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에서 보낸 하루 라임 틴틴 스쿨 11
김향금 지음 / 라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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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의문이 들었다. 한성, 한양, 경성.. 언제부터 서울을 경성으로 불렀나라는 의문... 서울을 한자로 표현하면 경()이다. 중국의 북경(), 일본의 동경()은 각각 해당국의 서울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한자 문화권의 공통점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이렇게 보면 경성이란 이름은 자연스런 수도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되는것 같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경성이란 이름에 포함된 의미를 알수 있다. '한성부'는 조선 시대 서울의 공식적인 행정 명칭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수도를 한성이라고 불렀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이후, 한성부는 수도로서의 지위를 잃고 말았다. 한성은 경기도 소속으로 지위가 낮아져서 '경성부'로 불리게 된다.(생략) 경성에도 수도라는 뜻이 있어서, 조선 시대에 순 우리말인 '서울'의 한자 표기로서 경성이 사용되긴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사용된 경성은 오로지 일제의 식민 도시를 가리키는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p.233)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 검색한 내용이 맞기도 하지만 또한 틀리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때의 경성은 지위가 격하된 명칭일 뿐이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라는 작품을 읽어보면 '게이죠'라고 서울을 부른다. 소설 자체가 우리가 해방을 맞지 않았다는 가정을 배경으로 삼기 때문에 서울을 그렇게 낯선 '게이죠'라고 불러서 참 거부감이 들었었는데, 이 책을 읽고보니 너무나도 당연한 거부감이었다.


누가보면 애국자처럼 보이겠지만 내가 일제강점기에 관심이 갖게 된건 아이가 커가면서 여러 박물관을 다니면서이다. 안중근 의사의 짧은 손가락도 고문에 의한 것으로 알정도로 나 또한 많이 무식했던 터였다. 그리고 당시 그 배경을 하고 있던 박경리의 <토지>나 조정래의 <아리랑>, 한수산의 <군함도>등을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경성"이란 이름은 그래서 서울이라는 의미보다 아픈역사를 더 내포하고 있는것만 같다.


이 책은 모던보이를 쫓아가며 경성을 소개한다. 제일 눈의 띄는 것은 조선총독부 건물과 광화문이다. 경복궁의 정문이였던 광화문은 뜯겨져 자리를 이동했었고, 조선총독부는 정궁인 경복궁을 막고 있다. 어린시절 조선총독부 건물이 박물관이였었는데, 참 견고했던 건물이라 생각했었는데, 참으로 어리석었다. 다행이 조선총독부는 1995년 철거되었고, 광화문도 제자리를 찾아와 있다. 또한 현재도 일부 모습을 갖고 있는 서대문형무소는 당시 독립투사들을 가두고 고문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딸아이가 초등학생시절 간적이 있었는데, 매우 무서워 했다. 왜 저런 흉물스러운 건물을 아직도 보존하는거냐고 물었다. 아픈 역사도 우리의 일부이니 잊지말라는 뜻이 아니었겠냐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저자도 말했듯이 청소년과 함께 하는 여행기이듯, 청소년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물건들도 있지만 그 시대 나라를 잃어버려서 겪었던 수모나 나라를 찾으려는 이들의 노력이 곳곳에 숨어있는 곳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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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밑의 개
나하이 지음 / 좋은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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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만큼 작은개, 엄지는 이제 열 살, 미소의 눈밑에서 자기만을 고집하는 개입니다.

엄지는 떼를 쓰고 심술을 부리면서도 늘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런 엄지의 투정에도 사랑해주며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는 미소는 엄마들의 모습입니다.(p.4, 작가의 말 中)


작가의 말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모습이나 엄마의 모습은 생각치 않았다. 솔직히 읽을때는 그냥 강아지 엄지 그대로, 미소 그대로 보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엄지와 미소의 관계가 그런 관계이더라. 비록 어리긴 하지만 열살 미소에게 의지하며 살았던 손가락만큼 작은개 엄지는 커다란 개 메롱이의 꼬임에 빠져 험난한 커다란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자신과 같은 작은 나라를 찾아서.. 하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다. 먹는것에서부터 자는것 까지 참으로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때론 주어진 환경에 나이를 막론하고 나름의 적응을 하지 않는가 싶기도 하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혼자서 잘 다녀올까, 찻길은 잘 건널지, 도서관은 혼자서 찾아갈지 모든것이 불안했고, 또한 아이만 같았다. 당시 mbc에서 방영되던 휴먼다큐에 나온 "붕어빵 엄마"에 나온 사연을 본적이 있는데, 엄마는 위의 투병중이었고, 또 생계를 위해 붕어빵을 팔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딸이 더 어린 동생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찾아가는것이나 동생을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내 딸아이보다 더 어린 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더라. 우리딸도 저런 상황이었다면 더 의젓하고 혼자서 할수 있는 일이 더 많았겠지 하면서도 그 아이들이 너무 일찍 어른이 되버린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길고양이들을 밥을 주다보면 아주 어린 아이가 독립을 했는지 혼자서 초록잎이 신기해 구경을 하면서 다니기도 하고 그보다 더 큰 아이를 아직도 데리고 다니는 녀석들도 마주하게 된다. 잘모르는 어린 엄마 고양이가 아이를 너무 일찍 세상에 내놓았는지, 아니면 아직도 독립시키기는 이르다며 과잉보호하며 여직 끼고 다니는 엄마 고양이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적응을 해 나가는것 같다고 본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덜하지도 않은 그 시점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부모의 미숙함이 문제라고 할까.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어린이들이 엄마의 깊은 사랑을 막연하게나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어른인 나는 역시 집나가면 고생이라는 생각과 엄지가 본인에게 닥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며 스스로 단단해지길 빌었다. 비록 약간은 단단해진것 같지만 언제나 미소의 보호아래에 있을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무릇 인간이란 동물은 가장 오래 자식들을 끼고 사는것 같다. 주어진 환경에선 나름 적응하기 마련이지만 엄지가 자신을 도와준 개 나나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후 고양이 고등어에게 맞서는 것처럼, 무작정인 보호보다 그들이 스스로 자립할수 있도록의 도움이면 충분하리라 본다. 하지만 나도 아직 내년이면 성인이 될 아이를, 딸아이의 표현을 빌어 물고빨고 하는걸 보면, 나도 어쩔수 없는 미숙한 엄마일뿐이다.


<어릴적 그책(곽아름)>이란 책을 읽고 문득 학생시절 읽었던 책이 생각나 다시 읽은적이 있었다. 똑같은 책이지만 중학생 시절의 내가 읽었던 느낌과 어른이 되서 지금 읽는 느낌은 너무나도 다른것에 나 자신도 놀랐었다. 이런 동화 한편도 지금의 내가 읽게 되니 참 다르게 해석이 되는듯 하다. 아무래도 세상살기는 내게도 녹록치 않아서일까. 그래서 가끔 동화를 읽는것도 좋은듯 싶다. 이 책은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동화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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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재림
나하이 지음, 강지톨 그림 / 좋은땅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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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야기, 나도 어릴때 읽었지만 딸아이도 좋아하는 책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대를 물려가면서 읽는 이야기이고 그에 관한 노래도 꽤 있을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사막에 불시착했던 조종사. 생텍쥐베리가 조종사였기도 했기에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느니, 실제로 어린왕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생텍쥐베리는 1944년 정찰비행중에 독일기에 피격되어 추락하며 그의 생을 마쳤다고 한다. 자취도 없이 사라진 생텍쥐베리, 그래서 모두 그가 어린왕자와 지구는 떠났을거란 의문을 갖기 시작했지만 1998년 작가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 하나가 건져 올라오면서 그의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했음이 분명해졌고, 2008년에는 당시 조종사가 자신이 생텍쥐페리가 타고 있던 비행기를 격추시켰다고 고백했다. 조종사 스스로도 나중에야 생텍쥐페리가 타고있었음을 알았고 제발 그가 아니길 바랐다고 한다. 서로 총을 겨누는 사이었지만 그도 생텍쥐페리의 책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 특히나 이 어린왕자는 세대를 막론하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예쁜 동화이다. 그러기에 많은 작가들이 어린왕자를 다시 만나고픈 사람들에게 그를 선물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별로 돌아간 어린왕자는 장미의 죽음을 보았고, 희생을 모르던 바오밥 나무때문에 별이 붕괴되어 다른 별로 이동할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별보다 더 큰 별이었지만,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이 있었지만 어린왕자는 지구에 두고 온 조종사와 여우에 대한 그리움때문에 행복하지가 않다. 그런 어린왕자에게 옹달샘이 해준말 "책임진다는 건 함께한다는거야(p.60)", "난 함께 있으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너를 보는 것보다, 널 기다리며 다시 만나 함께 보낼 시간을 꿈꾸는 편을 택하겠어(p.61) ". 정말로 어린왕자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이면서 또한 우리 모두가 동경하는 순수한 마음인것 같다. 나도 사랑하는 이들이 행복해지길 바라고, 또한 가끔가다 내 어린시절이 그립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별로 돌아간 어린왕자를 그리워 하고, 또한 생텍쥐베리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늦게나마 저자의 마지막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들 마음속엔 그가 어린왕자와 함께 어느 별에선가 살아가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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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무서워서 잠 못 드는 공학 이야기 잠 못 드는 시리즈
션 코널리 지음, 하연희 옮김 / 생각의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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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에 동의할수 없다. 무섭다기보다 재밌고 신기하다. 무엇이든 과학이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는것 같다. 과학은 어렵다 말고, 재밌게 즐기면 좋은데 말이다. 특히나 이 책에는 한편의 재난 이야기 끝에 그와 관련된 작은 실험을 할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하면 좋을것 같다. 우리딸은 이제 너무 커버린 탓인지 과학이야기만 할라치면 어디서 이과냄새난다고 하지만 엄마가 뼛속까지 공대생이었기 때문에 싫으나 좋으나 듣는수밖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하인리히 법칙'이 생각났다. 1건의 큰 사건이 터지기 전 29번의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300번의 잠재적인 징후가 보인다는 '하인리히 법칙'. 예나 지금이나 과학적 요소를 잘 생각하면 재난은 없을텐데 그 과학을 무시하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수익문제가 들어가니까 살짝 과학을 무시했기에 이런 재난에 직면했다고 본다.


제일 주목했던 이야기 하나는 "힌덴부르크 참사"이다. 독일을 출발하여 착륙을 시도하다 화염에 휩싸인 채 지상으로 추락한 독일 비행선 힌덴부르크이다. 1937년에 72명까지 탑승가능했고 대서양을 20회정도 운항을 했다고 하는데1937년 5월 4일 독일에서 이륙하여 이틀뒤 뉴욕 상공을 지나 뉴저지의 착륙지점에 도달했는데, 착륙을 시도하던중 꼬리에 화염이 치솟고 1초도 되지 않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불길에 휩싸인채 추락했다고 한다. 이 비행성에는 수소가스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수소는 가벼운 기체이긴 하나, 워낙 폭발성이 강해서 이런 경우는 비교적 안정한 헬륨가스를 사용했어야 하는데, 이때는 헬륨이 워낙에 귀했기 때문에 사용할수가 없었다고 한다. 반응성이 없는 헬륨을 썼으면 고귀한 생명 또한 잃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요즘에도 애드벌룬등에 수소 기체를 사용하다가 폭발하는 사고가 나곤 하는데,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큰 재난을 막을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타이타닉도 마찬가지다. 일등석의 전망을 위해 구명정의 갯수를 줄인 탓에 절대 침몰하지 않을꺼라던 타이타닉은 침몰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구할수가 없었다. 하나의 큰 재앙이 오기 위해서는 그 전에 많은 징후들이 있었을텐데 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과거의 어처구니 없는 과학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의 재난은 막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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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 바보의사 - 개정판
안수현 지음, 이기섭 엮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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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교다. 물론 집안으로 따지자면 친가는 불교고, 외가는 기독교이다. 어렸을때부터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중립노선을 택했다.

어쩌면 중립노선이란 이야기는 게을러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교입장에서 솔직히 처음 이 책은 기대했던바와 다르게 약간 거부감이 있었다. 오래전에 읽은 <뒤바뀐 딸>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한 여성은 사망하고 한 여성은 목숨은 건졌지만 의식불명이었기에 서로 딸들이 뒤바뀐것을 알지 못했는데, 의식을 차리면서 실제로 딸이 사망하고, 죽은줄 알았던 가정에선 딸이 살아있게되는 실화이야기였는데, 이 책에서도 쉼없이 신앙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마 난 무교인지라 절반이상의 그 이야기가 거부감이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이모님들과 만나면 이야기의 절반은 나같은 길잃은 어린양을 주님앞으로 이끄시려 노력하시고, 고모님들은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이야기해주시기에 귀를 닫는다. 그래서인지 내겐 종교란 믿음의 대상이라기보다 호기심으로 궁금해하는 대상정도인것만 같다. 유럽은 기독교와 떼어놓을수 없는 문화를 가졌고, 동양은 불교와 분리할수 없는 문화를 가졌듯이 나는 나의 믿음이 소중하듯 다른이들의 믿음도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중립론자이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종교적인 측면에서 살짝 거부감은 여기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읽어나가면서 바보의사 안수현님에게 매료당했다. 의약분업사태가 인해 의사들이 파업에 들어갔을때도 그는 동분서주하면서 환자들을 돌보았다. 자짓 의사집단에서 눈밖에 날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말 그 바보의사는 환자밖에 없는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실한 삶을 사신분이다. 옛동료가 내가 일하는 특성상 주말에도 일을 해야하는 시기가 있다. 항상 예배 반주 해야해서.. 하면서 회피하거나 할때 정말이지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나중에 연애를 하실때는 예배도 빠지더라. 그때는 참 어이없다, 좀 거리를 두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이해할수도 있을것 같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친가, 외가의 다른 종료로 인해 종교를 우선순위에서 배재했던 것이고, 그 동료도 나름의 우선순위가 있었을테고, 여기 안수현님은 모든것에서 종교가 우선순위였던것 같다. 나였다면 시험을 더 우선순위에 놓았을텐데, 이 청년은 의사 수련을 하면서도 항상 예배가 신앙심이 매사에 우선순위였고 그 신념에 따라 환자를 보살피고 다른 사람들도 대했기에 그가 위험에 처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발벗고 나섰지 않았나 싶다.


유행성 출혈열에 감염되어 짧은 삶을 살고 가셨지만 그의 진심이 전해지기에 마음이 따듯해진다. 이 책은 개정판이지만 그전부터 이 책의 인세로 안수현장학금을 운영하며 사랑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부재중이지만 그의 사랑은 진행 중입니다"라는 말처럼 안수현님의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고 신앙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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