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련화
손승휘 지음 / 황금책방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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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부터 항상 그녀는 우리에게 '유관순 언니'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그녀보다 더 나이가 많아져 버렸다. 이제는 어쩜 계속 유관순 언니라고 부르는게 멋쩍다. 내가 나이가 더 많은탓이리라...

 

어렸을적 독립투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들 외에는 별다른 감회는 없었던것 같았다. 헌데, 아이가 크면서 역사를 알게 해준다며 박물관을 다니다 보니 내게도 부쩍 와닿는 것이 많았었다. 안중근 의사 박물관에 갔었을 때도 그저 그분의 손가락은 숱한 고문에 의한 것인줄만 알았지 손가락을 끊어 절대로 조국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인줄은 몰랐다. 그때 가슴 한켠에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관순은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주변에서 볼수 있던 그런 17세의 어린 소녀였다. 그런데, 관순에게선 어찌 그런 힘이 나올수 있었을까? 여리디 여렸던 소녀가 그녀는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그토록 일본이 말살시키려고 했던 우리 민족정신이 사그라들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던 부분을 읽었다. 3년전인가 딸과 서대문형무소에 간적이 있었다. 소설에서 관순이 서술했던 대못이 거꾸로 박혀 있던 작은 고문상자, 온종일 꼼짝달싹 할수 없던 벽관, 그리고 수용소... 서대문 형무소에서 직접 보았기때문에 그 대목을 읽을때는 더욱더 마음이 아팠던것 같았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아이는 매우 무서워했다. 그리고 왜 이런 무서운 곳을 그대로 내버려 두느냐구 물었었다. 아픈 역사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또 우리의 역사라고 했다. 서대문형무소를 없애버린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아픈 기억을 잊을것만 같다. 아픈 역사를 바라보면서 그날의 유관순을 잊지 말아야 되지 않을까?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나라였으니까.. 해방이 되고 일본군이 물러나면서 지하감옥을 폐쇄했었다고 들었다. 바로 그 지하감옥이 유관순이 수감생활을 했던 곳이다. 지금은 다시 복원하고 유리를 덮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수 있다. 그 때도 그녀의 숨결을 느낄수 있었는데 소설과 함께 그날을 생각하니 더욱더 마음 한켠이 아련해진다.

 

소설을 다 읽고 생각해보았다. 만약 지금 관순이 처했던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그녀처럼 만세운동을 할수 있었을까? 관순은 어떤 특별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소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나는 도저히 그러지 못할것 같다. 아마도 난 관순만큼 평범하지도 못한 사람이라서 용기가 없는걸까? 똑같은 상황이 닥친다해도 나는 그녀같을수 없을것같다. 지금의 나보다도 더 어렸던 관순에게 너무나도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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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 걸즈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6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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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청소년을 위한 책인것 같다. 성장소설이라고나 할까?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를 읽고부터 청소년 성장소설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꼭 청소년 소설이라고 청소년만 읽으라는 법없고, 어린이 동화라고 해서 어린이만 읽으라는 법은 없는것 같다. 김려령 작가의 '가시고백'을 읽다가 책속에 꽂혀있는 속지에서 < 그냥, 컬링 >이라는 책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표지가 너무나도 귀여워서... 그래서 또 병(?)적으로 블루픽션상 수상작을 찾아보게 되었다. 근데, 역시나 재미있어서 다행인거 같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은성, 보라는 소년원에 가기전 한번의 선처를 위한 프로그램이기도 한 '실크로드'를 걷게 된다. 유럽에서도 소년범죄 아이들을 단순히 소년원에 보내는 것 말고 이런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시킨후 재범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주 언니의 보호아래 70일에 걸친 실크로드 대장정을 시작한다. 우선 허구속 이야기이긴 하겠지만 좋은 프로그램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 우리사회에서도 날로 지능적이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청소년 범죄가 성행하고 있다. 그들에게 사회봉사라는 시간외에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뭔가 극한의 상황에서 그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1200km를 걷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테지만 말이다. 작년 제주도를 여행했을때 일부러 올레길을 걸어보기로 했었다. 딸아이는 18km 정도 되는 길을 걸어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난이도가 낮은 길을 택했었는데.. 꼬여서 제일 어려운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해안가를 끼고 걸어서 경치는 대단했다. 여러번 못가겠다고 징징댈줄 알았는데 꾸준히 그 길을 다 걸을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올레길을 또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저 어리다고만 생각하는 아이들에겐 정말 알수 없는 힘이 있는것 같다. '1200km나 되는 길을 어떻게 걸을까?'라고는 하지만 아마도 아이들은 해낼것이다.

 

현재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나약하지 않나싶다. 뭐든 쉽고, 잘못되도 몰라라 외면하고,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모르고, 포기도 빠르고... 어쩌면 어른들이 그런 아이들을 만들어내는것만 같아, 씁쓸한 느낌을 버릴수가 없다. 이 이야기속 은성이는 미혼모인 엄마를 두고 있다. 아빠가 없기에 그것이 자신을 놀림의 대상으로 만드는게 싫었다. 그래서 더 강해보이려고,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을 때렸다. 보라는 왕따가 되기 싫어서 도둑질을 했는데 결국에는 도둑질때문에 왕따가 되었다. 아픔을 가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으 대표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해진 일정에서 벗어나 유목민을 만나게 되었다. 아무래도 떠돌아 다니는 유목민이다 보니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도 않고, 텔레비젼이나 인터넷같은 문명생활을 접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은성, 보라 본인들보다 그들은 더 행복해 보인다. 어쩌면 발달된 사회가 우리를 더 외톨이로 만들고 있는것 같은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은성이와 보라는 일정에서 조금 늦춰졌지만 그래도 완주를 하게된다. 그리고는 더이상 두려울게 없다고 생각한다. 80일에 걸친 그 여정이 그녀들을 더욱더 성숙하게 만든것만 같다. 이래서 어쩜 성장소설을 좋아하는것만 같다. 읽으면서 흐뭇한 감정을 느낄수 있기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조금 더 크면 함께 '국토대장정'이라도 떠나봐야겠다. 애기때부터 자동차만 익숙했던 딸아이를 차츰 거친 자연으로 몰아내야겠다. 그렇게 걷다보면 우리딸도 한층 더 견고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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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뿌리는 자 스토리콜렉터 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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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누스 시리즈의 다섯번째 작품이다.

우리에게 그녀의 이름을 알린 <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의 다음 작품이다. < 바람을 뿌리는 자 >보다 앞서 국내에 출간된 < 너무 친한 친구들 >은 타우누스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다. 물론 시리즈를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시리즈이다 보니 형사들의 개인적인 문제들은 약간의 언급들을 찬찬히 생각해봐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들의 이야기가 전체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말이다. <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에서 한창 부인과 갈등하고 있던 보덴슈타인은 이혼을 하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와 살고 있었고, 반가운 피아 형사는 < 너무 친한 친구들 >에서 용의선상에 올랐던 이와 살고 있다. 두사람은 파트너이면서도 또한 동성이 아니면서도 서로에게 많은 것을 털어놓는 관계이다.

 

하지만 앞서 읽었던 전작에서와 달리 이번 이야기는 초반부가 매우 복잡스러웠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나와서 솔직히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그들의 얽힌 관계가 하나하나 풀어나가면서 속도를 붙이면서 읽을수가 있었다. 단순히 풍력에너지 개발과 그에 맞서는 환경단체와의 싸움이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한 숨겨진 엄청난 비밀이 있었다. 거짓으로 포장되어있던 사람들의 진실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앞서의 난해함을 하나로 묶을수가 있는 치밀함 덕분에 여전히 그녀의 작품을 또 기다리고 있는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어서 만나볼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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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죽음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서유리 옮김 / 뿔(웅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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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의 기세가 무섭다. 넬레 노이하우스나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심리 스릴러의 영역의 주도권을 독일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다. 물론 유럽에서는 예전부터 독일 작품이 꽤 유명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관심을 받게 한 작가가 바로 이 두 작가가 아닌가 싶다.(내 생각만 그런가?) 어쨌든 두 작가의 작품은 꽤 기대가 되고 또한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것 같다.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 창백한 죽음 >은 발간된다는 소식을 접한후부터 나를 심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구입을 하느냐, 도서관에서 기다리느냐... 물론 소장의 가치도 있겠지만.. 요즘 도서관에서 대출에 읽는 재미에 푹 빠진 나로서는 도서관에 신청을 하고 기다릴수밖에 없었다. 근데.. 왜 이리 오래걸리던지.. 신청을 하고서도 4개월이 지나서야 받아볼수 있었다.

 

작가가 전작 < 사라진 소녀들 >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흡입력을 이 작품에서도 느낄수 있었다. 요즘 시대의 병폐라고 할수 있는 소시오패스의 등장. 25명중 1명은 소시오패스라 한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해하는 행태를 전반적, 지속적으로 보인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소시오패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은 25명중에 1명꼴로 아주 드문예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에 그 이야기는 우리는 흔히 볼수는 있으나 느끼지 못했고 현재도 많은 소시오패스를 양성(?)하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 사회는 더욱더 각박해지고 무질서해질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문제는 결코 소설속 허구적 이야기로만 끝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도 보면 빨간불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교복입은 학생들을 많이 볼수가 있다. 또한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분명한데도 자전거를 타고 버젓이 차를 오히려 위협하는 학생들을 보게 된다. 사소한 도덕적인 질서도 지키지 못하는 아이들. 마치 그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것 같다. 물론 운전자가 보행자의 안전을 우선시해야한다는 것을 알지만 도가 지나칠대로 지나쳤다. 갈수록 어려지고, 잔인해지는 청소년 범죄들.. 이를 바로 잡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소시오패스를 양성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디서부터 우리 사회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인가?

 

딸아이가 집중이수제에 따른 도덕 시험공부를 하면서 많은 분량에 지쳐 '커서 이런거 필요하지도 않는데 왜 배워야해?"라는 푸념을 했다. 딸아이 뿐만이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서도 종종 듣는 이야기이다. 또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에 대한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 같다. 양심, 욕구, 당위 등등 중요한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낱 평가에만 위주를 두다 보니 지칠만도 하다. "방정식 몰라도 살아가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렇다. 살아가면서 방정식이니 샤를의 법칙이니 몰라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것만 배우나? 남들과 함께 사는 공동사회, 협력하는 법등 다양한 것을 배우는데 아이들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다. 과연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물론 어른들일 것이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늘상 겪는게 남보다 뛰어나야 하는 치열한 경쟁속에 아이들은 하나둘 소시오패스로 길들여지는 것이다.

 

꼭 잔인한 범죄를 저질러야만 소시오패스, 사이코 패스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수 없는 사람들... 어쩌면 25명중 1명이 아닌 2명중 1명, 혹은 모든 사람이 소시오패스라는 시대가 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 창백한 죽음 >이라는 소설은 꽤 재미있었기도 했지만 씁슬한 현실을 다시한번 생각해볼수 있게 해준 소설이기도 했다. 부족하나마 나부터라도 우리아이를 도덕적인 실천을 할수 있도록 이끌어야겠다. 25명중의 1명이 아닌 소시오패스가 없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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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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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대박!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이지 맘에 쏙드는 작가다. 어느하나 실망시키는 작품은 없는것 같다.

물론 나와 코드가 아주 잘맞는 작가이기에 그런지도 모르지... 나도 영 안읽히는 책은 정말이지 지겨워하니까 말이다. 너무나 자주 읽게되면 혼동이 있을까봐 그의 작품을 한동안 안 읽다 순식간에 읽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택했는데, 약간 두텁지만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한 여자가 죽었다.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절실히 살고 싶어하며 또 저주하면서 사고 운전자를 노려보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1년반이 흐른뒤에 복수를 하기 위해 가해자의 머리를 가격하고 자살을 한다.

그 일로 신스케는 약간의 기억을 잃었다. 사고에 얽힌것만 기억하지 못한다.

왠지 깨끗하지 못한 느낌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알고 싶어 나름대로 사건을 추적한다.

하지만 주변사람들도 무언가를 숨기며 거짓말을 는것만 같다.그 가운데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

경악스럽기까지 했던 피해자의 저주!

 

아마 피해를 당하고 죽어가는 사람의 눈빛을 보는 것은 가해자로서 거의 공포에 가까운 것일테다. 여기서는 빙의라는 표현은 쓰지만 빙의보다는 그녀의 공포스럽던 눈빛이 가해자에게 평생의 굴레가 되었기에 평상시로 돌아가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싸이코패스가 아니고서는 가해를 해놓고 편안하게 두발뻗고 자는 이는 없을것이라고 생각된다. 옛말에 이르길 '맞은 놈은 발뻗고 자도, 때린놈은 발뻗고 잘 수 없다는' 말이 진리인것 같다. 아마도 산스케도 잘 기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뻗고 자고 싶은 생각에 추적을 했을 것이다. 사건의 정황을 알고 있을때 가질수 있는 죄책감과 사건의 전말을 모르고 갖는 죄책감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죄를 은폐하려는 사람은 언젠가 벌을 받겠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아주 약간의 소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요즘에도 보면 법이라는 장벽에 막혀 억울해 하는 사람들을 종종본다. 발뻗고 잘수 없는 그런 심리적 고통보다는 잠시라도 가해자로서 손가락질 받는 것이 더 올바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한다. 세상의 모든 억울한 사람을 생각하면 말이다. 피해자의 인권은 보호해주지 않고 가해자의 인권만 보호해주는 못된 세상. 소설에서마나 통쾌하게  못된것들에게 벌을 내리니 마음 한켠은 조금 위로를 받는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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