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서커스 -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
나카가와 요시타카 지음, 임해성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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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첫 시작을 들어가면서 새삼 내가 세계사에 얼마나 무지몽매한지를 절실하게 느꼈다. 로마제국이라고 함은 이탈리아 반도 및 유럽 그리고 지중해를 넘어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와와 이집트까지 지배하였던 고대 최대의 제국이라고 하는데, 처음 이 책 표지를 보고선 이탈리아 로마만 생각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없다. 이래서 사람은 평생을 배워야만 하는가보다.


"빵과 서커스"라는 말은 로마가 시민들에게 제공한 식량(빵)과 오락 및 휴식거리(서커스)를 가리키며, '포퓰리즘(populism)'의 대명사로 쓰이는 표현이라고 한다. 행복한 시대에는 전란도 없을테고 식량문제도 없을 것이며, 또한 자신의 여가를 충분히 즐길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서 이를 제공한다는 것은 국민이 행복하다기 보다는 무언가로 시선을 돌리기 위한 행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출범한 계기도 민주화를 간절히 원하는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역시 정치적인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확 와닿는다.


이 책이 특이한 점은 역사가나 역사 애호가의 관점이 아닌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쓴 로마이야기이다. 현재 "남겨진"것들이 말해주는 "사라진" 로마의 이야기이다.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어쨌든 한때 나도 엔지니어의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이야기가 조금 어려웠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첫 시작을 가볍게 했던게 문제였으리라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이 좋은 이유가 그냥 내 시선에 낡은 건축물로만 보이는 것에 숨겨진 이야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옛날 건물이야~, 그냥 옛날에 경기장이었데~"라는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다채로운 것을 알게 되는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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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걸 -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디아 무라드의 전쟁, 폭력 그리고 여성 이야기
나디아 무라드 지음, 제나 크라제스키 엮음, 공경희 옮김, 아말 클루니 서문 / 북트리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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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단히 연결했다. 내 사연을 말한 다음 계속 이야기했다. 나는 연설을 잘하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든 야지디는 ISIS가 집단 학살 죄로 기소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청중들은 세계의 약한 자들이 보호받도록 도울 만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난 우릴 유린한 남자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그들이 벌받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p.389)


제목의 담긴 의미가 끝맺음에 나왔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국가간이나 내전이 발생하면 여자들은 성노예로, 소년들은 소년병으로 끌려가고 또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한다. 그런 비극적인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던 저자의 소원은 아무래도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 듯하다. 아직도 여기저기에 끊임없는 내전등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더이상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토록 그녀의 노력은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문득 우리나라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각났다. 먼곳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도 그런 아픈 역사가 있으니 말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중동지역에서는 특히 여성들의 지위가 너무 낮고, 게다가 "명예살인"이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 그래서 나디아도 처음 ISIS에서 탈출했을때 자신이 성노예로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유린당한것을 선뜻 말하지 못했다. 우리 위안부로 끌려가셨던 할머니들도 돌아와서도 그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그들은 분명 피해자인데 왜 우리는 그녀를 감싸주지 못했던 것일까.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감싸 안고 그런 만행을 저지른 이들이 벌받을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디아가 겪었던 이야기라 성노예와 학살에 촛점이 맞았지만 예전에 읽었던 이스마엘 베아의 <집으로 가는 길>이 떠올랐다. 랩이 좋아 장기자랑에 참여하려 집을 나선 아이들이 소년병으로 끌려갔던 이야길를 담은 이야기이다. 어린 소년병들에게 두려움을 없애겠다고 마약을 시키면서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게 한다. 이 이야기에서도 나디아의 조카들이 일부는 ISIS에 세뇌되어 소년병으로 끌려가는 이야기가 잠시 나온다. 참 얼마나 슬프고 가슴이 아픈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종교가 다르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약한자들에게 가해지는 만행은 이제 멈춰야 한다. 그녀의 말대로 더이상 이런 아픔을 갖는 여인들이 더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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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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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모습은 아마도 마들렌일까.. 복수를 결심하는 모습의 마들렌인것 같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마들렌의 어린 아들이 할아버지의 관을 향해 몸을 던진다. 마들렌의 아들 폴은 읽어나가면서 꽤 명석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채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폴은 생명은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져야했고,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마들렌은 아버지의 사업보다는 아들인 폴에게 신경을 더 쓰게 된다. 화려한 복수극을 펼치는 그녀를 보면 사업에도 꽤 수완이 있을꺼라 생각했는데 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는지 의문이다. 아무래도 1927년 즈음이므로 여성의 사회진출은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했지 않았나 싶다.


마들렌이 온통 아들 폴에게 정신이 없을때, 그녀와 결혼으로 페리쿠트가에 입성과 동시 사업을 하고자 했던 귀스타브 주베르는 마들렌이 결혼을 거부하자 다른 음모를 꾸민다. 또한 삼촌인 샤를 페리쿠트도 자신에게 형의 재산은 극히 일부만이 돌아오고 거의 모든 재산이 마들렌에게 상속된것에 대한 불만이 있다. 그들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은 마들렌. 대저택을 떠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알게 된 안타까운 사연. 바로 폴의 투신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가정교사이자 마들렌의 내연남인 앙드레 델쿠르에게 끓어오르는 배신감으로 그녀는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 표정이 바로 표지의 저 표정인것만 같다.


어쩌면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다른 이들 모두 그녀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는다면 속절없이 무너져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리라 생각해었던 듯하다. 그녀의 복수는 그들을 더이상 재기 불능하게 만들었기에 더더욱 이 이야기는 흥미롭고 독자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흔히들 용서를 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라는 말들을 하지만 난 이 말에 대해 반대한다. 용서를 하든 응징을 하든,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잊고 살아갈수가 없을 것이다. 용서를 했기에 잊었다는 사람들이 과연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일까. 범죄의 피해자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의 트라우마는 삶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용서받기 위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입힌 사람들의 비겁한 변명으로 용서를 하자라고 하는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재기 불능의 처절한 마들렌의 복수를 나는 더욱더 환영하는 바이다.


워낙 스릴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조금더 처절한 복수를 바랬지만 어쩌면 마들렌은 나보다는 조금더 인정이 있는 여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600여 페이지의 두께가 무색할만큼 책장은 아주 잘 넘어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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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대신 욕망 - 욕망은 왜 평등해야 하는가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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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 책은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었고, 지금 다시 <희망 대신 욕망>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으로 나온 것이다. 저자는 골형성부전증이다. 골형성 부전증이란 특별한 원인이 없어도 쉽게 뼈가 부러지는 선천적 유전질환이다. 그야말로 소제목에 걸맞게도 '유리 같은 몸'이다. 시골에서 태어났던 저자는 열다섯살 까지 다른 사람들과 교류 없이 집과 병원만을 오가며 지냈다고 한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 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들이 참 아직도 반성할게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주 오래된 프로그램에서 다운증후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5000명중의 한명 꼴로 흔하게 나타나는 유전자 이상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주변에서 다운증후군인 아이들을 흔하게 마주치지 못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지금은 좀 달라졌겠지만 내가 그 프로그램을 보던 그때도, 장애아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더 밤을 이용해 산책을 하거나 집에서만 생활을 하게 해서 잘 볼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재활원이라는 비좁은 곳이나 혹은 한정된 공간에서만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저자의 경우는 고등교육을 받고 현재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많은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하긴 저자도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을때, 원서 조차도 팔지 않았던 일을 겪기도 했다.

 

한두달전, 지하철에서 어떤 한여성분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탑승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입구였는지, 큰소리로 도와달라고 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무슨일을 당했는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분이 매우 소란스럽게 했었다. 늦은시간 나도 퇴근을 하던 길이었고 공공장소에서 너무나도 큰소리로 모든이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모두 불쾌해 하고 있던 차에 한분이 그분을 쳐다보는데, 왜 쳐다보냐면서 시비를 걸었다. 솔직히 그 때는 참 무례하고 장애를 가졌다는 자격지심에 괜한 시비를 건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어쩜 우리들의 잘못된 편견이 그분이 그런 방어적인 태도를 갖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몸이 불편하다는 것이 결코 자격없는 인간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누구든 당당하게 요구할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 세상은 그야말로 비장애인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대중이란 의미에서 그들이 소외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희망(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과 욕망(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이란 단어를 보면서, 장애인들은 불편한 몸때문에 이룰수 없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욕망을 품고 있다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비판하는 제목인가 싶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짧은 견해로는 건강하게 태어난 것이 무슨 특권인 마냥, 장애우들을 위한 시설까지도 욕심으로 빼앗으려고 하는 탐욕스런 비장애인을 비판해야 하는 제목으로 보인다.


처음 동행인 없이 외출을 했던 저자에게 조용히 천원짜리를 쥐어주던 노인. 그 노인에게 그를 격려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그에게 모욕감을 안겨주었던 행동이라고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나도 저 노인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가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았던가. 많이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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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돼지의 낙타
엄우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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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부풀리고 증식해 나가는 이야기의 생명력"이라..이 말이 정말로 딱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나는 엄우흠 작가님을 이 책에서 처음 만났는데 전작들인 <감색 운동화 한 켤레>, <푸른 광장에서 놀다>도 매우 궁금해졌다. 이 책들도 꼭 읽어봐야겠다.


이 책은 경수의 가족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제 1장 영혼이 없는 떡볶이」를 읽을 때는 혹시 단편집이었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슬쩍 뒷편을 넘겨봤는데, 하나로 연결된 소설이 맞다. 그런데 읽어나가면서 퍼즐이 맞춰지듯 이야기가 설명이 되서 묘한 재미가 있다. 경수의 아버지는 전직 경찰관으로 경찰은 그만두고나서 여러 자영업을 했었다. 어린 경수는 부모님과 가게에서 뛰어놀며 지냈는데, 어린이 입맛에 별로 맞지 않는 분식이었다. 어린 여학생들에게 그야말로 영혼이 없는 떡볶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고, 그로 인해 분을 참지 못했던 경수 아버지와 고성이 오고갔다. 그로 인해 벽에 낙서라든지, 어린 경수의 가방에 쪽지등이 발견되어 분식집을 접을수 밖에 없었다. 초반에 읽을때는 요즘 청소년들이 이러나, 집요하게 쫓아다니면서 해코지를 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뒤에 자세한 정황을 알수 있었다.

 

이 소설은 그저 단순하게 넘어가는 일이 없다. 읽어나가면서 혹시 그때 그 사람이던가 하면서 찾아보면 여지없이 그 인물이 등장한다. 마치 나무가 가지를 뻗어나가듯이 이야기가 새로운 방향으로 살이 붙고 붙어서 짜임새있고 치밀한 이야기가 된다. 사소한 낙서가 나비효과처럼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 큰 죄책감이 들지는 않는다. 그저 가벼운 날갯짓을 했을 뿐인 나비에게 무슨 큰 잘못이 있겠는가.(p.544) 사소한 일이 실마리가 되서 더 큰 이야기로 더 큰 인연으로 엮어져 나가게 되서 무척이나 흥미롭다. 비록 그 사소한 일이 누군가에게 해가되고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사람사는 인생사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간혹 앞쪽에서 언급되었던 이야기가 다시 회수되지 못하고 의문점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점에서 이 <마리의 돼지의 낙타>는 매우 친절한 소설이라고 할수 있다. 앞에서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이나, 갑자기 등장한 인물들도 책장을 덮을 즈음에서는 모두가 해소가 된다. 살짝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가 되긴 하지만 그건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물흐르듯 전체적인 이야기에 동화되어 나도 그곳 '무동'에 있는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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