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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없는 소녀
황희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3월
평점 :
이도이는 조현조다. 여덟살 어린 도이는 등굣길에 백만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녀는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도이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그런데 범인인 백만우는 출소하면 그녀를 찾아와 사과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두려워진다. 친구 지석이는 자신이 백만우를 죽여주겠다고 걱정말라고 한다. 그런데, 어제까지도 몰랐던 지석인데, 오늘 처음 만난 지석인데, 그가 친근하게 느껴지는건 왜일까?
평행세계라는 말말 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생각났는데, 오히려 예전에 방영되었던 <시그널>이라는 드라마와 더 흡사한것 같다. 다만, 과거와 통신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잔류사념을 통해 새로운 평행세계로 분기 시킬수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잔류사념이란, 사람의 원한, 기억, 집착, 숙원, 슬픔 등의 강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어떤 장소나 물건 혹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오랫동안 고여 있는 것이라고 한다. 도이는 잔류사념을 감지하고 생각을 전달할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어떻게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 알수는 없지만, 자살을 하려 했을때 생겨난게 아닌가 싶다.
도이는 어렸을때 사고로 인해 심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 곁을 지켜주는게 유일한 친구 지석이다. 어느날, 학교에서 성폭력예방 교육을 한단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는 방법에 대해 강의를 해보겠다고 한다. 도이가 반발했다. "피해자가 되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가해자가 되지 않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야 하는거 아닌가요?" 나는 도이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감한다. 어떻게 이 나라는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더 옹호한단 말인가. 더욱 가관인 것은 교육자라고 하는 담임선생의 태도이다. 티를 내고 도이를 질타한다. 학생들에게 막말을 쏟아낸다. 도이를 옹호하는 지석에게 거침없이 '게이 새끼'라고 말한다. 어린 도이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던 범인보다 이런 자격도 생각도 없는 사람이 선생질 하는 것이 더 보기가 싫다. 소설속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자질없는 사람을 봤었기 때문에 괜시리 화가 났다. 요즘 세상 스승님은 없고 가르치는 직업만 가진 이가 있어서 올바른 교육을 하는 훌륭한 선생님들을 모두 그릇된 교사라 폄하하게 만드는 그런 족속이 아닌가 싶다. 만약 도이의 담임만이라도 올바른 사람이었다면 도이가 더 사회에 적응할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피해자가 되지 않게 가르치는 것보다 잠재적인 가해자가 되지 않게 가르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본다.
잘 몰랐던 사람이었는데, 만나서 자연스레 '석윤이 형'이라고 부르는 이를 만났다. 분명 어제까지는 몰랐던 사람이다. 석윤이 팔에 자해하는 도이에게 넝쿨손을 새겨 넣어준다. "넝쿨손은 넝쿨 식물 줄기에서 나오는 가느라단 실 같은 건데, 이게 실처럼 가느다랗게 보여도 사실 나무조각도 뚫을 만큼 강해. 넝쿨로 자라는 식물들은, 이 넝쿨손을 뻗쳐 주기를 지탱하는데 뭐든 움켜잡아. 움켜잡고 위로 올라가. 폭풍이 불어도 넝쿨손으로 다른 물체를 단단히 움켜쥔 식물들은 잎이 찢어지더라도 쓰러지지 않아. 난 네게도 이 넝쿨손이 있었으면 좋겠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뭐든 움켜잡는 생명력 같은거 말야.(p.107)" 도이의 말에 새겨진 넝쿨손은 그녀뿐 아니라, 지석이에게도 석윤이에게도 필요할 것 같다. 아직 어린 이들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가혹하기 때문이다.
잔류사념을 통해 새로운 평행세계로 이동할수 있는 것을 깨닫게 된 도이는 자신의 어린시절의 잔류사념을 찾아내 그날의 일을 자신이 겪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 그러면 자신의 몸에 면돗칼로 긋는 자해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 피해는 어린 도이가 온전히 당한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함께 정신적 고통을 안게된 부모님도 편안해지겠지... 도이는 생각했다. 하지만 도이의 이런 능력때문에 범죄에서 빗겨났던 사람들은 혹은 대신해서 피해를 잃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꼬리에 꼬리는 무는 평행세계의 이동.. 과연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을 없는 것일까.
타임루프를 소재로 하는 내용들은 대부분 과거의 일을 바꿈으로서 현재의 상황을 보다 좋게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라는대로 현재의 일들이 바뀌지는 않는다. 불행이 나를 비껴갔다고 해서 끝난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가버려 또 다른 불행으로 돌아오기도 하는 법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우리는 과거의 내 행동에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고 후회들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내일이 없는 소녀'일까.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자꾸만 그날의 일을 바뀌 '조현조'가 아닌 '이도이'로 살고싶은, 도망가지 않아도 되는 삶을 그리워 해서 말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할것 같다. 도이에게는 범인만이 가해자가 아니라 이 사회가 모두 가해자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할 터이다. 도이가 더이상 과거를 바꾸려하지 말고 당당하게 내일을 살아가는 소녀이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