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저글링 - 행복한 삶을 위해 하나도 떨어뜨려서는 안 될 일, 돈, 관계, 건강, 자아 다섯 개의 공의
김영안 지음 / 새빛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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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장본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 책이 지나치게 무겁다고 느낄땐 페이퍼북을 그리워하곤 한다. 그리고 또 가끔은 이렇게 예쁜 책을 선호하기도 한다. 어렸을적에는 책의 내용에만 너무 집중해서 보느라 다른것을 볼 여유가 없었는데 요즘은, 가끔식 책 읽는 것을 멈추고 책 한켠에 그려진 예쁜 그림을 감상하기도 한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내게 주변을 둘러볼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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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행복한 삶을 위해 하나도 떨어뜨려서는 안될 다섯개의 공들 일명, "일, 돈, 관계, 건강, 자아"도 한순간에 우리가 저글링 할수 있는 것들은 아닌것 같다. 물론 모든 이들이 되도록이면 빨리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바라겠지만 세개의 공을 가지고 실제 저글링을 해보면 초반에는 무던히도 떨어뜨리게끔 된다. 하지만 계속된 연습을 통해 비로소 저글링을 시원히 할수가 있다. 하지만 다섯개의 공이라고 생각을 해본다면 어지간한 시간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훗날을 생각하면서 지금부터 차근히 준비를 한다면 어느 순간엔가 행복한 나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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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생각만 해도 얼마나 기쁜일인지 모르겠다. 모든 일에 성공을 하고 행복함을 누리며 은퇴후를 즐기는 내모습. 하지만 많은 이들이 행복해 하지 못하고, 더더군다나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지극히 낮은것을 본다면 현실 세계는 그다지 녹록지 않음이 분명하다.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이 어쩐지 뜬구름을 잡는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항상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어서가 아닐까도 싶다. 당장 나 자신을 뒤돌아 봐도 그렇다. 요즘들어 입버릇처럼 누가 매달 오백만원만 준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만 읽으며 살고 싶다라고 한다. 그 "누구"는 나 자신이 아니겠는가? 자아를 찾기 위해 좋아하는 책을 읽으려면 돈을 벌어야겠고, 돈을 벌려면 나와 가장 적성이 맞는 일을 택해야 겠고, 계속 일을 하지는 건강도 챙기며, 인간관계도 잘 다져나가야하지 않겠나.. 결국 이 다섯가지는 톱니바퀴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뗄레야 뗄수 없는 것이다. 톱니바퀴가 어긋나게 되면 잘 돌아가지 않듯 어느 시점부터 잘 돌아가지 않으면 결국은 우리는 고난의 길을 걸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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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김연아 선수가 생각이 났다. 세상 누구나(단지 몇사람은 빠졌겠지만) 소치 올림픽에서의 그녀의 경기는 완벽했지만 편파판정으로 인해 금메달을 놓친것에 울분을 토하며 스포츠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논하며 그녀에게 금메달을 돌려주자며 흥분했지만 정작 그녀는 "더 간절히 원한 사람에게 갔을것", "최선을 다했기에 괜찮다"라는 이외의 반응을 보였다. 아마 나같았으면 몇날 며질이 무언가, 아마 평생을 가슴에 묻고 생각날때마다 곱씹으며 원망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김연아 선수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에 승복했고, 축제를 즐겼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했을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한 자의 모습일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금메달을 딴 그 러시아 선수는 당장 지금은 김연아 선수보다 완벽했기에 자신이 우승을 했고, 정당했다고 하나 시간이 흐른뒤에 과연 그녀가 행복할 수 있을까? 평생 어쩌면 그녀에게 혹 그녀는 의도치 않았을지도 모를 지금의 이일이 조롱거리로 따라 다닐텐데 말이다.

 

행복한 삶이라는 건 "일"에서 승승장구를 한다에도, "돈"이 엄청나게 많다해도, "관계"를 형성해나가는데 능수능란해고, "건강"을 위해서 운동과 보약을 먹는다 해도, "자아"를 위해 투자를 한다해도 어느 하나에 치우친다면 절대로 가질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의 균형이 가장 나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핵심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 편지 한통을 받았다. 작년부터 비로소 후원을 시작했었는데 그 어린이의 "발달보고서"였다. 아직 4살인 아인데 숫자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며 숫자를 써서 보내주었다. 비록 숫자 10개였지만 아직도 그 숫자를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나를 위해 썼을 그 아이의 숫자가 내게 행복을 주었다.

 

아마도 나는, 그리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창한 행복을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소한 행복은 우리 주변에 있다. 우리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면 당연히 행복할 것이다. 아마도 이 책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다섯개의 공을 가지고 균형을 맞추기만 한다면 지금은 소소하게 저글링을 할수 있겠지만 앞으로 그렇게 균형을 맞추게 된다면 더 큰 행복한 삶을 누릴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어디 행복한 삶을 이루는 방법을 배워보자'라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의 나도 그다지 불행하지 않는것 같다. 다만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떤 장애에 부딪쳐 저글링이 잠깐 위기를 맞았을 뿐이다.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면서 나태해지지만 않는다면 나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나 행복한 삶을 누릴수가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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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지혜 - 한 세기를 살아온 인생 철학자, 알리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희망의 선율
캐롤라인 스토신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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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나이로 111세가 된 알리스 할머니.. 할머니의 나이로만도 벌써 놀라운 일인데 나치에 의해 유대인 수용소에서 2년간 억류되는 고초를 겪고 생존하셨다는 것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이 책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중 하나가 바로 할머니가 바로 세계 최고령 홀로코스트 생존자라는 것이다. 우리의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를 비추어 볼때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은 남의 일처럼 보여지지 않는탓이기도 하겠다. 이 글을 읽으면서 '사라의 열쇠'라는 책도 생각을 했다. 추방명령을 받고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것, 그리고 가족들을 잃는것. 할머니도 체코에서 추방명령을 받았고, 테레진이라는 수용소에서 남편과 헤어졌다. 그리고 어린 아들과 살아남게 된다. 아마도 할머니가 살아남을수 있었던 이유는 피아노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아마도 세계의 이목은 신경이 씌였는지 나치도 수용소에서 음악회를 열게했다. 할머니의 연주는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을 줬는지도 모르겠다. 다른곳으로 이송되지 않을거라 이야기했던 젊음 독일군인도 아마 할머니의 연주에 감동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극한 상황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알리스. 그것이 아마도 알리스 할머니의 지혜로운 삶의 바탕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변신>의 작가로 유명한 '프란츠 카프카'의 이야기가 초반에 나오기도 한다. 할머니와 아주 친한 사이라고 한다. 왠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내게는 아주 예전의 유명한 작가였을 뿐인데 그 작가의 생전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것이 이런느낌이라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알리스 할머니는 '살아있는 20세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여전히 그녀는 피아노 연주를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그녀의 장수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것을 탐닌하고자하는 자세가 몸의 나의 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닌지.. 그건이 정녕 백년의 지혜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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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실록 - 능에서 만난 조선의 임금
이규원 지음 / 글로세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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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은 역사와 삶의 축소판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유교이념이 사회점반을 주도했다. 유학에서는 부모를 위한 선대 조상을 실체가 없는 신보다 더욱 극직히 숭모했고, 생사 사를 동일시하여 죽은 선조의 묘를 살아 섬기듯 보살폈다. 따라서 풍수에도 뛰어난 관심을 가졌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조선왕족 무덤이 모두 119기가 있다고 한다. 이 중 42기는 왕과 왕비의 능인데, 이중 제릉(태조 원비 신의고왕후)과 후릉(정동과 정안왕후)의 2기만 북한에 있고 나머지 40기는 모두 남한에 있다. 한 성씨로만 500여년 이상을 이어온 단일 왕조는 조선왕조가 세계 역사상 유일하며 왕실의 능이 이렇게 모두 보존되는 경우도 세계 최초라 한다. 따라서 2009년 6월 남한에 있는 조선왕릉 40기가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한나라의 제왕이었기에 탄생도 특별하겠지만 승하하고서도 능을 쓰는 것에도 특별했다. 특히 영릉은 워낙 명당이라 세종대왕을 이곳에 모신 이후 조선왕조의 운세가 100여년이나 연장되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영릉뿐 아니라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단종의 장릉, 이렇게 세곳은 명당중의 명당이라 꼽는다. 하지만 왕과 왕비라 할지라도 모두 명당에 모신것은 아니라고 한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굶겨 죽인 할아버지 영조를 미워했다고 한다. 따라서 왕을 모시는 능은 명당을 골라야 할진데, 영조는 숙종의 능이 있는 서오릉 안 명릉 가까이 붇히고자 했는데 정조의 명에 따라 현재의 원릉에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 원릉은 일찍이 효종을 안장했던 곳인데 능침 석물에 금이 가자 광중에 물이 난다하여 세종대왕릉 곁으로 천장한 곡절 있는 자리다. 자고로 사가에서도 파묘한 묏자리는 지기가 다했다 하여 쓰지 않았는데 할아버지가 미워 기가 다한 자리에 일부러 능침을 조영한 것이다. 아마도 어린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할수 밖에 없었던 한이 그에게는 골수에 파묻였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왕조 500년을 왕릉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하니 570여페이지가 되지만 금세 읽을수가 있다. 그리고 조선의 수도가 서울이여서 왕릉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수 있다. 하지만 일생을 서울서 자라서 왕릉이 익숙해서인지 경주의 왕릉보다 낯설지 않다. 어렸을적 '태릉푸른동산'이라고 하면서 소풍을 다녔던 곳을 기억한다. 소풍만 가면 항상 그곳이라고 투덜대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태릉 선수촌"으로 그곳을 더 잘 알고 있을텐데 바로 그곳이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능인 곳이다. 이렇게 중요하고 소중한 유산과 함께 하면서도 우리는 그 중요성을 잘 모르고 지내는 것 같다. 많은 사연을 갖고 있는 왕릉, 공개되어 있는 능도 있고 비공개릉도 있지만 우리가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소중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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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 - 65세 안나 할머니의 국토 종단기, 2009년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황안나 지음 / 샨티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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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안나 할머니의 국토 종단기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2000리에 해당하는 길을 23일에 걸쳐서 그것도 홀로 종단을 한다는 것은 말이다. 블로그를 운영하신다기에 찾아들어가봤는데.. 아쉽게도 야후의 한국 서비스가 종료되서 찾을길이 없어서 아쉽다. 내 나이 안나 할머니에 비하면 택도 없이 젊지만 무언가 새로운것을 시작한다는 것에 조금 두렵기만 한 나이이다. 하지만 많은 책들을 읽으며 무언가 기운을 받고자 했는데 이 책만큼이나 기운을 받은 책도 드물것이다. 흔히들 혼자 밥먹는거 영화보는거 하기 매우 힘든데.. 나는 이것을 아마도 30대 초반쯤에 시작을 한것 같다. 지금이야 어디든지 쫓아오는 딸아이가 있으니 또다시 엄두내지 못하지만 혼자서 하는 도보여행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것 같다.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마음으로나마 안나 할머니를 쫓아가며 국토종단 여정을 해보니 한번쯤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것두 하다. 하지만 아직 내 여건은 할수 있는 조건은 아닌것 같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한달여를 도보여행을 위해서 쉰다면 우리 가족들은 끈떨어진 연마냥 초라해질테고.. 나도 적어도 10년후쯤이나 생각을 해보면 될까나.. 그때는 그래도 안나할머니보다는 아직 젊을 때니까... 하지만 과연 할수 있을찌는 의문이다.

 

안나 할머니는 2004년 3월 23일 해남 땅끝마을을 출발하여 4월 13일 통일전망대에 도착을 한다. 민통선 안쪽은 개별적으로 걸을수 없어 미리 신고를 하고 군인과 함께 가야한단다. 나도 차를 타고 여러번 통일전망대를 간것 같은데.. 한번도 걸어 가지 않았기에 이번에 알게되었다. 먼여정의 첫발을 내딛는 느낌은 어떨까? 가족들과 경주를 가기 위해 의정부인 집에서 출발하던 그 느낌일까? 아님 혼자 휴가를 즐기기 위해 차를 출발시키던 그때 그 느낌일까? 처음 읽기 시작했을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안나 할머니와 함께하는 여정속에서 괜시리 나도 그 길을 걷는것 같아 설레기도 하고 지도를 보며 어디쯤인가 확인도 하며 그렇게 이 책과 함께 했다. 솔직히 요즘같은 세상에 홀로 도보여행을 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굽이굽이 내 조국의 국토를 한걸음 한걸음씩 도보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음에는 분명할것 같다.

 

길위에서 만난 고마운 사람들에게 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고,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들을 만나면 덩달아 나도 기쁘고, 목적지가 다가오면서 나도 설레였고, 국토종단의 길이 통일전망대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북녘땅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함께 느꼈다. 아름다운 도보여행가 안나 할머니. 덕분에 나도 무언가 항상 새롭게 시작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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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아 사랑해
이지선 지음 / 이레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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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용기의 꽃 이지선 이야기'

 

꽤 유명한 분인데 왜 나는 몰랐을까? 나보다 몇살정도 어리지만 참 대단한 분인것 같다. 꿈많던 대학 졸업반 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화상을 입게된다. 화상환자이기에 그리고 너무나도 심했기에 의사들은 그녀에게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견뎌냈고, 살아남았다. 아마도 그녀의 긍정적인 마인드 때문에 그녀는 어려움을 이겨내지 않았을까 싶다.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충분히 느낄수 있다.

 

좀 오래된 책이고, 10여년이 지난일이기에 과연 저자는 어떨가 하는 생각에 그녀의 홈페이지나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홈페이지는 접속이 안되고 있지만 그녀의 책의 마지막에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과연 그대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갑작스럽게 많은 것을 잃게 된 장애인들의 상실감과 우울함,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는 상담센터를 만드는게 꿈이라고 하는데 꼭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솔직히 나도 가끔 얼굴에 화상을 입은 사람, 혹은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본적이 있다. 그리고 애처러운 듯 한번 더 시선을 둔적이 있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될지는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항상 많은 사고속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이 꼭 나의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나도 그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간과하는 것 같다. 물론 "어쩌다가...", "저러고 어떻게 살아..."라고 입밖으로 내는 사람들이 당사자를 무시한다거나 업신여기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안타까워서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올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순간 눈길이 한번 더 갈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픔이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혹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얻은 아픔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고, 누구에게나 있을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배려하는 마음들을 가진다면 굳이 지선씨가 처음에 그랬던것처럼 사람들이 모두 잠든 후에 복도를 산책하거나 집에서만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들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

 

어쨌든 그녀는 대단하다. 자칫 꿈을 접을수로 세상과의 인연을 끝낼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또 다른 곳에서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용기에, 그리고 그녀의 긍정적인 마인드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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