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평점 :
정보라 작가가 제기하는 돌봄의 문제.
국가 주도의 아이 돌봄 시스템이 정착한 근미래의 이야기이고,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과 사건들이 버무려진 르포르타주 같은 느낌의 이야기다.
과학발전이라는 미명과 융합된 사이비 집단과 그곳에서 행해진 아동학대와 착취 문제가 있고,
아동 납치 불법 해외 입양 사례들이 등장하고, 트럼프 정부를 떠올리게 되는 이민자 정책도 등장한다.
그저 이야기로만 소비할 수 없는 것이 실제 하는 사건이 투영되었기 때문인데,
불과 십여 전 전에 행해졌던 홀트와 관련된 불법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최근에도 접했기 때문이다.
마음 아픈 실 사례들이 투영되어 몰입감이 있다.
모든 돌봄이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인, 시민의 의무로 '아이들의 집'에서 돌봄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보편 복지가 실현되는 사회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에 반대하는 이익집단이 등장하고,
삐뚤어진 이상을 그리는 이들의 인권 유린이 벌어진다.
돌봄에 최적화된 로봇들은 유쾌하고 믿음직한 존재로 그려지는 와중에 귀신까지 등장한다.
아주 다채로운 소재들이 잘 버무려져 있는데,
근래 읽은 공포를 다루는 이야기들 중 가장 섬찟한 귀신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서늘한 귀신이 아무리 등장하지만 결국 사람을 해치는 것은 사람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작가의 말에 장애인 타시설 활동가들의 농성에 대해 언급하며, 아이들의 집이라는 설정이 자칫 오독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했다는 말로 시작하는 정보라의 적극적 사회 참여 활동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정보라 특유의 쓸쓸하고 서늘한 발랄함이 있어 재밌게 읽었다.
- 관의 부모는 관을 찾아 헤맸다. 그 과정에서 관의 부모는 '어린 사람들의 행복을 지지하는 모임'이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산하기관이 아니라 그냥 사설 단체이며 정부와 계약을 맺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의 부모는 '어린 사람들의 행복을 지지하는 모임'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그제야 해당 단체 사람들은 관이 해외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관의 부모에게 알려 주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엄마는 아프고 밥 챙겨 주는 사람도 없이 애가 혼자 길거리 헤매고 다니는 것보다는 잘 사는 나라에서 부잣집에 입양돼서 잘 먹고 잘 지내는 쪽이 애한테도 좋지 않냐고 그 모임 직원이 그러더라. 나한테 눈을 부라리면서 애를 부잣집으로 보내는 게 아동복지라고 소리 질렀어."
관의 아버지가 말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관의 아버지는 그 순간의 모멸감과 분노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108
- "부당하게 분리되지 않았다면 왜 제대로 된 기록이 없어? 적법한 절차를 거쳤으면 한 단계마다 기록이 다 남아 있어야 하잖아? 물건을 사고팔 때도 전표나 영수증이 남는데, 우린 사람인데 왜 기록이 없냐고?"
관이 반문했다. 표는 동의했다. 그것은 단순하고 강력하고 옳은 논리였다.
관이 설명했다.
" 그 '모임'은 분리한 아이들을 자기들이 운영하는 시설에 수용하고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았어. 그때는 그렇게 했대. 그러니까 아이 한 명이 보호소에 들어올 때마다 단체가 받는 지원금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인 거야. 그러면 그 단체는 당연히 아이들을 최대한 많이 가족에게서 분리시켜서 많이 수용하고 싶을 거 아냐. 그래야 돈을 많이 버니까" - 110
- 부모가 없어도, 부모가 다쳐도, 부모가 아파도, 부모가 가난해도, 부모가 신뢰할 수 없는 인격을 가졌거나 범죄자라도, 아이들은 그런 부모와 아무 상관없이 자라날 수 있었다.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었다. 혈연이 있는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고 행운이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지만, 가족의 불운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지배할 필요는 없었다.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든 아이가 가진 고유의 권리였다.
아이들의 집에서 아이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아이들의 집은 어른들의 집이기도 했다. - 178
- 무정형은 정사각형이 보낸 링크를 열고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아이의 부고는 옳지 못하다고 무정형은 생각했다. 아이의 장례식은 옳지 못하다. 아이의 죽음은 부당하다. 아이는 죽어서는 안 된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 살아야 한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오래 살아서 노인이 되어야 한다. - 225
-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모든 아이들, 살아남아 어른이 된 사람들,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연대를 전한다. - 작가의 말 중
2025. jun.
#아이들의집 #정보라