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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밤의 주방 ㅣ 욜로욜로 시리즈
마오우 지음, 문현선 옮김 / 사계절 / 2019년 3월
평점 :
지옥주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지옥이라고 하면 생전에 나쁜 죄를 지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여기의 지옥이라 함은 그냥 사후세계라고 생각하면 될것 같다. 그래서 지옥주방은 사후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같은 느낌.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이 다 죄를 지은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곳에 나름 멋진 모습을 하고 찾아오는 염라대왕, 그리고 갑작스레 죽어 이곳에 온 이 소설의 화자 맹파, 중국 전설 속 저승사자인 흑무상, 백무상이 있다. 나름 이 지옥주방의 주방장격이 바로 맹파이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만들어 줌으로써 그들이 아무 미련 없이 길을 떠나게끔 돕는 일이 바로 맹파가 할 일이다. 그리고 밤하늘의 공명등, 공명등은 누군가가 품은 평생의 한을 대변한다. 그들의 한이 지옥을 밝히는 것이다. 자~ 지옥주방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옛말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별로 억양이 안좋게 들리려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사람들이 죽지는 않는다. 노쇠하거나 자살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아무리 명을 다하고 이세상을 떠난들 한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에 두고오는 미련쯤이라고나 할까.. 내 버릇 중 하나가 예전 안좋은 기억을 꺼내서 곱씹어 보다가 혼자서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얼마나 나를 괴롭히는 버릇인지 모르겠다. 이런 나는 지옥주방에 들려 이런 안좋은 기억들을 다 남기고 가야할것만 같다. 사후세계에 들어서서도 예전 기억을 하면서 나를 고문하는 것은 싫으니까 말이다.
열여섯명의 사연들이 열여섯가지 혹은 그 이상의 음식과 함께 단편집처럼 이 이야기가 꾸며져 있다. 마지막 열여섯번째 이야기는 맹파와 관련된 이야기이지만 맹파의 이야기가 좀 더 있지 않을까도 싶다. 그리고 특히하게 모히칸 머리를 하고 있는 염라대왕이나 간식을 아주 좋아하는 백무상도.. '맹파와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이 이 이야기의 속편을 기대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다.
혹은 2편은 없을것 같다는 생각도 된다. 그 이유는 말미에 열여섯 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스포 아님)
오늘은 보름의 만월이 지나간 밤이었다. 사람들은 열엿새 밤이란 기울기 시작하는 달을 의미한다며, 모든 일이 완벽함에서 결핍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마치 인생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정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룰 수 없고 아득히 멀기만 한, 망설임으로 가득한 길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 길을 계속 가야만 한다. 이미 인생의 정점에 이르렀어도 우리는 다음 순간 훨씬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p.360)
음력으로 열여섯째 밤은 보름달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는 밤의 시작이다. 인생이란 정점에 이룰수도 있고,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질수도 있겠지만 또 그것을 견디고 나면 새로운 정점을 만날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나락의 고통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미션이 있겠지만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삶의 끈을 놓는다면 그 또한 어쩔수 없다. 다음 손님을 기다리면서도 '영원히 당신을 만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라며 내게 말을 걸어오는 맹파는 앞서 소개되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내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언젠가 차오르면 다시 기울기 시작하는 달처럼 인생에 굴곡이 없으면 이세상 살아가는 맛이 있겠는가.
걱정마세요 맹파. 힘든일이 생기면 다시 차오를 달처럼 포기하지 않고 이세상에서 내 운명이 다하는 날 당신을 찾아갈께요. 제게도 정성스런 음식을 꼭 준비해두세요. 그곳에 남겨두고 가고싶은 기억일랑 많이 만들지 않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