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드레스를 입은 악마
월터 모슬리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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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흑인 참전 용사인 이지키얼 롤린스.
고국에 돌아와 적응에 힘쓰고 있으나, 집 대출금도 걱정이고, 직장에선 해고되고,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노골적인 시대.

의문의 여자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이 탐정의 길을 걷게 된다는 시리즈의 서막.

푸른 드레스를 입은 악마라고 지칭되는 팜파탈 대프니 모네가 딱히 나쁜 사람인가 싶은 시절과 그 시대상을 그린다.
시리즈로 진행되면 더 흥미로울까 하는 마음은 좀 들었으나 굳이 찾아 읽게 되진 않을 것 같다.

- 나는 마우스에게 편지를 쓰고 싶지 않았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그의 힘이 워낙 막강했기에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더 이상 길거리에서 도망 다니지 않겠다는. 내게는 집이 있었고, 나는 거칠었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싶었다. - 66

- 그래서 나는 그 돈을 받았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에 나는 내가 겪고 있는 모험을 끝내기 전에 죽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지만 도망칠 수 없기에 백인들이 푸는 돈을 최대한 쥐어짜기로 마음먹었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었다. 대출금을 내고 저축을 할 수 있었다. 돈은 코레타가 죽은 이유였고, 디윗 올브라이트가 나를 죽이려는 이유였다. 어떻게든 충분한 돈이 있다면 나는 다시 내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 160

2025. jun.

#푸른드레스를입은악마 #월터모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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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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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가 제기하는 돌봄의 문제.

국가 주도의 아이 돌봄 시스템이 정착한 근미래의 이야기이고,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과 사건들이 버무려진 르포르타주 같은 느낌의 이야기다.

과학발전이라는 미명과 융합된 사이비 집단과 그곳에서 행해진 아동학대와 착취 문제가 있고,
아동 납치 불법 해외 입양 사례들이 등장하고, 트럼프 정부를 떠올리게 되는 이민자 정책도 등장한다.
그저 이야기로만 소비할 수 없는 것이 실제 하는 사건이 투영되었기 때문인데,
불과 십여 전 전에 행해졌던 홀트와 관련된 불법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최근에도 접했기 때문이다.
마음 아픈 실 사례들이 투영되어 몰입감이 있다.

모든 돌봄이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인, 시민의 의무로 '아이들의 집'에서 돌봄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보편 복지가 실현되는 사회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에 반대하는 이익집단이 등장하고,
삐뚤어진 이상을 그리는 이들의 인권 유린이 벌어진다.
돌봄에 최적화된 로봇들은 유쾌하고 믿음직한 존재로 그려지는 와중에 귀신까지 등장한다.
아주 다채로운 소재들이 잘 버무려져 있는데,
근래 읽은 공포를 다루는 이야기들 중 가장 섬찟한 귀신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서늘한 귀신이 아무리 등장하지만 결국 사람을 해치는 것은 사람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작가의 말에 장애인 타시설 활동가들의 농성에 대해 언급하며, 아이들의 집이라는 설정이 자칫 오독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했다는 말로 시작하는 정보라의 적극적 사회 참여 활동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정보라 특유의 쓸쓸하고 서늘한 발랄함이 있어 재밌게 읽었다.

- 관의 부모는 관을 찾아 헤맸다. 그 과정에서 관의 부모는 '어린 사람들의 행복을 지지하는 모임'이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산하기관이 아니라 그냥 사설 단체이며 정부와 계약을 맺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의 부모는 '어린 사람들의 행복을 지지하는 모임'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그제야 해당 단체 사람들은 관이 해외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관의 부모에게 알려 주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엄마는 아프고 밥 챙겨 주는 사람도 없이 애가 혼자 길거리 헤매고 다니는 것보다는 잘 사는 나라에서 부잣집에 입양돼서 잘 먹고 잘 지내는 쪽이 애한테도 좋지 않냐고 그 모임 직원이 그러더라. 나한테 눈을 부라리면서 애를 부잣집으로 보내는 게 아동복지라고 소리 질렀어."
관의 아버지가 말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관의 아버지는 그 순간의 모멸감과 분노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108

- "부당하게 분리되지 않았다면 왜 제대로 된 기록이 없어? 적법한 절차를 거쳤으면 한 단계마다 기록이 다 남아 있어야 하잖아? 물건을 사고팔 때도 전표나 영수증이 남는데, 우린 사람인데 왜 기록이 없냐고?"
관이 반문했다. 표는 동의했다. 그것은 단순하고 강력하고 옳은 논리였다.
관이 설명했다.
" 그 '모임'은 분리한 아이들을 자기들이 운영하는 시설에 수용하고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았어. 그때는 그렇게 했대. 그러니까 아이 한 명이 보호소에 들어올 때마다 단체가 받는 지원금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인 거야. 그러면 그 단체는 당연히 아이들을 최대한 많이 가족에게서 분리시켜서 많이 수용하고 싶을 거 아냐. 그래야 돈을 많이 버니까" - 110

- 부모가 없어도, 부모가 다쳐도, 부모가 아파도, 부모가 가난해도, 부모가 신뢰할 수 없는 인격을 가졌거나 범죄자라도, 아이들은 그런 부모와 아무 상관없이 자라날 수 있었다.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었다. 혈연이 있는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고 행운이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지만, 가족의 불운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지배할 필요는 없었다.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든 아이가 가진 고유의 권리였다.
아이들의 집에서 아이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아이들의 집은 어른들의 집이기도 했다. - 178

- 무정형은 정사각형이 보낸 링크를 열고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아이의 부고는 옳지 못하다고 무정형은 생각했다. 아이의 장례식은 옳지 못하다. 아이의 죽음은 부당하다. 아이는 죽어서는 안 된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 살아야 한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오래 살아서 노인이 되어야 한다. - 225

-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모든 아이들, 살아남아 어른이 된 사람들,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연대를 전한다. - 작가의 말 중

2025. jun.

#아이들의집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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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평짜리 숲 트리플 30
이소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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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과 에세이.

빛이 한 점도 들지 않는 장소와, 늘 밝은 빛의 세상인 장소.
극단의 대립 배경 속의 다른 성격의 두 인물.
각각의 세계가 보여주는 부조리가 부각되는 이야기.

- 아무튼 정거장 4가 사라져준 덕에 우리는 비로소 어디로 갈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라는 말이 비인간적으로 들린다. 비로소 산다. 비로소 간다. 비로소 이주한다. 비로소 정거장을 벗어날 수 있다. 비로소 나는. - 22

- 우리는 사라진다. 그러나, 엄마 말대로 우리라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 과연 정말 없었던 일처럼 감쪽같이 두 눈을 감추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끝끝내 미뤄두고 싶다. '영원히'라는 말은 지금 붙이지 말아야겠다. 나는, 아니, 우리는 그 단어의 무게를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 50

- 슬픔에도 돈이 든다고 하지만, 아진은 이제 그 말을 다르게 고치고 싶다. 돈이 없어서 자유가 없어? 그럼 돈을 벌어야지. 당신은 절대로 벌지 못하는 방식으로. - 64

- 어떤 하루는 가끔
지구의 마지막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끝이
또 다른 내일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 131, 에세이 중

- 철학자 샹탈 무페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는 '적대 antagonism'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남긴 적이 있다. 그들은 사회적 평등과 혁명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상정되는 어떤 '적대'의 형상이 실은 혁명의 움직임을 지속하게 하는 조건 그 자체라고 주장하였다. 이때의 '적대'는 사회체제 속에 내재된 모순, 균열, 틈 등의 명칭으로 다양하게 지칭될 수 있을 것이다. - 해설 중

2025. apr.

#세평짜리숲 #이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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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황석희 -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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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예전만큼 해외 영화를 보고 있지 않아서 영화 번역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글들에서 잘 된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긴 했다.

어떤 일상의 스케치를 그렸는지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대체로 수긍할 만한 이야기였는데, '요기'라는 표현을 낯설어 하는 관객들이 있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아주 안 쓰는 말도 아닌데, 잘 모른다고?

언어는 세월의 풍화에 이리 깎이고 생성되고 한다지만,
그런 감각이 너무 빠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언어 사용자들의 노력이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활자의 시대가 가고 영상의 시대라고도 하지만.......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인정하고 고치는 건 쉽지 않다. 늘 자존심의 문제거든. 훗날 내 딸이 커서 이 영화를 같이 본다면 해줄 이야기가 하나 늘었다. 이참에 근사한 어른인 척 거드름 피울 멘트도 하나 짜놨다.
"아빠는 반성에 자존심 같은 거 없어." - 24

- 너무 꼰대 같고 재미없는 소리지만 일정한 성취에 기본이 되는 건 따분하고 지루하고 고된 반복을 묵묵히 견디는 무던함, 그리고 제 살길을 어떻게든 찾아내 지소할 줄 아는 현실감이다. 대개는 그런 것들이 쌓여 성취가 된다. '대개는' - 89

2025. may.

#번역황석희 #황석희 #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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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사슬과 빛의 조각 레이디가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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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미스터리와 사회적 문제를 1, 2막으로 나누어 펼쳐지는 이야기.

1막의 고립된 섬에서의 연쇄 살인은 약간의 재미는 있었으나, 2막으로 이어진 사건 해결의 후일담 부분에서 그 흥미가 반감되는 구조였다고 느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원한으로 살인을 계획하고 무인도 여행에 나서는 초반부까지가 기대치의 최고.
철저하게 숨길 의도는 없었는지 초반에 이미 범인의 윤곽이 드러났다는 점도 그렇고 살해 계획을 세운 화자의 원한도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 저 여섯 명은 쓰레기 같은 것들이지만 저런 것들을 사랑하는 기특한 사람도 있다. 내가 여섯 명을 죽이면 아마 그들의 친구나 부모들은 나를 원망하고 내가 죽기를 바라겠지. - 45

- 무슨 이유로든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여기에는 어떤 예외도 인정할 수 없어요. 그런 전제조건이 없다면 우리는 사회를 신뢰할 수도 없고 타인에게 다가갈 수도 없습니다. 이 사람은 악인이니까 무슨 일을 당해도 된다든가 살해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인간의 생사를 멋대로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잔혹한 일입니다. 슬픈 일이에요. - 374

2025. may.

#끊어진사슬과빛의조각 #아라키아카네 #북스피어 #레이디가가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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