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가져온 아이 - 제3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85
김려령 지음, 정문주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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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김려령 작가의 프로필에 항상 나오는 '마해송문학상'이라는게 궁금했다. 어린이 동화작가였던 마해송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문학과지성사에서 만든 상이다. 요즘에 너무나도 재미있는 창작동화가 많이 있어서 딸아이가 너무나도 부럽다. 그림도 한껏 들어간 책을 지하철을 타고다니면서 읽고 있을라치면 한번쯤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지만서도.. 어떠랴.. 아이들의 창작동화라든지, 청소년 소설이라든지.. 읽으면서 그네들의 생각도 곁눈질 해보기도 하면 우리딸과의 세대차이라는 것도 줄일수 있고 나도 심적으로 젊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 기억을 가져온 아이 >는 판타지 형식을 빌려서 기억과 망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과 기억되는 것, 잊힌 것과 죽은 것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자로 꼬마 무당을 등장시켜 무속의 세계와 잇닿아 있는 우리의 정신세계를 보여 준다"라는 심사평을 받은 이 이야기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아파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할아버지는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셨고, 그리고는 실종되었다. 그리고 차근이의 부모님도 이혼을 하셨다. 그래서 학기중에는 엄마와 방학중에는 아빠와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차근이는 방학전에는 늦게 오는 엄마 대신 엄마 집을 지키게 되고, 방학하면 아빠 집을 지키는 신세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날 꼬마 무당인 다래와 함께 할아버지댁 벽을 통해 기억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기억의 호수에 모인 기억들은 누군가가 잊어버린 기억들이며 잊힌지 오래된 기억은 플라스틱처럼 단단해진다고 한다. 그 다양한 기억들은 주인이 기억을 떠올려 주기를 호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내게는 얼마나 많은 잊혀진 기억들이 있을까? 어쩌면 내게는 잊혀져야 할 기억들이 많은것 같기도 하다. 때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떠올라서 괴롭기도 한다. 잊고 싶은 기억들은 왜 그렇게 또렷해지는지... 내 기억들은 떠올려 주기를 호수서 기다리고 있지 않고 틈만나면 내게 오는것 같다. 한치에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내 머리속으로 말이다... 가끔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내 기억들도 그곳에서 플라스틱처럼 단단해져버렸으면 좋겠다.

 

플라스틱처럼 단단해진 기억이 누군가에게 잊힌 이들이 모여 쓸쓸하게 살고 있는 마을을 가르쳐 주었다. 차근이 할아버지도 이것에 있을까.. 차근이는 한번도 할아버지를 잊은적이 없는데 왜 할아버지는 이곳에 와 계시는 것일까?

이 곳 사람들은 잊혀진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지우고픈 기억이 많은 사람들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자신에게 너무나도 아픈 기억이라 스스로를 지워버린 사람들인것 같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픈 바램들이 아니었을까.. 물론 아이들의 창작동화이기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에게서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아픔을 줘서 나도 모르게 잊혀지지는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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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요란 푸른아파트 문지아이들 96
김려령 지음, 신민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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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작가의 작품에 포옥 빠져서 두서없이 찾아서 읽고 있다. 이 책은 초등학교 3, 4학년 이상에게 권장되고 있는 책이지만서도.. 나이 많은 어른이면 어떠랴.. 재미있으면 그만이지...ㅋㅋㅋ

요즘은 딸이 참 부럽다. 내가 어렸을적에는 이렇게 도서관도 많지 않았고, 그리고 또 그렇게 책들이 많치 않았던것 같았다. 그저 집에는 동화책 전집과 위인전 전집을 읽고 또 읽었을 뿐이다. 물론 그때 대형서점을 알았더라면 그야말로 죽치고 앉아서 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요즘 세대처럼 학원에 다니질 않았고, 케이블 방송이 없던때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였을까?

 

이곳 재개발이 취소된 푸른 아파트엔 뭔가가 있다. 주변에는 재건축이 되어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데 이곳 푸른 아파트만이 저층 아파트이다. 그때만 해도 5층높이의 아파트라 고층에 속했다. 그걸 보면 나도 초등학교 시절 5층아파트에 살았었구나.. 제법 아파트단지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었다고 생각된다. 25년전 아파트인데 거기도 벌써 재개발이 되었을려나.. 궁금타...

 

벼락을 맞아 좀 이상하게 변한 1동, 데리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정이 깊은 2동, 재개발 취소로 시위하느라 검은 띠를 두른 3동,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퍼진 4동 그리고 계산이 빠른 상가.. 40여년을 함께해온 건물들이다. 작가는 모든 사물과 이야기하는 할머니에게서 어쩜 이런 상상을 했으리라.. 건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상상... 마치 아파트가 감정이 있는것처럼 묘사된 소설에 감칠맛이 난다고나 할까, 조금 독특한 소재에 아이들의 상상력이 커갈수 있을꺼 같다.

 

딸아이도 어렸을 때 모든 인형에 부르기도 힘든 이름을 붙여가면서 이름을 이야기해줬다. 실은 나도 우리집에 처음으로 자동차가 생겼을적에 차번호판에서 이름을 따서 '공팔'이라고 지어주었던 적이 있었다. 모든 가족들이 마치 우리집 막내인양 오랫동안 공팔이라고 그녀석을 불렀었다. 우리집에 온지 얼마 안있어 사고(?)로 옆이 약간 찌그러져 처량해 보이던 모습도, 그리고 헤어지게 되던 그날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해내게 된다. 지금도 난 내 차를 보고 '빠방'이라고 부른다. 마치 내가 힘이들거나 속이상하면 길가에서 퍼지거나 견인차에 매달려가면서 나를 웃게 만드는 그런 차다.

 

아직도 가끔은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생명이 있는것 마냥 대화를 하기도 한다. 주로 고장났을때 '병원가서 주사한대 맞고 오자'라는 정도이긴 하지만, 모든 사물에 생명이 있다고 상상하게 된다면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되지 않을까도 싶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그리 단지가 큰편은 아니지만 모두가 잠든 밤에 그들만의 대화가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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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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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의 복수에 동의할수 있는가?

 

<탐정클럽>과 마찬가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독자를 확 잡아끄는 마력이 있는것 같다. 그다지 적은 분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금세 이야기에 빠지고 말았다. <탐정클럽>에서 느꼈던 그 허를 찌르는 반전에 감동해서 찾아봤던 책이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미성년자인 청소년이 범죄의 가해자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확하게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성년이 되기전의 청소년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 갱생을 하여 사회로 돌려보내자는 의도에서 이름도 공개를 하지 않고, 좀더 낮은 형을 받게된다고 한다. 그것이 아무리 잔혹한 범죄일지라도 말이다.

 

소설속 나가미네는 얼마전 아내를 잃고 외동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불꽃놀이를 구경 간 딸이 집에 오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딸은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성폭행을 당한후 끔찍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이름모를 제보자에 의해 범인의 집에서 범인이 찍어놓은 성폭행 당시의 비디오테이프를 보게되고, 갑자기 들어온 범인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만다. 이제 나가미네는 피해자의 아버지에서 살인 용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나머지 한명의 범인을 뒤쫓는다. 그에게만 복수를 하고 나면 당당하게 자수하여 죄값을 받으리라 다짐한다.

 

자 이제 우리에게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 나머지 범인은 나가미네 딸뿐 아니라 평소에 친구들을 괴롭히기도 했고, 성폭행을 했고, 또 신고를 할까봐 모든 장면을 비디오로 증거로 남겨두는 파렴치한이다. 하지만 그는 미성년자다. 그리고 그는 쫓기고 있다. 나가미네는 마지막에 괴로웠을 딸을 생각해서는, 그리고 그들이 딸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그들을 가만둘수 없다. 결국 법은 그들이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잔혹한 범죄에 대해서도 넓은 아량을 베풀것이다. 내 손으로 복수를 해야만 내 딸에 원수를 갚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법은 누구를 지켜야 하는가? 파렴치한 소년범을 잡아야 하는건지, 아니면 살해위협을 당하고 있는 소년범을 감싸야 하는지 말이다. 법원 과연 정의의 칼날이라고 할수 있는가? 과연 정의의 칼날은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는 않은것 같다. 요즘은 약간은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그들은 얼굴노출을 해주지 않는다. 물론 그 범인들의 가족들이 당해야 하는 면에 있어서도 그렇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찌해야한단 말인가? 과연 이 법이라고 하는 정의의 칼날은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단 말인가? 만약 그것이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면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시대에서는 그 정의의 칼날이라는 것은 옳은 방향보다는 그 칼날을 교묘하게 잘 이용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만 친절한것 같다. 정의의 칼날이 올바르게 서게 하기위해서는 아직도 먼 여정을 해야할것만 같다. 많은 희생이 따라야 되고, 많은 억울함이 생기고 나서 외쳐야만 과연 그 칼날이 올바른 방향으로 설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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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보이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2
사소 요코 지음, 이경옥 옮김 / 생각과느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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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시원한 시골 들판이 있어서 맘에 꼭 들었다. 그래서 선택을 했던것 같은데.. 중학교 2학년 호시노 유에 성장소설이다.. 이 소설은 샨케이 아동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낙원 만드는 법' 이라는 NHK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인공인 호시노는 어린나이 답지 않게 삶의 목표가 뚜렷하다. 허나 갑작스레 결정된 시골행!!!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나도 화가났다. 나도 처음 이곳 의정부로 이사를 오게된다는 것이 좀 싫었다. 호시노보다는 어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곳은 논밭이 보이는 시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아니라는 이유로 싫었던 것 같았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긴 했지만 내가 이사오던 15년전쯤에는 시골 읍내같은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물론 차를 타고 5분만 가면 서울이지만서도 왜 그리 그때는 싫었던지... 현재도 아마 더 시골로 가자면 싫을꺼 같다. 너른 들판을 보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건 내 일상중 하루 이틀 잠시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근처에 영화관도 없고.. 도서관도 찾을수 없는 곳은 싫을꺼 같다. 아마도 어렸을때부터 도시에서 살아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그래서 호시노를 이해할수 있었다. 폐교할지도 모르는 분교에 같은 학년이래봤자.. 겨우 3명뿐인 그곳.. 우리만큼이나 입시지옥인 일본에서, 또한 일류의 삶을 생각하는 호시노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외국에 나가있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호시노는 엄마 손에 이끌려 치매끼가 있는 할아버지 곁인 아버지의 고향으로 갈수밖에 없었다...

 

호시노는 처음에는 마치 섞이지 않는 기름과 물처럼 그곳에 정착하기를 싫어했다. 분명 그곳에서도 열심히 노력에서 본인이 원하는 도시로 나올수 있기는 했지만 호시노는 그 긴시간을 기달릴수 없었던것이 중간을 넘어서야 독자도 비로소 알게되는 호시노 마음속에 있던 비밀때문이 아니었을가 싶다. 처음에는 그렇게 거부했던 게이같던 친구도, 자신을 히로시(아버지)라 부르는 할아버지도 점차 자신의 한부분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도 호시노가 또 그렇게 자신의 슬픔을 이겨내면서 한층더 커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지구상에는 자신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간과,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다른 인간이 많이 있단다. 다른 사람들과 서로 북적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이란다. 모두와 잘 지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단다. 당연히 충돌도 생기지. 인간은 부대끼면서 강해지거든.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겠냐. 아버지 생각에는 네가 그들이 마음속에서부터 싫은게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 머뭇거리고 있는것 같구나.... 너라면 할 수 있어!(p.78)

 

아버지의 입을 빌어서 호시노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라면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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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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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의 일생을 걸고 사랑하고 싶은 적이 있는가! "

 

7년이었다. 7년동안 남자는 백호를 쫓아야만 했다. 그놈과 해결해야 할일이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동생의 상처.. 그놈과 해결을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었다....

 

백호도 마찬가지였다. 7년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와 해결해야 할일이 있었다. 영험하다는 이유로 죽어간 하얀 새끼 호랑이, 그리고 암호랑이의 죽음.. 그와 해결을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었다.

 

남자는 자신만이 그놈으로 인해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했으나 백호 역시 사람들에 의해 제 가족들을 잃어 왔던 것이다. 이 소설의 처음 시작은 그리 감동이란 것은 없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포수가 되고 백호를 쫓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와의 대결을 기다리는 백호! 뭐 그런 7년의 원한이 있는 포수와 짐승의 싸움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호랑이가 그 주인공이 된 것이 아마도 이제는 없어져 버린 한국 호랑이의 그리움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백호를 찾아 쫓는 거라 생각했지만 실은 그 반대였다. 백호가 그를 유인하며 지치지 말고 자신을 쫓아오라고 하는 것이다. 남자가 꿈꾸고 백호가 꿈꾸었던 대결.. ' 너는 도약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 한순간의 갈망'을 위해 지치지 말라며 서로를 다독이는 것 같았다.

 

몇 번의 대결이 실패로 끝나고 우연한 산사태가 났을때 약해진 백호를 보고 남자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당당하게 싸워 이겨야지만 진정 남자가 원하는 복수였기때문이다. 백호도 마찬가지다. 그녀석도 여러번 남자의 뒷덜미에서 공격할수 있었다. 하지만 백호는 남자를 쉽게 제압할 순간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비겁하게 뒤통수나 치며 돈과 명예를 얻는 인간군상과는 다른 정정당당한 호랑이이기 때문이다. 이 둘의 대결은 이것만으로도 멋졌다.

 

허나, 조선의 맹수를 없애는게 목적인 일본인때문에 새로운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백호를 창경원 구경거리로 만들어 버리고 끝내는 그를 죽여 가죽을 벗겨내버리려는 상황에서 남자는 백호를 구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마치 절대로 일본에게는 무릎을 꿇지 말라는 내 바람과 함께 말이다.

 

책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일제시대의 아픔이 두가지가 느껴진다. 무분별하게 맹수를 퇴치했던 일본인의 잔학함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는 것을 떠나서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에서 시작된것이 아닌가 싶다. 이 세상은 인간의 것만이 아닐진데 말이다. 또 하나는 '창경원'이라는 명칭이다. 나도 어렸을적에는 창경원은 으례 동물원을 생각했었다. 이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격하시키기 위한 몇가지 중의 하나이다. 이제는 '창경궁'으로 명칭을 바르게 고쳐 부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제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는 곳이 있다. 지금은 이장되었지만 예전에는 정조의 맏아드님이신 문효세자의 릉이 있었던 '효창원'도 현재는 '효창공원'으로 불뤼고 있다. 이는 일제시대때 바뀌어 부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름을 다시 효창원으로 바꾸려 해도 이미 문효세자의 묘는 고양시 서삼릉으로 이장이 되었기에 이름을 바꿀수가 없다고 한다. 그게 무슨 상관일까? 분명 일제시대때 우리를 격하하기 위해 바꾼 명칭을 그냥 예전대로 복원시키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여전히 이해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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