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과는 상관없는 여담이지만 리뷰를 쓰려고 보니 출판사의 이름이 참 예쁜것 같다. 내가 '자음과 모음'의 책을 안 읽은것도 아닌데 오늘은 문득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파는 상점>의 속편이다. 전편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동안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게으름을 피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이야기의 주요 모티브는 고양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의 보안관 해고 반대 시위이지만 그 해결과정은 사실과 다름을 밝힌다. 어떤 사건인지 몰라서 기사를 검색해 보았더니 6년째 근무중인 비정규직 보안관 두 명이 학생들의 서명 운동에 힘입어 해고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이다. 보안관들의 처지를 알고 있는 고양국제고 학생들은 학교 측의 처사를 이해할수 없어 모임을 꾸려 보안관들의 복직을 촉구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낼수 있었다고 한다. 온조도 '시간을 파는 상점'을 확대 개편한후 들어온 의뢰를 보았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인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는게 놀라웠다. 일단 학교앞 시위로 관심을 모은 다음, 해고 반대 서명을 받고 보도 자료를 만들어 정식 기자회견을 열어 확대시켜 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옛날부터 이런 청소년 성장 소설을 읽다보면 의문점이 들기는 했다. 과연 이런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과연 가능할까. 아.. 우선 작년의 고양국제고등학교의 경우를 보면 일어날수 있는 일이지만 극히 드문일임에는 틀림없다. 요즘 대학입시에 학생부때문에 아이들이 얼마나 고등학생 시절을 학생부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요즘 청년들뿐 아니라 아이들을 둔 학부모들도 참 허탈하게 만드는 일들이 연일 문제시 되고 있다. 그저 평범하게, 그러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전문직이 아니라,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편법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하늘에 별만있고 태양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안쓰러울 뿐이다. 온조나 이현처럼 용기를 낸 친구들도 있지만 혹시라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까 걱정이 되어 선뜻 시위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누가 그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체계를 탓할뿐이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가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살아가는 사람으로 살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생각하고 위로하며 함게 나누는 그런 삶을 살아가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배움의 장인 학교 현장에서 그와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결정을 한 학교의 일원이라는 게 몹시도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이 만든 규범과 사람이 만든 규칙이라며 사람을 위해 고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일에 우리들의 힘을 보탤 수 있다면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비 아저씨의 해고를 철회하고 복직을 요구합니다. 학교 일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이 운동장에 들어서고 싶습니다. 가르쳐 주신대로 저희가 행동할수 있게 해주십시오. 배운 대로 살수 있게 해주십시오.(p.140)
살아 있는 것과 살아가는 것의 차이를 생각하다가 배운대로 살수 있게 해달라는 학생들의 외침에 너무나도 부끄러워진다. 왜 어른들은 아이들이 배운대로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않을걸까. 솔직히 이런 성장소설은 나같은 어른들이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더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청소년들은 책을 읽기에는 너무나도 환경이 따라 주지 않을뿐더러 소위 말하는 권장도서로 너무 심오한 이야기의 책들을 읽도록 유도한다. 꽤 오래전 가르쳤던 학생이 내게 한말이 있다. 자기는 책을 좋아하는데 학교에서 읽으라는 권장도서는 너무 어렵다. 읽고 싶은 책을 읽는 내가 무척 부럽다고 하는 그 친구는 지금은 좋아하는 책을 맘껏 읽는지도 궁금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 요즘 우리 사회의 아이들은 너무나도 메마른 어른들 같다. 죄를 짓고도 뉘우침이 없는 아이들. 그것은 잘못된 어른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가 아이들을 탓할까. 이 소설의 불곰 선생님이나 온조의 엄마나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