에는 치즈태비인 친구한테 붙잡혀서 한동은 무릎을 내어준적도 있다. 가끔은 캔이나 따줘야 아는 척을 하는 녀석들이 캔도 따지 않았는데도 발라당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신뢰가 쌓여 있다보니 녀석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사소한 것에도 고양이가 관련이 있다면 가급적으로 읽으려고 한다.


이 책도 고양이를 소재로 한 고양이 시점 짧은 소설이다. 우리 주변에서 볼수 있는 고양이도 있고, 상상력이 더해져서 고양이별로 돌아가는(무지개 다리를 건너는것이 아닌) 외계 고양이도 나온다. 그야말로 고양이와 관계된 10편의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은영님의 「임보일기」, 윤주는 크림색 페르시안 장모종 고양이를 지하 주차장에서 발견한다. 품종묘는 분명 주인이 잃어버렸거나 유기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고양이와 이별을 했던 윤주는 아직 녀석을 받아들일 여유는 없다. 그래서 새로운 가족을 찾아 주려 하는 이야기이다. 난 이런 품종묘보다 길에서 보는 일명, 코리안 숏헤어라 불뤼는 녀석들이 더 좋다. 그래서 만약 고양이를 기르게 되면 길에서 구조된 아기 고양이들을 입양해서 키우고 싶어서 이 이야기가 눈에 띈것 같다. 원래 고양이들을 15년정도를 산다고 하는데 길고양이들은 평균적으로 3년정도 밖에 자라지를 못한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의 길생활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에 대해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조남주 님의 「테라스가 있는 집」, 지나는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이사한다. 그리고 앞으로 결혼도 앞두고 있다. 설마 소심한 고양이 쿠키가 테라스를 넘어 밖으로 나가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쿠키가 사라졌다. 결혼준비로 정신이 없는 지나는 설상가상 쿠키 때문에 더 혼란스럽다. 오죽하면 지나가 112에 실종신고를 하려했던 장면만 봐도 쿠키는 가족 그 이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날즈음 드디어 쿠키를 찾게된다.(스포인가?) 그 장면에 가뜩이나 눈물이 많아진 요즘, 하마터면 울뻔했다. 요즘 너무나도 쉽게 반려동물들을 키우고, 또 그만큼 쉽게 유기한다. 집에서 키웠던 아이들은 홀로 버려지게 되면 그들을 사실상 살아가기가 어렵다. 그야말도 반려동물을 키우는데는 사랑과 책임이 필요하다. 버려진 것도 모른채 기다리는 동물들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제발 생명이 있는 아이들에게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너를 부른다」, 「덤덤한 식사」, 「묘령이백」, 「유니버설 캣샵의 비밀」도 기억에 남는다. 나름 고양이는 매력있다. 내 목소리를 기억하는 녀석들, 가끔 배고프면 밥달라고 울어대기도 하고, 기분좋으면 서너바퀴 데굴데굴 구르면서 발라당을 선보이는 친구들, 그들도 함께 살아가는 작은 이웃들이다.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주저하지 마시라. 이 소설속의 이야기가 어느새 우리곁에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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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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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단편을 힘들어 하는 내게 역시나 조금 힘듬을 선사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예전에는 문예지나 신문사의 신춘문예를 통해서 작가로 데뷔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통신망이 발달하면서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입소문을 기반으로 한 신인 작가의 등장이 새로운 방법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바로 이 소설 <캣퍼슨>의 작가 크리스틴 루페니언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이 책에 수록된 「캣퍼슨」은 미국의 대표적인 주간이 중 하나의 뉴요커를 통해 공개되고 조회수 450만건이라는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바로 띠지에서도 확인할수가 있다.

 

이 책은 「캣퍼슨」을 비롯하여 11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 소설집이다.

아무래도 책제목으로 선점된 「캣퍼슨」이 당연히 눈에 띈다. 이십대 초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첫 데이트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소통의 어려움을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왜 난 무섭지. 마고는 로버트를 만나면서 왜지 모를 두려움이나 설레임(이것은 나만 느끼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은 했었다. 당연하지 않을까, 나는 문자에 쓰인 글자 하나하나 까지 설레고 좋았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빨리 마고가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그러는 가운데 마고는 로버트가 진실로 이야기 해주지 않은 것이 많음을 느낀다. 그리고서 그에게 만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데 그 뒤의 로버트의 행동, 집착이 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단편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 뒷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치만, 요즘 이별을 통보하는 이에게 집착하거나 살해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도 늘상 걱정이긴 하다.

 

그리고 또 유심히 지켜본 이야기가 「좋은 남자」이다. 역시나 역자도 이 작품이 심리묘사가 돋보이며 「캣퍼슨」과 짝을 이룬다고 평한다. 역시, 나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어.....서른여섯번째 생일을 맞기 2주전 테드는 앤절라에게 이별을 고한다. 앤절라는 테드에게 얼음물이 든 유리잔을 집어 던지고 자리를 뜬다. (엔젤라가 왜 이렇게 흥분했는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그런데 생각보다 테드는 피를 너무나도 많이 흘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과거 테드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앤절라에게 단호한 서른 다섯의 테드와는 사뭇 다른 어린 테드가 보인다. 이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긴편인데 그래서 단편에 약한 내게 그게 각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근데 에어컨 좀 켜줄래? 빌어먹을, 이렇게 덥지만 않아도 나에 대해 설명하기가 조금 쉬울 텐데, 저 불꽃이 내 발을 핥고 있는 건가?라는 말을 들으면서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독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까... 앞서 생각보다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 복선일까 하고 자꾸만 앞머리를 들춰보게 만든다.내 말 좀 들어워, 응, 당신들... 난 좋은 남자야. 제기랄. 신에게 맹세한다고.라는 테드의 마지막 말과 더불어 이 소설의 마지막이 애처럽게 들리는 건 왜일까. 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하지만 나쁜 남자도 아닌건만은 아닌데... 그래요, 당신 테드 당신 좋은 남자예요..라고 한마디 해주면 그가 편할까...아직도 귓가에 테드가 좋은 남자라고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책을 처음 보고서 다소 놀랬었다. 흐미.. 표지가... 하지만 이 소설집을 표현하기에 딱 적당한 표지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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