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전쟁
사라 치룰 지음, 박미화 옮김 / 엘도라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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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자원을 둘러싼 세계의 숨막히는 각축전이 시작됐다!!

 

예전부터 망간단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었다. 우리에게 아주 유용한 자원이 될것이라고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망간단괴뿐만 아니라 그 깊은 심해에는 메탄하이드레이트에서부터 많은 자원들을 품고있다. 마치 세상에 그 비밀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바다는 항상 육지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생략) 빛이 도달하지 않는 깊은 곳에서 심해가 시작된다. 일부 학자들은 바람과 해수면의 온기에 영향을 받지 는 수심 200미터부터를 심해라고 말한다. 그러나 수심 800미터부터 심해가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통일된 정의는 없지만 해양학자 대다수가 수심 1000미터부터를 심해로 규정하고 있다. 수심 1000미터부터는 정밀한 기계로도 태양광을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심 1000미터 이상의 해저지역들은 지구 표면의 60퍼센트를 덮고 있다. 그러므로 해저는 지구에서 가장 넓은 생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p. 23)

 

빛도 닿지 않은 심해, 인간이 지구상에서 정복하지 못한 마지막 지역!!!

얼마전 '싱크홀'이라는 책을 읽었다. 싱크홀이란 지반이 붕괴되어 생기는 수직 원통모양의 거대한 구멍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다에 생기면 '블루홀'이라고 한다. '블루홀'이라는 곳도 수심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들었다.

1.JPG

 

이 '블루홀'이라는 곳에 다이빙하는 영상을 본적이 있는데, 수심을 알지 못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꽤나 신비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심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을 읽을 때에 왠지 모를 신비감이 들었던 것 같았다.

 

2.JPG

 

물속은 수심 10미터를 내려갈때마다 기압이 1기압씩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깊이 들어가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매우 높은 압력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6,000미터까지 잠수할 수 있는 고성능 로봇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6,000미터는 우리가 도전할수 있는 한계라고 한다. 하지만 심해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북태평양의 마리아나 해구는 수심 11,034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한다.

 

SDC10005.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지의 심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그곳에 무한하게 많이 매장되어 있는 천연자원때문이라고 할수 있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래전부터 일본과 독도를 가지고 옥신각신 하고 있는 이유이다.(일본은 너무나도 뻔뻔한것 같다. 이미 여러 역사서에서도 오래전부터 우리 영토였던 곳을 안하무인격으로 시시탐탐 노리다니 말이다.)  비단 우리나라의 경우뿐만은 아니고 인접한 나라에서는 항상 빚어지고 있는 일이다. 바로 수많은 보물을 품고있는 바다를 차지하려 하는 조용하고도 날카로운 싸움일 것이다. 해양은 통상 해양법상 12해리 안쪽의 바다는 명백한 그나라의 영토인 것이다. 그리고 200해리까지는 배타적 경제수역이라고 한다.이 200해리 수역이 겹치는 경우 해당 국가들은 합의 하에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배타적 경제수역 밖에 있는 부분이 공해라고 하는 국제수역이다. 세계 바다의 65퍼센트는 그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은 곳이다.

 

따라서 우리의 독도라든지 세계의 영토분쟁으로 칼날을 세우고 있는 곳은 바로 200해리 수역이 겹치는 배타적 경제수역에 있는 곳을 말한다. 0.2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돌섬을 가지고 이렇게 날카롭게 구는 것은 독도를 비롯한 그 인근에 있는 바다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다가 품고있는 수많은 자원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350해리까지 영유권을 주장할수 있기때문에 앞으로 공해는 많이 줄어들게 될것이며 아마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보여지는 분쟁이 많은 나라들로 확장되지 않을까 싶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새로운 천연자원을 위해 끊임없이 심해를 연구하고 도전하고 있지만 딴으로는 누구를 위한 개발이고 연구인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전세계가 노리는 60%의 주인 없는 바다'라는 제목에 살짝 심기가 불편해졌다. 과연 주인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것인지 말이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 곳에 이미 태고적부터 살아오고 있는 생물들은 과연 주인이 아닌지 말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자원을 위해 심해를 탐험하고 개발하려 하고 있지만 우리의 개발로 인해 서서히 사라져갈 생명체들은 그들의 터전을 잃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일까?

 

3.JPG

 

'블랙스모커'는 해저의 지각 속에서 마그마가 식어서 굳어질 때에 정출되는 고온의 수용액이 바닷물과 반응하여 검은 연기처럼 솟아오르는 것을 말한다. 블랙스모커가 발견된 장소와 가까운 곳에서는 해구들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깊은 블랙스모커의 발견으로 태양 없이도 생태계가 작동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신비로운 그 심해를 인간의 개발로 인해 파괴될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수 없다. 일례로 멕시코만에서 있었던 심해 유전 유출사고가 바로 그것이라고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펼쳐지는 심해의 영상(물론 블루홀의 영상을 봤기 때문에 생각할수 있었을꺼 같음)들에 심취해 있기도 했지만 해양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들을 보면서 솔직히 그냥 그 바다를 가만히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만큼이나 심해는 그 비밀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사람들은 심해는 지구의 보물창고라 생각하겠지만 결코 심해는 그 보물창고를 쉽사리 열어줄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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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살 정은이
정유정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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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에서 사는 열한살 정은이의 성장기를 그렸다고나 하겠다.

1974년에 열한살이던.. 나보다 딱 10살이 더 많은 정은이 이야기이다...

그당시 매우 드물게도 정은이 엄마도 공무원으로 일을 했고, 아빠는 광주(도시)에서 공무원 일을 하시는 그야말로 주말부부 가족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보다 앞세대이긴 하지만서도 살짝 옛추억에 젖어들었다. 그야말로 어린이 정은이가 사춘기 소녀 정은이로 거듭나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요즘 우리 딸세대들은 학교갔다가 돌아오면 학원으로 바쁘지만 이 때 정은이는 산으로 들로 친구들과 뛰어다닌다. 소풍을 쫓아가겠다고 떼쓰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즐겨야 할 소풍을 동생 뒤치닥거리로 다 망쳐놨어도 동생을 업고 집에 지쳐서 돌아오기도 한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학교입학하기전에 교회에서 소풍을 갔더랬는데, 아마도 재미가 없었는지 집에가겠다고 오빠랑 둘이서만 대열에서 이탈을 했었다. 어린아이가 걷기에는 힘든 그 길을 아마도 몇시간을 걸어서 왔던것 같았다. 초등학생과 미취학 아동이었던 우리가 없어져서 집이며 교회며 한창 소동이 일어났던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서 말이다. 그야말로 우리는 뻔뻔하게 고요히 집에 들어섰다. 소풍갔던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그 곳을 이잡듯 아이들을 찾고 있었고, 집이 발칵 뒤집어졌던 것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뻔뻔하게 등장했던 것 같다.

 

아마도 뒤돌아보면 모든 사람들이 추억들을 가지고 있을게다. 하지만 30~40대의 나이가 되면 미처 그런것들을 추억하기도 전에 생활에 지쳐가고 있을테다. 그럴때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기라도 한듯 아련한 옛기억 속에 빠져들수 있을것 같다. 특히나 애기였을 적서부터 함께 뛰놀던 친구 승룡이와 미묘한 첫사랑의 시작이 왠지 귀엽기만 하다. 비록 그 사랑을 서로 알지 못하고 겉돌다가 은정이가 도시로 떠나기 직전에서야 알게 된것이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소설을 읽는내내 행복했다. 정은이의 어린시절이 재미있어서 행복했고, 나의 어린시절이 떠올라서 행복했고, 구수한 사투리가 재미있었다..그리고, 내 어린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거라 왠지 아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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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망고 - 제4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36
추정경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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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

 

< 완득이 >를 시작으로 창비 문학상 수상작들은 역시 재미있는것 같다. 아무래도 이 상을 수상한 작품은 믿고 읽어봐도 좋을듯 싶다.

 

< 내 이름은 망고 >의 배경은 캄보디아다. 부모님의 이혼후 빛 독촉에 쫒겨 야반도주하듯 수아는 엄마와 캄보디아로 떠났다. 하지만 모든게 엉망인 이 삶이 싫다. 언젠가 아빠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금씩 돈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가이드를 하던 엄마가 사라졌다. 비상금으로 모아둔 오백달러까지 가지고... 다시 사고를 치게 되면 엄마는 이 가이드 일도 못하게 될꺼다. 그래서 수아는 오늘부터 한국으로 돌아갈수 있는 비행기표를 구입할수 있을때까지만 가이드를 하기로 했다. 물론 엄마 이름으로...

 

열입곱의 이수아, 영어식으로 이름을 말하면 '수아 리' 그것이 캄보디아어로 망고와 비슷하여 옆집 할아버지는 수아를 망고라 부른다. 처음 시작하면서 수아의 엄마인 김지옥 여사가 딸아이의 비상금까지 털어 집을 나갔을때 참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한국도 아닌 먼 이국땅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는지 말이다. 안그래도 오늘 아침 2살 아이를 죽이고 자신도 투신자살한 한 엄마의 이야기를 기사에서 보았다. 자기가 낳았다고 해서 자기맘대로 할수 있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수아의 엄마도 그 머나먼 이국땅에서 딸을 무책임하게 버려두고 내빼 버리다니 참을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아는 우선은 엄마일을 대신하면서 자신을 버린 아빠(이혼을 하면서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자기에게는 연락할줄 알았는데 아빠의 핸드폰은 항상 꺼있다.) 그리고 갑자기 홀로 떠나버린 엄마를 원망하며 그래도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기특하게도 엄마가 돌아와서 먹을 반찬이 걱정이 되서 김치를 담그려는 아이다.

 

엄마의 파트너인 현지 가이드 쿤라가 갑자기 맹장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쿤라의 딸인 동시에 수아에게 앙숙인 쩜빠와 옥신각신 가이드 일을 한다. 처음에는 모든게 낯설었지만 4박5일의 일정을 무사히 소화해낸 수아.. 그리고 밝혀지는 비밀들... 왜 엄마는 갑자기 나를 떠나 몸을 숨겨야 했는지.. 그리고 아빠의 사고 이야기까지... 아빠의 사고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애써 기억에서 지웠던 수아...

 

영화에서 책에서도 그런말들을 들은적이 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어느 순간을 지워버린다는것을... 아마도 수아 역시 아빠의 죽음을 목격했던 그날들을 믿고 싶지 않았나보다. 나도 가끔 그렇게 기억이 나지 않았으면 좋을 그런 기억들이 있는데 가끔씩 왜 그리 새록새록 떠오르는지 말이다..비록 어린 수아지만 수아처럼 자립심이 강했으면 좋겠다. 30대를 훌쩍 넘어선 내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바람일까.. 그럼 이제 막 10대를 넘긴 우리딸은 수아처럼 자립심이 강하게 자라났으면... 그렇다고 그렇게 난 잠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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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이 번지는 곳 폴란드 In the Blue 4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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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과,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퀴리부인의 나라 "폴란드"

타민족들에게 끊임없는 침입과 박해를 받았으면서도 단일민족에 단일언어를 사용할 만큼 민족성이 아주 강해 오늘날까지 꿋꿋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온 나라

그래서 그다지 낯설지 않은듯하다..

 

그리고 이 책은 '번짐여행'시리즈 중의 하나다. 또 다른 책으로는 <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 <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 >,  < 사랑이 번지는 곳 불가리아 >가 있다. 모두 수채화로 그려놓은듯한 표지가 왠지 읽어 보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게다가 사진첩처럼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마치 폴란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유럽의 건물들을 보면 참 고풍스러운 것이 많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여행책자들에서는 일부러 그런 것들만 소개를 하는 것인지.. 아주 옛날부터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던것만 같다. 언젠가 경복궁에 갔었을때 본 풍경이 기억이 난다. 멋드러진 기와 사이로 솟아오른 빌딩들... 이것이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거구나 라는 짧은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는 옛건물들을 보려면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것만 같은데 이곳은 그러지 않은 것 같아 마냥 부럽다.(어쩌면 일부러 그런 사진만 실었을수도 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

이렇게 아픔을 품은 곳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곳이 바로 폴란드에 있었는지는 몰랐다. 참으로 숙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아우슈비츠에 대해서 읽으면서 왜 난 우리 '서대문 형무소'가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서대문 형무소도 아픈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시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었다던 지하 감옥을 보면서 느꼈던 그런 아픔이 아마도 아우슈비츠 그곳에 서면 같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슬픈 영혼들을 느꼈는지 딸아이는 서대문 형무소에 다녀온뒤로 한참을 무섭다고 했다. 하지만 아픈 우리의 역사이기에 외면하기보다는 항상 잊지 않고 인간들의 욕심이 같은 인간들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 되새기면서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아우슈비츠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처럼... 일부 사람들의 욕심이 불러 일으켰던 잔인한 일들을... 잊지 않고 다시는 그런일들이 없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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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1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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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의 잭슨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 세 여자가 있다.

다소 큰 키에(미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그리 큰키는 아니겠지만) 다른 친구들을 결혼을 위해 학교를 중도에 그만뒀지만 대학교육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미스 스키터.

하나뿐인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백인 어린이를 키우며 가정부 일을 하는 아이빌린.

그리고 음식솜씨는 뛰어나지만 자신을 고용한 백인주인에게 거침없는 말을 하는 미니.

 

아직은 인종차별이 심한 이 시대에 그녀 셋이 뭉쳤다. 지금 시대의 나로서는 별로 믿기지 않치만 그래도 죽음을 무릅쓰고 백인가정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의 삶을 낱낱히 파헤쳐 책으로 엮은 것이다. 여기에는 정말로 쥐어박아도 분이 안풀릴것 같은 여인도 하나 등장한다. 골수에까지 백인에 대한 우월성이 파묻혀 있는지 정말로 꼴사나운 힐리. 백인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의 성질에 맞지 않으면 사회에서 그사람을 철처히 매장시키려고 하는 사람이다. 가끔 보다 보면 이런사람들이 꼭 단체에 하나씩은 있는것 같다. 과연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를 알고도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스 스키터는 힐리처럼 우월감에 가득찬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낯추면서 비로소 자신을 한결 높이는 사람같다. 그녀를 키워주었던 콘스탄틴을 사랑했고, 흑인 가정부들도 스스럼 없이 대한다.(여기서 소수의 백인들은 흑인들을 마치 병원균을 옮기는 세균덩어리쯤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아이빌린을 우선으로 설득하며 작업에 들어갔다. 아마도 미스 스키터가 상원위원의 아들인 스튜어트와 잘되서 다른이들처럼 결혼을 하고 이 책을 만드는 것을 그만두었다면 그녀에게도 실망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떠나갔던 스튜어트가 다시 돌아와 청혼하고 그녀가 흑인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했을때 다시 떠나버린 못난 짓을 해버렸을때, 그런 찌질이 같은 남자를 선택하지 않고 뉴욕으로 새로운 꿈을 실현할수 있게 떠날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용감했던 아이빌린도 어쩜 뜻하지 않게 책으로 인해 해고는 당하지만 가정부로서의 삶으로가 아닌 다른 일을 시작할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또한 어느 누구보다도 용감했던 미니도 폭력적인 남편의 곁을 떠나서 미스 스키터나 아이빌린처럼 새로운 인생을 부디 찾기를 바란다...

 

이 책은 매우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있었다. 어찌보면 지금 우리세대가 보면 정말로 이러한 시대가 있었을까 라고 의문이 생길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이다. 백인들이 사용하는 공용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폭행당해 실명을 해도 어디서 억울하다고 이야기할수 없는 시대.. 그런 사회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미국에서도 버젓이 있었다. 어쩜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인종, 계급, 남녀의 차별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비하하거나 남을 속인다거나 하는 짓들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차별을 당하지 않으려면 본인의 의식도 매우 고급화가 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본인은 지각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나를 무시한다 차별한다고 감히 말할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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