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링의 13소녀
옌거링 지음, 김이경 옮김 / 뿔(웅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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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 : 1937년 12월∼1938년 1월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과 그 주변에서 일본의 중지파견군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휘하의 일본군이 자행한 중국인 포로·일반시민 대학살 사건이다  < 네이버 백과사전 中 >

 
'난징대학살'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자세한 전말은 알지못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난징대학살에 대한 검색을 해보았는데.. 비록 우리나라에서 자행된 일은 아니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를 지닌탓에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에 못지 않은 만행을 겪긴 했어도.. 난징대학살때 희생된 중국인들은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고 하니 그들 나름의 또다른 분노를 갖는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당시 일본군이 사람들을 죽이는 방법은 반인륜적으로 잔인하기도 하였고, 워낙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기에 강은 시체반 물반이었으며, 길거리마다 시체가 새까맣게 깔려 있을 정도로 그 참혹함은 이루 말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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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기 전에 '사라의 열쇠'라는 프랑스 소설을 읽었다. 그 이야기는 비슷한 시기의 '벨로드롬 디베르 일제 검거 사건(1942년)'을 배경으로 한다. 유대계 프랑스인들을 나치의 명령에 따라 프랑스 정부가 검거하여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 죽게했던 사건이다. 그속에 얽힌 한 소녀의 슬픈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마음이 아팠고,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이 무척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연일지는 모르겠지만 곧이어 읽은 이 '진링의 13소녀'라는 책이 조금 앞서기는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비극적인 역사속 아픔을 다시한번 생각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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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미처 몰랐지만 책의 표지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붉은 나비가 있다. 그저 떨어지는 꽃잎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부스러지는 저 붉은 나비를 보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이 책의 내용을 조금은 짐작할수도 있지 않을런지...

 

여기 난징대학살이 벌어지던 그곳에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성당에 남은 16명의 소녀가 있다. 이 성당에는 여학생들을 보호하는 두 명의 외국인 신부과 중국인 고용인들이 있다. 그리고 일본군을 피해 안전해 보이는 성당으로 14명의 홍등가 기녀들이 피난을 오게된다. 일본군에 교묘한 속임수에 속아 투항했다가 잔혹하게 살상되었던 중국군사들 사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군인 3명이 다시 성당으로 스며들면서 이제 더이상 성당은 안전지대라 할수가 없게된다. 그러한 가운데 딸을 구하러 온 한 아버지와 함께 3명의 소녀가 지옥같던 난징을 탈출한다. 성당을 나섰다가 길을 잃어 돌아오지 못했던 어린 기녀가 무참히 일본군에게 짓밟히고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그토록 여린 소녀들을 보호하려던 신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저 폭풍만 같던 전쟁이 지나가기만을 바랬던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일본군이 잔인하게도 소녀들에게 음흉한 손길을 내밀게 되자, 그들의 초대가 결코 순탄하지 않을거란 것을 알면서도 13명의 남은 기녀들은 소녀들과 운명을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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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벽이 허물어져 가던 1930년대의 멍수쥐안은 천박하다며 자오위모를 비롯한 기녀들을 냉랭하게 대한다. 고귀하게 위선을 떨어도 어쨌든 너나 나나 이 광기 서린 전쟁속에서는 같은 처지일뿐이라고 자오위모의 행동은 말해준다. 이 잔혹한 전쟁속에서는 어떤 위치의 사람이건 똑같이 불행하기는 마찬가지일것이다. 이 난징대학살이나 나치의 유태인에 대한 비인륜적인 행동은 중국인들만의 것도 아니고, 유태인들만의 것도 아니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인류 모두의 아픔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아픈 역사는 마치 그런일이 없었던 듯 덮어두기보다는 당시의 실상을 올바로 기억하며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또한 중요한것은 우리가 이런 아픈 역사에 대처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독일은 당시 나치당의 비인륜적 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독일은 과거를 깨끗하게 씻고 다른 유럽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가며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그들의 과거 이런 행동을 인정하지도 않고 정당화 하여 왜곡된 역사를 후대에 가르치고 있어 우리를 비롯한 당시 피해국가들과 마찰을 종종 빚고 있다. 이는 우리가 너무나도 과거에 연연해 하고 있기 때문일까? 단지 앞날은 생각하지 못하고 과거에 일에 너무 얽매여 관계를 껄끄럽게 한다고 치부하기엔 단 6주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희생된 30만명의 죽음이 너무나 가엽지 않은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또다른 난징대학살이라는 인류의 잔혹함이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꼭 '대학살'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내가 피해자가 되어 혹은 가해자가 되어 그렇게 인류의 아픈 역사가 씌여지고 있을것이다. 때문에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이상은 역사에 아픈 기억을 새기지 않도록 기억해야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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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열쇠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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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에는 무심코 이 책을 골랐다. 아니, 애초에 이 책을 읽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을땐 그야말로 감동이 넘쳐흘렀다고나 할까...

마음아프지만 잊어서는 안될 또다른 역사이기도 했기때문이다.

 

1942년 7월 16일 "벨로드롬 디베르 일제 검거사건"

독일도 그리고 독일군인도 아닌 나치 치하의 프랑스 정부가 유대계 프랑스인을 기습 검거해 사이클 경기장에 가둬두었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낸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은 식량도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감금되었다가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을 뿔뿔히 흩어져 수용소로 이송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열살 사라는, 물론 실제 인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어 부모님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때, 동생인 네살 미셸은 벽장속에 몰래 숨기고 얼른 돌아와 꺼내주고 약속을 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오래 시간이 흐르게 될줄 어린 사라는 그때 미처 몰랐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줄리아는 60주년을 맞이하는 '벨디브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조명하는 기사를 맡으며 이 일을 조사하게 된다. 사라의 이야기와 줄리아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나오게 되고, 차츰 차츰 그들의 이야기가 '벨디브 사건'만이 아니라 서로와 연관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가혹했던 사라의 수용소 생활. 과연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자행되었는지 생각하게 되면 너무나도 끔찍하다. 그곳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죽었겠지만 생존한 사람들이나, 그렇게 줄지어 이동하는 유대인들을 보았던 사람들은 어떤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가지 않았을까.. 사라를 구해주게 되었던 어느 노부부처럼 미셸도 그렇게 구원을 받았으면 하는 조바심에 글을 읽어나갔지만 결국엔 동생을 구해주지 못한 부분에서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그 이후로 사라의 삶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라뿐만이 아니라 이 사건에 관계가 있던 많은 사람들은 어느정도 관계가 있든 없든간에 이 사건으로 인해 여러모로 삶이 바뀌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소설 '태백산맥'을 떠올렸다.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도 '양민학살'이 나오게 된다. 그 부분을 읽게 될때도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안절부절 못하는 나자신을 느꼈었다. '사라의 열쇠'는 우리네 역사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똑같은 감정을 느낀것이 아닌가 싶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또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그들은 잘못한게 없었다. 과연 그들의 죽음을 시대를 잘못 타고난 운명이었다고만 탓할수 있을까?

 

이기심때문이 아닐까... 이기심 때문에 본질은 왜곡되고 전세계가 고통스러워할 아픔을 만들어 내고 있는것은 아닌가 싶다. 나는 아주 오래전 "이산가족 찾기"를 기억한다. 그리고 함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 아주 어렸을 그 때도 그저 막연하게 가족과 헤어지는 두려움을 알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다. 전쟁은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가족을 잃고, 삶을 잃게 한다. 비단 전쟁뿐만이 아니라, 잘못된 이기심에 상처입고 삶까지 바뀌게 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상처들은 과연 치유될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가끔씩 예전일을 곱씹어 보는 그런 못된 버릇이 나에게 있다.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이 겪었을 그런 아픈 기억은 그리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닐지 싶다. 열살 어린 나이에 겪었을 사라의 아픔은 그녀가 살면서 결국은 등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그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갔을 사라가 안쓰럽다. 그녀에게 손내미는 사람들의 손을 잡았더라면 사라의 삶이 덜 고되었을까? 나를 미루어 생각해볼때도 그다지 사라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것 같지만서도... 내가 사라앞에 있었더라면 그래도 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그녀에게 위안은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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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사랑한다 세트 - 전3권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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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에 신청해서 한번 거부당했었다. 그때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아마도 로맨스 소설이라 그랬던 것 같지만.. 전혀 문제될것 같지 않은데 참 보는 관점이 다양한가보다.

 

이 소설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우리가 원나라의 부마의 나라였던 충렬왕과 충선왕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충선왕은 충렬왕과 원나라의 공주사이에서 태어났다. 역사적으로 충선왕은 부패하고 빈곤한 고려의 개혁에 힘쓴 총명한 군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또한 대단한 가계에 걸맞는 야심을 품은 왕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의 사적인 일면은 어둡고 기괴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아십게도 내가 고려의 왕은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이 소설으 그런 충선왕의 어렸을적 세자시절부터 그의 친구인 왕린, 왕산과의 얽힌 이야기이다. 물론 세자인 원은 실제 인물이지만 린과 산은 가상의 인물이다. 그의 어딘가 모를 지독한 방황과 같은 분노가 그의 사랑과 우정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상상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가 완전한 고려인이 아니기 때문에 오는 자괴감이 아닐까.. 현재 우리나라에 만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처럼 900여년전 한민족을 고수했던 우리나라의 그것도 왕실에서 몽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려에도 속하지 못한 이유에서의 방황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갑작스레 소년 셋이 모였다. 원은 한 나라의 세자, 린은 그를 지키는 호위무사, 산은 남장을 한 여인.

처음에 린이 산을 원을 위해하는 세력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지만 원과 린은 서서히 산을 흠모하게 된다. 그리고 산이 린을 좋아하면서 세사람의 우정은 금이가게 된다. 린과 산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만을 바라보길 바라는 원. 그리고 모든 권력을 가진 왕인 원. 그로 인해 많은 세월동안 원뿐만 아니라 산과 린도 아픔을 갖고 벗을 그리워하게된다. 만약에 나였다면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을 사람은 다시는 기억하지를 않기를 빌텐데 그래도, 린이나 산은 원을 그리워하며 그가 고려의 왕으로서 올바른 군주가 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돕는다.

 

3권분량이 비교적 많은 이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과연 몇부작일지.. 고려뿐 아니라 넓은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거대한 스케일의 이 이야기를 과연 드라마로 잘 옮겨질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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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권혁준 옮김 / 해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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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자살로 인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려던 범죄 심리학자 "이라 자민"

8개월전에 사망한 약혼녀를 데리고 오라는 조건을 내걸고 인질극을 벌인 "얀 마이"

 

그들은 밀폐된 라디오 방송국에서 인질범과 협상가로 만나게 된다. 전화를 받자마자 "101.5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어요, 인질 1명을 풀어주세요"라는 구호를 외쳐야만 인질을 살릴수 있다. 만약 다른 말을 하게 되면 한명씩 인질은 죽게된다. 두사람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방송을 통해 계속 생중계가 되고 하나둘씩 얀의 약혼녀가 죽지 않았다는 의심이 하나씩 살아나게 되는데...

 

그녀는 <증인 보호 프로그램>으로 인해 완전히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갑자기 증발해버린 것이다. 외국드라마든지 소설에서 보면 가끔 이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된다. 내가 아는바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과연 이런 것이 존재할까? 중요한 사건의 결정적 증인이고 그것때문에 생명의 위험이 생기는 것을 우려해 완전히 신분세탁을 통해 다른 삶을 갈아가게 되는것.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작기때문에 쉽사리 신분을 세탁하고서 새로운 곳에 가서 살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일까?

 

어찌보면 이 제도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수 있는 아주 중요한 증인에게는 필요한 것일것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갑자기 자신의 생활영역에서 깨끗이 살아진다는 면에서는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얀 역시 하루아침에 약혼녀의 죽음을 전달받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달 받기전에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약혼녀의 전화를 받게된다. 갑자기 약혼녀를 잃게 되고 직업도 잃게 되어버린 얀의 심정은 또 어떨것인지.. 어쩌면 이 제도는 증인에게는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날수 있는 제도인 한편 모든 자신의 삶의 영역을 포기해야만 하는 '양날의 검'과 같은 제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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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련화
손승휘 지음 / 황금책방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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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부터 항상 그녀는 우리에게 '유관순 언니'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그녀보다 더 나이가 많아져 버렸다. 이제는 어쩜 계속 유관순 언니라고 부르는게 멋쩍다. 내가 나이가 더 많은탓이리라...

 

어렸을적 독립투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들 외에는 별다른 감회는 없었던것 같았다. 헌데, 아이가 크면서 역사를 알게 해준다며 박물관을 다니다 보니 내게도 부쩍 와닿는 것이 많았었다. 안중근 의사 박물관에 갔었을 때도 그저 그분의 손가락은 숱한 고문에 의한 것인줄만 알았지 손가락을 끊어 절대로 조국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인줄은 몰랐다. 그때 가슴 한켠에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관순은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주변에서 볼수 있던 그런 17세의 어린 소녀였다. 그런데, 관순에게선 어찌 그런 힘이 나올수 있었을까? 여리디 여렸던 소녀가 그녀는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그토록 일본이 말살시키려고 했던 우리 민족정신이 사그라들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던 부분을 읽었다. 3년전인가 딸과 서대문형무소에 간적이 있었다. 소설에서 관순이 서술했던 대못이 거꾸로 박혀 있던 작은 고문상자, 온종일 꼼짝달싹 할수 없던 벽관, 그리고 수용소... 서대문 형무소에서 직접 보았기때문에 그 대목을 읽을때는 더욱더 마음이 아팠던것 같았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아이는 매우 무서워했다. 그리고 왜 이런 무서운 곳을 그대로 내버려 두느냐구 물었었다. 아픈 역사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또 우리의 역사라고 했다. 서대문형무소를 없애버린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아픈 기억을 잊을것만 같다. 아픈 역사를 바라보면서 그날의 유관순을 잊지 말아야 되지 않을까?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나라였으니까.. 해방이 되고 일본군이 물러나면서 지하감옥을 폐쇄했었다고 들었다. 바로 그 지하감옥이 유관순이 수감생활을 했던 곳이다. 지금은 다시 복원하고 유리를 덮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수 있다. 그 때도 그녀의 숨결을 느낄수 있었는데 소설과 함께 그날을 생각하니 더욱더 마음 한켠이 아련해진다.

 

소설을 다 읽고 생각해보았다. 만약 지금 관순이 처했던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그녀처럼 만세운동을 할수 있었을까? 관순은 어떤 특별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소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나는 도저히 그러지 못할것 같다. 아마도 난 관순만큼 평범하지도 못한 사람이라서 용기가 없는걸까? 똑같은 상황이 닥친다해도 나는 그녀같을수 없을것같다. 지금의 나보다도 더 어렸던 관순에게 너무나도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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