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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옷장 - 개정판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10월
평점 :
아니 에르노의 첫 작품. 자전적 '소설'이다.
프랑스적 문장...
이 지점을 그토록이나 좋아하지 않는데 왜 매번 자꾸 번번이 아니 에르노를 읽고 있는가.
진짜 의문임... ㅋㅋㅋ
뭐 다 좋다 치자. 스스로를 쪼개고 썰어 한 조각 한 조각 들여다보는 글쓰기라고 이해하지만,
이토록, 자기의 성적 경험과 성장과정의 좌절, 실패, 환희, 고통을 이렇게까지 가학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창녀라고 오물을 스스로 뒤집어쓰듯 생각해야 할까.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는 유년 시절의 괴로움, 품위가 없는 지리멸렬, 궁상의 가난, 자신을 너무나도 객관화하다 보니 느껴지는 과장된 불행 아닌지. 그렇게 피칠갑 된 날것의 자신을 전시하는 것이 ... 이해할 수 있으면서 한편 불편하다.
물론 그 지점이 대단한 자의식의 표현이고, 어떤 시기에는 멋진 글쓰기라고도 생각했지만...
아니 에르노의 글 중 좋았던 경험은 이 책보다는 조금 더 조금 더 콤팩트하게 집중한 글이었던 것 같다.
빈 옷장은 너무 길고 지루한 자해라고 느껴졌다.
- 빅토르 위고나 페기처럼 교과 과정에 있는 작가를 공부해 볼까. 구역질이 난다. 그 안에는 나를 위한 것, 내 상황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을 묘사하거나 이 끔찍한 순간이 지나가게끔 도와주는 대목은 한 구절도 없다. 탄생, 결혼, 임종, 모든 상황마다 그에 따른 기도가 존재하지 않는가. 모든 상황에 맞는 구절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낙태 전문 산파의 집에 갔다가 나온 스무 살의 여자아이를 위한, 그 여자아이가 걸으면서, 침대 위에 몸을 던지면서 생각하는 것에 관해 쓴 구절. 그렇다면 나는 읽고 또 읽을 것이다. - 9
- 벌이다. 제삼자에게 받는 매질이다. 작고 빨간 낙태기구에 끌려간다. 이렇게 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 혼자만의 잘못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다. 나는 누구인가. - 13
- 이 소동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본다. 아니다, 나는 증오를 안고 태어나지 않았다. 내 부모를, 손님들을, 가게를 늘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타인들, 교양 있는 사람들, 선생님들, 예의 바른 사람들, 나는 이제 그들 역시 증오한다. 지긋지긋하다. 그들에게, 모두에게, 문화, 내가 배웠던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 나는 사방에서 농락당했다. - 15
- 나는 자주 오만했다. 그랬다... 나는 그랬다... 나는 모든 죄를 다 저질렀다. 목록이 길다. - 74
- 어쩌면 내 세상들 사이에 균형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표처럼 하나를 골라야만 했다. 어쩔 수 없다. 내가 내 부모, 르쉬르 가족의 세상을 골랐더라면 더 나빴을 것이다. 인생의 반은 싸구려 포도주를 마시고,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하지도 않고, 계산대 뒤에서 감자를 팔아도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며, 대학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가게와 선술집, 외상을 하는 초라한 손님들을 미워해야만 했을 것이다. 나는 핑계를 찾고 있다.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벗어날 수도 있을 텐데. 그런데 무엇에서 벗어난다는 것인가...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면서 그 우스운 꿈을 꿨다. 종말이다. 아무도 없고 나만 남았다. - 98
- 나는 작은 괴물이자 더러운 여자애, 구석에서 헤매는 아이였다. - 135
- 괴물, 차라리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내게 별말을 하진 않지만, 내가 갖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사준다. 책, 책상, 책꽂이. 어머니는 발뒤꿈치를 들고 와서 말한다.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게 의자가 갖고 싶지 않니? 네가 가서 직접 골라!' 책... 책... 어머니는 그것을 너무 믿어서 내게 먹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책을 아주 소중히 양손에 들고 와서 걱정스레 말했다. '혹시 이미 있는 건 아니지?' 어머니는 내 미래에, 내 지식에 기여한다고 느끼셨고 내가 책을 더럽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으며 책을 존중하라고 말했다. 그 책을 덮는 편이 어머니에게 더 낫다는 것을, 그것이 나를 그들에게서, 그들의 카페 겸 식료품점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내게 그들의 추함을 들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저 애는 책이 얼마나 많다고요! 일단 책만 원한다니까요!'라고 자랑했다. 그것은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편안한 의자, 책꽂이, 그것은 멋도 없고 스타일도 없는 다른 가구들 사이에 계속 쌓여갔고, 아무것도 새로 산 것은 없었지만 책은 그 모든 것을 지워 버렸다. 쌍년, 점점 더 부끄러웠다... 그렇지 않다.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정교 모임에 가려고 할 때면 계속 일하는 그들과 선반, 계산, 우중충한 장면들을 생각했다. 마음이 누그러졌다... 아빠, 엄마,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들, 나는 그들밖에 없다. 내 머릿속에서 커다랗게 자란 그들의 모습은 미소를 띤 얼굴로 친절하기만 한, 자신조차 잊어버리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성공하기만을 바라고 내 행복만을 원한다. 내가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꼬여 있고, 갇혀 있고, 불행하다고 해도, 분명 그들이 옳을 것이다. - 141
2025. mar.
#빈옷장 #아니에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